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화계사 위쪽에 있는 마당바위에 올랐다.
마당바위 그늘진 자리를 잡은 것이 오후 4시가 넘었기 때문에 등산객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번 책 읽을 때와 달리 가만히 앉아 있어도 춥지 않았다.
강북문화정보도서관에서 빌린 마사 누스바움의 <정치적 감정>을 모두 읽을 때까지 산에서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책 빌린 지 무려 두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도서관이 문을 닫고 대출기한이 문을 닫은 기간만큼 늘어나면서 독서 속도는 유례없이 느려졌다.
반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면 벌써 읽고 반납했을 책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자연의 도서관에서 북한산 정상을 가끔 바라보며 잘 읽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찼다.
그러나......
어느새 나타난 사람들.
그들은 조용히 있다가 가지 않았다. 전화통화를 줄창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는 전화 통화는 내 집중력을 한없이 흩뜨렸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할 때 전화받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면서 내 눈은 멍하니 책을 보는 일이 빈번해졌다. 자연에서는 인간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겨 보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지 하는 생각만 내내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다 읽어내고 하산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도중 다른 자리를 찾아 몸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꽃을 보면서 산에 올라갔다.
마당바위에 닿았다.
도심이 한 눈에 보인다.
잠깐 조망한 후.....
반대편 그늘진 자리를 잡았다. 558페이지. 681페이지까지는 그리 많이 남은 것이 아니니 집중하면 곧 읽어낼 책이었다.
강북문화정보도서관 신착도서로 내가 가장 먼저 빌린 책이었다.
'정의를 위해 왜 사랑이 중요한가'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었다.
감정적 경험이 제도의 형태로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상상력과 관점에 기반한 사고 체계와 원칙에 근거한 체계의 적절한 조율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책이다.
정의에 사랑이 담긴 정서를 더해 인간에 대한 공감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여럿이 모여 하나(e plurivus unum)가 될 수 있다는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고찰이 돋보인다.
소음의 방해를 극복하고 6백 페이지를 넘겼다.
가끔 백운대를 보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아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조만간 책 내용을 정리하고 도서관 무인반납함으로 반납하는 것으로.....
내가 앉아서 책을 읽었던 자리이다. 햇볕과 나무 그늘이 잘 어우러진데다 평평한 장소라 독서 명당이다. 단, 주변에 아무도 없을 경우.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이렇게 쉬고 가시는 분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행봉에도 손소독겔이 달려 있다.
계곡에는 버려진 마스크도 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못볼 장면이다.
무속 신앙을 하는 곳 근처에는 까마귀가 산다.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쉬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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