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8 조선일보 춘천마라톤(2018/10/28)-FULL ***

HoonzK 2018. 10. 30. 15:31

  2006년부터 올해까지 13년째 개근이다. 춘천마라톤. 한번도 비를 맞고 달린 일은 없었다. 재작년 비가 내렸지만 그 때는 내가 이미 골인한 후였다. 올해는 풀코스 주자가 출발하는 9시를 전후하여 공지천 일대에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5mm 내외의 가랑비가 내린다고 했다. 전날 조선일보 24면에 실린 '달리는 데 지장 없어'라는 기사를 맹신했다가 달리기 전 흠뻑 젖어 버렸다. 덮어쓴 버프가 축 늘어지고 신발 안에서 물소리가 날 정도였다. B그룹 후미에 자리잡고 주변을 보니 비닐이나 우의를 걸치지 않은 주자는 거의 없었다. 상봉역에서 춘천행 5시 30분 첫차를 함께 탄 은수님이 내게 비옷을 선물했지만 그 비옷은 가방에 들어 있었다. 내가 짐을 맡겼던 7시 50분 경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기온까지 급강화한 상태에서 장대비를 맞으며 차갑게 얼어붙는 몸으로 버티다가 출발 직전에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닐을 주워 몸을 덮었다. '여러분들 덕분에 잘 먹고 삽니다'라며 우리를 반긴 사회자 배동성씨의 B그룹 출발 외침을 듣고 바깔술님과 함께 출발했다. 워낙 뒤쪽에 있어 출발 아치가 가까워질 때까지 한동안 걸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운동량을 줄이면서 음식 섭취량을 늘렸는데 그 때문인지 몸이 붓는 느낌이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식탐을 다스린다고 애를 먹지는 않았다. 먹고 싶으면 그냥 먹었다. 몇 일 동안 상의를 자주 들추어 옆구리를 살폈다. 살이 쪘을 때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일주일 전까지 춘천마라톤 특별훈련을 잘 이수한 뒤 마지막 주에 몸을 내팽개쳤다. 체중을 뒤늦게 빼겠다고 금요일에도 달렸다. 당초 예정된 훈련대로라면 목요일까지 모든 훈련을 마치고 휴식에 들어가야 했다. 바깥술님에게는 초반 하프를 달리는 동안 체중을 빼어 후반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날씨가 싸늘하여 체중이 제대로 빠질지는 의문스럽지만...... 토요일 저녁에는 밥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 저녁 8시가 넘어 밥을 먹은 후 소화시키느라 자정까지 버티었다. 밥을 먹기 전에는 무척 졸렸는데 밥을 먹고 나니 잠이 달아나 버렸다. 수면이 새벽 3시 반까지만 허락된 나로서는 몹시 힘들었다. 4시 20분 121번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 환승센터까지 간 후 상봉역으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매우 이른 새벽이지만 2311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타고 가면서 버스 노선도와 안내방송을 살피는데 목적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노선도에서 진행 방향 화살표까지 잘 살피고 탔는데 왜 이런 일이? 버스 기사는 내려서 다른 차를 타라고 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상봉역으로 가야 했다. 여유가 없었다.


 첫 1킬로미터는 5분 10초가 걸렸다. 다음 1킬로미터는 5분이 걸렸다. 페이스는 나쁘지 않았다. 지난 해 춘천마라톤 기록을 세울 때 초반 5킬로미터는 25분 43초였다. 그때보다 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는 않았다. 송암레포츠타운 1차 반환점(4.3킬로미터)에 도달했을 때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어설프게 걸치고 있던 비닐을 벗어 던졌다. 5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24분 57초였다. 출발 지점이 공지천 공원으로 바뀐 후 가장 빨리 달리고 있었다.


 초반 코스가 너무 잘 읽히는 게 어려움이었다. 이게 다 지난 4월 춘천호반마라톤에 참가하여 하프 코스를 달리면서 코스를 꼼꼼하게 살핀 까닭이었다. 평소에는 오르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오르막이 생생하게 인식되었다. 너무 꼼꼼해서도 득될 게 없구나 싶었다. 의암터널 피암터널을 빠져 나가며 듣는 주자들의 외침은 이제 익숙해졌다. 코를 찌르는 파스 냄새도 생경한 느낌이 없었다. 의암호 위로 나타난 삼악산. 그 붉은 단풍이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단풍이 너무 붉어 열을 내뿜는 듯 했다. 붉은 단풍의 열기를 식히기 위하여 장대비가 내리는지도 모르겠다는 억측을 하는데 비구름이 삼악산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풍경에 열광했다. 눈이 즐거워 몸이 젖고 있다는 사실,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신연교를 건너가는데 운기님이 나를 못보고 제치고 나갔다.  인사했더니 그제야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는 묻는 말이 '바깥술 형님 어디 있어요?'였다. 바깥술님과 늘 함께 달린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갑내기 마라토너. 바로 저 앞에 있다고 했더니 운기님은 '야! 바깥술!'하고 부르며 친분을 과시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지난 달만 해도 4시간 반을 넘는 레이스를 했던 이 분은 춘천에서 3시간 27분대로 골인했다. 메이저 대회는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춘천을 마이너 대회로 만들고 있었는데.


