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이틀 연속 하프를 달린다는 것. 둘째, 대회장이 집에서 멀어서 잠을 설치고 나와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전날 달린 코스와 달리 오르막이 잦은 코스, 특히 후반에 오르막이 자주 나타나는 난코스라는 것.
전날보다 2시간 이른 새벽 4시 50분쯤 일어났다. 숱하게 깨었다 잠들기를 반복한 끝에 김밥 한 줄을 먹으며 부천종합운동장으로 갔다. 6년 전 이 대회에 출전했을 때에는 부천종합운동장역이 개통되지 않아 이동이 쉽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이수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고 가니 대회장에 일찍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대회장이 썰렁했다. 여유있게 화장실을 이용한 뒤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었다. 10킬로미터 종목에 참가하기로 한 아세탈님은 카톡 답장을 한 시간이 지나서야 해왔다. 늦잠을 잤는데 아직 동탄에 있다고 했다. 10킬로미터 종목 출발이 4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출발하기 전 부천터미님, 인천고 정춘효님, 장길석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박연익님은 직접 찾아갔다. 오늘 얼마에 뛰게? 오늘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하니까 따라 뛰어야죠. 어차피 1시간 35분 내로 들어갈 것 아니야? 아니예요. 어제 하프를 뛰었기 때문에 힘들어요. 따라 뛰어보다가 안 되면 말고요. 팔목에 두른 띠는 페이스네요. 이런 건 없어도 되는데 가끔 주자들이 물어보기 때문에.....
9시가 조금 넘어 10킬로미터 참가자가 출발한 후 9시 15분에 하프 주자가 출발했다.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돌아서 운동장을 빠져나가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모두 트랙을 비워주어야 했다. 전날 무리하게 스피드를 올려서 그런지 발목과 종아리 사이가 당기고 통증이 있어서 섣불리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춘천마라톤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서는 안되었다. 첫 1킬로미터 5분. 전날과 똑같았다. 전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일찌감치 놓쳤다는 것. 2킬로미터는 11분. 어떻게 1킬로미터가 6분이나 걸리지? 멀뫼사거리 3킬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하니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2킬로미터에서 3킬로미터까지 4분 이내로 왔다는 뜻인데 2킬로미터 표지판이 잘못 세워진 모양이었다. 10월 하순에 들어섰는데도 쌀쌀한 기미라곤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웠다. 나는 악착같이 발걸음을 놀리는데 1시간 40분 페메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4킬로미터쯤 달렸을 때 300미터 이상 떨어져 버렸다. 전날보다 떨어진 페이스를 만회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의 주자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부천체육관과 부천종합터미널을 지났다. 구간 기록을 4분 15초까지 끌어올리기까지 했는데도 박연익 페메 옆에는 가까이 갈 도리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페메의 풍선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틀 연속 하프인데다 대회장이 집에서 멀어 일찍 일어났고, 코스도 힘들어 이 대회는 1시간 44분대로 달리는 게 다른 대회 1시간 39분대로 달리는 것과 같은 거야..... 그렇게 해석하고 싶지만 무조건 1시간 30분대로 달리고 싶었다. 생애 처음으로 이틀 연속 하프를 1시간 30분대로 달리는 이력을 남기고도 싶었다. 오르막도 심심치 않게 나왔는데 오르막이 나오면 똑같이 힘들지만 앞의 주자들과 거리가 좁혀진다는 안도감으로 버티었다. 8킬로미터인 중동대로사거리 지점에서 1시간 40분 페메와의 거리를 100미터로 줄였다. 처음에는 아득하기만 했던 페메의 풍선이 어느새 가까워졌다. 15킬로미터 이후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페메가 초반에 빨리 달린 것은 아닐까, 후반이 힘든 코스이지만 그래도 나는 견디어 낼 수 있지는 않을까, 정말 이틀 연속 1시간 30분대 달리기가 가능할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6년 전 교통 통제 때문에 불만을 터뜨리던 시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에게 두들겨 맞을 것같던 때와 달랐다. 그때는 시민들이 정말 무서웠다. 교차로마다 차에서 내려 항의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주자들을 쏘아보는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 살갗이 배이는 것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뭔가 바뀌어 있었다. 부천원미경찰서나 오정경찰서에서 달아놓은 교통 통제 안내 플래카드가 교차로마다 있었는데 미리 공지를 잘 한 것같았다. 차를 무조건 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자들과 주자들 사이에 틈이 생기면 차 운행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융통성도 보였다. 6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겠지. 교통 통제하는 이들이나 운전하는 시민들이나 대회를 치러내는 노하우를 터득한 듯. 2004년 5킬로미터 단일종목으로 시작된 부천복사골마라톤. 이후 10킬로미터 종목까지 만들고 2011년에는 하프 종목도 신설했는데 조만간 풀코스 종목까지 생길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정고가교 삼거리 오르막을 타고 올라 10킬로미터를 47분 초반에 통과했다. 오르막 덕분에 페메와의 거리는 50미터 이내로 좁혀졌다. 부천오정물류단지를 오른편에 끼고 대로를 따라 달렸다. 몇 십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무리에 섞이는 게 낫겠다 싶어 좀더 속도를 올렸다. 12킬로미터를 달린 후에는 박연익 페메 옆에서 나란히 달릴 수 있었다. 급수대를 먼저 이용하기 위하여 앞으로 치고 나가기도 했지만 몇 백 미터를 달리기 전에 따라잡혔다. 하지만 뒤처지는 않았다. 무리에 섞여서 숨을 골랐다. 15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사람들은 치고 나가라고 페메 한 분이 말했다. 오르막이 자주 나오니 조심해서 치고 나가라는 말은 박연익 페메가 해 주었다. 레이스패트롤 주자가 거침없이 치고 나갔고, 파란색 티셔츠 주자가 따라서 나갔다. 나도 앞으로 나아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빨리 나아가지는 않았다. 15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 1시간 10분이 넘었는데 계산을 잘못했다. 이제부터 5분 페이스로 달려도 1시간 35분대라고. 절대 아닌데. 5킬로미터를 남았을 때 1시간 15분이니 5분 페이스로 갔다간 1시간 40분을 넘기고 마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로는 이제 파도치듯이 오르락내리락이 반복되고 있었다. 6년 전 기억이 또렷하게 났다.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기 위하여 치열하게 달렸던 기억. 페메를 따라잡은 끝에 1시간 48분 45초로 골인했다. 싱글렛을 입고 달린 마지막 하프였을 것이다. 그 때도 이틀 연속 하프 도전이었다. 그 때는 전날 오산독산성마라톤을 달렸다. 올해는 1시간 40분 페메를 따라잡기 위하여 달렸고, 그때보다 빨리 따라잡았고, 후반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오르막이 나오면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훈련하기 딱 좋으니까.
