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환(讀書哀歡)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HoonzK 2017. 11. 2. 21:34

 더 기다릴 순 없어. 시간이 가 버리면 무엇을 느꼈는지 기억할 순 없잖아. 젊은이의 삶.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 연인을 영영 떠나 보낼 수밖에 없게 된 청춘의 비가.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전율한다.

 

1969년의 가을, 곧 스무살이 될 무렵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기즈키,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함께 한다. 세 사람의 관계는 행복하게 진행될 듯 하지만 기즈키의 자살로 끝나 버린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슬픔을 공유하며 가까워지고 급기야 첫 관계까지 갖게 된다. 놀랍게도 나오코에게는 와타나베가 첫남자였다. 기즈키와 이미 육체적 교유가 있으리라 믿었던 와타나베로서는 의외였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양억관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2013. 9. 2. 1판 1쇄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양원 방문을 통해 나오코가 특별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는 발랄하고 생기넘치는 여학생으로 나오코와는 색다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미도리는 남자보다 더 적극적이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나오코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여자들과 자면서도 늘 나오코 생각을 했다. 어둠 속에 하얗게 떠오르는 나오코의 벗은 몸과 내뿜는 숨결, 빗소리를 생각했다. 80

 

 그러나 나오코는 사라져 버렸다. '나를 언제까지나 기억해 줘.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252)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와타나베가 '노르웨이의 숲'을 들을 때마다 나오코의 가슴저미는 절규가 들리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때로 나는 정말 슬퍼져.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치 깊은 숲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춥고 외롭고, 그리고 캄캄한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러 오지 않아. 191

 

 한 사람이 죽으면 그 뿐. 산 사람은 죽은 사람과 관계없으리라 믿었던 청춘은 자신의 삶으로 깊이 들어와 버린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그것은 분명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453-4

 

 눈물이 마치 땀처럼 뚝뚝 떨어지는(453) 순간을 맞으며 받아들여야 했던 진실. 주변에서 신호를 그렇게 보내왔건만 무시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 살았던 20세의 와타나베는 이제 문을 열고 나와야 했다. 자기 삶에 갇혀 정신병원을 선택하고 급기야 목을 매기까지 했던 나오코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고바야시 미도리와 이사다 레이코의 충고를 깊이 새겨 들어야 했다.

 

 너는 늘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내가 똑똑, 와타나베, 똑똑, 문을 두드려 보아도 눈만 한번 들어 쳐다보곤 금방 자기 세계로 돌아가 버리지. 422

 

 당신은 때로 인생을 너무 자기 방식에만 맞추려 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아요.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게 싫다면 마음을 조금 열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겨요. 448

 

 

여자애(미도리)집 부엌에서 한밤중에 그녀의 죽은 아버지가 살아 생전 입었던 잠옷을 입고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는(389) 문학 청년은 이제 변화하려 한다. 100미터 정도 떨어진 저편의 다 쓰러져 가는 폐가라도 바라보는 돗한 눈길(425)이, 미도리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겨야 했다.

 

 난 이제 십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 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415

 

 스무 살의 시간.
 책을 읽으면서 내 이십 대를 줄곧 떠올렸다.
고통의 연속이었던 삶. 나는 그 때 얼마나 성장을 했을까? 그 노래를 들으면 그 때의 아픔이 생생하게 떠올라. <노르웨이의 숲>같은 노래가 있는가? 이문세의 노래가 그랬구나. 요즘도 <그녀의 웃음소리뿐>, <이별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저릴 때가 있다.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가
 나는 무슨 말을 했던가


 이렇게 우린 헤어져야 하는 걸
 서로가 말은 못하고......

 

  오래 전에 지나간 삶. 가 버린 삶이 아니었구나. 수시로 튀어나와 내 삶을 건드리는 청춘.

 

 소설을 읽으면서 만나는 독특한 캐릭터는 덤이다. 도쿄대 법학부에 다니며 밤마다 여자 사냥에 나서고 여자에 매이지는 않는 나가사와. 와타나베의 룸메이트로 지리학을 전공하며 책상 머리 맡에 여자 핀업 사진이 아니라 암스테르담 운하 사진을 붙여 놓고 새벽마다 라디오를 틀어 놓고 체조하는 특공대. 나오코와 같은 요양원에서 기타를 치고 지내며 와타나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30대 후반의 여성 이시다 레이코.

 

 우리나라의 청춘과 디테일에서 차이를 많이 보인다. 성인 전용 영화관에 커플끼리 들어가 영화를 진탕 보고 나오는 장면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1960년대 말,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젊은 시절이었다고 할 것인데 정말 작가가 나오코같은 여자를 사랑하고 대학 시절 유사한 경험을 하고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섹스가 흘러 넘치는 소설. 그래서 독자들이 많은 것일까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겠지. 책을 내려 놓고 나면 묵직하게 다가오는 삶의 무게. 누구나 겪었던 고독과 방황이 이 소설에서는 절절하게 그려져 내 삶을 돌아보게 하지 않는가?


 언제고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노르웨이의 숲>이 좋은 작품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2013년 12월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