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경 잠들고 새벽 2시가 넘어 잠을 깨었다. 몇 시간 자지 못했다. 요란한 꿈만 꾸었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더 자자고 마음을 달래었으나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7시 풀코스 출발이다 보니 시간에 대한 부담을 이겨낼 수 없었다. 또 한번의 새벽마라톤이라니...... 새벽 4시에 라면을 먹었다. 5시 되기 전에 151번 버스를 탔고, 5시 40분이 조금 넘어 을지로입구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탔다. 몹시 고단하기 짝이 없는데 잠깐이라도 잠을 자지 못했다. 신도림역 테크노마트 10층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오는데 빗줄기가 만만치 않았다. 곳곳에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발을 다 적시고 말았다.
마라톤TV 사무실에 가서 배번을 받아서 달릴 준비를 해서 도림교쪽으로 나갔다. 비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아까처럼 폭우는 아니었다. 화장실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을 기다렸다. 용구님, 준한님, 은기님 등이 아는 분들이 계셨다. 매주 뛰시는 분들이니. 그리고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아는 분들도 여럿 계셨다.
그냥 하프만 달리고 말까? 오늘같이 잠이 부족한 날은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잘 달릴 수 없는 법. 후반에 나아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겨우 끌고 완주하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마음을 달래고 또 달래며 나아갈 것은 뻔하지 않는가?
그래도 일단 어느 정도 상태인지 점검해 보기로 했다. 신도림역쪽에서 신대방역쪽으로 도림천을 따라 달리다 징검다리를 건너 우회전했다가 되돌아 오는 레이스를 네 번 해야 하는 대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있어서 요즘같이 더운 날 달리기는 좋은 날씨였다. 몸상태만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좋은 기록으로 달릴 수도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10.54875킬로미터의 코스를 네 차례 달린다는 것은 얼마나 지겨운 일인가? 그렇다고 주최측에 두 차례만 왕복하는 코스로 바꾸어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골인지점과 반환지점에 급수대만 설치하면 되는 네 차례 왕복코스를 두 차례 왕복코스로 바꿀 경우 몇 십 명이 되지 않는 참가자 규모로 볼 때 급수대를 하나 더 설치하기에는 여력이 없어 보였다. 자주 왕복하다 보니 수시로 만나게 되는 주자들과 인사하면서 지겨움을 달래었다.
출발하자마자 치고 나가는 러너 한 분이 있었다. 옆에서 달리는 분들이 저 분 스타일이라고 했다. 일단 빨리 달려 놓는 것. 나는 2등으로 달리고 있었으나 2킬로미터 남짓 달리고 나니 뒤에서 치고 나오는 분이 있었다. 나는 세 번째 주자로 밀렸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면서 SUB-4를 떠올렸다. 네 차례 왕복이니 달릴 때마다 1시간 이내로만 달려주면 SUB-4가 가능하다는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5.27킬로미터 반환 지점까지 30분 이내로 달려주어야 했다. 따로 거리 표지판이 없으니 반환점에서 시간을 체크해 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반환 확인 도장을 받으면서 시계를 보니 31분이 지나 있었다. 이대로 달리다간 4시간 10분 정도의 기록으로 골인할 수밖에 없었다. 더 페이스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 너무 졸려서 눈감고 달리기까지 하니 기록이 더 쳐질 수도 있었다. SUB-4. SUB-4. 결국 SUB-4다. 내 기량이 SUB-4가 아예 불가능해서 SUB-4를 전혀 꿈꾸지 않거나, 아무리 힘들어도 SUB-4는 기본으로 하는 실력을 갖추거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피곤하니 소변을 자주 보게 되었다. 10킬로미터도 채 달리기 전에 일을 보아야 했다. 배탈 기미도 조금씩 보였다. 이러니 기록이 더 나아질리가 없었다. 출발점으로 돌아갔더니 내 10.55킬로미터의 기록은 1시간 1분이었다. 갈 때는 31분, 올 때는 30분이니 조금 빨라지기는 했다. 다음 2회전은 1시간만에 했다. 20킬로미터 남짓 보았을 때 다시 소변을 본 것치고는 괜찮았다. 하프 거리를 달리고 났을 때 기록이 2시간 1분이 된 것이다. 남은 하프에서 시간을 줄이지 못한다면 오늘은 SUB-4를 아슬아슬하게 실패할 듯이 보였다. 다행히 3회전할 때에는 졸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의병마라톤에서 하프 이상을 달리고도 끊임없이 졸렸던 것같과는 다른 점이었다. 1,2회전 할 때는 비가 흩뿌리는 수준이라 달리기에는 참 좋았다. 하지만 3,4회전할 때는 비가 그쳤고 구름 사이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비치기도 했다. 어차피 고가 아래를 뛰는 구간이 길어서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공기가 데워지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오버페이스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웬만하면 SUB-4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기상 상태는 4회전 할 때가 가장 좋지 않았다. 비가 언제 내렸느냐는 식으로 바뀌었으니..... 하지만 내 몸 상태는 오히려 좋아졌다. 3위로 달리던 나는 3회전 끝날 무렵 2위로 달리던 분을 제칠 수 있었다. 3회전 끝나는 시점에 3시간이 넘지 않았으니 남은 10.55킬로미터를 1시간 정도로만 달릴 수 있다면 SUB-4가 가능해졌다. 힘도 남아 있었다. 반환점 도착. 이제 마지막 도장을 받았다. 도장찍어주는 분이 참 잘 달린다고 칭찬해 주셨다. 3시간 29분 경과. 5.27킬로미터를 31분에 달리면 SUB-4가 무난했다. 이따금 공격해 오는 담배 냄새를 이겨내며 돌아가는 길은 28분에 달렸다. 긴가민가했는데 SUB-4를 달성하였다. 주최측에서 내 기록이 3시간 57분 7초임을 확인해주었다. 지난 해 6월 17일 수요마라톤에서 4시간 15분 41초에 달린 데 비하면 엄청 발전한 것이다. 3회 연속 SUB-4 실패 끝에 SUB-4에 성공한 것이다. 2등으로 달리다 나에게 추월당한 뒤 10분 늦게 골인한 주자가 내 달리기에 대하여 평했다. 후반에 참 잘 뛰시네요.
달리기도 전에 다 젖었던 양말과 신발은 어느새 다 말라 있었다.
완주하고 나니 배탈이 심해졌다. 새벽에 라면을 먹고 나온 것은 잘못이었다.
긴장이 풀리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112번째의 풀코스, 82번의 SUB-4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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