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2013년 옥천포도금강마라톤대회에서 한없이 무너졌다. 후반에 스퍼트하는 스타일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초반 하프는 2시간으로 달렸으나 후반을 2시간 20분 넘게 달리면서 치욕을 맛보았다. 수면이 부족한 상태로 30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 풀코스를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이런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쉴새없이 되뇌이며 서울로 돌아왔다. 언젠가 옥천으로 돌아가 SUB-4로 달려내어 빚을 갚아야지 하면서도 폭염 속의 풀코스를 떠올리면 눈 앞이 아득해지면서 피하고만 싶어졌다. 그러다가 폭염 풀코스의 악몽이 흐릿해질 무렵인 2016년 7월 옥천으로 돌아갔다. 과체중과 폭염, 컨디션 조절 실패로 이번에는 완주도 하지 못하였다. 1회전이 2시간 5분이 걸렸기 때문에 SUB-4 완주는 불가능해 보였다. 2회전에 나설 때 컨디션은 더 나빠졌다. 폭염경보까지 내려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SUB-4를 할 가능성이 없다면 완주 계획을 접어야 했다. 25킬로미터만 달리고 말았다.
언제 옥천으로 돌아갈 것인가, 3년 쯤 더 보낸 다음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아세탈님이 주신 2만 5천원 할인권 덕분에 1년만에 돌아왔다. 할인권의 유효기간이 7월 31일까지였기 때문에 7월 하순에 열리는 옥천포도금강마라톤 출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아세탈님이 선물한 할인권은 옥천포도금강마라톤대회의 설욕전 할인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방 대회 출전이 어려운 내가 악착같이 참가한 것을 하늘도 격려하는 것일까? 날씨가 흐렸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있었다.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도 당초 일기 예보는 우천이었으나 실제로는 햇빛 작렬하는 날씨로 사람을 우롱했다. 이번에는 폭염경보가 내리면 더 좋겠다는 마음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2017년 옥천포도금강마라톤대회의 결과는....
3:45:01.54
대회 기록을 36분 이상 앞당겼다.
난관은 있었다.
7킬로미터쯤 지나 둔덕의 화장실에 들어가 근심을 풀었다. 만약 셔틀버스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한 사람을 기다린다고 15분 이상 늦게 출발하지 않았다면, 버스 안 시끄러운 잡담과 전화벨 소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잠을 잤다면, 죽암 휴게소와 금강 IC 톨게이트에서 사십 분 정도를 날리지 않았다면, 대회장 1킬로미터 전에 내려 걸어가지 않았다면 출발하기 전 화장실을 들르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좀더 나은 결과를 받아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짐을 맡기고 스트레칭을 하고 나니 출발이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몇 개 없는 이동식 화장실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소변만 보고 출발선으로 갔다. 휴지를 손에 말아쥔 채로.
바깥술님이 오늘도 330 할거요라고 물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 시간이 없어 화장실도 못 갔는 걸요, 휴지를 보여주며 뛰다가 화장실에 갈 거라고 답했다. 아하! 화장실에 갔다 와도 빨리 뛸 수 있다 이거죠? 배번을 가져오지 않은 바깥술님은 재발급 비용 5천원을 지불하고 새 배번을 받았다고 했다.
옆쪽에서 아는 체 하는 분, 몇 분이 있었다. 헬스지노님, 정명진님.....
정명진님은 늦게 일어나 포항에서 대회 시간 맞추어 차를 몰고 온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대회장에 도착하니 출발 10분 전이었다고 했다. 오늘 목표는 SUB-4라고 하니 나와 같았다.
8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장실에 다녀올 것을...... 앞쪽에 희규님이 있어서 그냥 따라갔다. 하프 1시간 40분, 1시간 50분, 풀코스 4시간,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뒤섞여 있었다. 묵직한 뱃가죽의 느낌을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정신없이 가다 보니 1킬로미터를 5분만에 지났다. 2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화장실이 보였는데 너무 이른 것같아 다음 화장실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페이스를 조금씩 떨어뜨렸다. 5분 5초에서 10초 사이로..... 습도가 무척 높은 날씨였다. 몸에 걸친 옷은 금방 젖어버렸고, 신발까지 땀으로 질퍽거렸다. 4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헬스지노님이 아무 말 없이 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이분은 달리기 전과 달린 후에는 아는 체 하시는데 달리는 동안에는 좀처럼 아는 체 하지 않는다.) 희규님 그룹과는 어느새 100여 미터 떨어졌다. 동요하지 않았다. 화장실에도 들르면 더 떨어질텐데.