 10킬로미터. 49분 39초. 춘천 마라톤 초반 10킬로미터 기록을 깨뜨렸다. 종전 기록은 2007년 50분 03초였다.(2007년에는 풀코스 1회 완주, 춘천마라톤 대회) 지난 해에는 50분 08초였는데 너무 빠른 것은 아닌가요, 초반에 10초 빨리 달리면 후반에 10분 고생하는데 이것 너무 한 것 아니예요? 바깥술님에게 이렇게 너스레를 떨 때만 해도 작년 기록을 깨뜨리는 것은 무난해 보였다. 제비한스님을 만났을 때는 지난 해보다 1초 빨리 달려 3시간 26분 10초로 골인하면 좋겠다는 농담을 하는 여유까지 있었다. 하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몸은 무거워졌다. 뱃 속이 요동쳤다. 그동안 너무 많이 먹어 음식이 배를 꽉 채우고 있었나 보다. 달리기 전 화장실에 다녀왔는데도 노폐물을 더 빼야 한다고 몸이 신호를 보냈다. 화장실에 갈 여유는 없으니 몸을 달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페이스가 느려졌다. 뒤에서 주자들이 내 앞으로 치고 나왔다.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아 이제 달리기 여건은 좋아졌는데 내 몸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10킬로미터에서 15킬로미터까지 25분 04초로 달려 킬로미터당 5분 페이스를 넘겼다. 바깥술님은 몇 십 미터 앞에서 5분 이내의 페이스를 지키고 있었다. 16킬로미터 주유소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만 보았다. 2주 전에도 배탈이 나서 고생했지만 잘 추스려 달렸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고. 주로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 들렀기 때문에 시간을 만회하려면 좀더 속도를 올려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속도가 떨어졌다. 조금 빨리 달렸다 싶으면 5분 15초, 기를 쓰고 뛰었다 싶으면 5분 7초. 그랬다. 이렇게 망가져 버렸다. 춘마 특훈 이후 방만한 일주일을 보낸 댓가가 이랬다. 강원애니메이션고등학교 앞 오르막을 넘을 때 많은 주자들을 추월했던 이력을 재현하지 못했다. 신매대교쪽으로 우회전하면 20킬로미터인데 이미 신매대교를 건너갔다 온 로운리맨님이 나를 불렀다. 가공할 스피드로 나아가며 응원해 주는데 이미 하프를 넘게 달린 것이었다. 3시간 19분대가 가능해 보였다. 빨리 가시라고 손을 몇 차례 흔들었다. 그리고 나서 20킬로미터 기록 인식 패드를 밟았다. 5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26분 23초였다. 2반환점에서 확인하니 바깥술님은 나보다 몇 백 미터 앞에 있었다. 하프 지점을 1시간 47분이 다 되어 지났다. 지난 해보다 3분이나 늦어졌다. 춘천마라톤을 위하여 그렇게 준비했건만 어떻게 다른 대회 때보다 늦어지는가? 그래도 춘마인데, 이 춘마를 위하여 인터벌을 포함하여 고된 훈련도 다 이겨내었는데 춘마에서 이래야 하는가? 너무 방심했구나. 남은 하프를 1시간 39분에 달릴 가능성은 없으니 춘마 기록을 깨뜨리기는 힘들어졌다. 3시간 29분대는? 후반에 몸을 회복시켜, 회복될 기미가 없지만, 어쨌든 회복시켜 후반 하프를 1시간 43분에 달리면 3시간 29분대는 되겠다 싶었다. 25킬로미터 지점까지 나아가면서 줄곧 페이스를 체크하는데 죄다 5분 10초가 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추월하기는커녕 꾸준히 추월당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달리기도 싫은데 속도를 더 낼 수는 없었다. 20킬로미터에서 25킬로미터까지의 구간 기록은 26분 07초였다. 화장실에 들르고 오르막을 지났던 전 구간과 비교하면 오히려 늦어진 것이었다. 25킬로미터 급수대에서 파워업 스포츠젤 포도맛 42그램 봉지를 받아서 바로 먹었다.


