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를 힘들게 달린 지 나흘만에 다시 풀코스에 출전했다. 2년 전 출전했다가 매우 힘들었던 평화통일마라톤이었다. 오르막이 잦았던 코스인데, 그 오르막이 오르막 같지 않은 오르막이라 페이스를 망가뜨렸던 코스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세탈님과 카톡을 주고 받으면서 <주혼과 아에드>를 들쳐 2년 전 완주기를 읽어 보니 생고생이 따로 없었다. 강남국제냐 평화통일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기념품이 더 마음에 들어 선택한 대회인데 큰 일이구나 싶었다. 더욱이 손기정평화마라톤 풀코스에서 아주 애를 먹었기 때문에 막막하기만 했다. 체중 감량 달리기, 오르막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발바닥은 움직이지 않아도 아팠다. 새벽에 밥을 먹으면서 얼린 생수를 발바닥으로 돌리며 응급 조치를 한 후 근육 테이프를 붙였다. 발바닥에 신경쓰면서 허벅지 안쪽의 쓸린 부분에 가제를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결국 달리는 동안 쓰려서 고통을 받았다. 7시 20분이 되기 전에 대화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종점 도착이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자보려고 애쓰다가 겨우 잠들었던 30분 덕분에 수면욕이 사라졌다. 간밤에 매시간 깨어 화장실에 다녀왔기 때문에 아주 고단한 상태였던 것이 한결 나아졌다.
고양종합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임진각 평화누리에 도착하니 풀코스 출발하기까지 아직 1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다른 대회에 비하여 출발이 조금 늦은 9시 30분. 평화통일마라톤은 어느새 스무번째 대회였다. 페이스메이커는 3시간 30분부터 15분 간격으로 있었다. 자00 마라톤동호회의 서브3 주자 김ㄱㅍ님이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를 맡았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이 페메를 따라가야겠다 싶었다. 나흘 전보다 신발 끈을 좀더 조여서 매었다.
출발해서 1킬로미터까지는 줄곧 내리막이고 3시간 30분 페메를 따라가려고 애썼기 때문에 딱 5분이 걸렸다. 하지만 페메는 몇 십 미터 앞에 있었고 다음 구간에서는 5분 10초로 밀렸다. 속도를 더 올려야겠다 싶었다. 3킬로미터 15분 이내, 4킬로미터 20분 이내의 페이스까지 끌어올렸는데 페메와는 50미터 정도 차이가 나 있었다. 그 차이는 달리면 달릴수록 벌어졌다. 목동마라톤클럽을 비롯한 단체 팀과 민소매 주자들에게 추월을 당하는 것을 보니 내가 너무 빨리 승부를 걸어 벌써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42.195킬로미터를 끝까지 강하게 달린다는 일이 가능할까 의심스러웠다. 10월 초면 달리기 최적의 몸을 만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문제였다. 앞 주자 티셔츠에 새겨진 'Run Your Own Race' 문구를 보고 자기 자신의 레이스를 해야지, 남의 레이스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여우고개 사거리를 만나 37번 국도에 들어서서는 내리막이 이어졌다. 7킬로미터부터 8킬로미터까지 4분 50초가 걸렸다. 2년 전에도 이 구간에서는 4분 50초로 뛰었기 때문에 그래도 올해는 더 빨라질 줄 알았는데 낙담했다. 8킬로미터부터 9킬로미터까지 다시 속도를 체크했다. 이 구간은 오르막이었지만 발이 쭉쭉 나아갔다. 4분 40초가 걸렸다. 수십 명의 주자를 제치고 어느새 3시간 30분 페메 무리에 섞여 들었다. 9킬로미터 44분 10초 경과. 불과 나흘 전과 비교하면 같은 사람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빠른 스피드였다. 평탄했던 손기정평화마라톤 코스에 비하면 평화통일마라톤 코스는 고통의 업다운인데 더 빨리 달리다니..... 3시간 30분 페메 바로 뒤에 자리잡으면서 편안해졌다. 함께 달린다는 것은 참 편한 레이스였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맞았다. 2차선에는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고 주자들은 1차선을 달리고 있었지만 별로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뙤약볕과 오르막, 동반주에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차에 신경쓸 틈이 없었나 보다. 2년 전에는 차 때문에 무척 위협을 느끼며 달렸다.
