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환(讀書哀歡)

강영숙 <라이팅클럽(writing club)>

HoonzK 2017. 10. 1. 16:35

 옛날을 추억한다. 종로구 계동을 훑고 북촌 마을에서 노닌다.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과 함께 한다.

 

 강영숙. <라이팅 클럽>. 자음과 모음, 2010


 처음엔 작문 개론서인 줄 알았다. 소설이었다. 소설이라면 읽어야 하는가? 목차를 보았다.

 

 글짓기 교실
 글쓰기 모드
 설명하기와 묘사하기
 돈 키호테 북 그룹
 핵켄색의 라이팅 클럽

 

 웬지 흥미가 동한다. 2011년 5월 2일 강북문화정보도서관에서 빌린다. 지하철에서 주로 읽었으나 5월 3일 방에서 잔잔한 독서풍으로 접근한다. 어린이날 화성시에 다녀오는 사이 거의 완독한다.


 영인이는 싱글맘과 계동에서 산다. 그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김작가'라고 부른다. 엄마의 능력을 믿지도 않는다. '성냥곽만한 작은 글짓기 교실의 작문선생'(13)이라고 정의하면서.


 주인공도 글쓰기에 집착한다. 제대로 된 글 한번 쓰고 싶어한다. 헌법 재판소 건너편 낙후된 '커피숍의 창가 자리에 귀신처럼 앉아 있는'(92) J작가에게 습작 소설을 꺼내어 보아달라고 부탁한다. 오문, 비문 투성이이니 고쳐야 하며 설명하기 보다는 묘사하라는 지적을 받는다.


 소설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쓴다는 것. 쉬운 일일까? 읽은 기억만 더듬어 서평은 못되어도, 독후감을 그럴 듯하게 써내는 일이 쉬울까? 장소를 기억하고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이름과 모습을 일일이 외울 수 있을까? 줄거리를 정리해내지 못한다면 공허한 감흥에만 매달려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줄거리를 파악하기 위하여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 참 싫은 일이다. 책의 해설이나 서평을 읽으면 꼼꼼한 책읽기의 전형을 보는 것같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잡아내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일단 기억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노력해 본다. 주인공의 친구 두 명. 그들의 이름은 이니셜로 불린다. 부잣집 카리스마는 R이었고, 자그마한 체구의 여학생은 K였다. 그들과의 관계는 주인공의 삶을 채색한다. 동성애의 느낌도 존재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일 뿐이다.

 

 J작가: 묘사, 그래 묘사는 좀 생각해봤어?
 나: 네.
 J작가: 내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렇게 주인공이 한 행동을 나열한다고 해서 좋은 문장이 되지는 않아.
 나: 지난번에 저한테 묘사를 하라고 하셨잖아요.
J작가: 물론 지금은 내 말을 잘 모를거야. 하지만 간결하고 분명한 묘사 뒤에 반드시 작가의 사고 과정이 드러나야 해. 그런 건 묘사가 아니라 진술이지. 작가의 사고, 작가의 판단에서 오는 힘이 있는 진술이 반드시 들어가야 해. 이렇게 주인공이 기차타고 갔다가 기차타고 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소설의 다는 아니라구. 묘사와 진술. 그 두 가지가 적절히 섞어야 해.
 (159-160 재구성)

 

 훌쩍 흘려버리면 도대체 기억이 나기는 하겠는가? 책을 읽었으면 되새겨야 한다. 그저 느끼기만 하고 생각만 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흐르는 물처럼 흐르는 감상. 물가에 버틴 암반 위에 새긴 기록. 그에 비견될 수 있는가?


 미국으로 건너가 살림을 차린 주인공. 미국에 갖고 간 것은 <돈 키호테> 한 권. 그나마 두께가 육센티미터나 되어 그 부피만으로도 짐을 감당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에서 하루 열 다섯시간 이상을 일했다. 한 달도 안 되어 후회하면서.


 그녀는 동떨어져 나와 뉴저지 핵켄색의 봉제공장을 거쳐 네일숍에 머물렀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일을 했고, 일요일에는 교회 가는 신자처럼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미친 돈 키호테처럼 라이팅 클럽을 만들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종로구 계동에 마련했던 글쓰기 교실처럼 휠체어를 탄 제인, 우람한 체구의 레오폴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엘리스, 칠순의 어르신 등이 모였다. 이렇게 글과 함께 하는 세월.


 한국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국을 떠나야 한다. 어머니는 일어난다. 그리고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2011년 5월에 읽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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