 곧 춘천댐에 이르는 서상대교 오르막이 나왔다. 3시간 20분대의 꿈은 완전히 접었다. 블로그 댓글에서 슬쩍 언급한 3시간 30분 00초에서 3시간 34분 59초 사이의 기록은 가능할까? 더 처지는 몸인데 후반에 반전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할 기록이었다. 그래도 춘마니까 잘 달려야 해.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춘마니까 완주라도 해야 해. 그렇게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서상대교 위에서 굼뜨게 발걸음을 놀리는 나로서는 3시간 40분을 넘길 것처럼 보였다. 누구든 치고 나올 기미가 있으면 지체없이 앞을 내어주었다. 내 눈길은 정면보다는 절벽의 알록달록한 가을 무늬를 감상하기에 바빴다.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는 대신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는 여유를 만끽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춘천이었나. 13년 춘마 가운데 최고의 경치로군. 27.5킬로미터 스폰지대. 학생들이 들고 있는 표지판 가운데 '오늘 마라톤의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응원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28킬로미터. 곧 춘천댐이었다. 춘천댐에 올라 내가 달려온 길을 내려다 보기가 무섭게 가지도 않을 화천 방향의 길을 살폈다. 여전히 속이 좋지 않은데 풍경을 바라보며 이겨내려 애쓰는지도 몰랐다. 지난 몇 일 간 얼마나 과식했기에? 그동안 먹었던 음식이 이제는 소화되어 몸밖으로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수많은 주자들과 함께 달리다 보면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없던 힘도 나기 마련인데 달리면 달릴수록 혈혈단신, 고립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5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까지의 구간 기록은 27분 33초. 이렇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30킬로미터까지의 기록은 2시간 34분 45초. 3시간 35분 01초 골인했던 2013년 때보다 1분 이상 늦었다. 3시간 34분대로 달리려면 남은 12.2킬로미터를 1시간 이내로 달려야 했다. 오늘 컨디션으로는 불가능할 페이스였다. 딱 봐도 잘 달려봐야 남은 12.2킬로미터는 70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더 늦어질 수도 있었다. 마라톤은 열심히 30킬로미터를 달려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남은 12.2킬로미터를 없는 힘에도 악착같이 달려야 완주할 수 있는 종목. 후반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인데 해낼 수 있겠는가,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은 머릿 속에서 한번도 지워진 적이 없었다.


 이제 오르막은 거의 없으니 좀 나아져야겠지. 내리막도 자주 나오니 35킬로미터까지의 구간 기록은 빨라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나아갔다.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고 있었다. 물웅덩이를 피해가지 않았다. 이미 젖어버린 발. 더 젖을 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나아갔다. 의정부 달리마가 속도를 내고 있었다. 35킬로미터가 아닌데 벌써 스퍼트를 하고 있었다. 점점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래도 따라간 덕분에 지친 주자들을 제칠 수 있었다.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휠체어를 밀고 달리는 주자가 있었다. 휠체어가 내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밀면서도 나보다 빨리 나아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재작년 로운리맨님이 보내어 준 미셸 루이스의 'Run, Run, Run' 동영상에도 휠체어를 밀고 달리는 주자가 등장하는데 그 장면을 실제로 본 것같아 감동했다. 내 현재 페이스는 3시간 39분대도 힘들어 보였다. 춘천마라톤 참가 초창기처럼 30킬로미터까지는 2시간 35분 전후로 간 후 한없이 지쳐서는 3시간 40분대 중반으로 골인할 가능성이 컸다. 의정부 달리마는 현저하게 지친 듯 서서히 나와 가까워지더니 이내 내 뒤로 왔다. 휠체어 주자는 맹렬하게 치고 나가 나와 거리를 더 벌리고 있었다.


