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10월 3일에 열렸는데 추석 연휴 때문에 날짜가 당겨져 9월 마지막 날 열리게 되었다. 장소도 영동대로에서 봉은사로로 옮겨졌다. 2호선 삼성역에 내리지 말고 9호선 봉은사역에서 내렸어야 했다. 제법 걸었다.
뭔가 몸이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출발하고 양재천으로 들어서기 직전 내리막이 있었는데도 첫 1킬로미터가 5분 20초나 걸렸다. 차차 빨라지겠지. 그렇지만 장담할 수 없었다.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 두 분이 앞쪽에서 자리를 내어주질 않았다. 내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1시간 44분 59초로 달리려면 킬로미터당 4분 58초, 1시간 39분 59초로 달리려면 킬로미터당 4분 44초를 유지해야 하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늦게 출발한 것도 아니었다. 출발 전 2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있다가 안되겠다 싶어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와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옮겨서 섰다. 결국 줄곧 1:45 페메를 따라가고 있었지만 못 따라간 것이었다. 이제 악착같이 달려도 1시간 45분 이내로 들어가기 힘들었던 시절로 회귀하는가? 비좁은 양재천 주로를 가득 메운 주자들 사이를 파고 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풀코스 주자와 하프코스 주자가 완전히 뒤섞여서는 지근하게 스피드를 올리는 일이 어려웠다. 5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맡고 계신 안수길님을 응원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주로 옆의 풀밭을 따라 달리기도 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몹시 힘들었다. 몸이 뒤뚱거리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20일 전 선사마라톤에서는 5킬로미터를 23분만에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24분을 넘겼다. 소화가 되지 않는 느낌도 있었고, 체중이 사람을 주저 앉히는 느낌도 있었다. 전날 밤늦게 술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 하프라고 너무 얕본 것 아닌가? 이래서야 1시간 39분대가 가능하겠는가? 1시간 43분 기록을 깨뜨리는 것도 어렵겠다. 과거가 무조건 현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제는 아무렇게나 달려도 1시간 39분대는 쉽게 달성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만하고 건방지게. 건달. 건방진 달리기하다가 벌받는 거야.
영동6교에서 영동1교까지 지나 시민의 숲 앞에서 반환할 때까지 순차적으로 5시간 페이스메이커부터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까지 제쳤다. 햇볕을 받으며 달리고 있어 좀 더웠다. '로운리맨님의 훈련 코스라 매우 반갑군.' 중얼거리면서 달렸다. 영동1교에서 영동6교를 거쳐 광평교 앞에서 반환할 때까지 4시간 15분, 4시간,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제쳤다. 1차 반환한 후의 구간은 그래도 그늘이 드리워져 견딜만 했다. 지난 주에 3시간 45분 페이스로 가다가 후반에 지쳐버렸던 풀코스 주자 바깥술님은 이번에는 페이스를 늦추어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10킬로미터 지점을 지나기 직전이었는데 바깥술님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인지 알고 손을 뒤쪽으로 내밀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다른 사람보다 시야가 넓은 것인가. 10킬로미터 48분. 많이 속도를 올리긴 했지만 이 페이스로 갔다간 20킬로미터까지 1시간 36분이 걸릴 것이고, 남은 1.1킬로미터를 4분 이내로 달릴 수는 없을테니 1시간 39분대 진입은 실패할 것이 뻔했다. 그것도 아깝게. 어차피 국제평화마라톤 개인 최고 기록인 1시간 43분 33초만 깨뜨려도 잘 한 것 아닌가?
힘으로 밀고 나갔다. 2차 반환하기 직전 내가 제치는 풀코스 주자가 3시간 30분에서 3시간 40분 페이스로 달리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2차 반환하면서 6킬로미터 정도가 남았는데 이 돌아오는 과정이 몹시 힘들었다. 뙤약볕이 만만치 않았다. 스펀지, 생수를 꾸준히 이용하여야 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니 미리 포기하거나 속단하지 말자. 주위의 주자들이 풀코스 주자인지 하프코스 주자인지 확인하지 마라. 그들과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늘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이니. 역시 마라톤 완주, 그 최대의 적은 나 자신이다. 과거의 나 자신과 싸우고, 또 싸우고.......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하프 선두 주자들. 도대체 반환점이 어디일까? 1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가 매섭게 달려오는데 날이 서 있는 것같았다. 반환점은 15킬로미터를 지나 있었다. 1시간 12분대 초반에 반환했다. 계산이 복잡했다. 27분 중반으로 남은 6.1킬로미터를 달려야 1시간 39분대가 가능한데..... 상황은 점점 어려워졌다. 기온은 오를대로 올랐고, 뙤약볕에 노출되는 구간을 달려야 했고, 15킬로미터 이상을 달려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중도 포기하고 걸어가는 주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달려온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달려야 했다. 화장실 들르는 것은 악착같이 참았다.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도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출전하고 싶어도 토요일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나오지 못한 로운리맨님, 하프 참가 신청을 해 놓고도 회사 업무 때문에 새벽에 출근하고 만 아세탈님.... 그 분들 몫까지 달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견디어 내었다.
