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건 통증을 무릅쓰고 하프를 완주한 바로 다음 날 출전이라 부담스러웠지만 10킬로미터일 뿐이니 웜다운 개념으로 출전했다. 아무리 10킬로미터이지만 온전한 몸이 아니니 주의해야 했다. 날씨도 덥다고 했다. 신도림역에서 내려 화장실을 이용하고 1킬로미터 남짓 걸어서 대회장인 신정교 아래로 갔다. 이동 중에 스트레칭을 마치면서 대회장에 도착해서는 할 일이 없었다. 배번을 수령하면서 로운리맨님이 먼저 왔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로운리맨님은 탈의실 근처 밴치에 앉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끔 나누는 대화에서 10킬로미터 기록을 세워 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 더운 날 노천을 달리면서 기록을 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것.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지 알 수 있었다.
500명의 참가자 가운데에서 몇몇 아는 분을 봤는데 축구스타킹환님과는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대회 운영요원으로 나온 마라톤TV 사장님은 출발할 때 내 팔을 건들며 먼저 인사해 오기도 했다. 2년 넘게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아직도 기억해 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늘 70개띠마라톤 노랑 유니폼을 입고 달린다는 분이 떠올라 찾아 보았다. 혼잡한 출발 선상에서 그런 분을 딱 한 분 보았는데 유니폼에 새겨진 이름이 ㅊㅎ이었다. 이 분이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달았을 분일 확률은? 나중에 검색해 보고 3월 12일 전마협 대회, 4월 15일 여명국제마라톤대회에서 같은 이름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분이 맞는 것 같았다. 달리는 동안에는 마주 보지 못했다.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뒤에서 보는 것과 앞에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고, 단 1초 본 것으로 얼굴을 기억할 만큼 내 눈썰미가 좋은 것도 아니니.....
출발한 후 수많은 주자들에게 추월당하더라도 동요하지 않았다. 아킬레스건이 좋지 않다는, 그러고도 전날 하프를 완주했다는 핑계거리를 들어 승부욕을 자제했다. 이 대회에는 거리 표지판이 따로 없었다. 5킬로미터 반환점(2.5킬로미터), 10킬로미터 반환점(5킬로미터)을 통과하면서 페이스를 체크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슬슬 달려서 완주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그래도 1시간 이내로는 완주하자는 계획이 있어서 시간 체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5킬로미터 지점 통과 기록이 15분을 넘지만 않는다면 1시간 이내 완주는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었다. 하프를 2시간 이내에 완주할 때 킬로미터당 5분 40초로 달려야 하는 것에 비하면 킬로미터당 5분 59초로 달려도 되는 것은 얼마나 여유있는가? 몸이 가는대로 달려서 급수대에서 페이스를 체크했을 때 15분이 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발목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면 5킬로미터만 달리고 말아야지 하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마라톤 대회에 나오기 시작한 후 가장 무거운 체중을 자랑(?)하고 있으니 발을 내려놓는 것도 신경써야 했다. 하중이 적게 가는 주법을 구사해야 하는데 달리는 방식에 신경을 쓰는 만큼 달리기 리듬을 깨뜨리는 일이 없었다. 만만치 않은 더위였지만 통증없는 달리기에만 집중하니 사실 더운 줄 몰랐다. 5킬로미터 반환점은 고맙게도 15분 이내 통과했다. 5킬로미터 여자부 3위로 달리는 설아님에게는 응원을 보냈는데 타이밍이 늦어 답을 받지는 못했다.
양평교, 목동교를 지나 안양천 한강 합수부만 생각하면서 달리다 전방을 살폈는데 로운리맨님이 벌써 돌아오고 있었다. 21분만에 반환점을 돌았다고? 손을 흔들며 외쳤다. 기록이다 기록! 그리고는 조용히 달려서 반환점이 어서 나오기를 기대했다. 400미터가 짧아졌다는 코스가 고맙긴 했다. 반환하기 전 물 한 모금 마시고 칩인식장치가 없는 반환점 콘을 돌면서 시계를 보니 29분이 걸리지 않았다. 현상 유지만 하면 58분이 걸리지 않을 페이스였다. 1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아킬레스건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비된 것인가? 그렇다면 감사한 일이었다. 골인 지점까지 계속 그러기를...... 노래가 들렸다. 6킬로미터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노래가 들리면 발이 빨라지는데..... 크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Unforgiven! I'm a villain. 걸그룹 르세라핌의 노래를 듣는 것은 여성이었다. 르세라핌은 남성팬 만큼이나 여성팬도 많은 걸그룹이니 이상할 게 없었다.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노래를 다 들었으면 좋곘지만 노래를 듣는 여성의 페이스는 떨어지고 있고, 나는 오르고 있어 아쉬운대로 그냥 지나쳐야 했다. 끝까지 못 들은 노래는 100번 이상 들은 기억을 되살려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주최측에서는 자전거 이용을 막는 바리케이드를 모조리 제거하여 달림이들이 좀더 편하게 도움을 주었다. 대회 운영 요원들도 길 안내를 성심성의껏 하고 응원도 보내 주었다. 안내를 하며 쉴새없이 응원을 보내는 영등포구 육상연합회의 종오님에게는 과격한(?) 액션을 보이며 감사했다. 대회가 끝날 무렵 주로에서 철수한 이 분은 내게 와서 일부러 인사를 나누고 가셨다. 양평교에서 오목교까지 가는 길이 조금 지겹게 느껴졌지만 오목교를 신정교로 자주 착각했던 전례를 답습하지는 않았다. 오목교가 나오면 1킬로미터가 남았다는 뜻이었다.
내 기록은 54분 27초 62였다. 돌아오는 길에 속도를 올리려고 애쓴 것도 아닌데 26분이 걸리지 않은 것이었다. 9.6킬로미터라 거리는 짧았지만 갈 때보다 올 때 빨랐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지난 월요일 거의 걷지 못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발목 상태가 매우 호전되었다는 뜻이었다. 골인할 때 내 사진을 찍어주는 분이 있었다. 희수형님이었다. 새벽에 목동운동장에서 동호회 합동훈련을 마치고 일부러 나와주신 것이었다. 43분대로 골인한 로운리맨님은 내가 탈의실에 들르는 사이 희수형님에게 짐을 맡기고 사라졌었는데 잠시 후 캔 맥주 4개를 사서 나타났다. 자신도 마시고 희수형님에게도 드리고 여동생과 여동생 친구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나를 위해 따로 페트병 콜라도 사 왔다. 감사하고 또 감사!
지난 해처럼 오늘도 행운권 추첨은 되지 않았다. 네 개의 번호 중 3개의 번호가 맞는 일이 두 차례나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래도 희수형님, 로운리맨님과 함께 뼈다귀해장국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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