 마침내 35킬로미터. 그래도 제법 빨라졌겠지. 이전 구간은 27분이 넘었던 것은 춘천댐 오르막 때문이었을거야. 시계를 보는데 여전히 27분이 넘은 페이스였다. 킬로미터당 5분 30초를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달리지도 않으면서 빨리 달리고 있다고 착각한 이 허세는 뭘까? 남은 7.2킬로미터를 32분대로 달리지 않는 한 3시간 34분대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올해 3월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18분대로 달릴 때 남은 7.2킬로미터를 33분 35초에 달렸고, 지난 해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23분대로 달릴 때 남은 7.2킬로미터를 33분 51초로 달렸다. 그 때 모두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그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후반을 달려야 했다. 중반에 너무 늦게 달린, 늦게 달릴 수밖에 없었던 내 자신에게 가하는 과제가 생겼다. 마라톤 완주기를 작성하는 지금도 믿기 힘들지만 35킬로미터 이후 무섭게 치고 나갔다. 이 순간을 위하여 참고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갔다. 빗방울이 더 세차게 나를 맞이하는 듯했다. 거센 파도가 내 주위로 빠져 나갔다. 파도는 주변 달림이들이 만들어내는 환영이었다.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가 러너스 하이를 느끼며 질주하는 것처럼 달려나가고 있었다. 스퍼트할 때면 누군가 따라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기준으로 삼아 따라 붙을 달림이도 없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지그재그로 주자들 틈을 비집고 나갔다. 이런 속도라면 얼마 달리지 않아 에너지가 고갈되어 주저 앉고 말지도 몰랐다. 36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계를 보았다. 직전 1킬로미터를 4분 40초에 달렸다. 이내 휠체어 달림이를 제쳤다. 4분 40초의 기록은 또 다시 깨어졌다. 다음 구간은 4분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중반에 제대로 달리지 못한 울분을 내리치는 비에 실어 보내고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거리 표지판이 작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 거리 표지판이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고 있었다. 39킬로미터 소양2교. 이제 거의 다 온 것이다. 소양강처녀 동상을 돌아보며 숨을 돌렸을 때 이미 40킬로미터였다. 진식님이 콜라를 갖고 내게 달려왔다. 덕분에 40킬로미터 급수대에는 들르지 않아도 되었다. 35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까지 23분 18초로 달렸다. 25킬로미터부터 30킬로미터까지의 구간 기록보다 4분 이상 빨리 달렸다. 여전히 축축한 날씨였지만 날씨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2.195킬로미터. 현재 경과 시간은 3시간 25분 05초. 남은 2.195킬로미터를 9분 54초로 달리지 않는 한 3시간 34분 59초의 기록은 얻을 수 없었다.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던 동아마라톤에서 그 구간을 9분 56초로 달렸는데 그보다 빨리 달려야 했다. 제발 좀 아쉬움은 남기지 말자. 올해 춘천마라톤은 실패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만은 정말 강렬했다는 추억은 남기자. 그렇게 다짐하고 없던 힘까지 끌어내었다. 춘천역이 보였다. 41킬로미터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1킬로미터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3시간 30분 22초. 마지막 1킬로미터는 4분 30초대로 달려야 했다. 4분 40초가 되는 순간 서브 335의 기록은 날아간다. 마지막 1킬로미터는 아득하리만치 멀었다. 새벽에 춘천역에서 대회장까지 걸어올 때 이렇게 멀지 않았는데 의암호를 돌아서 오는 동안 도대체 누가 이 거리를 이렇게 늘여 놓았나 싶었다. 혹시 주최측에서 골인 아치를 치워 버렸거나 골인 아치를 들고 내가 가까워질 때마다 자꾸만 뒤로 옮겨 놓는 것 아닌가. 기어이 골인 아치가 나왔다. 골인 아치는 새벽에 보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를 기다리며. 폭풍의 질주를 했던 2년 전 춘천을 넘어서며 달렸다. 한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끝까지, 끝까지.......


3:34:22


 마지막 1킬로미터를 4분에 끊었다. 마지막 2.195킬로미터는 9분 17초로 달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2년 전 춘천에서 세운 9분 21초의 기록을 깬 것이었다. 골인 지점을 지나오니 바깥술님이 보였다. 바깥술님은 방금 들어왔다고 했다. 30킬로미터까지는 3시간 20분대가 무난해 보였는데 후반에 복통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바깔술님은 올해까지 춘천마라톤에서 아홉 차례 나와 함께 달렸는데 나보다 먼저 골인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배번에 도장을 받고 손바닥만한 완주메달을 받았다. 자원봉사하는 학생들이 주자들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냥 손으로 받았다. 메달을 살폈다.


 제72회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42.195km
FINISHER
2018. 10. 28




아! 완주했다. 마라톤. 그 기록도 중요하지만 최고의 매력은 역시 완주다.
꼴찌를 하더라도 완주했다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운동이 바로 마라톤이니까.


