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악셀레이터를 밟아도 최고 속도에 락(Lock)이 걸린 승합차처럼 속도는 오르지 않았다. 아니, 속도를 올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하프 마라톤 대회를 마쳤다. 1킬로미터 쯤 남기고 어떤 주자가 추월한다면 기어코 따라가 재추월했을텐데, 더구나 그게 하프라면 더 그랬을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특별히 힘든 것도 없이 달린 평범한 대회였다. 지난 해 10월 하프 이후 주로 풀코스만 달리다 보니 하프 마라톤의 거리가 너무 짧아 달리다 돌연 골인해 버렸거나, 일주일 뒤 달릴 메이저 대회를 위하여 몸을 사렸거나..... 했을 수도 있다. 뚝섬지구 수변무대를 출발하여 구리까지 갔다 오는 이 구간의 최고 기록은 1시간 37분 35분 46초. 2016년 크리스마스 날 생애 150번째 하프를 달릴 때 세운 기록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빨리 달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니 빨리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록을 내기 위하여 달린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속도를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다음 주 있을 동아마라톤 풀코스를 앞두고 무리해서는 안 되고, 발바닥 통증이 더 악화되어서는 안된다며 속도를 억제했다. 1시간 31분의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던 162번째의 하프 마라톤에서 마지막 10킬로미터를 41분대로 달릴 때와는 전혀 다른 페이스였다.
고속 질주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1시간 39분대로는 들어와야겠다는 목표는 있었다. 뛰다가 몸이 풀리면 코스 레코드까지 노려본다는 말도 꺼내었지만 달려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민소매 티셔츠 위에 긴팔 티셔츠를 걸쳤다. 목에 버프도 둘렀다. 일주일 전 풀코스를 달릴 때와 복장이 같았다. 장갑만 끼지 않았다. 기온이 많이 올랐는데 상의는 겨울 복장이었다. 첫 1킬로미터는 4분 55초가 걸렸다. 지난 주 풀코스 1킬로미터와 통과 기록이 똑같았다. 간밤에 수면이 힘들어 고생한 것에 비하면 잘 달리고 있었다.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꾸준히 따라갔다.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3킬로미터 지점에서는 동반주를 할 수 있었다. 5킬로미터 급수대를 이용하면서 조금 떨어졌지만 이내 따라잡았다. 1시간 40분 페메와 동반주하는 주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뒤로 빠지곤 했지만 나는 잘 따라갔다. 호흡이 가빠지지 않았다. 얼굴에 잔뜩 배인 피로가 흐르는 땀과 함께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달렸다. 8킬로미터를 지나 페메 앞으로 나아갔다. 몇 백 미터 지나 뒤쪽에서 다가온 발걸음이 매우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나를 제치고 나갔다. 1시간 40분 페메였다. 페메와 경쟁할 일은 없지만 내가 혹시 늦어져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었다. 바로 따라 붙었다. 9킬로미터를 지나 페메에게 말을 붙였다. 저 앞에 있는 분도 1시간 40분 페메인가요? 맞습니다. 지금은 떨어져 달려도 후반에는 함께 달리시겠네요. 내가 다시 앞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주자들의 배번을 보면서 연대별 입상의 가능성을 따져보는데 잠시 후 배번 살펴보기를 포기했다. 언감생심 (焉敢生心). 빨리 달리지도 못하면서 그런 걸 꿈꾸다니. 앞쪽에서 펄펄 날고 있는 로운리맨님이라면 모를까? 건너편에서 로운리맨님이 이미 반환점을 돌고 후반 레이스를 시작했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인상을 써요? 인상쓰지 마세요. 그렇게 외치며 반환점을 향하여 달려갔다. 로운리맨님과는 8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반환하면서 시계를 보니 49분 40초가 넘었다. 이 페이스라면 1시간 39분대 골인이 가능했다. 발바닥을 조심하면서 나아갔다. 맞바람이 있었다. 반환하기 전까지 바람이 밀어준 덕분에 반환점까지 50분 이내로 달렸구나 싶었다. 돌아갈 때는 좀더 애를 써야 50분 이내로 달릴 수 있을 것같았다. 맞바람을 이겨내며 발걸음을 꾸준히 옮겼다.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 그룹 뒤쪽으로 希洙형님이 오고 있었다. 