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를 2시간 이내로는 달려야 한다는 승부욕과 2시간을 넘길 것 같으면 아예 포기해야 겠다는 치사한 속내가 충돌한다. 국제관광 서울마라톤대회는 10킬로미터 출전이 맞았다. 1시간 이내, 5분 59초 페이스로 달리는. 하프를 두 시간 이내로 달리려면 킬로미터당 5분 40초 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데 기를 쓰고 달린 첫 1킬로미터가 5분 50초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전히 과체중 상태인데 올해 유별나게 더워 9월 기온이 예년 평균 기온보다 3도가 높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오르막이 적지 않은 코스를 2회전 하는 방식이니 다른 대회보다 더 애를 써야 2시간 이내 완주를 할 수 있었다. 1회전을 마쳤을 때 1시간이 넘어간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고 로운리맨님에게 예고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지난 6월 25일 하프를 완주한 후 이번 대회 8일 전까지는 한번도 15킬로미터 이상 달려본 일이 없었다. 8월 6일 새벽 18킬로미터는 걷는 구간이 많아 장거리 달리기라고 할 수 없었다. 하프 도전이 발등에 떨어지자 일주일 전 22킬로미터 쯤 달렸다. 오랜만의 장거리라 너무 힘들었다. 옷에 살갗이 쓸려 피까지 보았다. 화요일에는 400미터 인터벌 16번을 했다. 급기야 목요일에는 중간 속도 10분 달리기 5번을 했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도 달렸다. 대회를 앞두고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일 연속 뛰었더니 2킬로그램쯤 빠졌다. 옆구리살이 부풀어 올라 있는 것이야 똑같지만 그 부피가 조금 줄어 있었다. 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다가 벼락치기를 했기 때문에 피로감은 만만치 않았다.
1킬로미터를 5분 50초에 통과한 후 다음 1킬로미터는 5분 30초가 걸렸다. 2킬로미터 기록이 11분 20초. 산술적으로는 1시간 59분대 골인이 가능했다. 월드컵공원에서 하늘공원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를 건너고 나면 내리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시간을 줄였지만, 하늘공원에서 노을공원으로 나아가면 내내 오르막에 시달려야 한다. 훈련하기에는 딱 좋은 코스이지만 기록을 내기에는 어려운 코스임에 틀림없었다. 이내 5분 40초 페이스를 잃게 되었다. 3킬로미터 17분, 4킬로미터 22분 40초, 5킬로미터 28분 20초, 하프 1차 반환 29분 후반대를 꿈꾸지만 죄다 기준 기록을 넘기고 있었다. 하프 완주자 159명, 10킬로미터 완주자 427명이니 참가자가 그리 많지는 않아 주로는 붐비지 않았다. 5백 미터 쯤 앞에서 달리는 로운리맨님을 마주했는데 몹시 힘든 표정으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어 부르지 않았다. 2회전인 만큼 자주 만날테니 처음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계산하고 또 계산하는 레이스가 되었다. 5.27킬로미터를 네 번 달리는데 각각 30분 이내로 끊어야 한다. 첫 구간을 30분을 넘겼으니 중후반에 벌충해야 한다. 1시간 안에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시간이 갈수록 기온은 오르고 몸은 피곤해질텐데 더 시간을 까먹을 수도 있었다. 4킬로미터 남았을 때 하프 주자는 6.5킬로미터 쯤 달린 셈이니 페이스를 어떻게 계산해야 하나? 4킬로미터는 22분 40초로 달리면 1시간 59분대 완주가 가능하니 4킬로미터 남았을 때 37분 20초를 넘지 않으면 된다. 내 희망과 달리 넘는다. 3킬로미터 남았을 때 17분의 여유가 있어야 하니 43분이 넘지 않아야 한다. 미안하지만 넘는다. 2킬로미터 남았을 때 11분 20초의 여유가 필요하니 48분 40초 안쪽으로 달리면 된다. 될까? 고맙게도 48분 30초가 나온다. 갈 때 오르막이었던 구간이 올 때 내리막인 덕분이다. 하지만 2킬로미터 남기고 주로는 달림이들의 시련을 준비한다. 구름다리에 닿기 전까지는 가파르게 느껴지는 오르막을 견디어 내어야 한다. 그래도 이 때는 재빠른 10킬로미터 주자들이 스퍼트해 주고 있기 때문에 자극이 되어 어떻게든 속도를 유지한다. 2회전할 때는 이 구간의 사정이 달라진다. 지친 하프 주자들이 죄다 걷고 있을 것이기에......
