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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챌린지 레이스(2025/02/23)-FULL 239

HoonzK 2025. 4. 25. 21:14

지난 해 참가 신청을 해 놓고 감기 몸살 때문에 기권할 수밖에 없었던 대회. 올해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추스려서 출전했다. 일주일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달리기 조건이 좋지 않았다.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곤두박질쳤고, 왼쪽 다리 오금 통증은 아직 남아 있었다. 달리는 동안 언제라도 포기할 결심을 했다. 춘천마라톤 완주 이후 넉 달 동안 하프 이상의 거리를 달려본 일이라곤 없으니 어차피 좋은 기록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긴팔 티셔츠 두 장 위에 비닐 한 장을 덮어 썼다. 화장실은 장사진이라 대회장에서는 간단한 소변조차 볼 수 없었다. 여의도 공원까지 다녀와야 했다. 여의나루역 도착 직전 1분간 잠이 들어 다음역인 여의도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데다, 날씨가 추우니 나무늘보처럼 굼뜨게 움직였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이미 출발 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출발 아치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속도를 올린 것은 그때 뿐이었다. 출발 패드를 밟기 무섭게 속도가 줄었다. 옷에 걸친 비닐 소리를 들으며 땅따먹기 하듯이 발을 굴리는데 느려도 이렇게 느릴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춘효형님, 한구형님, 길석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첫 1킬로미터는 6분 20초가 걸렸다. 그 이후 단 한번도 6분 이내 페이스로 들어가지 못했다. 6분 12초 페이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동안 신어 왔던 아식스 춘마 에디션을 포기하고 하프 때 신었던 신발을 신었다. 양말도 평소 신는 얇은 소재를 선택했다. 전날 발등을 밟혀서 생겼던 통증이 남아 있는 게 걱정이었다. 바지는 츄리닝 바지를 입었다. 겨울에 훈련할 때 입는 것과 똑같은 옷이었다. 이런 복장으로 3시간 23분대로 달린 일이 있으니 나중에 옷 탓을 할 수 없었다.
 
 이것은 풀코스 LSD였다. 
 서브 4를 달성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처음부터 속도는 포기했다. 시간주가 아니라 이건 거리주였다. 목표 하나는 분명했다. 지지부진한 속도이지만 절대 걷지는 말자는 것. 후반에 심기일전. 이런 건 없었다. 비닐은 7킬로미터나 달린 후에야 벗었다. 땀이 빠져나가지 못해 상의가 흠뻑 젖어 있었다. 차가운 날씨에 노출되자마자 진저리를 칠 정도로 한기를 느꼈지만 홀가분한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방역용이 아닌 보온용으로 쓰고 있던 KF94 마스크는 10km를 넘긴 후에야 벗었다. 아무리 달려도 혹한의 칼바람에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런 날씨를 한 두번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경험 덕분에 현재의 고충을 이겨내었다는 전례를 이번에도 확인할 수 있기를.....
 
 속도가 느린 만큼 풀코스 완주 시점은 아득하기만 했다. 너무 지겨운데 하프만 달리고 말까? 그럼 오늘 처음으로 2시간을 넘기는 하프가 되는데. 32.195킬로미터를 달리면서 다음 주 풀코스를 준비하는 것으로 칠까? 10킬로미터만 더 달리면 되는데 아깝잖아. 이러면서 한강을 달리다 안양천으로 접어들었고, 좁아진 공간에 응축해서 쏟아붓는 듯한 바람에 넋이 나가면서도 32.195킬로미터 반환점을 통과해, 풀코스 반환점인 26킬로미터 지점까지 기어이 나아갔다. 기다리던 반환을 했으니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안양천에서 11킬로미터, 한강을 만나 5킬로미터를 채우는 레이스를 각오했기에 이제 다른 선택은 없었다. 30킬로미터를 넘긴 후 찾아올 피로 누적과 에너지 고갈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집중했다. 급수대마다 거르지 않고 초코파이와 게토레이를 먹었다. 에너지원을 미리 충전해 놓자는 계산으로 먹기 싫어도, 먹을 필요가 없어도 먹고 마시고 했다. 안양천변 화장실은 거들떠 보지 않았다. 어차피 천천히 달리는 거라 둔덕 화장실로 가도 상관없었지만 평지를 달리다 계단을 오르면 동작이 바뀌어 부상당할 우려가 있어 한강변의 평지 화장실을 기다렸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에는 38킬로미터 지점, 한번만 들렀다. 
 
