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2017/08/20)-FULL 146

HoonzK 2017. 8. 22. 13:16

 새벽 4시에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가 그냥 자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찌나 피곤한지 그냥 자도 오전 11시까지는 내리 잘 수 있을 것같았다. 그런데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깨어있는 동안 마라톤 풀코스를 달렸다. 로운리맨님에게 마라톤 대회에 나갈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겨놓고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좀 늦게 나가 응원을 하면서 몇 킬로미터쯤 달리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동안 훈련이 너무 부족해서 어느 정도는 달려주어야 했다. 대회에 출전하여 하프만 달려주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만 멀리까지 잠을 설치고 출전했는데 이왕이면 풀코스를 달리는 것이 나아 보였다. 지난 8월 14일 풀코스를 달리려고 했던 계획이 허리 통증 때문에 밀리면서 컨디션은 바닥을 치고 있는데 8월 셋째주 일요일까지 넘겨서는 안될 일이었다.


 피로가 잔뜩 쌓인데다 내내 체중을 불리고 있고 지방까지 다녀와 몸은 망가졌다. 전날 밤 10시가 넘어 저녁을 먹는 바람에 소화시킨다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었다.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집 근처 편의점이 잠겨 있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버스타고 가면서 아세탈님이 주신 파워젤 하나를 먹고, 5시 30분 을지로입구역 2호선 첫차를 타고 신도림역 GS25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었다. 화장실에서는 제대로 일을 보지 못했다.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꼭 이런다. 그래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라톤 힐링카페에 가서 접수하고 배번을 받았다.


 달리기 복장으로 챙겨 입고 도림교쪽으로 걷고 있는데 로운리맨님이 오고 계셨다. 제가 9187번이니 잘하면 9191번이 될 수 있겠네요. (실제로 로운리맨님은 9191 배번을 달았다.)


 도림교 아래쪽에 있던 출발지가 고가 아래쪽 화장실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비가 제법 쏟아지고 있었다. 요즘은 풀코스를 달릴 때마다 비를 맞고 있다. 7월 23일 옥천, 8월 6일 뚝섬, 8월 20일 도림천.... 주최측에서는 징검다리 데크가 넘칠 것이 분명하므로 2회전이 아닌 4회전으로 바꾼다고 하였다. 바뀐 코스를 알려달라며 함께 출발하여 보조를 맞추던 로운리맨님은 주로가 파악되는대로 바로 치고 나갔다. 내가 너무 굼뜨게 뛴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완주할 때까지 내 앞에서 달렸다. 지쳤다고 하면서도 페이스는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몇 차례의 풀코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백미터도 달리기도 전에 물웅덩이로 변한 주로를 지나면서 신발은 흠뻑 젖어버렸다. 몸은 무거워 첫 1킬로미터가 5분 40초가 나왔다. SUB-4로 완주할 때 늘 내가 맞추던 킬로미터당 페이스였다. 이렇게 간섭포 주자(간신히 서브4를 달성하는 주자)로 돌아오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게 원래 내 본모습이야. 다음 구간은 5분 20초가 걸렸다. 특별히 스피드를 올린 것도 없는데 조금 나아졌다. 2킬로미터에서 3킬로미터까지는 5분 15초가 걸렸다. 로운리맨님이 1등, 백여 미터 이상 떨어져 내가 2등으로 달렸다. 반환은 5.27킬로미터 지점. 로운리맨님은 벌써 돌아오며 파이팅을 외쳤다. 바깥술님도 뵈었는데 6시에 출발한 이 분은 2회전을 한 모양이었다. 징검다리 넘치지 않았어요? 넘쳤어요. 넘쳤는데 어떻게 건넜는지를 물어보지는 못했다. 6킬로미터를 넘기고 나니 너무 피곤해져서 가끔 눈을 감고 달렸다. 어두운 고가 아래쪽을 달리다 보면 눈이 침침했다. 그동안 수면 부족에 시달린 티가 바로 나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동작은 어찌나 굼뜬지 도대체 얼마나 살이 쪘기에 이러는 것일까하고 수도 없이 자책했다.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문제였다. 오늘 완주하게 되면 잘한 일은 그저 조금이라도 살을 뺀 일이겠구나라는 위로만 잔뜩했다. 4회전을 하다 보니 2회전만 해서 하프 기록증만 받고 말까 하는 유혹이 만만치 않았다. 이따금 눈을 감고 달리면서 잤다는 최면을 걸고 있지만 달리는 동안 몸이 끝내 회복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유혹이었다.


