가볍게 달려도 2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요즘은 달릴 때마다 세상 쉬운 일 하나 없다는 생각만 내내 하게 된다. 6일 전에 비하여 기온은 떨어졌는데 코스까지 용이하니 처음부터 페이스가 좋을 줄 알았다. 아킬레스건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양쪽 발목에 테이핑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첫 1킬로미터가 6분 10초였다. 발목이 아팠다. 속도는 조심스럽게 올려야 했다. 1~2킬로미터 구간은 5분 40초에 달렸지만 2킬로미터 기록이 11분 50초로 2시간 5분을 넘는 기록이 예상되었다. 3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17분 20초. 구간 기록을 5분 30초로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2시간 3분 전후의 수준이었다. 4킬로미터를 달린 후에야 2시간 언저리의 페이스가 되었다. 5킬로미터는 28분 07초로 10여 초 정도의 여유를 벌었다. 이 순간부터 놀라울 정도(?)의 자제심이 발휘되었다. 조금 빨리 달렸나 싶어도 내내 5분 40초 페이스였다. 도무지 여유라곤 없는 레이스였다. 비가 내린 다음이라 습도가 높아 몸의 움직임이 방해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5킬로미터 급수대. 불만이었다.
오른편에 없었다. 왼편에 있는데 10킬로미터 주자가 반환한 후에나 급수를 할 수 있어 보였다.하프 주자가 물을 마시려면 주로를 이탈해야 하는데 10킬로미터 주자와 충돌할 우려가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하프 주자를 위한 급수대가 있겠거니 했다. 없었다. 하프 대회에 참가해 달려본 사람이 급수대를 배치했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비타민 드링크를 3킬로미터까지 들고 뛰면서 가끔 수분을 보충했기 때문에 다른 주자들보다는 나았다. 하프 반환점에 가서야 물을 마실 수 있다면 못 견딜텐데 다행히 8킬로미터 지점에서 게토레이를 마실 수 있었다.
3킬로미터 지날 때 뒤에서 치고 나오며 내 실명을 외치며 파이팅을 보내는 10킬로미터 주자가 있었다. 내 티스토리에 댓글을 달아주는 70개띠 마라톤 소속의 CH님이었다. 감사를 표했고, 마주 보았을 때는 먼저 박수를 치며 응원을 보냈다. 46분대의 페이스이니 매우 빠르게 달리면서도 응원을 해 주니 큰 힘이 되었다. 출발 전 나는 오프라인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것처럼 말을 붙였다. 오늘 10킬로미터 뛰시네요. 1515. 번호가 좋네요. '제 블로그에 들어와 댓글 달아주신 분 맞지요?'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음날 블루마라톤에서 하프를 달리기 때문에 오늘은 10킬로미터를 달린다는 사실, 평소에 트래드밀에서 달리기 때문에 야외에서 달리는 것은 대회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다음 어떤 대회에 나가는지, 로운리맨님 이야기도 꺼내고.....
비구름은 잠실롯데월드타워의 상단부를 감싼 뒤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그 자세를 풀지 않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땀을 많이 흘려 비를 맞은 것과 진배없었다. 10킬로미터는 56분 40초였지만 하프 반환은 58분 59초였다.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 1시간 57분 58초로 골인할 수 있었다. 지난 주는 후반이 전반보다 늦어졌지만 이번 주는 어떻게 되려나?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어울림마라톤인 만큼 시각장애인 달림이들을 이끌어주는 봉사자들이 많았다. 5년 전 시각장애인 도우미를 했던 일이 있으니 이들을 볼 때마다 남다른 느낌이었다. 연예인들도 보였는데 소녀시대 수영은 직접 보지 못했고, 배우 정경호는 보았다. 정경호씨는 모자, 안경,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내 바로 옆에 있었던 금발에 눈이 큰 여자 연예인은 매우 낯익었지만 누군지 모르고 있다가 몇 시간이 지나서야 기억났다. 아! 우주소녀 다영! 걸그룹 이름을 바로 기억해 내지 못하다니.....
통증 때문에 바닥에 발을 내리 꽂으면서 치고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이번 기회에 미드풋 착지 달리기를 해보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요즘 재활용품 수집을 하러 다니면서 시선이 늘 아래로 내려가 있었는데 모처럼 전방을 보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그동안 너무 자세를 무시하고 달렸다는 각성을 하게 되었다.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의식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달리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제라도 자세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달림이들이 내 뒤로 오고 있었다. 2시간 이내로 달리려면 남은 거리를 킬로미터당 5분 54초로 달리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 기준이 5분 56초까지 되었다가 5킬로미터가 남지 않자 급기야 6분으로 달려도 되게 되었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남기고 달린 지 1시간 52분 05초가 흘러 있었다. 남은 1킬로미터를 8분 가까이 걸려 달려도 1시간 59분대 골인이 가능할 만큼 시간을 벌었다. 그래도 마지막 1킬로미터는 분발해서 5분으로 달렸다.
01:57:04.65
1킬로미터를 남기고 페이스가 5분 30초에서 5분으로 좋아지면서 제치는 주자가 적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이 나를 추격했다. 두 차례나 내 옆에 따라붙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 분은 생애 첫 하프라고 했다. 19년 전 힘들었던 생애 첫 하프가 기억나서 힘주어 응원했다. 개인 훈련으로 하프를 달렸을 때 2시간 6분이 나왔는데 대회에서는 2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하니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이 분은 내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풀코스에 데뷔한다고 했다. 마지막 백 여 미터를 남겨두고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먼저 골인한 뒤 바로 따라들어오는 이 분에게 박수를 쳐 드렸다. 10분 정도 대화를 더 나누었는데 이 분 기록은 나보다 좋은 1시간 56분 58초였다. 내 출발 시각은 9시 5분 16초였고, 이 분의 출발 시각은 9시 5분 37초라 5킬로미터를 26분대로 달리면서 나를 추월해 갔다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간만에 종이 기록증을 출력받았다.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내 양말에 물을 뿌리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상의와 하의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뚝뚝 떨어져 양말을 적시고 있는 것이었다. 습도가 높아 땀을 정말 많이 흘린 날이었다. 완주 후 후유증은 심했다. 절뚝이면서 걸었다. 적어도 이틀이 지날 때까지는...... 9월 24일 있을 하프가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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