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천에서는 2017년 9월 30일부터 10월 11일까지 12일 연속 풀코스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12일 연속 풀코스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특전사님과 맹순여사 부부도 있었다. 이분들은 지난 설날 연휴 때 세계 최초로 부부 6일 연속 풀코스를 완주한 분들이기도 했다.
추석 연휴 기간에 한 번 정도는 달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 추석 당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연중행사처럼 되어 있었다. 지난 해에는 추석 당일 하프를 달렸고, 추석 연휴 마지막 날 풀코스를 달렸다.
잠을 자지 못하고 달리는 것보다는 더운 게 낫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오늘이 딱 그런 경우였다. 추석 당일은 12시 출발이라 잠을 설치고 나올 필요가 없어 좋았다. 다 좋을 수가 없는 것이 10월치고는 햇볕이 강했다. 공원사랑마라톤 코스는 고가 아래를 뛰는 구간이 많으니까 상관없다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주최측에서는 오늘 4회전으로 운용한다고 밝혔다. 낙담하였다. 4회전을 하면 노천 구간이 훨씬 늘어나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오전 7시 출발도 아니고, 12시부터 4시 사이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높을 때 달리는 것이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림교 아래로 가야 했다. 도대체 왜 내가 참가할 때마다 4회전이 되는 거지. 3회 연속 4회전이라.... 이건 아닌데.....
몇 분은 10시부터 이미 뛰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번 대회 운영 개선안에 출발시간 엄수를 철칙으로 못 박았는데 먼저 출발한 것은 반칙 아닌가요 했더니 대회 운영자는 오늘은 추석이라 성묘도 가야 하는 등 이번 경우는 불가피한 일이니까요라며 해명했다.
하프 첫 출전이라 걱정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안내해 주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12시 정각, 출발했다. 10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었다. 내가 선두로 나서고 있었다. 하프 주자가 2등, 특전사님이 3등...... 건너편에서 바깥술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10시에 출발하셨다고 했다. 함께 출발하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오늘 목표 기록은 특별히 없었다. 10월엔 춘천마라톤에 올인하기 때문에 오늘 기록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굳이 달려야 한다면 3시간 35분 01초의 10월 최고 기록을 깨뜨리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2013년 춘천마라톤 3:35:01) SUB 335를 해서 3시간 34분 59초로 들어간다면 좋은 것이고 안 되어도 상관없고.......
첫 1킬로미터가 4분 45초가 나왔다. 숨이 찬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빠르담? 9시 30분까지 잔 덕분일까? 수면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풀코스 기록을 경신할 것도 아니고 초반에 너무 빠르면 후반에 고생하니 페이스를 늦추어야 했다. 속도를 조금 떨어뜨리는 느낌으로 달렸는데도 2킬로미터를 9분 30초에 통과했다. 두번째 1킬로미터도 4분 45초에 달렸다는 뜻이다. 속도를 더 늦추어야 했다. 조금 늦추어 달린 결과 5킬로미터 기록이 24분 05초가 되었다. 3시간 29분대가 가능한 페이스인데 오늘 왜 이러는 거지?
문제는 반환점에서 발생하였다. 급수대가 보이지 않았다. 급수요원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가? 아니, 급수대가 너무 멀리 나가 있었다. 2회전 할 때 설치되는 자리까지 나가 있었다.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고 돌아오는데 생각이 복잡해졌다. 급수대 위치가 앞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모르긴 해도 500미터쯤은 더 달리게 될텐데 어쩌나? 급수대를 무시하고 알아서 반환할까? 그럼 수분 보충은? 출발점으로 돌아올 때마다 물을 마실까? 10.55킬로미터마다 수분 보충. 흐린 날씨라면 몰라도 오늘은 햇볕을 자주 받는데 무리겠지. 일단 달리고 난 뒤 더 달리게 한 주최측의 잘못을 따져 기록을 줄여달라고 할까?
신경이 날카로워졌지만 돌아오면서 하프 주자에게 저기 급수대에서 돌면 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이후에도 안내를 잘 해주어 감사 인사를 톡톡히 받았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날벌레들이 너무 많았다. 손을 휘저어가며 달려야 했다. 출발지점으로 돌아와 보니 물이 한 컵도 따라져 있지 않았다. 물을 따라 마신다고, 사장님에게 급수대 위치에 대하여 조정을 요청한다고 시간을 조금 더 썼다. 그래도 52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3시간 29분대를 유지했다. 3회전을 마치기 위하여 오는 바깥술님은 따라갈테니 한번 기다려 보라고 했다. 네. 오세요.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으니.....
잠을 잘 잔 것은 큰 도움이라 4분 30초에서 45초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좀 늦춘다고 해도 결코 5분을 넘지 않았다. Wan-sik님은 '아주 날아가네, 날아가'라고 격찬하였다. 2회전 때 반환점쪽으로 가 보니 반환 급수대는 앞으로 당겨져 있었다. 숨을 돌렸다. 질주했다. 바깥술님을 만났다. 따라가려고 했는데 거리가 더 벌어져 버렸네. 서브330하려고? '네?'하고 되물은 것인데 그쪽에서는 '네!'라고 들은 것같았다. 앞에서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페이스를 조절해 가며 달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1시간 43분대로 2회전을 마쳤으니 지치지만 않는다면 3시간 29분은 무난해졌다. 10월 최고 기록 경신이 사정권에 들어왔다.