 안양천에서 추월했다, 추월당했다 하던 4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는 내 앞에서 멀어졌다. 내 페이스는 4시간 20분을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왼쪽 다리 오금에는 근육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그 테이프 덕분에 오금 통증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믿었다. 40킬로미터를 넘기고 나면 혹시나 5분대로 달릴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냥 6분대였다. 걷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끝내 풀코스 골인 지점은 나오기 마련이라고 수십 수백번을 되뇌이고 또 되뇌이다 보니 정말 골인점이 보였다. 
 
 04:21:39.03
 
 5분대 후반으로만 들어가는 구간이 몇 번만 있었으면 4시간 19분대로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게 아니었다. 그게 가능했으면 4시간 싱글을, 싱글이 가능했으면 서브4를 욕심내는 수순을 밟지 않았겠는가?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한번도 걷지 않고 42.195킬로미터를 달려내었다는 것. 
 기어이 달려내었구나 하는 성취감과 기록은 지지부진하구나 하는 아쉬움이 뒤섞이는 복합적인 감정을 추스리며  완주 간식과 메달을 받은 뒤 대형 탈의실쪽으로 가까이 왔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 분 맞나? 맞았다. 아세탈님이었다. 운동삼아 집에서 한강을 따라 10킬로미터나 걸어 대회장에 왔다고 했다. 골인 직전 내 모습을 동영상으로 녹화까지 했다고 했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고된 달리기를 할 때 응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그래서 2023년 로운리맨님이 내게 열 번이나 응원을 부탁했던 거였구나, 했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거리로 요기하며 귀가하려던 내가 삼겹살 회식을 하게 되었다. 엄니식당이 문을 닫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엄니식당에서 가까운, 급랭삼겹살과 김치볶음밥을 파는 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아세탈님 덕분에 풀코스를 달리고 제대로 된 에너지 보충을 했다. 거지처럼 달리고 제왕처럼 먹었다. 일단 오늘 풀코스를 달려서 거리 감각을 익혔고, 에너지 충전도 제대로 했으니 6일 후 있을 또 다른 풀코스에서는 훨씬 잘 달리게 될 것이었다. 사실 지난 해 3월 1일 풀코스는 완주한 시점에도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였고, 어이없는 사건을 당해서 4시간 33분으로 골인했는데 올해 3월 1일 풀코스는 그렇게까지 바닥을 치지는 않을 것이었다. 기온이 영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날은 하프를 달리는 아세탈님과 응원을 주고 받을 수도 있을테니 더 힘을 받을테고.....
 

 

 
 

 
 
 
 

급랭삼겹살 좋았다. 아세탈님 덕분에 이런 호사를 다 누린다. 혼자라면 이렇게 시켜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청국장
김치볶음밥까지.... 먹는 것도 풀코스였다.

 

소금기 잔뜩 배인 츄리닝 바지. 신발은 일주일 전 하프에서 신었던 아식스 제품으로 했다.

 

 
 
 
 

아세탈님이 다리 위에서 찍어준 동영상. 41킬로미터를 넘었을 때였을 것이다. 꾸준히 달리는 모습이 찍혀서 좋았다. 깃발 들고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도 찍혔다. 오른쪽 팔에 끼운 KF94 마스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깃발을 보니 바람에 얼마나 시달린 레이스였는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라톤대회 복장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추우니 어쩔 수 없었다. 골인 직전 V자도 날리는 여유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