인천송도국제마라톤대회 후기에 댓글을 추가로 달아주셨던 로운리맨님.
건달님의 강남 국제 평화 하프 응원합니다.
제가 2014, 2015, 2016년 빠지지 않고 참가한 대회이고,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대회인데, 이번에 참가 못해 아쉬우니 제 것까지 뛰어 주십시요.
143은 무난히 깨실 것같고 서브 140으로 30분대에 들어오실 겁니다. (2017. 9. 28 17:58)
그럼 제가 힘들 때 로운리맨님 몫까지 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겨내겠습니다. 서브 140을 꼭 해서 반성주(反省走)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反省酒가 아니고)
로운리맨님의 응원을 업고 달렸다. 지난 8월 합동훈련할 때 달렸던 구간이라 친밀감도 있었다. 스피드를 올려 보았던 일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렇게.....
아세탈님은 출전하지 못한다며 응원 문자를 보내왔다.
강건달님의 멋진 레이스를 응원합니다. (2017. 9. 29 22:08)
늘 응원해주시는 아세탈님, 못 달린 아쉬움을 제가 갚아드리지요.
자정이 다 되어 1차 수면 시도, 새벽 1시 30분쯤 잠을 깬 후 2차 수면 시도, 3시 30분에 잠을 깨고는 3차 수면 시도..... 3차는 실패했다. 다시 못 자고 말았다. 두 시간 정도만 더 잤다면 몸이 홀가분했을텐데. 아침부터 계란과 어묵 넣은 순두부찌개, 계란 후라이를 부쳐 먹고 나왔는데 속이 더부룩했다. 잘한 일이라곤 집에서 볼 일을 다 보고 출발했다는 것.
반사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몹시 피곤하고 늙어 보였다. 30대에 하프 코스에 나와 달릴 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을텐데..... 그 때는 잠을 못 자서 허덕이다 나온 적도 거의 없었고..... 사실 그 때는 여름에 마라톤 대회를 달린 일이 거의 없었다. 여름에 대회에 나왔다고 해 봐야 10킬로미터가 고작이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 그룹에서 호흡을 조절하며 달리는 바깥술님은 끝까지 잘 달리라고 응원을 해 주었다. 풀코스 37킬로미터 표지판이 나오고 곧 하프코스 16킬로미터 표지판이 나오는데 그 100미터의 거리가 지독히 멀었다. 어쨌거나 4분 40초 페이스는 나오고 있었다. 초반에 사정없이 스퍼트했다가 걸어서 돌아가는 주자들이 적지 않았다. 1시간 20분대나 30분대 초반의 주자들은 고수일텐데 힘든 상황을 미리 고려하지도 못했고 감당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루만 지나면 10월이지만 아직은 더웠다. 출발할 때는 선선하고 좋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위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오버페이스라는 무서운 장애물에 부딪치면 걷거나 중도 포기하거나...그밖에 답이 없었다.
40킬로미터 표지판 통과. 2.2킬로미터가 남았다는 뜻인데 1시간 28분이 지나고 있었다. 12분이 지나기 전에 2.195킬로미터를 다 달려낼 수 있을까? 지난 해 춘천마라톤에서는 마지막 2.195킬로미터를 9분 21초에 달렸으니 그에 비하면 부담이 덜한데..... 혹시 1시간 38분대 후반은 가능하지 않을까? 9월 최고 기록은 힘들겠네. 선사마라톤의 1시간 38분 07초는 너무 빨랐어. 과거의 나를 이기기는 힘들겠어. 대로로 올라서기 전에 만나는 최고의 난관. 오르막. 10킬로미터 후미 주자들이 대부분 걷고 있었다. 빨간색 유니폼 주자를 따라갔다. 등산하는 느낌이 나니 속도가 쭉 떨어졌다. 몇 십 미터쯤 남기고 빨간색 유니폼 주자가 나를 견제하는 듯이 보였다. 사정없이 달렸다. 앞의 주자를 제쳤다. 골인할 때 보니 기록 계시기 숫자가 1시간 37분에서 38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시계를 누른 순간 경악했다. 1시간 38분 04초. 출발 몇 초 전 스타트 버튼 가동, 도착 몇 초 후 스톱 버튼 가동. 그 습관 때문에 혹시나 1시간 37분대까지 들어간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에, 9월 하프 개인 기록을 깨뜨린 것 아닌가. 또 다시 과거의 나 자신을 이긴 것이다.