10월, 얼마나 달리기에 좋은 날씨인가? 그런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10월도 더울 때는 더운 법. 햇빛을 받으면 여지없이 지쳐가는 느낌이었다. 3회전할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속도를 늦추어 에너지를 아낄 필요가 있었다. 후반에 에너지 고갈이 되어 나가지 않는 다리를 밀고 갈 수는 없었다. 미리 대비해야 했다. 그런데, 특전사님은 이해할 수 없었다. 5일째 연속 풀코스를 달리는 분이 내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앞으로도 7번의 풀코스를 더 달려야 하는 분이 너무 빨리 달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보이니 따라왔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지만 피로 누적이란 게 특전사님에게는 없는가? 12연풀에 도전하면서 중간에 한번쯤은 3시간 20분대 기록을 끼워 넣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풀밭 사이로 난 주로를 따라 달릴 때면 아주 작은 날벌레들이 먼지처럼 몰려 다니니 견딜 수가 없었다. 눈을 가리고 달리고, 눈을 감고 달리고, 손을 휘저으며 달리고, 고개를 저으며 달리고.... 별짓을 다 했다. 이 구간은 뙤약볕이 내리쪼이는 구간이기까지 해서 점점 지치는 것같았다. 3회전을 마치고 이제 한 바퀴 남았다고 했지만 안도할 수 없었다. 남은 10.55킬로미터를 어떻게 달릴지 걱정스러웠다. 다리가 무거웠다. 그저 자세를 바로잡고 맹순여사님을 비롯하여 이 분 저 분 응원하면서 의욕을 끌어내려고 했지만 틀림없이 지치고 있었다. 4회전할 때도 다리가 잘 나가서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면 생애 처음으로 하나도 힘들지 않은 풀코스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풀코스는 풀코스였다. 쉽게 완주를 허락하지 않는 종목임에 틀림없었다. 훈련한다고 생각하자. 훈련이야. 10월이지만 더운 날 훈련하는 거야. 살도 빼고. 연휴 기간 내내 친구 일을 도와주면서 밤늦게까지 커피에 콜라에 야식에..... 조금 뚱뚱해져서 옆구리살이 무척 보기 싫으니......
마지막으로 반환할 때는 급수요원이 멀리 떨어져 다른 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 내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생수와 콜라도 보이지 않았다. 1.5리터 콜라 패트병 뚜껑을 따려고 할 때 급수요원이 달려와 콜라와 생수를 챙겨주었다. 급하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돌아서는데 특전사님이 바짝 붙어 있었다. 따라잡으시겠는데요. 5일째 풀코스 달리시는 분 맞으세요? 5킬로미터 남았을 때 뒤에서 요란하게 나던 발걸음 소리가 내 앞으로 이동했다. 먼저 갈게. 특전사님의 추월. 현재 소요 시간. 3시간 2분. 28분 안쪽으로만 5킬로미터를 소화한다면 생애 처음으로 10월 3시간 29분대의 기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웬만하면 스퍼트하는 특전사님을 따라갈까 했다. 그런데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스피드였다. 딱 봐도 킬로미터당 4분의 페이스였다. 점점 거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따라간다는 것이 앞서간다는 것보다는 편하군. 보면서 따라갈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특전사님은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특전사님은 3시간 22분 04초에 골인했다. 마지막 5킬로미터를 20분 초반에 달렸던 것이다.
특전사님이 믿을 수 없는 스퍼트로 골인한 것과는 별도로 나 자신은 나 자신만의 기록에 도달했다.
3시간 26분 51초.
10월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10월에 생애 처음으로 3시간 20분대에 들어섰다. 올 1월부터 10월까지 빠짐없이 달마다 최고 기록을 세웠다. 지난 해 11월부터 따지면 12개월 연속 월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초반에 더 달린 것을 상쇄해서 기록에 반영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3시간 20분대 기록이니.....
다시는 이렇게 달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힘을 다 써버려 10월 15일 경주에서는 기록이 급격히 나빠질 것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다. 수면 부족을 피할 수 없는 경주행이니..... 그래도 3시간 57분 12초의 경주국제마라톤 기록은 경신하는 것으로..... 그리고 후반을 힘들게 하는 레이스를 다시는 하지 않는 것으로..... 춘천마라톤 때까지 앞으로 3킬로그램 이상은 빼는 것으로.......
완주 후 특전사님과 함께....
기념품이 양말이 아닌 것도 나오네......
9월을 넘기자마자 3시간 20분대에 들어가다니.....
특전사님이 상장을 받으라고 권유하셨다. 전혀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마라톤 TV는 사무실까지 한양빌딩 5층에서 지하로 옮겼다고 했다. 240만원의 월세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메달이 벽을 채운다.
풀코스 완주 후 모처럼 사발면을 먹고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후미 주자들을 위하여 일을 했다. 꽁꽁 언 물을 아이스박스에 넣어주는......
생수가 담겨 있는 물통을 더 차갑게 만들어 골인한 후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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