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걸그룹 신인상은 에스파가 독식했다. 2022년에는 대형 신인이 세 팀이나 등장하여 각축을 벌였다. 여느 해 같았으면 엔믹스나 케플러가 수상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는 대상을 받아도 될 만큼 너무 막강했다.(실제로 MAMA에서 아이브는 대상까지 받았다.) 걸그룹 신인상을 어느 한 팀에게 주기가 어려워 보였다. 2023 골든 디스크 어워즈에서 세 팀이 신인상을 공동 수상한 건 당연해 보였다. 그렇다면 코로나 유행 초창기였던 2020년에는 신인상을 어느 팀이 받았을까? 평균 나이 17세의 7인조 걸그룹 위클리가 신인상을 쓸어갔다. 신인상을 받은 위세치고는 위클리의 차후 행보는 조금 아쉬워 보였다. 히트곡이 있었지만 만인이 알 정도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2023년 제주도 워킹 홀리데이 예능 프로그램을 찍었고, 퀸덤 퍼즐 경연에 멤버 네 명이 참가하여 존재감을 뽐내었다. 급기야 올해 11월에는 컴백했다. 컴백곡 VROOM, VROOM은 듣기 편하고 경쾌한 팝이었다. 위클리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마라톤을 달리는 동안 귓전에 'VROOM, VROOM'의 멜로디가 맴돌아 주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반부터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면 내 발걸음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첫 1킬로미터가 5분 35초가 나올 때부터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후 5분 10초에서 15초 페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체감온도는 영하권이었지만 2킬로미터를 지나 보온용 비닐을 뜯어 버렸고, 3킬로미터를 지나서는 함께 달리던 효준님을 떠나 앞으로 치고 나갔다. 다들 긴 바지를 입는데 나는 맨살을 드러내었다. 성하형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내가 대견한 듯 출발 전 내 허벅지를 한대 쳤다. 왜 때려요, 하니 웃으면서 열 나라고, 했다.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장갑을 꼈다. 허수아비님이 선물했던 프로스펙스 파란색 장갑으로 웃도리 색깔과 맞추었다. 완주할 때까지 장갑은 벗지 않았다. 요즘은 급수대가 나와도 장갑을 벗지 않는 습관은 잘 들인 것 같았다. 감기 몸살을 안고 달렸던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추워만 졌을 뿐 매우 편안했다. 5킬로미터 지점에 급수대가 없어 당황했지만 6킬로미터 지점에 급수대가 있어 수분 보충에 어려움은 없었다.
VROOM, VROOM. 위클리의 노래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러니 속도를 늦추어도 킬로미터당 페이스가 5분 20초를 넘지 않았다. 엑셀을 밟아 on the street 멈출 수 없는 vibe 터질 듯한 feeling Drive baby drive Can't see red lights 자유로워 우린 keep on driving VROOM VROOM
대회 출발 전 가수 홍진영이 와서 히트곡을 연달아 불렀는데 그 노래는 거의 생각나지 않고 위클리 신곡 VROOM, VROOM만 들리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내 평균 페이스는 킬로미터당 5분 8초가 된다.
※ 영국의 유명 매거진 Vanity Teen은 'VROOM, VROOM'을 2023년 최고의 K팝으로 선정했다.
