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따라 움직이자.
3시 39분 기상 후 식사
4시 20분 출발
5시 30분 고속버스터미널 도착
6시 05분 서산행 첫차 탑승
8시 00분 서산종합운동장행 셔틀버스 탑승
9시 00분 풀코스 출발
12시 30분 되기 전 완주
13시 00분 서산터미널행 셔틀버스 탑승
이 계획대로라면 3시간 29분으로는 달려야 하는데 조금만 더 빨리 달려 지난 해 세운 4월 최고 기록인 3시간 28분 24초를 깨뜨리기로 하자. 서산 오는 버스 안에서 잤다. 버스가 출발한 지 1시간 30분만에 도착했지만 그 잠깐 동안의 수면 덕분에 컨디션이 꽤 좋아졌다. '건달님 서산에서 3차 반환 전, 후 언덕만 조심하시면 섭 330 하실 겁니다'라는 로운리맨님의 카톡 문자. 맞다. 서산마라톤 코스가 쉽지 않다고 했다. 2년 전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21분대를 기록한 로운리맨님이 서산마라톤에서는 3시간 42분대를 기록했던 점만 보아도 녹록지 않은 코스였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나는 3시간 26분대로 골인하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3시간 18분대로 골인한 동아마라톤보다 페이스가 좋았다. 풀코스 기록이 불과 3주만에 다시 바뀌는구나 싶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기온이 급강하한데다 찬 바람까지 세게 불어대는 봄날이었다. 동행한 希洙형님은 긴팔 티셔츠를 입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까지 했다. 바람만 아니라면 낮은 기온은 달리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나도 긴팔과 장갑을 준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견딜만 하니 반팔을 입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씀드리니 希洙형님도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사실 오늘 希洙형님과 나는 반기문마라톤 대회장에 가 있어야 했다. 반기문마라톤이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취소되면서 이 대회에 오게 되었다. 군산새만금, 예산윤봉길마라톤은 뛰어본 적이 있어서 서산을 선택했다. 다른 대회와 별반 다를 바 없으리라 믿고 나온 대회였는데 사전 학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몹시 힘든 대회가 되었다. 운동장을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하면서 T자 형 코스를 이수한 뒤 팔봉산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 코스인데 코스 연구 한번 없이 와서 된통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힘든 코스가 다 있었나 하는 생각이 줄기차게 들었다. 고난의 오르막이 끝났나 싶으면 또다시 오르막이 나타나 애를 먹였다. 로운리맨님이 6개의 크럭스(crux)라고 표현한대로 심정적으로는 수십 개의 난관에 봉착한 것같았다. 20킬로미터를 지날 때는 아예 산을 넘는 느낌이었다. 도로가 포장되어 있을 뿐이지 트레일 러닝을 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 하프를 일주일 전 영주에서보다 5분 쯤 빨리 달리고 있었다.
오르막이 많은 만큼 내리막도 적지 않으니 오르막에서 잃어버린 시간은 내리막에서 벌충하면 되지, 나는 오르막을 좋아한다고 잘 착각하면서 사니 상관없지..... 매번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었다. 더 이상의 오르막은 안된다고 중얼거리면 그 주문을 비웃는 듯 여지없이 오르막이 나왔다. 3차 반환 후 왔던 길을 되밟아 가는데도 오르막 내리막의 데이터는 기억 속에서 싹 지워져 있었다. 두번째 만나는 길인데도 처음 만난 길처럼 생소하기만 했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시골길을 벗어나 39킬로미터가 넘어 대로에 들어서는 순간 내리막 섞인 평탄한 대로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오르막이었다. 방향이 꺽인다든지, 건물이 시야를 제한한다든지, 심한 안개가 끼어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든지 하면 좀더 견딜만 했을 것이다. 시야가 탁 트이면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하프 후미 주자들은 전부 걷고, 풀코스 주자들은 걷거나 느리게 달리고 있었다. 오르막인데 맞바람까지 불어쳐서 지친 주자를 사정없이 괴롭혔다. 버프의 챙이 제껴져 민망한 꼴이 되거나 챙이 바람에 눌려 코끝까지 내려오면서 시야를 가리기도 했다. 오르막이든 맞바람이든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다. 아무리 오르막이고 바람이 밀어대어도 굼뜨게 달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후반에는 질주해야 했다. 육중한 바람이 쓸려 내려오는 오르막을 거슬러 오르는데 이건 마치 진흙밭을 달리는 것같았다. 초반에 사정없이 스퍼트하여 나를 떨구었던 ㅇㅅ거북이 KSG님마저 걷고 있었다. 이런 코스에서 4월 최고 기록을 세우겠다고 마음먹었던 내가 바보였다. 이런 코스는 완주만 해도 격찬을 받을텐데.
