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2018/03/18)-FULL 166

HoonzK 2018. 3. 20. 18:08

  지난 해 3시간 23분 09초로 골인하고 찍은 사진을 보니 참 날씬했다. 친한 달림이들은 내가 이번에 3시간 10분대 주자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뚱뚱해진 몸으로 빨리 달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살이 찐 만큼 더 늦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몇일 전 꿈에서 기록을 경신했는데 꿈은 반대라고 하지 않던가. 4시 59분에 맞춘 알람을 5시 9분으로 미루고, 다시 5시 19분으로 한번 더 미룬 끝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전날 새벽부터 이천에 가서 온종일 야외에서 움직였고, 돌아와서는 밤 늦게까지 김밥을 싸느라 분주했다. 자정이 넘도록 책도 읽었다.


 지하철을 타고 대회장으로 이동하는데 로운리맨님이 '10분대 주자 등극 미리 축하드립니다'라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요. 제 상황으로는 그 기록 주자의 대열에 들 수가 없겠습니다.... 어제 새벽부터 밤까지 이천 다녀오느라 힘들어서 지각하는 중. 작년 동마 사진으로 몸 상태를 비교해 봤는데 올해가 많이 뚱뚱합니다.'이라고 답했다. 希洙형님은 날씨가 좋다며 오버페이스 조심하고 후반에 빠른 자신만의 강점을 잘 살려서 좋은 기록을 달성하라는 문자를 보내오셨다. '감사합니다. 상태가 좋지 않아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요.'라고 답했다.
바깥술님도 응원을 보내왔다. '컨디션은 좋지요? 열심히 연습하셨으니 소정의 목표를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감사합니다. 피곤한데요. 생각해보면 늘 피곤했으니 신경쓸 건 없는 것같습니다. 저의 목표는 오늘 334'라고 답했다. 'ㅋㅋㅋ 그렇게 하시곤 매번 도망가셨어요. 몸 가시는대로 열심히 달리세요.' '제 메이저 대회는 춘마밖에 없는 것같습니다.' '오늘 로운리맨님이랑 일내세요.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저는 반성해야 합니다.' '제가 기를 듬뿍 드릴께요. ㅋㅋ.... 오늘 날씨가 도움을 줄 듯...'


 지하철 5호선 방화행 열차는 대회 참가자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몇 개 칸을 옮겨 가는데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광화문 광장에 가서야 아는 사람 한 분을 만났다. 인천고 마라톤클럽의 춘효님. 希洙형님과는 전화통화하여 만났다. 7시 20분경 물품보관차량에 짐을 맡기고 서울시의회로 갔다. 형님 사무실에 들러 잠시 쉬었다. 화장실에도 들르고 커피도 마시며 여유를 부렸는데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형님은 C그룹이라 여유가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다는 것. 올해는 생애 첫 A그룹이라 출발 시간도 빠르니 서둘러야 했다.


 달리기 직전 화장실에 또 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B그룹만 되었어도 화장실을 찾아 나섰을텐데 출발 시간이 임박한 A그룹은 그냥 있는 게 현명했다. A그룹 맨후미에서 바깥술님과 만나 잡담하면서 출발을 기다렸다. 싱글 기록(3:00:00 ~ 3:09:59의 기록)을 갖고 있는 No운기님도 왔다. 한 분이 반갑게 손을 내미는데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달리기 전 자켓을 걸치고 있어서 배번에 적힌 이름도 확인할 수 없었다. 실례지만 누구세요라고 물을 수도 없고.....


 올해는 출발 라인이 뒤쪽으로 밀려 있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아닌 세종대왕 동상 옆에서 출발했다. 서늘하고 흐린 날씨였지만 춥지는 않았다. 달리기에 아주 좋은 날씨인 만큼 오버페이스하기에도 너무 좋은 날씨였다. 3월 4일 풀코스, 3월 11일 하프코스 모두 첫 1킬로미터가 4분 55초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나올까 궁금했다. 바깥술님과 No운기님은 나를 떨구고 쭉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내가 느린 것인가? 숭례문 방향으로 달리면서 1킬로미터 표지판을 찾아내어 시계를 보았다. 5분 20초 경과. 난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 컨디션이 이렇게 나쁜가? 내 실력이니 받아들여야겠지. 2킬로미터 지점에서 한번 더 시간을 확인했다. 10분 경과. 5분 페이스로 들어왔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올해 코스가 조금 바뀌어 동대문 DDP를 돌아가면서 살짝 오르막이 생겼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려고 애썼다. 몸은 서서히 풀렸다. 첫 5킬로미터를 24분 26초로 달렸다. 3시간 30분 이내의 페이스로 들어섰다.  6킬로미터 정도 달렸을 때 달물영희님 옆에 갔고, 이내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도 추월했다. 8킬로미터 직전 청계천에 들어서면서 바깥술님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별안간 전력질주하여 주자들의 시선을 받았다. 풀코스를 100미터로 착각한 주자처럼 사정없이 달렸다. 바깥술님이 놀라서 소리쳤다. 뭐야, 뭐? 그냥 장난친 거에요. 따라온다고 고생했잖아요. 10미터 앞까지 나아갔다가 속도를 늦추어 바깥술님을 맞았다. 잡담 러닝을 시작했다. 바깥술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3시간 19분대의 열망이 느껴졌다. 장염으로 고생만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편하게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와 나란히 달리고 있을텐데라고 아쉬워 했다.


