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8회 인천국제하프마라톤대회(2018/03/25)-HALF 164

HoonzK 2018. 3. 27. 00:34

  국제육상연맹(IAAF) 인증 하프 국제대회인 인천국제하프마라톤대회 하프 종목에 출전 완주했다. 서울국제마라톤 풀코스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운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피로가 풀리지 않았고, 대회 코스가 파도 치듯 오르락내리락이 있어 부담스러웠으며, 집에서 너무 멀어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출전했다. 접수 마감일(3월 19일)에 참가 신청을 해서 배번과 기념품은 현장에서 수령해야 했다.


 일찍 나갔다. 대회 출발이 9시인데 5시가 되기 전에 집에서 나갔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7시도 되지 않았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스트레칭을 마치고도 여유가 많아 책까지 읽으며 시간을 보내어야 했다. 배가 고팠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전날 싸두었던 김밥을 몇 개 먹고 나온 것으로는 힘이 딸렸다. 무언가 먹을 게 없을까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는데 아무것도 사먹지 못하고 몇 킬로미터를 걸어다니면서 체력 소비만 했다. 결국 가방에 들어 있던 아에젤 한 포로 허기를 때웠다. 30분만 더 늦게 일어나 이동하면서 요기를 했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현장물품 수령지에 와서 希洙형님과 만나 함께 출발 준비를 했다. 문학경기장 주경기장 잔디밭 언저리에 있으니 로운리맨님이 왔다. 지난 3월 4일 서브 320할 때와 똑같은 주황색 민소매 복장이었다. 이번 대회 기념품인 주황색 티셔츠와 잘 어울렸다. 서브 320할 때와 똑같은 복장이라! 로운리맨님의 도전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4년 내리 출전하는데 2년 전 세운 대회 기록(1:35:37)을 경신하고 서브 135로 달려보고자 하는..... 나는 1시간 40분 이내 완주가 목표였다. 메이저대회 풀코스 이후 첫 하프이고, 후반에 오르막이 두드러지는 코스라 더 빠른 기록은 기대할 수 없었다. 배도 고팠다.