목표인 1시간 49분대는 무난해 보였다. 효준님, 두경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2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지나가고 난 뒤 횡성사랑님도 만났다. 횡성사랑님은 2시간 5분이 목표 완주 시간이라고 했으니 잘 나아가고 있었다. 1시간 40분 페메 두 분은 모두 내 뒤쪽에서 달리고 있었지만 새로운 페메가 생겼다. 70 개띠마라톤클럽의 최ㅍㅈ님. 초반에 뒤에서 치고 나와 줄곧 내 앞에서 달리고 있었던 분이었다. 그 분을 따라갔다. 13.1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시계를 보니 1시간 01분 30초였다. 남은 8킬로미터를 5분 페이스로 달렸다간 1시간 41분 30초가 예상 기록이었다. 그래도 1시간 39분대로 골인하려면 킬로미터당 4분 49초에는 달려주어야 했다. 구리시계를 빠져나오면서 6킬로미터가 남게 되는데 여느 대회라면 맹렬한 질주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냥 달렸다. 5킬로미터를 남기고 개띠 최ㅍㅈ님이 급수대에서 물컵 짚는 것을 놓쳤다. 나와 떨어진 거리는 50미터. 게토레이 두 잔을 들고 따라갔다.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들고. 가속도를 붙여 따라붙으려는데 쉽지 않았다. 속도를 올리면 컵에 든 게토레이가 넘쳐흘러 내 손을 적셨다. 그냥 버릴까? 얼마 남지도 않은 게토레이를 건네주는 것도 좀 그런데. 하지만 왼손을 최대한 안정시킨 상태에서 따라갔다. 300미터 쯤 더 달린 후에야 옆에 나란히 서서 컵을 내밀었다. 아까 급수대에서 컵을 놓치셨잖아요? 하나 더 갖고 왔어요. 드세요. 건네주면서 내 오른손에 들린 컵도 보여주었다. 잠깐 대화했다. 오늘 목표한 기록이 있나요? 그런 것은 없어요. 기록을 세워 보려고 했는데 안되네요. 남은 구간에서 몇 차례 오르막이 있었다. 오르막을 만날 때마다 내가 앞으로 나갔다. 1킬로미터 남기고 개띠님이 내 앞으로 치고 나왔다. 와우, 좋습니다. 파이팅. 이렇게 응원하고 뒤쪽으로 빠졌다. 누군가를 추월한다는 의도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내내 앞에서 달리던 산수주륜 주자나 방금 나를 제치고 나간 개띠 주자와 어느 정도 떨어져 그냥 골인하였다. 골인 지점에서 10킬로미터를 완주한 아세탈님이 기다리다고 있다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로운리맨님은 1시간 35분대로 들어와 이미 기록증까지 받은 상태였다. 1시간 34분대로 못 달린 것이 못내 아쉬운 듯 혀를 차는데 그 정도라면 이번 동아마라톤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내 기록은 1시간 37분 49초 54초였다. 8킬로미터 남기고부터는 킬로미터당 4분 30초씩에 달린 것이라 나름대로 선전했다. 그렇지만 이 페이스로는 다음 주 동아마라톤에서 지난 해보다 처진 기록이 예상된다. (지난 해 동아마라톤 일주일 전 달린 하프의 기록은 1시간 35분 09초였다.)
1시간 39분 50초로 골인하여 페이스메이커의 소임을 충실히 한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나를 칭찬했다. 계속 좋아지시네요. 저를 아시나 봅니다. 늘 같은 스타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억하지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페이스메이킹해주신 덕분에 잘 뛰었습니다.
이런 평가를 듣고 보면 못 달린 것도 아닌 듯, 나 스스로 잘 달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1시간 49분이 목표였던 希洙형님은 1시간 46분대로 들어왔다. 동아마라톤 SUB-4 완주는 무난하실 듯.
로운리맨님, 아세탈님과 건대 쿠우쿠우 직영점에서 올해 첫 회합을 가졌다. (별도 포스팅 예정) 로운리맨님으로부터는 잠실롯데타워 초콜릿을 선물받았고(처음에는 수첩인 줄 알았다), 아세탈님으로부터는 어마어마한 부피의 가방을 선물받았다. (아세탈님의 선물은 별도 포스팅 예정)
마라톤화 끈을 동여매는 장면을 希洙형님이 찍어주셨다.
한강 건너편에 잠실 메인스타디움이 보인다. 일주일 후 동아마라톤 골인 장소.
다른 달림이들에 비하여 좀 덥게 입었다. 내 뒤쪽으로 바람막이에 긴바지까지 입은 아세탈님보다는 덜하지만......
이 코스는 15개월만에 대회 출전이지만 매우 익숙하다.
지난 해 1월과 12월 훈련한 코스이기 때문에.... 12월 24일에는 우산을 쓰고 달리기까지 했다.
기다리고 있던 아세탈님이 내 골인 장면을 찍어주셨다.
로운리맨님이 살짝 출연하셨네.....
로운리맨님이 선물한 서울스카이 다크초콜렛
무엇이든 챙겨주시려고 하시니 늘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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