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3회 여명808국제마라톤(2018/04/22)-FULL 168

HoonzK 2018. 4. 25. 16:25

 2018년 4월 22일 풀코스 종목이 있는 대회

 

제24회 삼척 황영조 국제마라톤(삼척 엑스포광장)
제15회 호남국제마라톤(광주상무시민공원)
제16회 경기마라톤(수원 종합운동장)
여의도벚꽃마라톤(여의도 이벤트광장)
제13회 여명808국제마라톤(뚝섬한강공원 수변광장)

 

 유일하게 달린 적이 없는 대회가 여명808국제마라톤이었다. 특전사님은 삼척으로, 로운리맨님은 수원으로, 希洙형님은 여의도로 가고 나는 뚝섬으로 왔다. 아는 사람이 이렇게 없는 대회가 있을까? 하프코스를 2회 왕복하면서 주자들과 정말 자주 마주했지만 인사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깥술님은 밤새도록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을 달렸기 때문에 풀코스에서 뵐 기회가 없었다. 사실 이 대회를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기념품 때문이었다. 수납이 되는 의자 배낭.

 

 

이 기념품 때문에 참가를 결정했다. 카드로 결제하지 않고 현금을 송금했으면 4만원이 아닌 3만 6천원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몇 십 분만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출발했다. 몹시 질척거리는 듯한 굼뜬 동작이 나왔다. 1킬로미터 표지판을 만난 것이 출발한 지 6분 5초가 지나서였다. 이 페이스라면 2015년 1월 3일 뚝섬에서 세운 코스 최고 기록인 3시간 40분대는 커녕 4시간도 훌쩍 넘기고 만다. 최악의 몸상태로 풀코스 도전에 나선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 대회는 하프코스 2시간 이후의 페이스메이커밖에 없었다. 자기 나름대로 알아서 달려야 했다. 가끔 눈을 감고 달리기도 했지만 눈을 감는다고 피로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첫 1킬로미터의 페이스보다 다음 구간들의 페이스가 조금씩 좋아지긴 했다. 5킬로미터까지 25분 27초가 걸렸다. 그렇게 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혹시나 3시간 20분대가 가능할까 했던 기대를 아직 접을 수는 없었지만 점점 피곤해지는 몸으로 현재보다 더 빠르게 나아갈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7차례 이상 악전고투를 거듭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운이 빠졌다. 구리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맞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도무지 발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허우적거리며 달리면서 10킬로미터까지 51분이 걸렸다. 이마저도 격전을 벌인 노병같은 꼬락서니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53분 13초에 반환한 후에는 바람을 등지니 그나마 견딜만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5분 5초에서 5분 15초 사이를 오가던 페이스가 5분 이내로 들어섰다. 혹시나 하프 1회전을 1시간 45분에서 47분 사이에서 해낸다면 후반에 스퍼트하여 3시간 29분대의 기록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하프 주자들이 슬슬 속도를 내는 틈바구니 속에서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등에는 배번이 없으니 앞의 주자가 풀코스 주자인지 하프 주자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남들 스퍼트한다고 무조건 따라가다간 오버페이스할 수도 있었다. 풀코스는 길었다. 더구나 2회전하는 코스는 더 길었다. 서둘러 승부를 걸면 낭패를 볼 것이다. 성급하면 늘 망했던 것이 풀코스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풀코스를 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궁리하면서 달렸다. 무너지는 자세를 바로 잡으려고 애썼다. 끝까지 달려내는 것도 힘들고, 포기하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늘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달리다 보면 점점 달려야 하는 거리는 줄어들 거라는 것. 


 목은 자주 말랐고, 땀도 너무 많이 흘러 눈이 쓰렸다. 급수대를 만나면 컵 두 개를 챙겨야 했다. 하나는 마시고, 하나는 눈을 씻어내고.  가끔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는데 비가 내릴 거라면 아주 후줄근하게 쏟아지는 게 좋았을 것이다. 더위를 식혀주고도 남음이 있었을테니.....