 2회전 때 건너편에서 오던 로운리맨님이 반환점이 없어졌다고 했다. 가 보니 급수대가 철수하고 없었다. 꼼짝없이 10.55킬로미터를 음료수의 지원없이 달려야 했다. 노천구간에 나가서는 혀를 내밀고 빗방울을 모아보려고 했다. 그렇게라도 수분을 섭취해야지 이 여름날 물 없이 달렸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2회전을 마쳤을 때 생수통 한 병을 챙겨서 달렸다. 달리면서 수시로 물을 마셨다. 한쪽 손에 물통이 들려서 가끔 성가실 때가 있었지만 수분 고갈로 후반에 낭패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보니 급수대는 출발지점에서 3킬로미터와 4킬로미터 지점 사이 도림천 범람에서 다소 안전한 지대로 이동되어 있었다. 덕분에 몇 번 콜라를 얻어 마셨다.


 처음에는 견디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지만 피곤함도 무감각해지니 어느 정도의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었다. 3시간 44분대의 페이스는 되었다. 이대로만 달리면 공원사랑마라톤 코스의 8월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 생애 8월 최고 기록을 또다시 경신할 수 있을 것같았다. 그런데 그 행보를 위협하는 느낌이 주로 곳곳에 있었다. 반환하기 전에는 도림천 상류로 갔다가 반환한 후에는 도림천 하류로 내려오는데 시시각각 도림천의 수량이 늘어나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빗줄기가 굵은 것이 아니라 다행이기는 하지만 비가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도림천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LED 전광판에는 수시로 경고가 떴다. 금일 강우 예보가 있으니 하천 이용을 자제하기 바랍니다. 방송도 몇 차례 나왔다. 하천쪽으로 가지 말라는..... 도림천쪽에서 제방쪽으로 기어오르는 쥐 한 마리를 보기도 했는데 범람의 위험을 감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반기는 새도 있었다. 왜가리와 백로는 거센 물살 때문에 제대로 헤엄치지 못하는 물고기 사냥을 하고 있었다. 부리를 물 가까이 내밀고 번개처럼 물고기를 낚아채는 모습을 몇 차례 보았다. 이 녀석들은 도림천에 물이 아무리 많이 불어도 날개가 있으니 걱정은 없어 보였다. 거대한 원통형 하수관이 막대한 수량을 콸콸 쏟아내는 곳에는 붉은 경고등이 쉴새없이 깜박거리고 있어 두려움이 들었다. 몇년 전 도림천이 가슴까지 차 올라 달리던 주자들이 긴급히 피신한 일도 있었는데 제발 그런 꼴은 나지 않기를 빌며 달렸다. 연일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살도 찌고 새벽 잠까지 설치고 달리고 있는데 후반 몇 킬로미터를 달리지 못해 풀코스 기록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절절했다. 너덜거리던 근육 테이프는 떨어져 나간 상태. 비 때문에 테이프가 견디지 못하는 것은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