 중앙마라톤에서 3시간 22분 하셨지요? 그렇게만 달려주시면 제가 따라가서 3월 최고 기록을 세울 수 있는데요. 10킬로미터까지 48분 10초 정도 걸렸으니 저는 5킬로미터가 23분대로 진입했어요. 하프를 달리면 2킬로그램 쯤 빠져서 몸이 가벼워지겠지요. 그때 빨리 달리면 됩니다. 운기님은 살이 많이 쪘지만 78킬로그램일 때 싱글을 했다고 했다. 하프까지 1시간 42분 정도에 달릴 수 있으면 후반에 조금 더 빨리 뛰어 서브 320을 하는 게 좋겠어요. 문제는 화장실인데 좀 참았다가 25킬로미터 이후 주유소 화장실에 꼭 가야 할 것같아요. 오늘 힘들어 평소보다 늦게 달리게 되더라도 받아들여야지요. 되지 않는 능력을 억지로 발휘할 수는 없으니. 세 사람이니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하듯이 하면 어때요? 누구 한 사람이 당기어 주고 못 달리는 사람을 뒷 사람이 밀어주고. 바깥술님이 반대했다. 싫어. 선두는 싫어. 뒤에서 밀어주는 것은 환영이지만. 아니면 매스 스타트할 때 정재원 선수처럼 페이스메이커를 해 주거나.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는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것같은데요. 따라가지도 못하면서 내 머릿 속에는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새겨져 있었다. 지금 페이스로 보아 우리가 3시간 25분 페이스메이커는 되겠네요. 옆에 달리는 레이스 패트롤 필희님은 서브 330 페이스로 달릴 예정이라고 했다. 바깥술님 자꾸 발톱이 보여요. 아직 발톱을 숨겨야지요. 오늘 내기 한 것은 기억하시겠지요? 진 사람이 성질 내기로 한 것.  청계천이 끝나고 종로 3가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어느새 내가 앞으로 나와 있었다. 바깥술님이나 No운기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밀고 나갔다. 15킬로미터에서 20킬로미터까지 23분 29초가 나왔다. 21킬로미터 지점을 1시간 39분 57초에 통과했다. 독일약국 앞 21.0975킬로미터 지점에 하프 표지판이 놓여 있었다. 하프 지점에 센서를 설치하지 않고 21킬로미터 지점에 센서를 설치한 것은 주최측의 실수이리라. 하프를 1시간 40분 25초에 통과했다. 생각보다 빨랐다. 후반 하프를 1시간 39분대로 달리면 생애 첫 3시간 10분대 주자가 되는데.


