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8/10/31)-FULL ***

HoonzK 2018. 11. 2. 11:10

  메이저 대회 풀코스를 달린 후 사흘만에 풀코스를 달리는 벌칙을 수행하라! 메이저 대회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한 벌칙을......


 춘천마라톤을 달리고 일주일이나 이주일 후 열리는 마라톤에서는 기록이 나빠진다.  10분에서 20분까지. 춘천마라톤에서 에너지를 모조리 소진했으니 한 보름은 지나야 풀코스를 제대로 달릴 체력을 회복하는 것같다. 그런 내가 춘천마라톤을 완주한 지 사흘만에 풀코스를 달렸다.


 수요일에 열리는 대회이니 4회전이었다. 10.55킬로미터의 같은 코스를 네 차례 왕복하기였다. 내 계획은 이랬다.


 1회전: 지속주 (일정한 스피드를 지속함)
 2회전: 유지주 (1회전의 스피드를 그대로 유지함)
 3회전: 조절주 (후반을 위하여 스피드를 늦추면서 조절함)
 4회전: 가속주 (인정사정없이 스퍼트함)


  기승전결의 방식.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스피드를 올려 달리는 지속주를 했다.


 3:23:04.29


 서브 325의 기록은 지난 3월 동아마라톤 이후 처음이었다.  초반 하프를 1시간 42분에 달렸고, 후반 하프를 1시간 41분에 달렸다. 춘천마라톤 때에는 킬로미터당 평균 속도가 5분 4초였지만, 사흘이 지나 달리는 대회에서는 4분 48초가 되었다.


 춘천마라톤 이후 바로 열리는 대회라 그런지 늘 뵙던 분들이 보이지 않았다. 네 분이 6시에 출발했고, 나 혼자 7시에 출발했다. 기록 담당자가 나만을 위해 카운트 다운을 했다.


 5, 4, 3, 2, 1


 상체는 긴팔 티셔츠를 입어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대비했지만 하의는 맨살을 드러낸 반바지를 입었다. 운동 나온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헐벗은 상태였다. 가끔 만나는 주자들 가운데 다리를 그대로 드러낸 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속도는 얼마나 나올까 궁금해 하면서 출발했다. 기록이 바닥을 치는 것은 기정 사실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다. 너무 기록이 나빠서 중도에 포기하고 이 대회에 나온 일이 없는 것처럼 행세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런데 첫 1킬로미터가 4분 55초. 의외였다. 생각보다 매우 빨랐다. 다음 1킬로미터도 4분 55초. 이후의 페이스는 4분 45초와 50초 사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5분이 넘었던 것은 34킬로미터 지점 화장실에 들렀을 때 뿐이었다. 비슷한 기량의 주자와 보조를 맞추거나 기준으로 삼을 대상이 없이 홀로 연습하는 것처럼 달리는데 그런 속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그저 달릴 뿐인데 그 스피드가 유지되다니. 표정 한번 일그러뜨리지 않고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달렸다. 좀더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골인하기 직전 1킬로미터를 남겼을 때 뿐이었다. 마지막 1킬로미터는 4분 20초로 달렸는데 4분 15초가 되지 않아서 3시간 22분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골인 직전 콘을 감아 돌지 않고 바로 골인하면 3시간 22분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구로 1교쪽 공사 현장을 여덟 차례나 지나면서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었다면, 화장실에 들르지 않고 끝까지 참았다면, 급수대 도우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오랜만에 만난 분과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면, 이 가운데 한 가지만 하지 않았어도 3시간 22분대는 무난했겠지만 마라톤의 상황이 늘 내 입맛에 맞게 조성될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처음에 출발할 때만 해도 3시간 40분이 걸릴지 3시간 50분이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지 않았던가? 이번 기록으로만 해도 내 생애 세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318, 321 다음) 10월 마지막날 10월 풀코스 횟수와 월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10월에 풀코스를 다섯 차례나 달린 것은 처음이었다. 대리 출전을 포함하여 한 해 풀코스를 31회 달려 연간 완주 횟수를 갈아치우기까지 했다.