어느새 하프 1회전 직전이었다. 1회전만으로도 기운을 다 쓴 것 같은데. 어차피 운동의 효과로 봤을 때 10.55킬로미터 정도만 달려도 이 더위에서는 충분한 것 아닐까 싶었다. 요즘 몸이 좋지 않은 로운리맨님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혹시 중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골인 지점에서 X자 표시를 하며 그만 뛰겠다고 하는 로운리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그러면 나도 레이스를 1회전으로 마무리할까? 갈등하는데 로운리맨님이 오고 있었다. 응원을 주고 받았다. 1회전만 하겠다는 생각은 바로 버렸다. 1회전은 59분이니 여유도 생겼다. 마라톤 TV 여사님의 응원을 받으며 물을 마시고 바로 2회전에 나섰다. 너무 덥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2회전 때 계산은 간단했다. 1킬로미터는 1시간 5분 40초, 2킬로미터는 1시간 11분 20초, 3킬로미터는 1시간 17분으로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넘지 않으면 되었다. 1회전을 마치면서 1분을 벌었고, 지지부진했던 페이스도 나아지고 있어 부담감이 확 줄었다. 문제는 노을공원쪽의 긴 오르막인데 거기서 시간을 많이 까먹지 말기만을 바랬다. 이러는 사이 웃도리는 무섭게 젖고 있었다. 땀으로 쩔었다는 느낌이 들면서 옷이 무거워졌다. 2분 이상의 여유를 기대했지만 조금 나아져 봐야 1분 30초 전후가 최대 여유였다. 피로하고 덥고 코스가 힘드니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나도 모르게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하프 3차 반환점. 1시간 29분이 걸리지 않았다. 5킬로미터 남기고 만난 급수대에서는 로운리맨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먼저 가세요. 기다리지 말고 집에. 이 말에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달렸다.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겠지만 회복한 로운리맨님이 앞으로 치고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달리게 되었다.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당초 목표로 했던 2시간 이내 완주는 가능해 보였다. 18킬로미터 달리고 만난 급수대에서 포카리스웨트를 입에 넣었다가 바로 뱉고 말았다. 주자들이 뿌린 파스가 음료수에 진하게 배여 있었다. (스프레이 파스를 급수대에 같이 놓는 것은 피해야 하는데. 뿌리더라도 급수대에서 조금 떨어져 바람의 방향을 보고 뿌려야 하는데.....)
19킬로미터를 넘어 지옥의 오르막이 나왔다. 뛰는 사람이 없었다. 평지가 나오기까지 걷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걸으면 두 시간 이내 완주는 힘들어요. 아깝잖아요. 이 말을 주워 삼키며 치고 올라갔다. 누가 모르겠는가? 힘드니까 걷는 것이지. 마침내 정점에 올랐다. 구름다리를 건넌 후에는 평지였다. 남은 1킬로미터. 치열하게 달리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후반 질주를 하지 않는, 아니 후반 질주를 하지 못하는 나. 후반이 전반보다 1분 가까이 느려졌다.
1:58:45
전체 페이스는 5분 39초로 낙착되었다. 짐을 찾아 벤치에 앉아 물 한 통을 비웠다. 마지막을 전력질주로 장식하는 로운리맨님이 보였다. 159명의 하프 완주자 가운데 나는 49위였다. 내 앞에 여자는 네 명이 있었다. 52명만이 두 시간 이내로 골인했고 3분의 2 참가자가 2시간을 넘겼다.
로운리맨님과 묵은지고등어조림으로 점심을 함께 했다. 로운리맨님이 수산물 코너에서 전어회를 사온 덕분에 간만에 전어회 맛도 보았다. 나는 아킬레스건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늘 왼쪽 발목이 아파서 그쪽에만 테이핑을 했는데 처음으로 오른쪽 발목 통증이 생겼다. 결국 몇일 동안 절뚝거리며 걷느라 달리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9월 16일, 9월 24일 하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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