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 것일까?
새벽 1시 30분 쯤 겨우 잠들어 5시가 되지 않아 기상....
결국 네 시간도 못 자고 풀코스를 달린다.
지난번 풀코스 달린 지 불과 20일... 한 달도 쉬지 못한 상태에서 풀코스를 달린다고?
그래도 괜찮아. 오늘 흐린다고 했으니까.
출발시간도 8시로 이른 시각이고....
날씨가 흐리다는 일기 예보는 잘못 되었다. 해가 쨍쩅 내리쬐었다.
구름이 낀 것은 완주한 후였다.
배번과 함께 동봉되어 온 행운권을 7시 15분까지 추첨함에 넣고 가라고 했다.
서둘러야 했다. 촬영이 있으니 카메라 장비 물품 보관으로 시간을 좀 보낸 뒤 7시 10분에야 추첨함에 행운권을 넣었다.
뭐, 이런 건 되는 일도 없는데.....
7천 명이나 나왔는데.... 되겠어?
월드컵 경기장 남문 광장을 쭉 빠져 나가 벤치에 앉아서 일단 긴 바지를 벗고 웃도리를 갈아 입었다.
서둘러야 했다. 물품보관하고 난 뒤 좀 쉬고 있어야 하니까.
추첨이 시작되고 있었다.
딴 나라 이야기하고 있네...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그렇지 않으면 3백 번 가까이 나간 마라톤 대회에서 이렇게 추첨이 되지 않을리가 없어.
마라톤 기획사 하시는 분도 다음에 기회되면 자전거 당첨되게 해 준다고 말을 했을 정도니... 무언가 음모가 있는 거야.
북경마라톤 참가권 행운은....
1천... 어떻게 첫번째 번호가 같네.
9십... 이런! 나랑 같네. 하지만 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안 될 놈은 안 되니까.
4번... 1094번... 이것 내 번호인데... 이를 어쩌나?
2백 미터나 떨어져 있는 대회 무대까지 가야 하는데... 내가 우샤인 볼트도 아니고.....
신발을 구겨 신고, 바지는 벗어서 가방에 넣지도 못하고 달렸다.
사회자는 애타게 내 번호를 부르고 있었다.
광장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배번을 흔들어도 보일리 없었다.
여기 있어요! 라고 외쳤다. 한 명 두 명씩 내 모습을 보았다.
달림이들이 알려 주었다. 저기 있네요. 저기 당첨자 있어요.
중간에 시간을 번 사건이 있었는데 1094번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자기가 당첨자라고 주장하였다.
그 실갱이가 벌어지는 사이 내가 도착하였다.
무대에 올라갔다.
우째 이런 일이...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겨도 되는 거야?
정말 내가 베이징에 가는 거야.
하품을 연방 해대며 오늘 풀코스를 어떻게 달리지 하던 내게 에너지가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페메를 따라잡기 위하여 애쓰지는 않았다.
직감적으로 저 페메는 나와 함께 달리게 될 거라고 믿었다.
10킬로미터 쯤 달리면서 한 명 두 명 제치고 나가는데 지나치게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달리면 무릎도 허리도 아프고 스피드도 나지 않을텐데 말해 주어야 하나?
주제넘게 그러면 안 되겠지.
아직 젊은 친구라 달리기 경험은 별로 없어 보였다.
만날 기회가 말해주겠지만.....
1339번 배번을 단 이 젊은이와는 다시 만나게 된다.
정연관씨는 내가 기준이 되어 따라붙었던 것이다.
이것도 인연이니 대화라도....
-오늘 목표를 어떻게 잡고 계세요?
-4시간 이내로 달리려고요.
-아! 저 앞에 있는 풍선이 4시간 페메예요. 저분들과 함께 가면 4시간 이내 골인해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무릎과 허리가 좀 아파서 잘 모르겠어요.
-아까 보니까 상체를 너무 숙이고 달리던데 단거리가 아닌 이상 그렇게 달리면 무릎이나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갑니다. 좀더 세우세요.
정연관씨는 매우 고마워했다.
그는 오늘이 첫 풀코스라고 했다. 그래서 두려움 반 기대 반이라고 했다.
30킬로 이후는 또다른 마라톤이니 초반에 힘을 아껴 두라고 했다.
내 경험을 풀어 놓고 조언해 줄 수 있었다. 친해졌다.
20킬로미터까지는 동반주하였다. 급수대를 지나면서 내가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달릴 때 결코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냥 달렸다.
반환점은 25킬로미터를 지난 지점에 있었다.
반환한 이후 보니 건너편에서 정연관씨가 몇 백 미터 떨어져 오고 있었다. 손을 흔들어 주었다.
27킬로미터 쯤 달렸나? 나보다 50초 정도 늦게 반환한 정연관씨가 내 옆에 나타났다.
달리기 능력이 좋은 친구였다.
30킬로미터까지 함께 달렸다. 화장실이 나오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였다.
곧 나타날 줄 알았는데 끝까지 내 옆에 나타나지 않았다.
30킬로미터 이후에 만나는 풀코스의 잔인한 경험을 제대로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오늘 함께 달린 페메도 한 사람은 제 시간을 지키지 못하였다. 그만큼 날씨가 더웠다.
37킬로미터에서 38킬로미터 지점이 가장 길었는데 실거리가 1.5킬로미터 이상 되었을 것이다.
페이스메이커도 이 구간에서 아주 넋을 놓았다고 하였다.
한강시민공원에서 달린 첫 풀코스...... 나름대로 잘 달렸다.
골인한 이후 리그 촬영이 있어 바로 가야 했지만 그래도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래도 함께 동반주했던 사람, 오늘 생애 첫 풀코스를 완주하는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가 골인한 지 20분 쯤 지나서야 정연관씨는 들어왔다.
-바로 따라올 줄 알았는데 안 오시더라고요.
-저도 따라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후반에는 걷다 뛰다 했어요.
시간이야 어떻게 되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마라토너에게 찬사를 보내었다.
다음에 뵈요 하였다.
내가 마라톤 대회에 자주 나가는 편이니 아마 만나게 될 것이다.
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LIG 마라톤 뉴발란스 기념 티셔츠
속옷: 없음
신발: 아식스 타사게일 와이드2 마라톤화(풀코스 전용)
장갑: 없음
바지: 아식스 반바지
양말: 아디다스 중목
목도리: 없음
테이핑: 오른쪽 무릎 두 줄/ 왼쪽 종아리 세 줄..... (선물받은 것)
오늘도 흰 풍선 뒷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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