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환(讀書哀歡)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HoonzK 2017. 10. 18. 12:54

공격하는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공이 움직이는 자리를 무시하고 공격수가 곧 만나게 될 골문에 선 골키퍼를 본 적이 있는가?

공격수나 공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공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페터 한트게.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2009. 119)


 사실 공 대신, 양손을 허벅지에 대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가 뒤로 뛰어들어 왔다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편 수비수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골키퍼를 쳐다보아야(119) 축구를 제대로 보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가 문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가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문 손잡이를 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페널티킥의 순간. 골키퍼는 상대 키커를 분석하며 갖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키커도 골키퍼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생각이 많아진다.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돌연 불안해진다. 지푸라기 하나로 문을 막는 것같은 골키퍼의 불안.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책을 선택하는 일은 얼마나 우연적인가? 오로지 제목 때문에 페터 한트케의 소설은 내 손에 들어왔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관객모독>으로 잘 알려진 작가라 희곡 작가로 간주하고 있었는데 소설쪽이 더 강하다. 심지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언어의 구사로 유명한 작가이다. 축구선수들은 그 책 재미 있느냐고 물었다. 이 난해한 서적이 재미있을 사람도 있긴 있을 것이다. 언어가 춤을 춘다. 이건 또 무슨 기술인가?




하하, 고전적인 소설의 경계가 무너진다. (1970년 출판된 책)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고 무질서한 전개가 삶의 고유한 방식처럼 자리한다. '문학은 언어가 가리키는 사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라고 한 작가의 의도를 쫓는다. 잘 되지는 않지만.


 유명한 골키퍼 출신이었던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일한다. 늦게 출근한 어느날 공사장 현장 감독이 싸늘하게 쏘아보자 블로흐는 그 시선을 해고 통지로 받아들인다. 친구, 아내, 직장에서 차례로 인연이 끊어진 주인공은 정처없이 헤매다가 여자 극장 매표원과 만나 잠자리를 같이 하고 출근하지 않느냐는 한 마디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국경마을로 도피하여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려 애쓴다. 블로흐는 주변의 언어를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다.


 집시에 관한 우편배달부의 이야기도 그에게는 이미 서투른 말장난으로, 부적당한 암시로 여겨졌다. 마찬가지로 축하전보도 단어들은 유창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같았다. 87


 어느새 그는 주변인으로 밀려났다. 정상적인 위치를 상실하고 극장, 시장, 뒷골목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공이 오지는 않지만 골문 앞에서 쉴새없이 움직이는 골키퍼의 불안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실험적인 소설은 100여쪽의 분량으로 행간의 의미를 곱씹으며 재독한다면 나름대로의 의미를 발견할만한 작품이다. 문학 작품은 칼처럼 재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성을 벗어나서도 곤란하니까. (2010년 9월 기록함)


Die Angst des Tormanns Beim Elfmeter Suhrkamp Verl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