 그냥 몸이 나가는대로 달렸을 뿐인데 일정한 스피드가 쭉 유지되었다. 춘천마라톤이 공원사랑마라톤을 위한 연습주가 된 셈이라 어이없었다. 지지부진하던 스피드가 춘천마라톤에 가면 개선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이지 춘천마라톤을 마이너대회로 만들어 버린 소행을 저지른 게 맞았다. 1년 넘게 사람을 괴롭히던 오른발 통증이 없었다. 줄곧 괴롭히던 통증이 춘천마라톤 때부터 사라졌다. 하지만 왼쪽 발바닥이 아팠다. 양말이 찢어져 맨살이 신발창에 바로 닿으면서 피물집이 생긴 탓이었다. 양말을 찢어버릴 정도로 빨리 달린 것인가? 최근 풀코스 세 차례에서 애용하는 양말을 모두 버리게 되었다. 연달아 양말을 헤어지게 하다니 혹시 내 주법이 잘못 되었나?


 새벽에는 너무 일어나기 힘들어 잠시 갈등했다. 전날 일찍 잔 것도 아니었기에. 꼭 이렇게 벌칙을 수행해야 하는가? 달리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그래도 집을 나섰다. 풀코스를 달리기 위하여 전날 저녁을 6시도 안 되어 간단하게 먹지 않았던가? 신도림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하품이 심해서 마라톤 힐링카페 앞을 지나는 160번 버스로 환승해서 그냥 귀가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의지는 강했다. 달리기 전 이미 의지를 굳게 다져 놓은 덕분에 달리는 동안에는 굳이 강한 의지를 끌어낼 필요가 없었다. 지난 해 영동포도마라톤에 대한 벌칙으로 사흘 후 공원사랑마라톤을 달릴 때에는 아주 처절하리만치 이를 악물고 달렸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다. '강건달은 지치지 않는다.' 따위의 되새김은 아예 필요없었다. 배탈만 없어도 이렇게 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달렸다.  3회전 후반에는 기진맥진했다가 4회전 때 회복하는 과거를 그대로 따라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4회전할 경우 3회전 때의 기록이 가장 나빴는데 이번에는 다른 회전 때와 차이가 없었다. 반환점 급수대 도우미는 네번째 만났을 때 내게 말했다. 달릴 때마다 발전하시네요.


 완주한 후 직원 한 분이 춘천마라톤 때 잘 뛰었느냐고 물었다. 춘마를 잘 못 뛰어 오늘 나왔다고 했더니 내가 반대로 한다고 했다. 춘천에서 잘 뛰기 위하여 공원사랑에서 뛰는 것인데 어떻게 반대로 하냐고. 공원사랑마라톤에서 잘 뛰었다고 하여 이미 뛰어 버린 2018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기록이 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밖에 없었다.

 



양말이 너덜너덜해져 바닥이 뚫렸으니 발바닥에 피물집이 든 것은 당연해 보인다.

2천 킬로미터를 넘게 달린 마라톤화를 다시 신어 양말을 더 빨리 손상시킨 것처럼 보인다.



완주자 기념품으로 양말이 지급되니 이 양말로 갈아신고 귀가했다.



이 배번에 달린 옷핀으로 물집을 찔러 피를 빼내었다.



화장실에 들렀던 것을 고려하면 후반 하프를 1시간 40분으로 달린 셈인데....죽어라 스피드를 낸 것이 아니라 좀 의외다.


3시간 18분 51초(2018/03/18), 3시간 21분 07초(2018/02/16)에 이어 세번째로 좋은 기록이다.



여사님이 김치를 넣어 라면을 끓여주셨다.


얼큰한 게 먹기 딱 좋았다.

여사님이 또 한번 로운리맨님의 100회 완주 기념패를 어떻게 할지 물었다.

11월 11일 공원사랑마라톤에 참가한다고 했으니 그때 본인이 직접 수령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