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5회 춘천호반마라톤대회(2018/04/15)-HALF 165

HoonzK 2018. 4. 18. 14:10

  가혹한 미래가 기다린다. 5킬로미터 남짓 달리고 나자 그런 생각이 또렷해졌다. 초반에 잠깐 오르막이었던 순간을 빼면 내리막이 너무 많았다. 15킬로미터를 남기고 스퍼트해야 하는 나로서는 돌아올 때 이 구간에서 몹시 애를 먹을 것이다. 춘천마라톤에서는 한번 지나가고 말 코스이지만 춘천호반마라톤은 갔던 길을 되돌아 와야 하는 코스라 잘 살펴두어야 한다. 달리면 달릴수록 후반이 얼마나 힘들지 우려된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춘천마라톤에 출전하면서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주로의 세세한 부분이 읽혀진다. 미처 몰랐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이 심한 코스였는지. 그동안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지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킬로미터를 23분에 통과했고, 10킬로미터를 45분이 되려는 순간 통과했다. 올해 10킬로미터 단일 대회에 나가 46분을 넘겼는데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살을 좀 빼야 해, 정말 빼야 해 하면서 일주일을 살았는데......


 11년 전 이 대회에 나와 1시간 49분 06초로 달렸었다. 그 즈음 내 하프 평균 기록이 1시간 44분 이내였기에 이 대회는 5분 쯤 더 걸리는 힘든 코스였다. (출발골인점이 춘천종합운동장에서 춘천송암종합운동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46분 후반대로 반환했다. 목표로 했던 1시간 39분대 골인이 무난해 보였다. 하지만 가혹한 미래를 잊고 있었다.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오르막에 시달릴 것인데. 몸이 빠르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그냥 무시했다. 8킬로미터 지점에서 200미터 이상 차이가 났던 여자 1등과 2등에게 어느새 100미터 정도로 따라붙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가까워져 14킬로미터 지점에서는 2등으로 달리는 설아님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만 치면 1등을 이기겠는데요. 설아님은 뒷심이 부족해서 역전은 어렵다고 하면서 페이스메이커를 하고 있다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함께 갈까 하다가 곧바로 여성 주자 두 명을 추월했다. 스피드를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올려보자는 각오로 임했다. 호숫가를 달려서 그런 것인지 비내린 뒤 날씨가 싸늘해져서 그런 것인지 맞바람이 심했다. 박사로와 403번 지방도로에서 특히 바람에 시달렸다. 15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부터 5분 페이스로 달려도 1시간 37분대 골인이 가능했다. 힘든 코스에서 선전하고 있구나. 그런데 잊고 있었다. 절벽을 따라 조성된 옛경춘로는 오르막을 수시로 내밀며 내 속도를 제한할 것인데. 신연교를 건너기 전 삼악산 등산객들이 박수를 보내어주었다. 마라톤 대회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고 기다리는데 여유있게 응원을 보내주니 고마웠다.


 15킬로미터를 넘었으니 이제 스퍼트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내 자신에게 물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절대 아니다. 적당히 타협해서 달리려고만 하고 있다. 당초 계획했던 목표 달성이 유력해지면 슬슬 스피드를 줄이며 건들건들 달려야 하는가? 그래서는 안된다. 과거의 나 자신과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것은 내 생애 마지막 마라톤이 되어야 했다. 마지막이라면 이렇게 달려서는 안되었다. 오르막이 나와도 강하게 달렸다. 맞바람이 심했지만 신경쓸 바람도 아니었다. 바람도 한 때였다. 신연교를 건넌 뒤 옛경춘로에 들어서면서 맞바람이 사라져 한결 수월해졌다. 다만 오르막이 잦았다. 오르막에서도 스피드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숨소리가 거칠어져 내 자신도 짜증이 났지만 평소 훈련코스에 오르막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훈련이 잘 되어 있으리라 믿었다. 일주일 전 서산에서 훈련을 제대로 했다. 풀코스가 일주일 후의 하프코스를 위하여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20킬로미터를 넘기까지는 오르막에 몹시 시달려야 했다. 3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계산해 보니 이제는 1시간 34분대도 여유있었다. 나머지 1킬로미터는 내리막이 이어졌다가 종합운동장 진입로의 오르막을 감당해야 했고, 트랙을 한 바퀴 돌아야 했다. 내 앞에는 걸어가는 10킬로미터 후미 주자들만 있었다. 하프 주자는 보이지 않았다.


 1:32:51.67


 165번의 하프 완주 가운데 2위에 해당되는 기록. 오르막을 넘나드는 코스에서 1시간 32분대라면 지난 해 10월 익숙하고 평탄한 코스에서 세운 1시간 31분대보다 잘 달린 것이었다. 코스의 난이도로 본다면 단연코 내 생애 최고의 하프라고 할 수 있었다.