19킬로미터 지점에서 주위의 주자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넘어온 오르막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오르막이 길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급수대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힘을 내었다. 13킬로미터 지점에서 치고 나갔던 남희님을 여기서 제쳤다. 오르막인데도 19킬로미터에서 20킬로미터까지 4분 50초가 걸리지 않았다. 20킬로미터를 넘은 뒤에는 첫 대화를 시도했다. 레이스패트롤과 함께 치고 나갔던 파란색 티셔츠 주자가 그곳에 있었다. 아까 레페와 함께 치고 나가시던데 왜 여기 계세요? 아! 그 레페가 너무 빨리 가는 바람에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어느 정도껏 쳐야지 너무 빨리 쳐서. 왼편으로 운동장 조명탑이 보였다. 부천종합운동장이 바로 옆에 있었다. 매섭게 치고 나갔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달릴 거리가 줄어들수록 제치는 주자의 숫자가 늘어났다. 드디어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좀더 빨리 내달려 골인 패드를 밟고 나자 1시간 27분대로 먼저 골인한 부천터미님이 쫓아왔다. 사진찍어 드리려고 했는데 못 찍었어요. 늘 검정색 옷을 입고 있어서 그 옷 입은 사람만 찾고 있다가 놓쳤어요. 그럼 함께 기념 사진이라도 찍지요. 그제서야 아세탈님이 보였다. 대회에서 달릴 수는 없게 되었지만 내가 참가했기 때문에 일부러 동탄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선물을 한가득 들고. 아세탈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내 기록은 1시간 38분 41초 000이었다. 전날보다 1분이 늦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훨씬 잘 달린 것이었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휴식이 부족했고, 전날 육류로 과식했고, 코스가 쉽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1시간 39분 45초로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의 임무를 완수한 박연익님이 칭찬을 하고 가셨다. 후반에 정말 잘 뛰네. 이 대회 후반 코스가 쉽지 않은데. 박연익 페메에게 인정을 받다니 보람있는 레이스였다.
2년 전 1시간 47분대와 1시간 42분대를 기록하고 일주일 뒤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35분 26초로 달렸다. 이번에는 1시간 37분대와 1시간 38분대를 기록했는데 일주일 뒤 춘천마라톤에서는 어떻게 될까?
아세탈님과 함께 부천종합운동장을 빠져나오다가 오른편에서 골인 지점을 향하여 달려오는 주자들을 보았다. 오르막이었다. 어떻게 달릴 때는 전혀 몰랐을까? 나는 평지인 줄 알았다. 다 왔다는 생각에, 스퍼트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오르막인 것을 전혀 몰랐다. 아세탈님의 차를 타고 부천역 지하 식당가로 이동했다. 함께 식사를 했고, 이마트와 알라딘 중고서점 부천점에도 들렀다. 대회장에서 아세탈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이마트에서 받은 선물까지 한 가득이었다. 집에서 나올 때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들고 귀가했다. 짐 때문에 다른 데 들렀다 올 수가 없었다. (식사와 선물은 별도 포스팅 예정)
※ 부천복사골마라톤 참가
2004년 5킬로미터
2008년 10킬로미터
2010년 10킬로미터
2012년 하프 (2011년부터 하프 종목 신설)
2018년 하프
빨간 화살표 아래에 있다. 간만에 형광색 티셔츠를 입었다.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박연익 페메와 벌써 차이가 나 버렸다. (노란색 화살표)
후반이 어려운 코스라 오히려 잘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 기념 티셔츠는 비교적 마음에 든다.
디자인도 괜찮고.....
장바구니에 완주자 지급품을 주는 게 특징이다.
내용물이 많지는 않지만.....
아세탈님에게 드릴 선물이 비닐봉투에 들어 있다.
아침은 김밥으로 지하철에서 해결했다.
지하철 밖으로 땅거미가 걷히고 있다.
부천종합운동장역에는 부천FC1995의 축구시합 일정이 공지되어 있다.
마라톤 대회 당일에는 시합이 없었다.
오전 7시 경의 부천종합운동장.... 대회 출발까지는 2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아세탈님이 이마트 부천역사점에서 사 준 허니 초콜릿 우유.....
할인된 가격인데도 3480원인 고가의 우유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다 마신 상태였다.
아세탈님이 스마트폰으로 찍어준 사진. 골인하기 직전의 모습.
운동장에 들어서기 직전 제친 분들이 내 뒤에 보인다.
아세탈님이 골인 지점 앞으로 나와 사진을 찍고 있는 줄 몰랐다.
배낭을 메고 나를 쫓아오는 부천터미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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