 15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나를 제치고 나아가는 주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이들은 틀림없이 하프 주자들이었다. 골인점을 얼마 남기지 않고 스퍼트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도 1회전으로 대회를 마쳐 버리면 참 좋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골인 아치 앞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려 2회전에 나설 것임은 분명했다. 돌아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렀으면 좋았을텐데 이용객들이 많아 들르지 못했다. 1차 반환한 후 방향을 꺽어서 화장실에 들러야 했다. 거기서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왔는데도 바로 앞에 있던 철원에서 온 Ik-hyun(Hwang)님이 100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건너편에서 오던 주자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다. 친한 사람 만난 것처럼 대해 주시기에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했으면서 나도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누구일까? 언뜻 보면 의계님 같은데 의계님이 저렇게 인사를 할 일은 없고...... 혹시 저를 아세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고. 2차 반환해서 돌아가는 길에 또 만났는데 이번에는 내가 먼저 아는 체 했다. 누구인지 기억도 못하면서..... 공원사랑마라톤에서 자주 뵈었던 분일까? 역주를 거듭하면서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기억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알아내었다. 2015년 11월 손기정평화마라톤 때 35킬로미터까지 동반주를 했던 분, 2016년 중앙서울마라톤에서 만난 분.....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 뵙는 것이었다. 덕소마라톤클럽의 주자 병민님.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그 분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확실히 2회전은 1회전과는 달랐다. 누적된 피로를 안고도 페이스가 오히려 좋아졌다. 가끔 4분 40초 페이스도 나왔다. 첫 1회전을 1시간 45분이 되기 직전 했기 때문에 페이스가 떨어지지만 않으면 3시간 29분대의 기록이 예상되었다. 오늘 상금 타려고 무리하지 말고 그 돈은 평생 살아가면서 꾸준히 버시기 바랍니다. 내년, 후년에도 참가해야 하니 올해만 달리고 내년에는 산에 가서 누워 있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마라톤 사회는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외모, 언변, 지난 30년간 단 한번도 미투운동에 하자가 없는 사람만이..... 오늘 사회를 보았던 개그맨 김종국의 멘트를 기억해내면서 슬며시 웃기도 했다. 아주 잠깐 얼굴을 보였던 탤런트 최주봉도 떠올랐다. 여명808 음료수 광고 모델.


 풀코스를 2등분했을 때 1단계에서는 3시간 29분대, 2단계에서는 3시간 19분대로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주일 전 서산에서 세웠던 3시간 26분 29초의 기록을 무난하게 깨뜨리겠는데. 4월 최고 기록을 또 깨는 것인가? 뚝섬코스에는 오르막내리막이 가끔 있지만 서산마라톤에 비하면 평지 수준 아닌가? 스피드를 올리겠다는 생각없이 자세만 바로잡으며 뛰어도 무난하게 4분 50초 이내로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피로도 사라지고 있었다. 주자들의 무너진 자세를 보면서 내 자세를 고치곤 했다. 로운리맨님이 개발했다는 펜듈럼(pendulum) 주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팔이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인가? 이렇게? 시보리( しぼり) 주법은 비틀어 달리는 것이라 했지? 이렇게? 그리고 끊임없이 끌어내는 긍정적인 마인드. 같은 일을 하면서 왜 부정적인 면만 봐야 해? 이왕 하는 것 즐겁게 하자고. 날씨가 많이 더워졌지만 그래도 20도는 넘지 않네. 비구름 덕분에 햇빛을 피할 수 있으니 참 좋네. 눈 앞을 어지럽히는 꽃씨는 봄에 내리는 함박눈같아 멋지네. 무리하게 달려서 발바닥 통증이 생겼지만 이따금 아프지 않을 때가 있으니 견딜만 하네.


 지난 주 춘천에서 보았던 여성 주자 설아님이 여자부 2위로 달리고 있었다. 나보다는 1킬로미터 쯤 앞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했는데 받아주었다. 지난 주 하프 대회에서 14킬로미터를 지나면서 내가 제쳤으니 그 날 내가 빠르긴 빨랐다. 오늘 보니 결코 따라잡지 못할 분인데.


