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20회 국제평화마라톤대회(2023/10/09)-FULL 232

HoonzK 2023. 10. 13. 20:33

 국제평화마라톤은 2012년부터 출전했지만 풀코스는 처음이었다. 대회장으로 가면서도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현재 풀코스를 완주할 능력이 되는가? 지난 4월 15일 풀코스를 4시간 22분대로 완주한 후 6개월 가까이 22킬로미터 이상을 달린 일이 없으니 아무래도 풀코스는 무리였다. 하지만 춘천마라톤을 앞두고 35킬로미터 정도의 장거리 훈련을 한번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국제평화마라톤을 42.195km 장거리 훈련주로 삼기로 했다. 다음 풀코스를 위한 준비 과정. 예방 주사를 맞는다고 할까? 따라서 거리주는 되어도 시간주는 되지 말아야 했다. 얼마나 빨리 뛰는가에 대한 관심은 접고, 끝까지 42.195킬로미터를 달려내는 일에만 집중한다. 서브4 200번은 꼭 달성하고 싶지만 이번엔 서브4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았다. 다만 4시간 20분대로는 달려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자 했다. 
 
 6천여명의 참가자들이 봉은사로를 꽉 채운 가운데 배동성씨의 출발 외침을 듣고 달려 나갔다. 출발 직전 비가 떨어지는데 흩뿌리는 수준이라 달리기가 한결 수월했다. 다만 탄천주차장쪽으로 내려가면서 병목 현상이 발생해 속도가 바로 줄었다. 첫 1킬로미터가 6분 45초나 걸렸다. 4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보다 뒤에 있었다. 출발한 후 한동안은 오랜만에 만난 풀코스 지인들과 인사하기 바빴다. 윤동형님, 남수형님, 기옥형님. 대회다운 대회를 달리는 것은 4년만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풀코스를 달리는 미군들도 많아 국제 대회라는 느낌이 물씬 났다. 그들의 영어 대화를 들어보려 애쓰는 것 자체가 다채로운 분위기였다. 배동성씨가 사회를 본 것만 보아도  이 대회가 규모가 적지 않은 것이다. 팔뚝에는 여전히 마스크가 걸려 있지만 코로나 이후 이렇게 많은 주자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감동적이었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는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줄 알았다. 기옥형님은 나를 보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주었다. 윤동형님은 올해 풀코스를 별로 뛰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횟수가 30회였다. 한구형님과도 재회했다. 7년만에 잠시 동반주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달리다가 35킬로미터 이후 속도를 올려 3시간 50분대 초중반으로 골인했던 패턴을 가졌던 도반과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구형님은 내 버프 스타일은 여전한데 살은 좀 찐 것 같다고 했다. 로운리맨님과 성하형이 출전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2차 반환이 가까워지기 전에는 앞선 주자를 마주할 수 없으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이흥의님과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5년 전 일인데도 도우미했던 나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이름과 같아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프는 최근에도 여러 차례 달렸으니 25킬로미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나름대로 계획은 세웠다. 25킬로미터쯤 달려서 몸이 올라오더라도 속도를 올리지는 말자는 것. 조깅하듯이 달려서 후반에 대비하고, 30킬로미터까지 간 후에는 이제 새로운 12킬로미터 달리기가 시작한다고 믿고 앞의 30킬로미터는 잊는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기억하겠지만 그래도 최면을 걸자. 35킬로미터까지만 가면 에너지가 급충전된다고 믿자.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착각의 힘을 맹신하자. 그러다가 40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하면 이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의 영역에 들어섰으니 인간이 감수할 고통은 다 끝났다고 믿으며 달리자. 결국 훈련은 부족한데 마음가짐으로 이겨내 보려고 애쓰는 형국이다. 어쨌거나 심리적 요소가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사실 신체적 조건과 외부 상황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이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mens corpori imperat. 오래전부터 통용된 말이라고 라틴어까지 끄집어낸다. 
 
 6분 45초였던 페이스가 6분 10초, 6분 00초, 5분 50초까지 좋아지기도 했다. 1차 반환하기 전에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앞에 있었다. 하프 1시간 30분, 1시간 40분, 1시간 50분, 2시간 페메에게 순차적으로 추월당하는 재미가 있었다. 2시간 페메에게 추월당한 후 한동안 페메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는데 달리면 달릴수록 속도가 붙고 있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했다. 킬로미터당 기록을 확인하긴 했지만 늦게 달렸다고 해서 속도를 올리거나 빨리 달렸다고 해서 속도를 내리거나 하지 않았다. 지겨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뛰다 보면 완주가 가능하리라는 것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직도 10킬로미터밖에 못 뛰었어,가 아니라 벌써 10킬로미터나 뛰어서 고작 32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어,라고 생각했다. 벌써 32킬로미터나 뛰었으니 이제 10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아킬레스건이 아프지 않았는데 최근에 살이 조금 빠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길게 달리면 사타구니가 옷에 쓸려 상처를 입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달린 거리가 누적될수록 햄스트링 통증이 느껴졌는데 완주한 후에는 오히려 없었다. 달리고 난 후 아킬레스건, 햄스트링 부상이 없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주로에서 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다 했다. 2.5킬로미터마다 제공되는 물과 게토레이를 열심히 마셨다. 초코파이와 바나나도 적잖게 먹었다. 초코파이는 1개와 4분의 3개, 바나나는 1개 반. 
 