 9시 정각. 엘리트 주자들이 출발하고 3분이 흐른 후 마스터스 주자들도 출발했다. 1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부터 10분 간격으로 페이스메이커가 있었다. 앞쪽으로 간 로운리맨님은 어디쯤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없었다.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보다 뒤쪽에서 출발했다. 북문을 빠져나갈 때는 병목 현상이 일어나 거의 제자리 뛰기를 해야 했다. 마라톤을 500번 넘게 출전하면서 출발하자마자 거의 서 버린 것은 처음이었다. 일단 초반 1킬로미터는 내리막이 많았다. 하지만 5분 10초나 걸렸다. 몹시 흐리고 싸늘하기까지 해서 기록이 잘 나올 줄 알았는데.  1시간 50분 이내 완주를 계획하는 希洙형님이 앞에 있었다. 일단 형님 앞으로 나아가 1시간 50분 페메를 따라잡으려 애썼다. 다음 1킬로미터는 4분 50초가 걸리면서 페이스를 조금 회복했다. 선학역에서 신연수역 방향으로 나아가 3킬로미터. 페이스는 4분 30초까지 당겨졌다. 1시간 50분 페메를 지나쳐 100미터 이상 앞에 있는 1시간 40분 페메를 향하여 달렸다. 지하도 구간을 지나면서, 다리를 넘으면서 페이스는 오락가락하였다. 속도를 올릴 때마다 발바닥 통증이 도졌다. 초반부터 아프니 난감했다. 그래도 예전만큼 아픈 것은 아니라서 그런대로 버티어내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간 것이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는지 KBI의 2.0.수님은 나를 따라와 추월했다. 조금 더 속도를 내어 1시간 40분 페메와 동반주를 하면 좋겠지만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하프마라톤이야 몇 번쯤 오버페이스하여 속도를 내어도 상관없다고 나 자신을 설득해도 힘찬 발놀림을 할 수 없었다.  바이오리듬이 바닥을 친 것같았다. 왼쪽 다리에 절림 현상도 있었다. 이렇게 달리다 극심한 통증으로 주저 앉아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배는 고팠다. 10킬로미터 급수대에서 초코파이나 바나나라도 먹어야지 하면서 악착같이 움직였다. 건너편에서 케냐 선수들이 비호같은 스피드로 건너편에서 달려오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7킬로미터 지점 송도 1교를 넘어 8.5킬로미터 테크노파크역도 지났다. 머릿 속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간식, 간식이었다. 10킬로미터를 46분 59초에 통과했다. 급수대에는 간식이 없었다. 간식 먹으려고 빨리 온 것인데......몹시 서러워라. 그저 물 한 컵만 마셨다. 가는 주자와 돌아오는 주자 사이의 주로에는 중앙분리대가 있었고, 거기에 나무가 심어져 있어 건너편 주자를 확인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결국 로운리맨님과 마주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주자들이 주황색 옷을 입고 있어서 로운리맨님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무 사이로 언뜻 다리만 본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반환점은 10.55킬로미터가 아니라 10.7킬로미터였다. 출발할 때는 경기장 북문을 빠져나오지만 골인할 때는 동문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거리가 같을 수 없었다. 10.7킬로미터까지 50분 15초에 달렸다. 돌아가는 10.4킬로미터를 49분 44초에 달리면 1시간 39분 59초의 완주가 가능했다.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코스가 오르막이 많아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로운리맨님이 미리 귀띰했었다. 5년 전 이 대회 10킬로미터만 달려봤을 뿐이고, 하프코스는 처음 달리는 나로서는 잘 기억해야 할 정보였다.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는 꼭 따라잡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따라잡을 속도를 회복하지 못했다. 혹시 누군가 먹을 것이라도 주면 힘을 내어 따라잡을 수 있을까? 2.0.수님은 1시간 40분 페메도 제치고 질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인천사랑마라톤클럽과 인천마라톤클럽에서 각각 두 명씩 페메를 맡고 있었다. 총 네 명이 풍선을 달고 달리니 페메는 눈에 잘 띄었다. 팔랑거리는 노랑색 풍선을 바라보며 달리는데 중앙분리대 건너편에서 또 다른 풍선이 보였다. 1시간 50분 페메. 그 앞쪽으로 태현님이 달리고 있었고, 뒤쪽으로 希洙형님이 오고 있었다. 태현님에게는 이름을 부르며 응원했고, 希洙형님에게는 손만 들어 응원했다.


 구름은 걷혔다. 밝은 날씨가 되었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깨끗하지는 않았다. 1시간 40분 페메와 떨어진 100여 미터의 거리.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시계를 보면서 페이스 체크를 하지 않았다. 앞의 페메와 거리가 일정하다면 그것으로 내 페이스를 가늠해 보아도 되었다. 배가 고파서 따라잡지 못할 뿐 떨어지지는 않으니 페메보다 늦게 출발한 나는 이미 1시간 39분대의 페이스로 들어선 것은 아닐까 싶었다. 오르막을 만나면 50미터 정도로 거리가 줄었다가 내리막을 만나면 다시 100미터로 거리가 벌어졌다.  초코파이 반 조각만 먹어도 기운이 날텐데. 어이구, 밥을 새벽 4시에 먹은 것은 큰 실수였어. 12.5킬로미터 지점 입간판에 그려진 그림이 처음에는 바나나 그림으로 보여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가까이 갈수록 바나나는 스폰지로 바뀌었다. 몇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같은 기분만 들었다.