온몸이 땀으로 젖어가면서도 오로지 생각하는 것은 화장실이었다. 뱃속을 비워내지 않는 한 제대로 달릴 수 없겠다. 완주할 때까지 참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겠다. 손에 말아 쥔 화장지를 왼 손, 오른 손으로 수시로 옮겼다. 화장지가 젖으면 안돼. 이렇게 해도 10킬로미터를 넘겼다가는 손바닥에서 난 땀 때문에 휴지가 물티슈가 되게 생겼네. 길가 어디라도 으슥한 곳이 있으면 뛰어들어야지. 7.5킬로미터 급수대 둔덕에 화장실이 있었다. 한 사람이 올라가고 있었다. 선점당한 것인가? 다행히 한 칸이 더 있었다. 거기서 일을 보았다. 일을 마치고 난 뒤 젖은 바지를 끌어올려 제 자리를 맞추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 다시 달리는데 앞쪽에 정명진님이 있었다. 쫓아갔다. 왜 제가 뒤에서 올까요? 그러게요? 화장실 갔다 왔거든요. 화장실 일화를 꺼내어 놓는 등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1킬로미터 남짓 함께 달렸다. 나 때문에 오버페이스하시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 내가 앞으로 나아갔다.
왼편으로 금강이 내려다 보이고 강가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산을 휘감은 비구름 때문에 수묵화를 감상하며 달리는 느낌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면 페이스가 좋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몸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5분을 날린 만큼 그 시간을 상쇄하는 힘찬 달리기가 따라와야 할텐데.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그럴까? 땀이 발을 굴리는 느낌까지 있구나. 최근 달린 대회보다 훨씬 힘든데 왜 그러지? 거의 잠을 못 자고 대회에 참가해서? 그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니고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한 이유가 가장 크겠지. 지난 2주 동안 콜라, 커피, 견과류 등을 밤늦게 먹어대었다. 몇 일 전 과도할 만큼 섭취한 순대도 문제였다. 옆구리쪽으로 뭉쳐진 살집이 자꾸 신경쓰였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몸은 망가지는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하프 선두 그룹이 지나간 후 풀코스 선두 그룹이 보였다. 1위 그룹은 정ㅅㄱ님, 최ㅈㅅ님, ㅎ찬일님. 몇 십 미터 뒤에 심ㅈㄷ님이 있었다. 특전사님, 헬스지노님에게 인사했다. 돌아오면서는 정명진님, 바깥술님, 달물영희님, 은수님, 은기님, 제비한스님, 맹순여사님과 파이팅을 나누었다. 은기님과 제비한스님은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끈을 잡고 도우미 역할을 하고 계셨다.
17킬로미터 전후해서 나오는 가파른 오르막에서 안 그래도 늦은 속도가 더 늦어졌다. 주로 전체가 은근히 업다운이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돌아오는 구간, 구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견디기 힘들었다. 하프만 달리고 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왜 이곳에 다시 왔는지 계속 되묻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포기했을 것이다. 모름지기 풀코스란 그냥 달려지는 게 아니었다. 42.195킬로미터는 그 거리가 너무 길어서 끝까지 달려 내려면 강한 의지를 가지고 포기의 유혹을 끊임없이 이겨내어야 했다. 1회전하고 그냥 골인해 버릴까 하다가 아치 앞에서 반환하였다. 꿀물을 한 잔 얻어먹고 2회전에 나섰다. 2회전에 나서는 사람들을 배려하지는 않고 끼어들어 꿀물을 먹고 가는 다른 코스의 참가자들 때문에 몇 초 정도 늦어졌다.
또 한번의 하프를 향하여 달려가는데 땅에 얼룩이 생기고 있었다. 빗방울이 땅에 점을 찍듯이 적시다가 이내 꼼꼼하게 도배하듯 물칠을 했다. 이 비는 돌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24킬로미터 지점 짧은 터널을 빠져나와 상의를 벗고 달리는 헬스지노님을 제쳤다. 30대의 광배님과 잠시 함께 달렸다.
-오늘 천천히 달리시네요. 원래 이보다 엄청 빨리 달리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네. 보통 3시간 10분 정도에 달리죠. 오늘은 어쩔 수 없어요. 습도가 90%이고, 오전에 옥천 지방 폭염주의보가 내렸다고 하니까요.
-비가 내려도 폭염주의보가 내리나 보네요. 참, 30대는 참가자가 적어 완주만 해도 입상 아닌가요?
-네. 열 명이 안 됩니다. 지금 제 앞에 세 명 정도 있는 것같아요.
곧 광배님은 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나보다 훨씬 큰 체격을 가진 사람으로 내내 앞에서 기준이 되어 주었다.
1위 그룹에는 변화가 있었다. 정ㅅㄱ님, 최ㅈㅅ님, ㅎ찬일님이 뭉쳐 달리던 그룹에서 ㅎ찬일님이 빠지고, 심ㅈㄷ님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ㅎ찬일님은 4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역전 1등 하세요.