 3시간 26분 46초로 춘천마라톤 개인 기록을 세운 로운리맨님과 닭갈비를 먹었다. 춘천마라톤을 달리고 나서 닭갈비를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달리고 난 뒤 늘 서둘러 귀가하기 바빴는데 덕분에 춘마의 추억을 하나 더 보태었다. 로운리맨님은 10월 달린 네 번의 풀코스를 모조리 서브 330하는 기록을 세웠다. 역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니 고비가 있어도 성과를 거둔다. 지난 해 잘 뛰었다는 이유로 방심해 버린 나는 1년 사이 8분 이상 늦어졌다. 춘천마라톤 일주일 전만 해도 생애 최고 기록은 몰라도 춘천마라톤 기록 경신이 보였던, 초반 10킬로미터까지만 해도 기록 경신이 보였던 내가 이렇게 되었다. 양말 바닥에 구멍이 뚫릴 만큼 후반에 잘 달려서 춘천마라톤 13번의 완주 기록 중에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올리긴 했지만 무언가 벌칙이 필요할 것같다.




올해 춘마는 지난 해 경주 국제와 매우 닮아 있었다. 초반 페이스 양호, 중반 페이스 불량, 후반 페이스 탁월.






마지막 2.195킬로미터를 5킬로미터 기록으로 환산하면 21분 08초에 달린 셈이다.

그래프상으로 볼 때 중반은 엉망이었던 것이 그대로 나타난다.


※ 5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제공되는 최근 후반(35킬로미터 이후) 스퍼트 비교
1위: 32분 36초 (2018 춘천 3:34:22)
2위: 33분 19초 (2016 춘천 3:35:26)
3위: 33분 35초 (2018 동아 3:18:51)
4위: 33분 51초 (2017 동아 3:23:09)
5위: 34분 36초 (2017 경주국제 3:35:51)
6위: 34분 44초 (2017 춘천 3:26:11)



25-30킬로미터는 최악. 35-40킬로미터는 최상이었다.
















청량리역 환승버스정류장 새벽 4시 50분


2311번 버스가 곧 도착한다고 했다. 노선도에 화살표로 확인하니 상봉역 가는 게 맞았다.



은수님이 준 간식.... 경춘선 전철 안...



춘천마라톤을 위하여 신고 온 춘마 특별판 타사재팬 마라톤화


단풍과 잘 어울려......


단풍이 매우 멋졌다.


은수님이 살짝 보인다.



이 운동기구에 다리를 올리고 스트레칭을 했다. 준비운동은 이것으로 끝.




골인 아치..... 42.195킬로미터를 달리면 이곳을 지나오게 된다. 아직 칩 인식 패드가 설치되지 않았다.


공지천 인조잔디운동장..... 한산하지만 불과 10분 후면 인산인해 상황이 된다.



로운리맨님과 먹은 춘천닭갈비 2인분.

로운리맨님과 함께 달리는 대회에서는 왜 죄다 몸이 엉망이 되어 달리는지 알 수 없다. 로운리맨님이 출전하지 않는 대회에 나가면 잘 달리고.... 최근에는 무조건 그렇다. 혹시 로운리맨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어떻게 답하시려나? 7월 8일 월드런, 7월 29일 공원사랑, 8월 5일 공원사랑, 8월 26일 영동포도, 10월 3일 손기정평화, 10월 28일 춘마까지 내리 6번.....  그렇다고 로운리맨님이 나오지 않는 대회만 찾아다닐 수는 없고.... 무언가 있는 것같은데 11월 18일 고창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볶음밥도 먹고.....


밥을 먹는 동안에는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식당을 나설 때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14시 45분발 상봉행 열차..... 뒤칸으로 가니 텅텅 비어 있었다. 로운리맨님과 나란히 앉아서 왔다. 비가 와서 자전거 부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양말이 헤어지도록 열심히 달리긴 했다.


양말을 연달아 버리게 된다. 제법 두꺼운 양말인데도 풀코스를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올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메달이 커졌다는 것이다.




물품보관번호 04401.... 바깥쪽 물품보관대에 첫번째로 물품을 맡기면서 찾을 때도 편했다.



봉투에 담긴 완주자 간식






아식스 집업 티셔츠.... 형광색 말고 검정색으로 제작했으면 좋았을텐데....



다음날 1면에 실린 춘천마라톤 기사






  여자 일반부 2위를 차지한 문선미씨는 지난 8월 5일 공원사랑 마라톤에서 나와 동반주를 했던 분이라 매우 반가웠다.



 2016년부터 메이저 대회 메달은 따로 걸어 놓는다. 확실히 올해 춘마 완주 메달이 크다.




중앙서울마라톤은 빼어 버렸다.

심정적으로 메이저 대회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올해는 풀코스를 만 명 선착순으로 접수를 마감해 버려 서운하기도 했다.



한 때는 풀코스 주자만 2만 명이 넘은 적도 있었는데....


마라톤 풀코스는 50대 연령의 참가자가 압도적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