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없을 수도 있었던 마라톤 대회였다. 적어도 일주일 전까지는 달릴 계획이 없었다. 추가 접수를 마감하는 6월 12일 월요일 대회 참가를 결정하였다. 화장품 세트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2012년 6월 24일 제1회 국민과 함께 하는 6.25 상기마라톤대회
2013년 6월 22일 제2회 6.25 상기 및 정전 60주년 기념 국민대통합 마라톤대회
1회, 2회 대회를 연속으로 출전한 경험이 있었다.
특전사전우회가 주최하는 대회로 현역 군인들, 특히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달릴 수 있는 대회였다. 개최지가 상암 월드컵공원인 것은 변함없었다. 오랜만에 돌아왔다.
북한의 침투 사례와 증거물을 전시하는 코너도 있었는데 내가 GP에 있었던 1992년 5월 비무장지대 3인조 침투 사건도 있었다. 3사단 GP의 성공적인 대처를 다른 GP에서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점검한다고 상급부대에서 방문 지도가 연달아 있어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대회에 아세탈님도 출전한다고 하여 전날 드릴 것을 챙겼다. 짜장라면 번들에서 하나씩 꺼내어 포장했다. 직화짜장, 짜파게티, 짜짜로니, 북경짜장, 열무비빔면. 출발하기 전 뵙고 드리려고 연락을 했더니 출발 30분 전쯤 대회장에 도착한다고 했다. 감기에 걸려 힘들다고 했다. 나는 오전 7시 30분쯤 대회장에 도착했다. 대회를 마치고 가야 할 데가 있어 짐을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었다. 대회장에서 배번을 받았다. 기념품은 완주 후에 준다고 했다. 화장실 다녀오고 스트레칭하고 책 읽으면서 아세탈님을 기다렸다. 참가자들이 점점 늘어나 시장통처럼 번잡해지니 아세탈님이 온다해도 찾을 수 있을까 불안했는데 정작 쉽게 찾았다. 미리 짜장라면 선물을 드리고 서로 사진찍어주고 달릴 준비를 했다. 눈가에 다크서클이 느껴져 얼굴에 '몹시 늙음' 도장이 새겨져 있을텐데. 아세탈님은 올해 동아마라톤 완주기념품 티셔츠를 입었는데 105 사이즈라고 해도 꽉 끼여 보였다. 나중에 아식스 티셔츠로 갈아 입고 오셨다. 같은 105 사이즈라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아세탈님은 보통 2개씩 끓여 드신다는데 같은 종류를 두 개씩 챙겼어야 했다.
페이스메이커는 1시간 45분, 2시간, 2시간 10분, 2시간 20분이 있었다. 앞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고 아세탈님과 뒷쪽에서 출발을 기다렸다. 마음같아서는 오늘도 1시간 30분대에 들어오고 싶은데 장담할 수가 없다느니, 오늘 더워서 쉽지 않을 거라르니라는 말을 하면서...... 지난 겨울에 비하여 하체쪽으로 둔중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은 아닐 것이라 더 늦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아세탈님이 주신 에너지젤을 들고..... 2주 전 강남구청장배 마라톤 때와 똑같은 2051번 배번. 그렇다고 1시간 34분대로 달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출발했다. 출발하면서 보니 중동고 마라톤클럽 주자 싱글렛 가운데 '안수길'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내가 아는 그 안수길님인가? 광화문마라톤클럽? 가까이 가니 맞았다. 반갑게 인사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내 옆에 2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있었다. 한강시민공원으로 내려가기 위하여 연결 보도를 따라갔는데 돌아올 때도 이 보도를 되밟아야 한다면 골인하기 직전 가파른 오르막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첫 1킬로미터는 5분 10초. 1시간 49분대의 기록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2킬로미터 표지판과 3킬로미터 표지판이 너무 빨리 나타나 3킬로미터를 12분만에 통과했다. 초반부터 킬로미터당 4분 페이스로 달릴 수는 없지 않는가? 첫 1킬로미터가 5분을 넘었는데 그 다음 구간을 3분 30초도 되지 않는 스피드로 달렸을리는 없었다. 이 대회는 코스가 짧은 마라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4킬로미터 지점을 19분을 넘겨 통과했으니 그것도 아니었다. 3킬로미터에서 4킬로미터까지 오는 데 7분 이상 걸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금요일 새벽 거의 잠을 못 잔 덕분에 당일 밤 자정이 되기 전에 잠을 잘 수 있어서 피로는 어느 정도 풀었다. 새벽 3시 반에 깨어 다시 자기 힘들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어도.
