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환(讀書哀歡)

2017 동인문학상 수상작 '바깥은 여름'

HoonzK 2017. 12. 11. 20:48

김애란이 2017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에 이어 동인문학상까지 받았다.


'바깥은 여름'은 단편소설집의 제목이지만 한 편의 소설은 아니다. 소설을 묶어 내면서 제목을 따로 붙인 것이었다. 작가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세상 또는 타인으로부터 느끼는 온도 차, 시차 때문에 가슴에 결로(結露)와 얼룩이 생기는 이야기들을 묶었다고 밝혔다.


입동 <창작과 비평> 2014년 겨울호
노찬성과 에반 <릿터> 2016년 8/9월호
건너편 <문학과 사회> 2016년 봄호
침묵의 미래 <대산문화> 2012년 겨울호
풍경의 쓸모 <현대문학> 2014년 9월호
가리는 손 <창작과 비평> 2017년 봄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21세기 문학> 2015년 가을호


이상의 일곱편을 묶어서 낸 것이 '바깥은 여름'이었다. 바깥은 여름이라? 여름은 한창 떄 아닌가? 바깥은 한창 때인데 안은 그렇지 않다는 비애가 배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을 읽다 보면 가슴 한켠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문장이 나온다. 그 여운이 너무 강하다. 김애란 소설을 처음 읽었지만 이 작가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동인문학상 수상 선정 이유로 심사위원회는 '어둡고 힘겹고 서글픈 인생의 사건들을 언어 안에서 거르고 간종여 담백한 음미와 잔득한 성찰의 장소로 재탄생시킨다'라고 했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라는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맞춤할 수도 없는 아이였다. (입동 21)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건너편 115)

 ※ 이런 비슷한 말을 직접 들어본 적이 있어 절절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고요할 리도, 거룩할 리도 없는, 유구한 축제 뒷날, 영원한 평일, 12월 26일이었다. (건너편 119)

명지야, 아까부터 네가 불편해할까봐 못 물어봤는데....혹시 너.... 도경이랑 헤어졌니?
어, 우리 헤어졌어. 헤어진 지 몇 달 됐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252)

 ※ 그 헤어짐이란.....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함께 죽으면서 생긴 헤어짐이었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265-6)


'바깥은 여름'을 읽다가 다른 책을 읽으니 죄다 가벼워 보였다. 얄팍한 사고와 미천한 감정에 휘둘려 나온 글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깥은 여름'에 실린 소설 가운데 한 두편만 뽑아 읽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삶 속에 들어가 한 편 두 편 읽어나가다 일곱 편을 모두 읽었다.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의 고통(입동), 트럭 전복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늙은 개를 안락사시키기 위하여 돈을 모으는 어린이(노찬성과 에반), 좌절된 삶 속에서 서서히 애정이 식어가는 저소득층 30대 중반의 남녀(건너편),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둔 비정규직 지식인(풍경의 쓸모), 다문화 가정의 소셜 네트워크(가리는 손), 남편을 잃은 여성의 망부기(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소수언어와 표현의 난관(침묵의 미래).


문학평론가 정과리의 심사평을 여러번 곱씹었다.


 그의 소설은 애초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다. 작품 소재는 흔한 종류였지만 다루는 방식은 독특했다. 가난한 보통 사람들, 요컨대 을의 애환을 다루되 설움이나 분통의 정서를 담지 않았다.
 그의 묘사는 곱게 화장하기보다 꾸밈없는 얼굴을 섬세히 드러내는 식이었다.
 소설 속의 행동은 소설가의 관조를 통해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장면을 넘기면서, 불행의 우여곡절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심각한 물음 속으로 작가와 독자를 몰고 간다. 소설은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 찬 깊은 우물이 된다. 묘사에 관한 한 김애란은 한국문학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