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21회 한강시민 마라톤대회(2024/12/21)-HALF 211

HoonzK 2024. 12. 30. 16:55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있었다. 언젠가 죽을 거라는 것. 돌연사하지 않으면 늙고 병들 거라는 것. 한없이 추해지리라는 것.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일, 너무 급작스러운 일,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 그것도 하프 완주를 눈 앞에 둔 20킬로미터 지점에서 발생했다. 새벽에 눈이 내려 주로는 엉망이 되어 있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 애당초 속도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 햄스트링이 아파서 뛸 수 없었다. 아프다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온 것도 아닌데 걸을 수조차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 1년 동안 아팠던 그 부위였다. 1킬로미터 남았다고 갑자기 속도를 낸 것도 아니었다. 간밤에 잠이 오지 않아 너무 뒤척였기 때문에 1시간 40분대 목표는 아예 접었는데 이럴 순 없었다. 마라톤 대회에 6백 번 이상 참가했지만 마지막 1킬로미터를 남겨 놓고 아파서 걸을 수도 없는 일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다 왔다는 생각에 도파민 폭발하여 치고 나가는 게 최후의 1킬로미터 아닌가? 나같은 경우 후반에는 더 그러지 않았던가? 눈밭 위를 달리든 폭우 속을 달리든.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넋이 나갔다. 두꺼운 후드를 입고 땅바닥을 내려보며 달리는 MAD DAWGS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다가 완전히 떨군 게 몇 백 미터 전인데 그가 멈춰 있는 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사라져 버렸다. 달리기를 멈추고 햄스트링을 몇 차례 때리고 살짝 뛰어 보는데 사무치게 아팠다. 걸어가야 하나 싶어 걸으려고 했지만 내 몸은 어떻게든 뛰려고 했다. 움직임을 멈추고 통증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다 아주 천천히 뛰었다. 슬로우 모션도 이런 슬로우우우 모오오션이 없었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남기고 수백 명에게 추월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진기한(?) 경험이었다. 4분대로 뛰고도 남을 마지막 1킬로미터를 7분을 넘겼다. 

01:56:43

 주최측은 1시간 55분 이내에 달릴 A군과 그 이후로 달릴 B군으로 구분해서 출발시켰다. 달리기 여건이  좋지 않아도 1시간 55분 이내로 골인할 수 있을 것 같아 A군에서 출발했었다. 그런데 후반 돌발 상황으로 B군이 되어 버렸다.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맡은 달해아름다워님과 악수하며 동반주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그 분을 따라가겠다는, 아니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일주일 내내 야식을 먹어 2킬로그램 쯤 찐 상태이기도 했다. 생활 리듬도 깨어져 있었다. 전날 새벽 5시 30분에 잔 사람이 다음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는 방식으로는 대회에 나와 잘 뛸 수 없었다. 몇일 동안 도서관 오가느라 책 대여섯권을 들고 메고 뛰면서 다리에 하중을 심하게 받았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대회 전날 오후 다리를 심하게 쓰면서 살짝 통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하프 정도의 거리는 무리가 없을테고 거기에 천천히 달리면 아주 편안한 레이스가 될 거라고 자신했었다. 눈까지 내려 주로는 엉망이었고, 출발 전 여의도공원 화장실까지 갔다 오느라 양말이 반쯤 젖은 상태라고 해도 말이다. 추워서 마스크를 일주일 전보다 더 오래 쓰고 있기는 했다. 달리다가 또 화장실에 다녀왔다. 기온은 일주일 전보다 높았지만 내 몸은 더 춥게 느꼈는데 그 와중에 반바지를 입고 달리면서 지속적으로 다리가 추운 날씨에 노출되니 근육에 더 무리가 왔을 수도 있다. 반환 전 59분 13초, 반환 후 57분 30초. 이  지표로만 본다면 후반에 잘 뛴 셈이지만 반환 후 54분대가 되는 게 맞았다. 

 2024년 12월 15일 14.14킬로미터를 달렸다. 2024년 11월 24일 10.22킬로미터를 달렸다. 이게 다 하프 대회에 참가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 나흘이 지나도 달리지 못했다. 고통은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다시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생겼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지독한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이었다. 12월 말이나 1월 초 쯤 공원사랑마라톤대회 풀코스라도 참가할 계획까지 잡고 있던 나로서는 너무 큰 타격이었다. 앞으로도 대비할 틈도 없이 어려움이 들이닥칠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젓는 일도 잦아졌다.  이번 일은 샤워하고 나와 피곤해서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있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영면에 들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전혀 관련이 없겠지만 내가 아픈 부위는 5년 전 아버지가 마을버스에서 내리다 미끄러져 다쳤던 고관절 부위와 일치했다.
 

 
 

여의나루역을 빠져나가니 눈을 쓸어낸 흔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여의도이벤트광장이 아닌 물빛무대쪽으로 8백 미터 이동해야 했다. 이동하면서 발은 서서히 젖어들게 된다.

 

참가자들이 이동중에 있다. 대회 출발 1시간 전이다.

 

아예 눈이 쌓여 있거나 완전히 녹았거나 하면 좋겠지만 이 어중간한 바닥 상태는 무엇인가? 어녹은 길.... 최악이다.

 

이런 주로를 달려야 한다는 것

 

발이 이미 축축해졌다.

 

 
 

하반기에 1시간 40분대 주자가 되었다가 돌연 1시간 50분대 후반 주자가 되어 버렸다.

 
 
※ 하프 완주자가 1,358명. 지난 주 시즌마감 마라톤 대회보다 더 많았다. 10킬로미터 완주자도 2,389명이었다.

※ 주로 도우미로는 공원사랑마라톤 주참가자들이 보였다. 춘효형님, 의계형님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아이언맨 기민님과도 파이팅을 주고 받았다. 안양천쪽에 계신 분이 은기님이 아닐까 싶었는데 내 적극적인 인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아닐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