그렇게 외쳐 드렸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는 없어졌다. 도무지 소임을 다할 수 없는 상황이라 풍선을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2회전은 하프 주자가 사라졌으니 거의 외로운 달리기가 되었다. 31킬로미터쯤에서 파워젤을 얻을 수 있었다. 딱 한 개만 챙겨 바로 먹었다. 초코파이를 먹으라는 권유에 초코파이도 먹었다. 초코파이를 너무 먹지 않아 초코파이는 급수대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포카리스웨트와 생수는 부지런히 마셨다. 콜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몸에서 수분이 쉴새없이 빠져나가서 그런지 물 한 컵으로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한 컵을 들어 다른 한 컵에 보충해서 마셨다. 아예 500밀리 생수통을 들고 달리면서 마시고 뿌리기도 두 차례 했다. 화장실에는 또 가고 싶었다. 몸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을 내내 받았다. 가끔 반사 거울에 비치는 내 꼴은 잠이 부족한 태가 철철 넘쳤다. 비로도 젖고 땀으로도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3시간 49분대로 들어가도 종전 기록을 30분 이상 앞당기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좀더 빨리 달려 보려고 애썼다. 38킬로미터와 39킬로미터 지점의 오르막은 페이스를 망가뜨려 5분 20초 페이스를 맞추기도 어려웠다. 금강 휴게소를 지나고 마지막 급수대에서 그냥 병을 주세요라고 외쳤다. 물병을 받아 마시면서 달린것이 속도를 조금씩 떨어뜨리고 있었다. 2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과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의 간격은 너무 넓게 느껴졌다.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지나며 시계를 보니 남은 1킬로미터를 4분 20초 이내로 달리지 않으면 3시간 44분대가 불가능해 보였다. 5분 20초 페이스로 달리다가 4분 20초 이내로 달린다는 것. 가능한가? 100미터를 32초에 달리던 사람이 25초로 달리는데 그것을 열 번 연속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게 가능한가? 안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치고 나갔다. 주혼(走魂)과 아에드.
빗방울을 훑어내며 젖은 도로 위를 사정없이 치고 나갔다. 골인 아치를 지나며 칩이 인식되는 소리를 듣고 스톱워치를 눌렀는데 마지막 1킬로미터를 4분 20초 이내로 달려내지는 못한 것같았다. 기록증을 받았다. 3:45:01.54
2초만 빨랐다면 3시간 44분 59초가 되었을텐데.
물 한 통을 바로 비워내고 짐을 찾았다. 짐을 옆에 두고 비닐 봉지 한 장을 깔고 주저 앉았다. 이미 젖은 몸, 비를 맞으며 지인들을 기다렸다. 달물영희님이 301회 풀코스를 완주하고 있었다. 4시간 3초로 아깝게 SUB-4에는 실패했다. 정명진님도 18초가 넘어가 SUB-4에 실패했다. 정명진님은 2주 전 폭염 속에서 달렸던 영덕에서보다 더 힘들었다고 했다. 헬스지노님은 4시간에서 3분을 넘겼다. 영희님과 내내 동반주하던 바깥술님은 35킬로미터 이후 페이스를 잃고 4시간 17분이 지나서야 골인했다.
옥천포도금강마라톤 풀코스를 SUB-4로 꼭 완주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좀 씁쓸했다. 절실히 바라지만 이루고 나면 불현듯 찾아오는 허무감 탓인가? 아니면 원정마라톤에서 피할 수 없는 컨디션 조절 문제, 특히 수면 부족 문제, 화장실 문제 등 아무것도 미리 해결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 삶에 무겁게 드리워진 무게는 풀코스를 한번 더 달렸다고 덜어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일까?
수유시장 버스중앙차로에서 N15번 버스를 기다린다. 새벽 2시 20분쯤 집을 나왔다. 심야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한 후 커피 방아간 PC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PC방에서 미숫가루를 얻어먹었다. 방아간 PC방에 들른 것은 100일만이었다.
완주를 마친 후 셔틀버스 출발을 기다리면서.... 오른쪽 관광버스가 서울행 셔틀버스.
구름이 산을 감싸고 있다.
마침내 이 대회에서 SUB-4로 풀코스를 완주했다.
지난 해 중도 기권으로 마음에 지고 있던 빚을 덜어냈다.
4년 전보다 36분 45초 빨리 달렸다.
늘 기념품은 옥천포도
시간엄수라고 되어 있는데 15분 넘게 기다려주다니....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완주기를 노트에 일부 기록하고 난 후 잠시 눈을 붙였다가 에밀 졸라의 <인간 짐승>을 읽었다.
에밀 졸라의 소설이 내 적성에는 가장 잘 맞는다. <나나>, <작품>, <목로주점>,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 이어......이 작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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