 24킬로미터쯤 달렸을 때 빨간색 민소매와 회색 티셔츠 주자가 내 앞으로 치고 나왔다. 바깥술님과 No운기님이었다. 나를 페이스메이커 삼아 줄곧 따라왔다고 했다. 아득하게 멀었던 3시간 20분 페메의 노란 풍선이 500미터 앞에 보였다. 신답지하차도를 빠져나가는 구간이 오르막이라 내가 다시 따라붙어 바깥술님과 또다시 동반주를 했다. No운기님은 뒤로 빠졌다. 하프를 달리고 난 후 앞의 하프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오로지 단일 하프 대회에 나온 것처럼 내달렸다. 발바닥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기온은 내내 서늘하여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달리기에 최적화된 날씨가 이어졌다. 어찌 이런 날이 있을까? 20킬로미터부터 25킬로미터까지가 8번의 5킬로미터 구간 기록 가운데 최고의 기록이 나왔다. 22분 58초. 첫 5킬로미터까지만 24분대였고, 20-25킬로미터가 22분대였다. 그리고 나머지 6개 구간은 모두 23분대였다. 어느덧 27킬로미터 군자교. 개인적으로 27킬로미터까지 오면 완주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드디어 왔다.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는 200미터까지 거리가 줄어들어 정말 내가 3시간 10분대 주자가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버페이스일 수 있으니 속단을 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달리다 보니 바깥술님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앞으로 치고 나와 외롭게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29킬로미터를 넘어갔을 때 안산부부 마라톤클럽의 한 주자가 한 손에 플라스틱 병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엘리트 마라토너가 먹고 남긴 에너지 음료통을 주워 들고 달리는 것인가 의아해 하면서 지나쳤다. 그런데 그 주자가 말을 걸었다. 혹시 지난 주에 하프 뛰지 않으셨어요? 맞아요, 뚝섬에서. 맞지요. 그 때 좋은 일 하셨고요. 네? 급수대에서 물컵 놓친 저를 쫓아와 컵을 주셨잖아요? 그때 개띠마라톤클럽이었는데... 오늘은 다른 유니폼을 입었어요. 이것 꿀물인데 드세요.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완주 후에도 그다지 아는 체 하지 않아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꿀물을 얻어 마시고 나니 기운이 펄펄 났다. 성함이 '최....?' 'ㅍㅈ요'라고 했다. 덕분에 30킬로미터를 생애 최고 기록으로 통과했다. 2시간 21분 47초. 3시간 20분 이내의 완주시 30킬로미터 통과 기준 기록이 2시간 22분 12초이기 때문에 어느새 25초의 여유가 생겼다. 남은 12.195킬로미터를 58분에 달리면 대망의 3시간 19분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 컵을 한번 놓치고 두번째만에 잡았다. 바나나를 잡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서두르고 있거나 집중력이 떨어졌거나.  2시간 45분 18초 경과. 3시간 20분 이내의 주자의 35킬로미터 페이스는 2시간 45분 54초. 그렇다면 36초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몸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발걸음이 갑자기 터벅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3시간 20분 페메와의 거리가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못 따라올 줄 알았던 바깥술님이 '빨리 와요'하면서 내 앞으로 치고 나갔다. 화장실에 갔다 왔느냐고 하니 여유가 없어 가지 못하고 참고 있다고 했다. 35킬로미터 이후 페이스가 떨어진다면 나로서는 견딜 수 없었다. 8년 전 훈련 부족으로 35-40킬로미터 구간을 33분대로 달리는 바람에 서브 4에 실패한 일이 떠올랐다.(메이저 대회에서 유일하게 SUB-4 실패한 사례) 생각이 복잡해지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건달님! 나를 그렇게 부를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로운리맨님. 앞에 있는 줄 알았는데 방금 내가 제치고 나온 것이었다. 로운리맨님은 지쳤다고 했다. 지친 것은 나도 마찬가지. 화장실 가는 타이밍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에게 따라붙지도 못했는데 화장실에 들렀다간 그 순간 3시간 19분대의 꿈은 사라지고 말리라. 요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하여 스퍼트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좀더 참아보기로 했다. 잠실대교의 마법은 36킬로미터 지점에서 발현되곤 했지만 올해는 코스가 일부 바뀌어 37킬로미터를 달린 후에야 잠실대교를 만났다. 잠실대교를 올라타려면 오르막을 넘어야 했다. 오르막을 타면서 바깥술님 앞으로 다시 나갔다. 잠실대교에 오르기가 무섭게 젊은 친구 한 사람이 파워젤을 건네주었다. 생면부지의 러너가. 파워젤을 뒤에 바짝 따라오는 바깥술님과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흐린 날씨 때문에 불투명 채광창으로 가려져 있는 듯한 잠실종합 운동장을 보았다. 잠실대교에 올라 잠실종합운동장을 보았으니 스퍼트해야 했다.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려와 이제 더 이상 남은 힘이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가야 했다. 그것도 빨리 가야 했다. 앞에서 흔들리는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의 노랑 풍선이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제치고 있었다. 주로를 바꿔 달리는 것은 체력 소비가 심했지만 미꾸라지처럼 주자 사이를 오가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몸이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있었지만 봐줄 수 없었다. 이건 우리나라 유일의 금메달 등급의 메이저 대회니까 좀 참아. 달린 후 푹 쉬게 해 줄테니.