 14.4킬로미터 지점, 송도 1교 오르막. 기회는 왔다. 이런 오르막이 나와주기를 내내 기다렸다. 오르막에서 1시간 40분 페메와의 거리를 줄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오르막이 편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분명히 힘들다. 다만 오르막을 다른 이보다 잘 올라붙으니 오르막을 기다렸을 뿐이다. 송도 1교를 넘으면서 페메와의 거리가 30미터 이내로 좁혀졌고, 15킬로미터 급수대에서는 간식도 만났다. 허기진 만큼 허겁지겁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챙겨먹었다. 여기서 제법 시간을 잡아 먹어 Seoul Flyers의 외국인 주자가 내 앞으로 나아가고, 페메와의 거리가 다시 벌어졌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먹을 것으로 에너지를 보충했으니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외국인 주자를 바로 제치고 1시간 40분 페메 그룹 사이에 들어갔다. 문제가 하나 더 발생했는데 땀이 눈에 들어가 한쪽 눈을 감고 달려야 했다. 긴 소매가 아니라서 땀을 닦을 수 없었다. 손으로만 훑어내는데 한계가 있었다. 17.5킬로미터 지점 스폰지를 이용하여 눈을 닦았다. 근심거리가 모두 사라졌다. 페이스메이커 그룹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스퍼트를 시작하자 페메 한 분이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돌아볼 여유는 없어 오른팔만 높이 들어 감사를 표했다. 제치고, 또 제치고. 잠시 후 지하도 오르막에서 2.0.수님 바로 뒤에 붙었다. 1킬로미터를 남기고 이내 2.0.수님도 제쳤다. 배틀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오로지 공기뿐이었다. 공기를 뚫고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문학경기장 골인 지점으로 가려면 오르막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오르막을 한 두번 경험한 것도 아니지 하면서 스피드를 유지했다. 힘들긴 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속도를 올리면 올렸지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이 순간을 위하여 인천국제하프마라톤에 출전한 것이었다. 오늘 운동은 이 순간 다 한 것이었다.


 갑자기 앞에 주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제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제쳤고, 나보다 훨씬 앞에 있었던 사람은 이미 경기장 동문을 통해 트랙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트랙을 한바퀴 돌아 골인하는 것은 동아마라톤과 같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1킬로미터를 남기고 제친 2.0.수님보다 42초 빨리 골인하였다.


 01:37:09.05


 돌아오는 10.4킬로미터를 47분 36초에 달렸고, 마지막 5킬로미터는 22분이 걸리지 않았다. 2주 전보다 힘든 코스였는데 기록은 40초 빨라졌다. 나름대로 선방한 것이었다. 먼저 골인한 로운리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회 기록을 세웠는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가다가 선물 한아름을 들고 오는 아세탈님을 만났다. 10킬로미터를 완주하고 사진을 찍어주기 위하여 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신발끈을 풀어 스피드칩을 푸는데 로운리맨님은 별도의 끈으로 쉽게 풀어내었다. 마라톤 초보자도 아니고 어떻게 신발끈을 일일이 풀어서 칩을 달았느냐고 지적했다. 대회 당일 배번과 칩을 수령하다 보니 이런 칩을 사용하는지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알았다고 해도 성격상 끈을 풀어서 달았을 것이다.


 로운리맨님, 아세탈님, 1시간 48분 19초로 골인하여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希洙형님까지 함께 경기장 주변에 설치된 천막 식당에 갔다. 현금밖에 받지 않는 식당에서 곱창볶음, 파전, 막걸리, 콜라로 뒷풀이를 하였다. 아세탈님 덕분에 서울로 편하게 왔다. 로운리맨님과는 매봉역 근처에서 순대국으로 2차를 했다. 소주 한 병 가운데 나는 3분의 1잔을 마시고 나머지는 모두 로운리맨님이 드셨다. 식사를 기다리던 중 기록 문자가 날아왔다. 로운리맨님의 기록 공개 순간. 짠, 짠, 짠..... 01:35:35.39  (사모사모 思慕思慕 2초 경신하셨네.)  힘든 코스였으니 다음 광명 하프 때에는 무조건 서브 135로 달리시겠군. 그날 나도 하프를 달릴까? 원래 계획은 장흥에서 풀코스 달리고 표고버섯 받아오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