경험자라는 이유로 대비하고 있었다. 초행길을 달리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2016년 10월과는 레이스 운용이 달라졌다. 12킬로미터 지점을 58분대에 지났다. 14킬로미터와 15킬로미터 사이에 있는 1차 반환점을 페메 바로 뒤에 붙어 돌았다. 이때부터 페메의 스피드가 빨라졌다. 4분 40초 이내로 들어갔다. 여우고개 사거리를 넘을 때까지 10킬로미터 가까이 끈질기게 오르막이 튀어 나오는데 그 오르막을 달릴 때에는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냥 달리다가 오버페이스하기 딱 좋은 코스였다. 1차 반환하기 전 페메를 따르던 9명의 주자들이 어느새 5명으로 줄어들었다. 따라 달리던 주자들이 교체되기도 했다. 18킬로미터 지점에서 스폰지를 먼저 받기 위하여 앞으로 치고 나갔는데 몇 십 미터 가지 않아 따라잡혔다. 20킬로미터 1시간 38분대 통과. 페메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떤 때에는 네 사람, 어떤 때에는 세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반드시 내가 있었다. 내리막이 나오면 조금 떨어졌지만 오르막을 만나면 이내 따라잡았다. 아마도 그들의 내리막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하는 때문인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는데 꾸준히 따라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3시간 29분대를 목표로 하지만 그보다 훨씬 뛰어난 속도로 나아가야 그 3시간 29분대 골인이 가능한 코스라는 생각을 하면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시도때도없이 들었다. 어쩌면 오르막 때문에 애먹으면서도 3시간 26분대로 달린 서산마라톤 기록을 재현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억측도 했다. 25킬로미터 지점을 2시간 3분대로 지났다. 이 페이스라면 3시간 27분대 기록이 예상되는데 페이스메이커는 왜 속도를 늦추지 않는 것일까?
급수대에서 초코파이를 먹으려다가 초코파이가 물컹거려서 바로 내려 놓았다. 날씨가 뜨거워 초코파이가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녹아버린 초콜릿이 입가와 손에 묻어 뒷수습을 하느라 애먹을 것이 뻔했다. 깔끔한 바나나를 먹어 허기를 때웠다. 이 과정을 달리면서 하는데 3시간 30분 페메는 급수대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한 뒤 속도를 더 올려 50미터 이상 거리를 벌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이제 심한 오르막을 넘었으니 늦추는 게 맞지 않는가. 페메와 나란히 달리는 주자는 딱 한 사람. 노란색 민소매 주자. 나는 페메와 노란색 민소매의 추격자가 되었다. 내 페이스는 얼마일까 궁금했다. 4분 45초 전후를 지키고 있었다. 그냥 3시간 30분 페메를 신경쓰지 않고 내 나름의 페이스로 달려가도 상관없었다. 강하게, 꾸준히, 끝까지, 반드시, 기필코 등의 부사어가 머릿 속을 헤집고 다녔다. 옷이 닿으면서 허벅지 안쪽의 상처가 몹시 쓰렸다. 발바닥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정교차로가 나왔다. 거기서 중도 이탈자가 더러 나왔다. 마정교차로에서 1킬로미터 남짓만 달리면 골인지점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포기의 유혹은 강했다. 3시간 30분 페메와 나란히 달리던 노란색 민소매 주자가 견디지 못하고 골인점으로 방향을 꺽어 버렸다. 이제 페메를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있다면 50미터 뒤에서 추격을 하고 있는 강건달. 28킬로미터 지점. 노랑색 풍선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3시간 30분 페메가 달고 있던 풍선이었다. 풍선이 떨어져 나간 것인가, 일부러 날린 것인가? 풍선이 떨어져 나갔다면 이제 몸이 더 가벼워져 더 빠르게 달려갈테고, 일부러 날린 것이라면 페메의 임무를 포기하고 이제는 천천히 달리겠다는 뜻일 터. 전자였다. 페메는 더 빨라졌다. 일정한 페이스로 달려 기준이 되어주어야 할 페메의 임무를 방기한 듯이 보였다. 30킬로미터 통과. 지금까지 너무 빨리 달려와 남은 12.2킬로미터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암담했다. 2시간 27분 40초. 지금부터 속도를 조금 늦추어 5분 페이스로만 끊으면 3시간 29분대가 가능해졌다. 페메가 급수대를 지나서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서서 물도 마시고 볼일도 보고. 그만 달릴 것처럼 보였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이제 기준으로 삼을 것은 내 시계밖에 없었다. 이제 정오가 넘어가려고 했다.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골인 지점에 닿지 않으면 서브 330은 요원해졌다. 올해 11번째 서브 330이자 총 27번째 서브 330이.