초반에 오르막을 넘나들면서도 첫 1킬로미터 5분 10초였던 페이스가 4분 18초까지 좋아져 10킬로미터를 47분 50초에 통과했다. 풀코스 초반 10킬로미터 최고 기록이었을 것이다. 분위기는 좋았다. 12킬로미터 남짓 달렸을 때 만난 고남저수지를 둘러싼 주로같은 상황이 내내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잔잔한 물과 벚꽃, 개나리가 멋지게 어우러진데다 코스도 평탄하고 이따금 찾아오는 발바닥 통증도 완전히 사라져 산책나온 것같은 분위기는 아주 잠시였다. 이 대회에는 아예 응원단이 있었다. 지점마다 학생들이 배치되어 빨간 막대 풍선을 두들기며 응원해 주었다. 대부분이 여학생들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가까워지면 응원을 시작하니 어쩌면 좋나 싶었다. 이럴 때면 낯가리는 어린 소년이 된 것같았다.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열렬하다 못해 격렬한 응원을 보내주는 어린 소녀들을 외면할 순 없었다. 힘든 표정을 싹 걷어내고 미소를 보내주거나 손을 흔들어주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주었다. 내가 응원을 받아주면 소녀들은 더 신명나게 응원을 보내주었다. 응원단에서 멀어지면 다시 인상을 쓰며 이 맞바람과 오르막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고민했다. 3번의 반환이 이루어지는 덕분에 지인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최ㅍㅈ님, 希洙형님, 제비한스님과는 마주볼 때마다 인사했다. 希洙형님은 나를 만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주셨다.
26킬로미터가 넘어 주최측에서 제공한 파워젤을 섭취한 후 3차 반환에 들어서면서 한결 편안해졌다. 오르막 때문에 다른 대회보다 과도한 체력을 쓰고 있었는데 이제 고생은 끝난 것인가. 심리적으로 안정되니 스피드도 올랐다. 주변의 주자들을 하나둘씩 제쳤다. 돌아가는 코스는 남은 거리 15.4km, 14.4km..... 이런 식으로 표시되었다. 계산을 해서 페이스를 산출해야 했다. 15.4킬로미터가 남았다면 26.8킬로미터를 달렸구나 하는 식으로. 12.4킬로미터 남았을 때는 29.8킬로미터를 달린 것이니 200미터쯤 더 달려 30킬로미터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시계를 보았다. 그렇게 오르막에 시달렸는데도 2시간 25분이 넘지 않았다.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3시간 28분 24초의 4월 기록을 깨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르막은 끝나지 않았다. 잊을만하면 오르막이 나왔고 그 오르막을 넘을 때를 맞추어 바람이 세게 불어와 스피드를 제어하였다. 찌릿찌릿하게 올라오는 발바닥 통증을 주법 전환으로 이겨내었다. 배번을 뜯어버릴 것처럼 밀려드는 바람, 다리를 천근만근 무겁게 만드는 오르막도 이겨내었다. 화장실을 가야 할까 말까 고민했다. 이 대회는 화장실 표지판이 곳곳에 있었다. 응원단 배치만큼이나 화장실 표지판 설치는 특이했다. 화장실 표지판을 거리 표지판으로 착각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31킬로미터쯤 달렸을 때 화장실에 갔는데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꽤 잡아 먹었다. 그 사이에 ㅍㅌ마라톤클럽 주자가 내 앞으로 나아갔다. 일보고 돌아와 이 주자를 바라보며 달렸다. 따라갔다. 당신 앞에 있는 빈 공간이 제자리일 수도 있어요 중얼거리며..... 이내 그 주자를 추월했다. 이 주자는 꾸준히 나를 따라와 34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나를 제쳤다. 오르막이 들쭉날쭉 튀어나오는 구간에서 배틀을 벌여야 하나? 아직은 아니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달렸다. 37킬로미터쯤 되었을 때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동반주하기에는 보조가 맞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 나아갔다. 이 주자는 내가 골인할 때까지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버프가 제껴진 채로 골인하여 사진이 찍혔던 것이 정확히 1년 전이었다. 그때는 버프가 제껴진 것도 몰랐다. 이번에는 바람 때문에 제껴지는 버프를 도로 내리기를 거듭하며 전진했다. 일부러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로 한동안 달렸다.
