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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다. 첫 1킬로미터 5분 33초, 첫 2킬로미터 11분 22초. 그저 2시간 이내 1시간 59분대면 된다고 믿고 뛰었을 뿐인데 무려 5년만에 1시간 45분 이내로 골인했다. 1차 반환점인 8.7킬로미터까지는 킬로미터당 5분 16초로 달리다가, 그 이후 2차 반환점인 16.1킬로미터까지는 4분 48초 페이스로 달렸다. 마지막 남은 5킬로미터를 4분 40초 페이스로 달렸는데 그 5킬로미터는 23분 20초만에 주파한 것이었다. 숨을 헐떡거리거나 인상을 찌푸리거나 하는 일 없이, 목숨 걸고 달린 것도 아닌데 나온 기록이라 의아했다. 11킬로미터를 지나서는 화장실에도 들렀는데.
적어도 10년은 더 사실 것 같았던 아버지가 급하게 두 달을 앓고 가시고 나니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손목에 뛰던 맥박이 멈추는 순간을 지켜볼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 신청한 대회이니 참가하긴 한다만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면 포기할 의사가 있었다. 어차피 죽어 없어질 몸. 뭐한다고 이렇게 달리나. 그런 회의감이 적잖이 들었다. 그런데 산 사람은 결국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지난 해는 11월 중순 영하의 날씨에 출발했지만 올해는 여름이 길어진데다 대회일도 한 달 이상 당겨져 조금 덥게 느껴지는 날씨 속에서 스타트했다. 햇볕이 강했기 때문에 서늘한 느낌이라곤 없었다. 그래도 한 달 전 대회를 떠올려보면 이렇게 시원한 날씨가 없었다. 달리는 동안 기온이 오르고 햇볕도 작렬했지만 달리기에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올림픽 공원 산책로를 따라 달리며 두 개의 다리를 건너고 난 다음 한강시민공원쪽으로 빠지는데 그게 3킬로미터였다. 한강시민공원에서는 대놓고 자전거 도로를 달리지는 못했다. 주최측에서는 산책로쪽으로 주로를 안내하고 있었다. 달리다가 방향을 트는 경우가 적지 않아 정신 사납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자전거와 충돌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 수고를 마다하지 말아야 했다. 웬만하면 산책로를 따라 달리는 레이스를 펼쳐서일까? 5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이 행복한 하루 되세요,라고 했다. 뜻밖의 응원에 주로가 떠나가라 감사하다고 했다.
2킬로미터 직전 20504 ㅂ탁님이 주로를 바꾸면서 부딪칠 뻔 했다. 하늘색 캡에 형광색 티셔츠. 짧고 희끗희끗한 머리, 초로의 나이. 그가 내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2시간 페이스메이커 앞으로 치고 나왔기 때문에 내게는 다른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했는데 ㅂ탁님이 내 기준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달린 거리가 늘어날수록 그 분과는 멀어졌다. 처음에는 50미터 이내였지만 중반 이후에는 100미터 이상 멀어지기까지 했다. 못 잡으면 말고..... 내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1차 반환점과 2차 반환점을 지나기 전 마주 보게 되니 얼굴을 외웠다.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골인점 500미터를 남기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 동반주는 없었다. 바로 추월하게 되었다. 킬로미터당 4분 40초로 달리는데 5분 4초로 달리는 사람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은 못 보았지만 163.9cm의 키를 한 김채원과 모습이 비슷한 여성 주자를 따라가기도 했지만 잠시였다. 풍선이 끊어진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와 19킬로미터 지점에서 대화했는데 추월하느라 그것도 잠시였다. 근래에 없던 스피드로 치고 나가고 있어 왼쪽 발목이 시큰거리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의외로 좋은 기록이 나와 성취감이 남달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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