통일의 관문 검문소를 지났다. 평화통일 마라톤의 특징. 마라톤 대회 배번은 민통선 지역 통행증이 된다. 차량은 일일이 검문을 하지만 마라톤 주자들은 배번을 달았다는 이유로 제지없이 통과한다.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통일대교를 건너간다.
넓은 도로를 달리는 것은 좋지만 달리다 보면 오르막인 경우가 너무 잦았다. 군내삼거리에서 우회전했다. 남북출입사무소 앞까지 달려서 돌아올 때 35킬로미터 지점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속도를 늦춘 것같은데도 4분 45초에서 55초 사이였다. 5분을 넘기질 않았다. 머리는 속도를 늦추라고 명령해도 내 몸은 이미 올라온 페이스를 떨어뜨릴 생각이 없는 것같았다. 혹시 35킬로미터 쯤 달려 체중을 어느 정도 감량했기에 이런 페이스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판단도 해 보았다. 숱하게 추월을 거듭하고 있었다. 매우 늦게 달리는 주자를 추월하면 그 주자는 32킬로미터 참가자였고, 조금 늦게 달리는 주자를 추월하면 풀코스 주자였다. 그런데 나를 추월해서 앞으로 달려가는 주자가 있었다. 3시간 30분 페메였다. 앗! 저는 그만 뛰시는 줄 알았는데요. 풍선이 날아갔어요. 따라 뛰면 서브 330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물은 것은 3시간 30분 페메로 페이스를 체크해서 달려 주기를 바란다는 부탁이었는데 페메는 속도를 더 올리고 있었다. 페메가 나보다 늦게 출발했다면 몰라도 나와 거의 동시에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식을 벗어난 레이스 운용이었다. 마스터즈 페메도 엘리트 페메처럼 30킬로미터까지만 기준이 되어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직진하면 개성과 평양이 나온다는 이정표를 보았다. 2차 반환점 앞쪽으로 남북출입사무소가 있었다. 남북 분단 접경 도시 파주에서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고됨을 잊었다. 1차선과 2차선을 구분하는 바리케이드, 바리케이드와 바리케이드를 잇는 테이프로 2차선쪽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를 분명히 하였는데 일부러 2차선에서 달리는 주자들도 있었다. 나무 그늘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받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25호 태풍 콩레이가 하루만 늦게 지나갔다면 아주 시원한 날씨 속에서 달릴 수 있었겠지만 태풍이 지나가고 맞이한 뙤약볕, 정오의 뙤약볕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북출입사무소 앞에서 군내삼거리로 돌아오는 구간도 일부 구간이 오르막이었다. 5.2킬로미터가 남았다. 이제는 서브 4 페이스가 넘는 5분 45초에서 50초 사이로 달려도 서브 330은 무난해졌다. 38킬로미터에서 39킬로미터 사이만 5분 10초로 달렸고, 나머지 구간은 모두 5분 이내로 달렸다. 몹시 지쳐 있긴 했다. 2년 전에도 그랬지만 춘천마라톤 초창기 참가 시절 마지막 구간의 고통이 생생했다.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 상태에서 악착같이 골인 지점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디디던 당시가 떠올랐다. 초반에 10초 빨리 달리면 후반에 10분 고생한다고 했는데 오늘 내가 그런 레이스를 펼쳤다. 10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친 가운데에서도 일정한 속도로 밀고 나간다는 것이었다. 지친 가운데에서도 여러 명을 제쳤다. 그 와중에 나를 추월하고 나오는 분이 있었다. 홍천마라톤의 심재성님. 올해 동아마라톤에서 서브 3로 골인한 분이었다. 재추월할 수는 없었지만 기준으로 삼아 따라갔다. 