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종목은 2주 전과 마찬가지로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감싸고 달리면서 2회전하는 방식이었다. 구름다리를 건넌 후 좌측으로 가는 것이 달랐다. 어차피 오르막을 견디어야 하는 구간을 피할 수 없는데 흙길이 조금 더 길어졌다. 월드컵공원을 출발하여 50미터를 가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 바깥쪽이 아파서 다리를 절었다. 대회장에 너무 일찍 도착한 후 몸을 빨리 풀고 시간이 제법 흘러 몸이 굳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겨우 추스려 달렸다. 다행히 끝날 때까지 아프지 않았다. 구름다리가 시작되는 지점 1킬로미터 기록이 매우 궁금했다. 첫 1킬로미터가 5분 50초, 6분 10초.... 이랬던 최근 두 번의 마라톤 페이스와 비교해 볼 수 있었다. 5분 35초가 나왔다. 벌써 2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한 페이스로 들어섰다고? 방심하긴 일렀다. 잦은 오르막이 속도를 수시로 떨어뜨릴테니까.
메타세콰이어길에 들어서면서 만난 거리 표지판이 애매했다. 1.7킬로미터? 이후 표지판이 다 그랬다. 2.7킬로미터, 3,7킬로미터, 4.7킬로미터.... 페이스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100여 미터 앞에서 2시간 페이스메이커 두 분이 달리는 것을 보고 페이스를 파악했는데 이분들은 어떻게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노을공원 아래 주로에 들어섰을 때 자그마한 여성 주자가 눈에 띄었다. 이 분과 앞서거니 뒷서거니했는데 이 분이 먼저 말을 걸었다. 제가 따라 달리기 좋은 페이스세요. 딱 좋아요. 이 분은 내 뒤를 바짝 쫒아오면서 세 번이나 페이스 조절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2시간 이내, 1시간 59분대로 맞추어 뛸 것이니 꾸준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말을 걸 때마다 팔을 들어 응원했다. 하지만 반환점을 지난 이후 도발하고 말았다. 5.27킬로미터에 있어야 할 반환점이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5.27킬로미터를 네 번 왕복하는 방식에서 구간마다 30분 이내로 통과하면 2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하다고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30분이 넘고 31분까지 넘어 가니 다급해졌다. 0.43킬로미터를 더한 5.7킬로미터에 반환점이 있었다. 32분이 넘어 반횐했다. 하프 1차 5.7킬로미터, 2차 16킬로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이 때 눈치챘어야 했다. 올 때와 갈 때 코스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나는 그냥 단순하게 5.7킬로미터를 네 번 왕복하면 23킬로미터에 육박하는데 1.72킬로미터를 더 달리고 2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킬레스건 통증 때문에 근육테이프까지 촘촘하게 붙여 놓은 상황에서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2시간을 넘긴 하프가 있는데 사실 주최측의 실수로 더 달리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라 억울해요, 라고 구질구질한 해명을 하고 다녀야 하나 싶었다. 1.7킬로미터나 더 달렸지만 2시간 이내 완주는 했었지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2015년 7월 26일 새벽강변마라톤이 떠올랐다. 반환점까지 1시간 13분이 걸렸던 나는 후반 10.55킬로미터를 46분대에 달려 1시간 59분대로 골인했었다. 누군가의 도우미가 되어 달리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어느새 친해진 여성 주자에게는 미안했다. 속도를 올렸다. 반환하기 직전 내리막이 이어져 돌아올 때 죽었구나 했던 코스가 전혀 오르막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평탄하거나 내리막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오르막에서 강했던가? 그동안 훈련이 잘 되었던가? 아킬레스건 통증이 일주일 전 만큼 심하지 않은건가? 30도에 육박하던 날씨가 어느새 20도가 되지 않는 날씨가 되어 움직임이 수월해진건가? 출발 전에는 바람이 제법 불어 칩이 담긴 비닐봉투가 날아가기까지 했다. 누가 칩이 담긴 봉투를 떨어뜨린거야, 라고 떠들었다가 사실 내 것이어서 무안해진 일도 있었다. 어쨌든 오르막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속도를 올리기가 무섭게 2시간 페이스메이커 그룹의 거리가 50미터 이내로 줄었다. 9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2시간 페메를 제쳤다. 출발했을 때 만난 2.7킬로미터 거리표지판에 뒤쪽에는 남은 거리 2킬로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구간 가운데 가장 힘든 구름다리 직전 오르막을 지나고 난 뒤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코스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출발할 때는 ㄷ자로 월드컵 공원을 감아돌았지만 골인할 때는 직진하는 것이었다. 갈 때는 5.7킬로미터, 올 때는 4.85킬로미터였던 것이다. 시간을 벌었다. 2회전을 시작했을 때는 ㄷ자 코스를 달려야 했다. 구름다리에 진입하기 직전 부상으로 달리지는 못하고 그저 걷고만 있는 희수형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한창 물이 올라 풀코스 대회마다 참가신청했던 형님은 부상 때문에 9월 10일 철원, 17일 안동 풀코스를 모두 포기해야 했다. 아킬레스건 통증이 남아 있었지만 달릴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확실히 직전 하프 대회와는 느낌이 달랐다. 힘들어 죽겠다, 이걸 어떻게 다 뛰나, 너무 덥다, 코스가 힘들다.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리막을 만나면 추월당하고, 오르막을 만나면 추월하는 스타일을 반복했다. 웬만하면 편하려고 애썼다. 나무 그늘을 찾거나 물을 충분히 마시거나 하면서. 메타세콰이어길,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갈림길, 흙길과 아스팔트의 교차점, 지루하게 이어지는 반환 직전의 내리막. 마침내 16킬로미터. 마지막 반환점에 닿았다. 1시간 28분 42초가 걸렸다. 남은 5.1킬로미터. 6분 페이스로 달려도 2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해졌다. 반환하면서 깜짝 놀랐는데 2시간 페메 그룹이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이었다. 속도를 올린 만큼 아주 멀리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2시간 페메 그룹은 1시간 58분대로 골인하게 된다.) 반환한 후 만나는 오르막이 이번에도 오르막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뒤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따라붙는 주자들을 모두 떨궜다. 하지만 내리막이 시작되면 여지없이 추월당했다. 구름다리를 건너 몇 백 미터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몇 명의 주자에게 추월당했다. 골인 아치가 보일 때 시계를 보니 1시간 55분 초반이라 1시간 55분대 골인을 확신했다.
1:55:35.17
오르막이 잦은 구간, 기록을 내기 보다는 훈련에 적합한 구간에서 킬로미터당 5분 28초가 되었으니 만족했다. 일주일 뒤 하프 대회에 나간다면 더 기록이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추석연휴에 걸리면서 참가할 대회가 없었다. 발목 통증도 예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완주 후 눈에 띄게 절뚝였던 발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옮기고 있었다. 하프를 달리고 난 후 무조건 이틀을 쉬어야 했던 일이 이번에는 없었다. 이후 대회가 바로 풀코스라 부담되지만 그저 살을 빼면서 훈련한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외부적인 조건이 나를 도와주고자 한다면 뛰는 날 시원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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