 1:31, 1:33, 1:34, 1:35, 1:36, 1:37, 1:38, 1:39.....


1:32는 처음이었다. 1.1킬로미터를 남기고는 1시간 34분대가 예상되었는데 마지막 순간 어찌나 치달렸던지 1시간 32분대까지 들어갔다. 마지막 1.1킬로미터를 4분에 달린 덕분에 14등을 했다. 1시간 33분대로 골인한 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내 다음이 1시간 34분대 주자였다. 14킬로미터 지점에서 추월했던 여자 1위보다 2분 30초 빨리 골인했다. 1시간 29분대로 골인한 상기님은 코스가 어렵지만 않았다면 내가 1시간 30분 이내로 들어왔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발바닥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발바닥에 테이핑을 하지 않고 달린 대회였다.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듯.


 설아님은 여자 2위로 골인했지만 1등이 되었다. 1위로 골인한 분이 남자로 등록이 되어 있어 입상에서 제외되었다. 지난 해 달해아름다워님에게 1위를 내주었던 이 분은 1위 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힘들게 달리고도 아쉽게 되었다.


 완주를 마치고 나서 남춘천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11시에 탔고, 남춘천역 건너편에서 막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새벽에 몹시 바빴는데 어쨌든 완주하고 나니 한숨 돌렸다. 상봉역에 도착한 것이 새벽 6시 26분. 1분 전에 춘천행 열차가 출발했다. 그 차를 탔어야 했는데...... 다음 열차는 6시 54분. 남춘천역까지는 1시간 33분이 걸린다고 했다. 하프 종목 출발이 정각 9시인데 갑자기 바빠졌다. 남춘천역에서 송암종합운동장까지 가는 마지막 셔틀버스가 8시 30분인데 과연 탈 수 있을까? 대회장에 보통 1시간 30분 전에는 도착하는 내가 8시 30분에 셔틀버스를 탄다고? 어느 세월에 도착하여 배번 달고, 테이핑하고, 선크림 바르고, 칩 부착하고, 짐맡기고,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선에 선담? 30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춘천행 전철. 하지만 전철의 대안은 없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했다. 배번, 테이핑, 선크림은 전철 안에서 모조리 해결했다. 하프 출발 20분 전에 대회장에 도착하여 정신없이 바빴다. 짐맡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장 빠른 페이스메이커가 1시간 50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출발하기가 무섭게 내 나름대로 달렸다. 1킬로미터 지점까지는 내내 오르막이었는데 5분이 걸렸다. 이례적으로 빠르다고 생각했다. 이쪽은 벚꽃 만발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아직 지지 않아서 이 대회를 춘천호반벚꽃마라톤이라고 불러도 될 것같았다. 다음 킬로미터는 4분 30초에 끊었다. 가끔 4분 25초도 나오고 4분 20초도 나오는데 내리막 덕을 본 것이었다. 갈 때 이렇게 받는 혜택을 돌아올 때 털어내야겠구나 싶었다. 각오해라. 강건달. 오늘은 후반 스퍼트가 힘들테니. 옛경춘로를 따라달리며 잠시 춘천마라톤의 추억에 사로잡혔다. 미처 몰랐는데 업다운이 몹시 심한 코스였구나, 25킬로미터 전후에 만날 춘천댐 오르막 코스만 신경쓰고 있어서 5킬로미터에서 15킬로미터 사이 구간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이런 코스였다는 사실. 춘천호반마라톤에 풀코스 종목이 있었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하프가 가장 길게 달리는 종목이다. 대회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적지 않다. 마라톤 용품 판매상이 한 팀밖에 나오지 않은 것만 보아도 강원도 단위의 조촐한 대회가 되어가고 있다. 참가 인원이 많지 않아 지각을 하고도 짐맡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11년 전 무궁화호를 타고 춘천에 와서 대회 참가할 때 열차 한량에 혼자 탔던 추억이 떠올랐다.



춘천마라톤 코스와 겹치는데 하프코스는 풀코스와 다른 느낌이었다.
















춘천행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오랫동안.....



캔커피를 두 개나 마시면서 이동했다.


송암레포츠타운 주경기장



남춘천역 건너편 식당에서 막국수(7천원)를 먹었다. 비빔냉면과 달리 육수를 주지 않아 먹기가 쉽지는 않았다.


춘천에 왔으니 먹는 것이지만 굳이 먹지 않아도 되었다.


전철 한 대를 거르고 막국수를 먹었는데 만족감은 적은 편..... 살이 찐다는 스트레스를 주는 것같아.....




105 티셔츠는 85로 교환했다. 원래 110을 신청했는데 105가 배달되었다. 직접 입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 작은 사이즈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