 39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3시간 4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남은 3.195킬로미터를 16분 정도로 뛰면 3시간 19분대가 가능했다. 이제는 기를 쓰고 페이스를 끌어올릴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대로 달리면 되었다. 페이스만 떨어뜨리지 않으면 되었다. 이제는 천천히 가도 된다. 천천히 가도 서브 320은 충분하다. 이런 말이 크게 들려왔다. 일본에서 왔으니 응원해 달라고 등에 글귀를 붙이고 달리는 일본인 주자에게 '감바떼 구다사이'라고 외치는 여유도 부렸다. 지난 해까지 10킬로미터 주자와 뒤섞여 갑자기 혼잡해졌던 일이 올해는 없어졌다. 10킬로미터 주자들은 잠실종합운동장 남문쪽으로 골인하면서 주로가 구분되었다.


 40킬로미터. 3시간 08분 56초. 이제 되었다. 남은 2.195킬로미터를 11분에 달리면 된다. 2킬로미터를 10분에 달리고, 남은 195미터를 1분에 달리면 3시간 19분대 주자가 된다. 급수대 도우미가 하는 말을 들었다. 오늘 한국 여자마라톤 기록이 나왔대요. 아! 김도연 선수가 21년 동안 깨어지지 않았던 한국 여자 풀코스 마라톤 기록을 깨뜨렸구나. 힘이 났다. 극심한 피로감 속에서도 밀고 나갔다. 내가 3시간 10분대 주자가 되어도 되는가, 정말 될 수 있는가 회의하고 또 회의하면서 종합운동장 사거리를 지나 동문을 빠져 들어갔다.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았다. 3시간 14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남은 1킬로미터를 4분 40초로 뛰면 3시간 18분대도 가능했다. 오늘이 3월 18일이니 3시간 18분대로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조금 더 애썼다. 이를 악물고 달렸다. 카메라맨이 내 모습을 찍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았다. 남직문을 지나 트랙으로 들어서기 직전 시계를 보니 3시간 17분 05초였다. 3시간 18분대가 가능했다. 잠실종합운동장의 트랙을 달리는 일은 여전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생애 첫 풀코스를 달렸던 12년 전처럼 설레임이 있었다. 올림픽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되어 달리는 것은 변함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는 듯한 착각 속에서 달렸다. 오른발 왼발.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골인 아치를 지나고 있었다. 그보다 늦게 출발한 나로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3시간 18분대로 골인하는 것은 분명해졌다. 골인 아치가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골인 지점 50미터를 앞두고 오른쪽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망했구나 싶었다. 절뚝거리며 눈물겹게 골인점을 향하여 한발 한발 끌고 나아가던 마라토너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영상을 떠올리며 돌연 차분해졌다. 스피드를 줄이고 재빨리 주법을 바꾸어 미끄러지듯이 오른 다리를 끌고 골인하였다.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여전히 3시간 18분대 골인은 가능했다.


 3시간 18분 51초.


  다시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다. 처음으로 3시간 10분대에 들어섰다. 후반 하프를 1시간 38분대로 달린 덕분이었다. 골인 지점이 혼잡하니 자리를 비워달라는 진행 요원의 말을 듣고 조금씩 움직였다. 골인 지점을 돌아나와 종아리 경련을 추스리며 바리케이드에 기대어 있었다. 곧 바깥술님이 골인했다. 3시간 19분대였다. 메이저 대회에서 서브 320 주자가 된 두 사람. 그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거듭했던 대회의 추이를 오늘은 하루에 다 보여주었다. 허그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화장실 가지 않고 끝까지 참기 잘 했어요. 화장실 갔으면 절대 서브 320 못했을 거예요. 진 사람이 성질내기하기로 했던 약속대로 바깥술님은 성질을 내었다. 야, 이 ㅅㄲ야. 축하해. 아주 욕을 하시네요. 형님이라 받아칠 수도 없고. 허허허. 그리고 이내 이어진 하이 파이브. 동료들과 실컷 축하주를 마시고 한숨 자고 일어난 바깥술님과 저녁 때 한 시간 동안 통화했다. 지난 5년간 함께 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했다. 서브 4로 달릴 때 늘 함께 했었고, 내가 3시간 20분대 주자가 되었을 때, 바깥술님도 3시간 20분대 주자로 되돌아와 동반주를 해 주셨다. 쉴새없는 잡담으로 달리기가 심심하지 않게 해 주셨다. 3시간 10분대 주자가 되는 날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기다렸다. 로운리맨님을. 언제 오실까?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아무리 후반에 지쳤다고 하더라도 초반에 벌어놓은 것이 있으니 3시간 20분대로는 들어올 듯 싶었다. 너무나 많은 주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트랙을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찾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기다리는 사이 내게 꿀물을 주었던 70 개띠 마라톤 주자와 다시 만났다. 하프에서는 저한테 지시더니 풀에서 이기시네요. 3시간 22분으로 골인했다고 했다. 이 분은 내 이름을 기억하려고 했다. 