 17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난 후 뒤돌아 보니 30킬로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6.5킬로미터를 더 가면 반환점이 있을 것이고, 그 거리는 23.5킬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하늘은 뙤약볕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라톤 후반은 초반보다 힘들 수밖에 없는데 햇빛까지 작렬하면 몹시 힘들겠거니 했다. 양재천변을 뛸 때는 페이스 점검하고, 탄천변을 뛸 때는 페이스를 유지하고, 마지막 한강변을 뛸 때는 페이스를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20킬로미터 이후 나보다 앞서 달리는 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달해아름다워님을 보고 난 뒤 곧 3시간 30분 페메가 나타났다. 3시간 45분 페메와 함께 달리는 축구스타킹환님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 70개띠 CH님을 보았는데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희규형님, 로운리맨님, 성하형을 순차적으로 만났다. 로운리맨님은 손으로 X자 표시를 하며 중간에 그만 뛸 것이라고 했다. 성하형은 내게 '힘!'하고 외쳤다. 
 
 풀코스 LSD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과연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끝이 없었지만, 꼭 완주해야 한다는 의욕도 끝이 없었다. 35킬로미터 이후 나름대로 선전했다. 조금 지쳐 보이는 기옥형님 앞으로 나아갔고, 쥐가 나서 걷고 있는 성하형에게는 추석 때 공원사랑마라톤 몇 번 뛰실 줄 알았어요, 라는 말을 붙였다. 탄천을 건너 바로 좌회전하면 골인 지점이지만 풀코스 주자는 한강쪽으로 나아가 거리를 채워야 했다. 로운리맨님이 도중에 레이스를 접었다면 이곳에서 바로 좌회전했겠지만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37킬로미터 가까이 달렸는데 단 5킬로미터를 남기고 아까운 풀코스를 접어 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운리맨님은 춘천마라톤을 대비하여 장거리 훈련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 훈련이 당초 예상보다 긴 37킬로미터나 되어 힘들긴 했지만. 양재천과 탄천만 보다가 넓은 한강이 보이니 정신이 맑아졌다. 새벽에 잠이 부족하여 알람을 10분 뒤로 밀기까지 했는데 눈이 감기면서도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었다. 이미 골인을 앞두고 있는 CH님을 탄천을 건너자마자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CH님은 역시나 내 실명을 부르며 응원해 주었다.
 
 38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드디어 4시간 15분 페메 옆에 있었다. 페메 두 분 가운데 한 분은 35킬로미터 이후 풍선을 날려 버렸던 것을 기억했다. 4시간 20분대를 목표했던 내가 4시간 15분 페메와 함께 달리고 있다니 놀랍긴 했다. 따라 뛰면 4시간 15분에 들어갑니까, 라고 묻던 내가 그냥 속도를 올려 버리고 말았다. 믿을 수 없지만 35킬로미터 이후 질주는 못해도 속주는 하고 있었다. 39킬로미터 이후 만나게 되는 3차 반환점이 멀게 느껴졌지만 어느새 반환해서 40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골인을 몇 백 미터 남기고 만나는 마지막 마의 오르막 구간. 내 앞에 있는 열 명 정도의 마스터즈가 모두 걷고 있었다. 다 왔는데 걸을 수는 없지. 오르막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 뛰기 훈련하듯이 치고 올라갔다. 우회전하자마자 골인 아치가 있어 깜짝 놀랐다. 집결지가 영동대로가 아닌 봉은사로로 바뀌면서 골인 지점이 가까워진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 병목 현상도 생긴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스퍼트하면 6개월 전보다 10분 빨리 골인할 수 있어 보였다. 
 
 4:12:52
 
하, 풀코스를 달리고 말았네. 정말로. 킬로미터당 페이스가 6분을 넘지 않게. 평균 페이스 5분 59초. 지난 풀코스보다 킬로미터당 14초씩 빨리 달렸다. 옷을 갈아 입을 때 쥐가 났지만 잠시였을 뿐 놀라울 정도로 후유증이 없었다. 아킬레스건. 햄스트링이 아프지 않았다. 이틀 후 계획대로 400미터 인터벌 12번을 할 수 있었다.
 
 완주 메달과 간식을 받고 물품보관소까지 걸었다. 탈의실 앞을 지나기 직전 건물 그늘에 앉아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로운리맨님. 정말 37킬로미터만 달렸다고 했다. 함께 순대국밥 먹고 스타벅스에서 제주유기농 말차를 마셨다. 
 

 

 
 
 

뙤약볕에서 달리는 중

 

초반으로 보인다. 주변에 주자들이 너무 많다.

 

골인지점을 향하여 마지막 스퍼트

 

살을 3킬로그램 정도만 뺀다면 춘천에서 선전할 수 있을 것같은데 시간이 없다.

 
 

붐비는 물품보관소. 풀코스 출발 34분 전
11,0000원 순대국밥
로운리맨님 추천으로 말차를 처음 마셔 보았다. 로운리맨님은 샷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