몹시 길었던 풀코스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마정교차로에서 우회전했다. 관문 앞에 41.195킬로미터 표지판이 있었다. 3시간 22분이 넘었다. 서브 330에 성공했다는 확신을 했다. 남은 1킬로미터를 5분을 넘기느냐 5분 이내로 들어가느냐의 싸움을 벌였다. 자주 만나는 오르막에서 다른 대회보다 힘을 많이 썼지만 그래도 마지막 1킬로미터 아닌가? 골인 아치가 보이는데 달려도 달려도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아치를 가끔 보며 줄어든 거리를 확인했다. 3시간 30분 페메가 골인하고, 심재성님이 골인했다. V자를 날리면서 나도 골인했다.
3:26:51.12
구토가 나오려고 했다. 무리했구나.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를 거듭하면서 참았다. 완주메달과 간식을 받으면서 심재성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0세에 마라톤을 시작했을 때에는 서브 4도 겨우 할까 말까였는데 꾸준히 노력한 결과 올해 66세의 나이에도 메이저 대회에서 서브 3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배탈이 나서 애먹었다는 광배님은 3시간 14분대로 골인했는데 오르막은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배탈 외에 힘든 부분이 있었다면 더운 날씨였다고 했다. 완주한 분들이 애로사항을 오르막부터 거론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었다. 지방 대회를 자주 다니는 분이라 오르막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 듯. 강남국제평화마라톤, 청원생명쌀대청호마라톤 등 여러 대회가 열리고 있는 날이라 그런지 아는 분을 별로 뵙지 못했다. 달리면서 응원을 주고 받은 것은 광배님, 은수님, 두경님, 남수님으로 단 네 명이었다.
주저 앉고 싶었지만 앉지 않고 움직였다. 지친 몸을 겨우 진정시켰다.
문화일보 1면에 실린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광배님이 찍어주었다.
매우 강하게 레이스를 밀고 간 것은 지난 4월 서산마라톤 때와 같았다.
달리기 강도 면에서는 올해 달린 풀코스 가운데 손가락에 꼽을 만했다.
골인한 후.... 뙤약볕이 작렬해서 그늘을 찾아다녔다.
타사재팬 춘마 에디션을 신었다. 손기정평화마라톤에서는 다소 느슨하게 신발 끈을 매어 피로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꽉 동여매니 달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은수님이 사준 음료수.
배번이 다른 대회와는 차이가 있다.
20년 된 대회임을 메달 도안을 통하여 밝히다.
지난 해 대회의 화보가 실렸는데 작년 대회 책자에는 내가 참가했던 2년 전의 화보가 실렸을 것이다. 혹시 내 사진이 실렸는지 궁금하기는 한데......
여우고개 전후가 정점인데 이 고개를 오가면서 초반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니 후반 레이스가 힘들어진다.
평탄한 느낌이라곤 없는 코스라 다른 대회보다 힘을 더 많이 쓰는 대회라고 할 수 있었다.
대형 표지판이 있어 버스를 찾느라 헤매는 경우가 없었다.
골인 직전이다. 몹시 힘들었지만 V자를 날리는 여유는 보였다.
체중 감량이 더 필요하다. 당초 10월 3일을 기점으로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게 될 거라고 믿었는데 완전히 오판이었다.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몸을 바로 망친다는 것을 다시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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