메달과 간식을 받은 뒤 음식을 먹는다고 장사진을 이룬 대열 사이를 뚫고 물품보관소쪽으로 갔다.
골인한 후 짐을 찾아 탈의실로 가다가 신발끈에 걸린 잡초를 보았다. 앞의 주자들을 피해서 나간다고 산책로 옆의 풀밭을 달릴 때 잡초가 끊어져 신발끈에 달려 있었나 보다. 18킬로미터 이상 나와 함께 달려온 잡초라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꺼내는데 계속 진동이 울렸다. 아세탈님이 단톡방에 문자를 올리고 있었다.
137 호기록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오전 10:53)
내가 1시간 37분대로 달렸다고? 정말?
1초를 줄이기 위한 막판 스퍼트가 인상적입니다. (오전 10:54)
내가 마지막 스퍼트하는 장면을 마치 본 것처럼 말씀하시네. (liverun.co.kr에서 계속 검색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설마 영상 중계까지 한 것은 아니겠지.)
내 기록이.... 1시간 37분 59초. 어떻게 이런 기록이 가능할까? 59초....이런 것은 로운리맨님 스타일인데.....
엄청난 호기록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얼쑤~ 옴팡지게 축하하오!!!]
(오전 10:57)
이 문자는 로운리맨님이 보내온 것.
문자 앞쪽에는 아세탈님의 이런 글도 있었다.
현재 5분10초 페이스로 7km 구간을 통과했습니다.
후반 역주를 기대합니다. (오전 9:54)
7km까지의 페이스로 본다면 1시간 49분의 기록이 예상되기 때문에 최종 목표로 했던 1시간 39분대는커녕 5년 전 세운 국제평화마라톤의 최고 기록보다 6분이나 늦는 페이스였다. 그런데 후반에 나가지 않는 몸을 밀고 또 민 끝에 1시간 38분대의 기록까지 깨뜨렸다. 9월 하프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될줄..... 정말 몰랐다. 미련하고 우직하게 달린 결과였다.
오늘 마라톤에서는 뒷풀이가 없었다. 돌아오다가 강북문화정보도서관에 들러 <전쟁과 평화 3>을 빌렸고, 다이소 수유점에서 세숫대야도 샀다. 그리고 집에서 라면과 편의점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마트에 가서 무와 애호박을 사와 삼치찌개를 만들었고.....
신발 끈에 걸려 있는 잡초.... 달리는 내내 나와 함께 한 듯.....
아에드의 도움은 달리기 전후 받았고.....
행사가 한창이네..... 8시도 되지 않았는데......
삼성1동 주민센터...... 매우 좋아 보인다.
'강남'이라는 명칭이 아예 대회명에서 빠졌다.
5년 전 세운 1시간 43분대의 기록을 5분 이상 단축했다.
후반 6.1킬로미터를 25분 45초로 달린 것으로 나온다. 초반의 레이스와 비교한다면 후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달린 듯한 레이스였다.
봉은사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양재천의 접근의 빨랐다.
전날 밤에 마신 일본 술......(아세탈님이 주신)
도수가 약하지만 너무 늦게 마셨고 마시면서 황태포에 견과류까지 먹어 아무래도 다음날 타격이 있었다.
몸이 무거웠던 이유를 찾는다면 '이것+적은 수면'일 것이다.
헤밍웨이의 글. 이 말은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도 나온다.
왕복 1킬로미터 구간을 이사한다고 리어카를 하루에 네 번이나 몰았는데 피곤해 죽겠어요. 리어카를 몰아봐서 아는데 진짜 힘들텐데요. 몸살 나서 고생했고 이제 조금 나아졌어요. 내일 부여에서 풀코스를 달리니 오늘 10킬로미터만 달립니다. 연휴 기간이라 가는 게 쉽지 않을텐데 표는요? 밤 9시 막차로 내려가는데 가서 사우나에 있어야지요. 내일 잘 달려야 할텐데요.
광배님은 지난 주 철원에서 3시간 12분대로 달렸고, 부여에서는 더 잘 달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춘천마라톤은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대회인데 2006년에 10킬로미터로 데뷔를 한 대회로 12년째 출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2년째? 나도 12년째 춘천마라톤에 가는데. 광배님은 2009년부터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기 시작했으니 내년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겠다.
국제평화마라톤대회는 처음이라고 하며 조언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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