 오늘 로운리맨님의 기세는 놀라웠다. 3시간 30분대는 무난하고 3시간 20분대까지도 진입할 것같았다. 500미터 이상 떨어져 동반주는 꿈도 못꾸게 되었다. 3회전을 마치는 시점에서 먼저 4회전에 나선 로운리맨님은 내가 달려오는 물웅덩이 주로쪽으로 내려오더니 '지쳤어요'라고 했다. '그래요? 힘내세요.'라고 답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고 '그럴리가요?'라고 했다. 진짜 힘들 때 보이는 표정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고, 지쳤다면 나와 간격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벌어지고 있었다.  로운리맨님의 기세로 볼 때 끝까지 초반 페이스를 이어나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4회전을 나서서 신정교 아래를 지나갈 때 긴 사이렌이 울렸다. 그 긴 사이렌은 처절하게 들렸다. 사이렌이 울고 난 후 안내방송이 나왔다. 도림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피하라고 했다. 아직 10킬로미터 가까이 더 달려야 하는데 이를 어쩐담? 6시에 출발해서 4시간 20분이 넘는 기록으로 골인해도 이런 경고 방송을 듣지 않아도 되는 분들이 부러웠다. 눈으로 봐서는 도림천이 범람할 것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 4킬로미터 정도 도림천 상류쪽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 반환해 오는 분들이 시시각각 정보를 알려주었다. 주로가 물에 잠긴 구간이 있다고 했다. 먼저 반환해 오던 로운리맨님은 물이 차서 반환점까지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반환점 표시가 있는 기둥까지 잠겼을까? 일단 달려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도림천에서 먼 쪽 기둥으로 붙어서 달려갔다. 그냥 돌아갈까, 이 정도만 달려도 충분해,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반환점까지는 가야지 하면서 곡예하듯이 물을 첨벙거리며 달려가 반환 표시가 새겨진 기둥에 손을 짚고 되돌아왔다. 42.195킬로미터는 꼭 달려야 하니까. 단 1미터를 짧게 달렸다고 누구처럼 세계 기록이 취소되는 일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5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내내 무시하고 있던 시계를 보니 3시간 16분 중반이었다. 3시간 39분대를 노려볼까? 그러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더이상 무기력하지는 않았지만 5분 15초에서 20초 전후로 달리던 페이스를 4분 40초에서 50초 사이로 끌어올리기는 힘들어 보였다. 타협해서 킬로미터당 5분 페이스로는 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다음주 영동포도마라톤 풀코스를 달려야 할 사람이 조금 무리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들었지만. 사이렌에 이어 영등포구청 직원들이 나와 주로에서 나가라고 할까봐 걱정은 되었어도 이제 몇 킬로미터 남지 않았으니 부담은 덜었다. 공원사랑마라톤의 최고 장점은 그늘 구간, 비를 피할 수 있는 구간이 길다는 것인데 오늘은 4회전이다 보니 그런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노천 구간이 더 길어 비를 많이 맞았다. 앞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로운리맨님은 도대체 어디에? 건너편 주로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로운리맨님이 보였다. 지난 12월 11일처럼 나보다 1킬로미터쯤 앞서 있었다. 딱 봐도 3시간 33분대는 가능해 보였다. 대단하구나. 2주 전 간섭포하신 분이 2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제주도 여행도 다녀오느라 훈련도 부족했다고 했는데..... 꼭 물어봐야겠네.


 혹시나 3시간 39분대가 가능할까 했는데 41.195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페이스를 체크해 보고 욕심을 버렸다. 3시간 41분 02초로 골인하였다. 후반 5킬로미터를 그래도 24분대에는 달렸다. 지난 8월 6일 세운 8월 개인 최고 기록을 6분 13초 단축했고, 지난 해 8월 24일 세운 공원사랑 마라톤 코스 8월 최고 기록을 33분 07초 단축하였다.(그때는 2회전)


 로운리맨님은 일부러 후반 속도를 늦추어 다음에 세울 기록에 여유를 남겼다고 했다. 3시간 36분 29초. 엉뚱한 주로로 올라가 시간을 까먹은 것까지 하면 엄청난 페이스로 달려낸 것이었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달리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 효과적인 주법을 찾아내었고 그 주법대로 달린 결과 성과를 톡톡히 봤다고 했다. 시보리 (しぼり)주법이라고 했다. 그 주법 덕분에 로운리맨님이 돌아왔다. '로운리맨의 귀환(The Return of Mr. Lonely Man)'이라고 바로 이름붙였다. 올 가을 3시간 19분이 보이는 로운리맨님. 내 눈에 수시로 보이는 319 하는 로운리맨님의 환영(幻影)은 그저 환영이 아니었다. 로운리맨님이 잘 달리는 것은 새로운 모습은 아니긴 했다. 원래 그렇게 달렸어야 할 주자였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SUB-3 주자까지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쭉 지켜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구나.


 비를 맞으며 하천 범람의 위협을 극복하며 풀코스 레이스를 마친 사람은 모두 26명이었다. 그 가운데 로운리맨님이 1등, 내가 2등이었다.



도림천의 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도림교 위에서 찍었다.


평소에 자주 건너다니던 징검다리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50% 할인권으로 15,000원에 참가하였다. 아세탈님이 주신 젤을 미리 먹었다.


마라톤힐링카페 내부









공원사랑마라톤 코스 8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올 여름에는 3시간 50분대 달리기가 아예 없어졌다.

못 달려도 3시간 40분대이니 이건 뭘까 생각한다.


로운리맨님이 찍어주심


횡단보도를 건너기 직전


마포족발순대국에서 로운리맨님과 함께 순대국밥을......




포상콜라도 함께 하고..... 주로에서 펩시콜라는 마셨으니 완주 후에는 코카콜라로.....




홈플러스 신도림점에서 쇼핑을 했다.


 너무 무겁지 않을 정도로만 샀다.



저녁 늦게는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