 하, 구리암사대교가 보이니 바람이 격렬하게 불어왔다. 맞바람을 뚫고 나가면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페이스가 5분에서 5분 5초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1회전 때보다는 나았다. 그 때는 5분 10초에서 15초였다. 5킬로미터 정도만 버티어내면 반환할테고 그때부터는 바람이 뒤에서 밀어줄 것이었다. 30.1킬로미터 지점을 2시간 29분대로 지났다. 맞바람 속에서도 선전한 것이었다. 강동대교 앞에서 반환했다. 바람이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은 없었다. 맞바람만 없을 뿐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없었다. 페이스? 정확히 5분이었다. 나아지는 게 없었다.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마라톤은 힘든 것이었다. 컨디션이 좋으면 빨리 달리려고 해서 힘들고, 컨디션이 나쁘면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잘 나가지 않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라톤은 힘든 것이었다. 컨디션이 좋은데 천천히 달리면 힘들지 않겠지.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여명808국제마라톤은 또다시 내 인생의 마지막 마라톤이며 메이저 대회였다.


 10킬로미터가 남았다. 이제부터 킬로미터당 5분으로만 달려도 3시간 30분 이내 완주가 가능해졌다.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35킬로미터 지점까지 5분의 페이스를 지켰다. 그 이후부터는 몇 초씩이라도 빨리 달렸다. 은퇴 기념 마라톤이니 기념으로 조금만 속도를 올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입은 바짝바짝 마르고, 땀 때문에 눈을 반쯤 감고 달려야 했다. 급수대에서 물컵 두 개 잡기를 반복했다.


 달리다 보면 단출하게 몇 명만 출전한 대회같았다. 풀코스 주자가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추월하려는 주자가 전혀 없었다. 내가 추월하는 주자는 아주 가끔 있었다. 38.5킬로미터 정도 달렸을 때 500미터 앞에 여자 2위 주자가 보였다. 꽤 따라붙기는 했지만 아득하게 먼 거리였다. 다른 대회에서 보였던 후반 스퍼트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따라붙기는 어려워 보였다. 골인할 무렵 200미터까지는 거리를 줄였다.


 내가 잰 기록을 보고 3시간 27분대 후반이 아닐까 싶었다. 시계를 출발 패드를 지나기 전에 미리 누르고 골인 패드를 지난 후에 조금 지나 누르는 습관으로 실제 넷타임은 늘 5초 이상 빠르게 나오니. 하지만 이번에는 3초 정도만 빠른 것으로 기록이 확인되었다.

 

 3:28:01.57

 

 출발할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기록이었다. 올해 10번의 풀코스 완주 가운데 7번째 서브 330. 서브 330 능력이 되지 않는 날 서브 330을 하고 나니 몹시 지쳤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30분 동안 스마트폰으로 카톡 메시지만 주고 받고 있었다. 발바닥에 통증이 퍼져서 온몸으로 올라오는데 아직 움직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움직임을 멈추다니 초보적인 실수였다. 완주 후에도 부지런히 움직여 몸을 풀어주었어야 했는데. 굳어버린 몸을 뒤늦게 푼다고 아주 애를 먹었다. 뚝섬유원지역 근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먹은 뒤 건대입구역까지 걸었다. 전철에서는 운좋게 앉았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서 일어났다. 몹시 피곤했지만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참가 신청을 늦게 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받아야 했다.

 

잠실롯데타워와 잠실종합운동장이 보인다. 출발 한 시간 전이다.

 

완주 후 벗은 티셔츠에는 전흔이 남아 있다.

 

 

흘린 땀이 말라붙어 소금 지도가 새겨졌다.

횟가루 묻힌 것처럼.....

 

롯데리아에서 핫크리스피 버거세트를 먹었다.

 

원래 6500원인데 OKcashbag 쿠폰으로 4900원에 먹었다.

 

콜라는 한번, 반 잔 리필했다.

 

다미나 909 에너지 드링크 액상차 5개가 들어 있다. 완주자 전원에게 지급되는 품목이었다.

 

김밥 한 줄도 준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