 로운리맨님이 보였다. 몹시 힘들어 보였지만 꾸준히 달려오고 있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3시간 20분대의 기록을 이어나가며. 보조경기장으로 가서 완주메달과 간식을 받고 물품보관소에서 짐을 찾았다. 오랜만에 이로운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릴레이에 참가했다고 했다.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을 보냈더니 내 완주 횟수를 정확히 기억하고 답을 주었다. '형님 오늘 풀 166회 완주 축하드립니다!!^^' 로운리맨님과는 잠실새내역 근처의 용추골 순대집까지 걸어가 순대국을 함께 먹었다. 덕분에 포상콜라도 마셨다.


 400회 풀코스를 완주하는 특전사님은 뵙지 못했다. 플래카드만 보았을 뿐이었다. 나중에 카톡으로 축하 문자를 보내드렸다.


 希洙형님은 날씨도 좋고 몸도 좋아 초반에 오버페이스하는 바람에 레이스를 망쳤다고 했다. 목표로 삼았던 3시간 50분 후반은 물론이고 3시간 40분대까지 보여서 빨리 달리다가 27킬로미터 이후 쥐가 나서 4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고 했다. 달리기에 좋은 날씨라 혜택을 받았지만 그 좋은 날씨 때문에 오버페이스의 유혹에 넘어간 분도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던 나의 경우는 운이 좋았다. 달릴 때마다 나를 돕는 일도 있었다. 동반 주자는 말할 것도 없고, 꿀물을 얻어 가속도가 붙는가 하면, 지쳐갈 때 파워젤을 받아 다시 기운을 내고, 한국 여자 마라톤 기록 경신의 소식으로 고무되어 질주했다. 무언가 나를 이끌어주는 기운이 올해 동아마라톤에는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기록 경신은 불가능했다. 한 달 동안 갖고 있던 최고 기록이 메이저 대회에서 세운 기록이 아니라서 못내 아쉬웠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 아쉬움을 말끔하게 해소했다. 발바닥 통증은 달리는 동안 거의 느껴지지 않았는데 달리기를 마치고 나자 통증이 심해졌다. 내 기록 경신을 위하여 발바닥까지 통증을 잠시 유예해 주었던 것이다.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 스퍼트하고 있다.


2018년 3월 18일 318이다.






싱글렛은 정말 필요없는 기념품이다. 민소매 입고 풀코스를 뛰지는 않는 나로서는....






풀코스와 10킬로미터 코스를 분리하여 운용한 것은 최고였다.


올해 코스가 살짝 바뀌어 잠실대교를 늦게 만난 것이 좀 힘들었다. 내게는 잠실대교의 마법이 있기 때문에.....

35-40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가장 빠른 편이었던 내가 이번에는 조금 늦어졌다. 35-37킬로미터에서 시간을 많이 까먹었기 때문이었다.







서울특별시의회 앞에서. 希洙형님이 찍어주심.



가장 힘들었던 35킬로미터 구간이었다. 턱을 든 것은 힘든 것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힘들 때 나오는 자세가 사진에 나타난다. 내 뒤쪽에 꾸준히 따라오고 있던 바깥술님이 보인다.

이 사진이 찍힌 후 추월당했고, 37킬로미터 이후 잠실대교에서 다시 내가 추월했다.




로운리맨님과 순대국을 먹었다. 소주는 반 잔만......






로운리맨님이 사준 포상콜라.... 세 병을 사서 두 병을 내게 주셨다.


완주를 축하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마라토너가 듣고 싶은 말이다.






초반에 늦었던 것이 내게는 오히려 좋았다. 서서히 몸이 풀리면서 5킬로미터 구간을 끝까지 23분대로 지켜내었다. 마지막 2.195킬로미터도 10분 이내로 달렸다.



0-5km: 24분 26초
-10Km: 23분 46초
-15km: 23분 54초
-20km: 23분 30초
-25km: 22분 58초
-30km: 23분 15초
-35km: 23분 32초
-40km: 23분 39초
-42.195km: 9분 56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