5분을 넘지 않는 페이스를 지켜낸다면 3시간 27분 30초 전후의 기록이 예상되었다. 대로에서 만난 마지막 오르막에서 치열했다. 이제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걸으면서 숨을 돌렸다 다시 달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다들 힘들어 걷거나 속도를 늦추어 뛰는데 그 와중에도 속도를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걷는 이들보다 내가 특별히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닐텐데 스피드를 끌어올리는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무조건 5분 이내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1.2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지나면서 서서히 오르막이 끝나가고 있었다. 풀코스 후반의 고통을 다른 대회보다 심하게 느꼈지만 결국 골인 지점은 가까워졌다.
앞쪽에서 달리는 주자들이 보이지 않아 주로를 잘못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속에서 스퍼트했다. 운동장 진입로는 경사가 너무 심해서 넘어질 것같았다. 조심해서 트랙에 들어섰다. 진행요원이 콘 왼쪽으로 달리라고 알려주었다. 골인하였다. 시계의 스톱 버튼을 조금 늦게 눌렀다.
아세탈님의 '기록 결과 보러가기' 카톡 문자를 클릭하니 내 기록이 바로 떴다. (안중근 마라톤대회에 나갔다 와서 출근한다고 여유가 없었을텐데 이런 배려까지.....)
3:26:29
재미있는 기록이 나왔다. 3+26=29.
칩을 풀면서 스트레칭하고 완주 기념품인 쌀을 조금 기다렸다가 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주최측으로부터 국수를 비롯한 먹거리를 받았을 때의 시각이 12시 52분이었다. 5분 내로 다 먹어치우고 12시 59분에 셔틀버스를 탔다. 돌아오는 동안 오늘의 기록을 분석했다. 컨디션이 좋은 덕분에 난코스와 호된 바람 속에서도 4월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77개월 연속 풀코스 완주 기록을 세웠다. 22번째 서브 330. 18개월 연속 월별 최고 기록 경신.
군산새만금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4월 최고 기록을 경신한 로운리맨님은 내가 넉넉하게 입상권이라고 했지만 청년부가 아닌 이상 입상은 어려웠다. 청년부의 10위 기록은 3시간 54분대였지만 장년부의 10위 기록은 3시간 10분대였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갖고 달리는 希洙형님이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주셨다. 3차 반환한 후 만났을 때.....
2차 반환한 후 만났을 때.....
믿어지지 않는 고저도이다. 마라톤 기록을 세우기에는 어려운 코스가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에는 셔틀버스가 아닌 줄 알았다. 希洙형님이 보인다.
일일이 신발끈을 풀어 칩을 묶었다.
스트레칭하면서.....
완주 후 제공된 먹거리....
고기국수로 만들어 먹었다. 정말 급하게 먹고 셔틀버스에 올랐다. 마음같아서는 한번 더 먹고 싶었지만.....
완주 후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한 최ㅍㅈ님과 만날 여유가 없었다.
서울행 버스표(오후 1시 59분)를 끊은 뒤 롯데리아 서산터미널점에서 클래식치즈버거와 콜라를 먹었다.
롯데리아 벽에 붙어 있는 셰익스피어의 글.
완주 메달을 받을 때 쌀이 없어서 조금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이것은 약속된 뜸부기쌀도 아니고 1킬로그램도 아닌 800그램이다. 아무 해명도 없는 주최측.....
참가 인원은 정해져 있었을텐데.... 쌀이 도중에 떨어진 이유를 모르겠다.
출발하기 전 (希洙형님이 찍어주심)
출발하기 바로 직전......
※ 이 대회는 풀코스 9시 출발, 대회 행사 진행 후 하프코스 10시 출발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동안 하프 주자들을 보지 못했다. 16킬로미터를 넘게 달린 후에야 하프코스 선두 주자를 만났다. 17킬로미터까지 가는 동안 하프 선두 주자 한 명에게만 추월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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