3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떨구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래도 지난 주보다는 페이스가 좋았다. 5킬로미터까지 나아가는 데 24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주에 비하여 더운 날씨인데 잘 달리고 있었다. 더위에 강해진 것인가? 1차 반환한 후에는 아세탈님을 찾느라 건너편에서 오는 주자들을 살피면서 달렸다. 파이팅을 외치고 난 후에는 다른 데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덥다는 생각을 하면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어려울 것같아 이런 정도의 더위에서 하프 정도의 거리라면 괜찮다며 애써 최면을 걸었다. 4분 40초, 4분 30초.... 천천히 달리는 것같아도 페이스는 올라갔다. 급기야 10킬로미터 지점을 47분에 지났다. 6일 전 대회보다 2분 이상 빨랐다.
햇빛은 작렬하는데 그늘 구간이 없었다. 오르막내리막이 가끔 있는 것도 신경쓰였다. 바람이 조금 부는데 내가 달려서 만드는 바람인지 원래 부는 바람인지 알 수 없었다. 발바닥 중앙부터 내딛어 앞꿈치로 치고 나갔다. 고개를 들어 가슴을 폈다. 제법 빠르다고 생각하고 현역 군인들을 숱하게 제치는데 그 와중에 나를 제치고 나가는 주자가 있었다. 추월 주자는 날씬했다. 살을 좀더 빼야 저 분과 보조를 맞출 수 있겠구나. 거리는 차츰 벌어지지만 열심히 따라간 덕분에 여러 명의 주자를 제쳤다. 14킬로미터가 넘어서야 2차 반환을 하였다. 15.1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간 10분이 지나기 직전이었다. 여유가 생겼다. 남은 6킬로미터를 킬로미터당 5분 페이스로 달려도 1시간 39분대 골인이 가능해졌다. 속도를 일부러 줄이지는 않았다. 해를 등지게 되었으니 오히려 달릴 수 있는 여건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스피드를 유지하였다. 나를 제친 날씬한 주자를 꾸준히 따라갔다. 돌아가는 길에 2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 뒤쪽에서 달리는 안수길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세탈님은 볼 수 없었다. 백색과 형광색이 배합된 티셔츠, 군청색 모자를 보면 아세탈님인가 했다가 몇 번이고 낙담했다. 2시간 20분 페메 주변에도 없었다. 설마 오늘 하프 SUB-3에 맞추는 것인가? 끝내 뵐 수 없었다. 아마 10킬로미터만 달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자, 이제 나는 저 날씬한 주자만 따라가자. 2킬로미터를 남기고 만난 급수대에서 그를 제쳤다. 그는 1킬로미터 정도 바짝 쫓아왔지만 거기까지였다. 나중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월드컵공원으로 가기 위하여 만나는 오르막 레인 등장. 10킬로미터 주자들이 걷고 있었고, 하프 주자들은 굼벵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힘차게 올라붙었다. 숨이 차오를 무렵 평지가 나왔다. 사정없이 스퍼트했다. 지난 4월 15일 이곳에서 세운 1시간 38분대의 기록을 깨뜨릴 수 있을 것같았다. 날씨는 더 더워졌지만 스피드는 오히려 좋아졌다.
골인 아치! 앗! 아세탈님이 보이네. 스마트폰으로 나를 찍네.
신나게 달렸다.
아세탈님이 내 골인 장면을 찍어주셨다.
내 뒤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계시기에는 1시간 38분대로 나오지만 늦게 출발한 덕분에 실제 기록은 1시간 37분대.
골인한 후 내 더위를 식혀 주고 싶었는지 특전사 전우회 한 분이 내게 상체를 앞으로 숙이라고 했다. 차가운 생수를 등쪽에 부어주셨다. 매우 시원했다. 윗몸을 일으키니 물이 흘러내려 바지와 신발이 젖었지만.... 이런 경험.... 처음이라 나쁘지 않았다.
01:37:56.96
6월 중순. 월드컵 공원 구간은 여의도와 달리 오르막이 있어 시간을 잡아먹는데도 더 좋은 기록이 나왔다. 1회 대회 때 세운 기록을 10분 단축했다. 2회 대회 때보다는 15분 빨라졌고.
아세탈님은 하프를 달리다간 너무 오래 걸릴 것같아 과감하게 10킬로미터 종목으로 전환했다고 했다. 아세탈님과는 지난 4월 15일처럼 월드컵경기장 푸드코트에 가서 돈까스 세트와 치킨, 콜라를 마시며 뒷풀이를 하였다. 다음날 각기 다른 장소에서 10킬로미터 종목에 참가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세탈님과 이른 점심 식사를 하다.
콜라는 리필해서 두 번 마시고.....
하프 전용 마라톤화에 칩을 달고
생각보다 매우 잘 뛰었다.
판매가격이 71000원인 제품이었구나. 35000원을 내고 이 제품을 얻고 마라톤 달려 운동도 했으니 이익이네.
안쪽의 두 개는 갖고 다니기 좋겠다. 바깥쪽 큰 것은 집에 놓아두고 쓰고......
화장품이 이 봉투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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