초반에 평소보다 빨리 달리면서 2시간 이내 완주는 너무 여유가 생겨 혹시나 1시간 49분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페이스메이커를 찾는데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달렸다. 고맙게도 아이유 3단 고개에 진입하기 전, 8킬로미터와 9킬로미터 사이에 1차 반환점이 있었다. 1시간 40분 언저리의 페이스로 용왕산 기수님과 로운리맨님이 연달아 나타나기에 두 분의 승부가 궁금해졌다. 로운리맨님에게는 따라잡아 보라고 소리쳤다. 1차 반환한 후에야 나보다 늦게 출발한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페메는 9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나를 제치고 나갔다. 맞바람 때문에 페이스가 조금 떨어지기도 했고, 초반에 빨리 달렸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속도를 늦추기도 해서 효준님에게도 추월당했다. 그렇다고 함께 가려고 속도를 내지도 않았다. 그 분은 그 분 나름대로의 페이스가 있듯 나도 나 자신의 페이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2시간 페이스메이커 풍선을 달고도 1시간 50분 페이스로 달리는 페이스메이커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 멋대로 달리려면 왜 페메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마디 하려다 참았다. 이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2시간 10분 페메 두 사람 사이에 2시간 20분 페메가 끼어 있기도 했다. 달림이들의 기준이 되어주며 배려를 미덕으로 삼아야 할 사람들의 태도가 아쉬웠다. 페메 임무 불이행에 대한 제재같은 것이 전마협에는 없으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광화문마라톤클럽처럼 페메 임무를 제대로 못했을 경우 반성문을 작성 게시하는 일이 전마협에는 없을 테니.....
솔직히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대회장에 나가지 말까 싶었다. 요즘 대회에 자주 출전하니 이 대회는 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굳이 추운 날 왜 뛰어, 하는..... 하지만 대회장에 나오니 대회장 분위기 덕분에 포기할 마음은 거의 사라진다. 마라톤이란 게 야외 운동이라는 사실은 기억해야 했다. 그래도 오늘은 추위 때문에 초반만 힘들었을 뿐이지 중후반은 오히려 달리기 수월했다. 장갑을 벗어 들고 달리는 일도 없었다. 바람이 꾸준히 불어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켰다. 달리는 동안 간식은 바나나 한 조각만 먹었고, 화장실에는 가지 않았다. 올해 16번째 하프 출전. 2차 반환한 후에는 6킬로미터가 남지 않았지만 눈에 띌 만큼 빠른 스퍼트를 하지는 못했다. 초반에 빨리 달렸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자제하는 것 같았다. 승부욕을 발동한다면 1분 정도 앞서 있는 효준님을 따라잡으려 애썼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굳이 왜,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저 5분 이내로 달릴 수 있다면 1시간 40분대 진입에 성공할 수 있겠다는 욕심은 생겼다. 바람을 등지게 되면서 속도를 올리지 않아도 킬로미터당 페이스가 5분 이내로 들어갔다. 올림픽공원쪽 주로로 들어서자 1시간 49분대가 보였다. 주로 옆에 축구장이 있었다. 축구하는 사람들의 복장과 비교해 보니 마라톤하는 사람들의 계절은 달랐다. 민소매 입은 주자도 더러 보였다. 골인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방향을 꺽고 또 꺽어야 했다. 그런 달리기 속에서도 스피드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해 보았다. 출발할 때의 1킬로미터와 골인할 때의 1킬로미터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20킬로미터 이상 달린 노력의 보상으로 받은 것이 스피드였다. 5분 35초가 4분 34초가 되었다.
01:48:38.99
지난 4월 김포에서 어쩌다 기록한 1시간 47분대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1시간 40분 49초로 골인한 로운리맨님은 사실 오늘 내 기록이 올해 최고 기록일 수 있다고 했다. 김포는 실제 거리가 짧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521명의 하프 완주자 가운데 나는 166등이었다. 용왕산 기수님이 80등이었고, 로운리맨님이 82등이었다. 10킬로미터 완주자는 1258명이었고, 풀코스 완주자는 130명이었다. 처음 달렸던 코스를 똑같이 한번 더 달리는 풀코스 주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풀코스에 출전한 인천연형님은 3시간 19분, 희규형님은 3시간 44분, 성하형은 3시간 49분, 기옥형님은 3시간 54분이었다. 상황에 따라 하프만 달리겠다고 한 은수형님은 끝내 골인점을 앞두고 다시 뛰어 나간 모양이었다. 몸이 좋지 않은데도 4시간 13분대로 골인했다. 로운리맨님은 요즘 내 기량으로 볼 때 다음 주 풀코스에서 서브 4 달성이 유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쎄? 달리고 난 후 저녁이 되자 햄스트링이 몹시 아팠다. 달리면 통증이 생겼던 것과 달리 가만히 있어도 아팠다. 2018년 생전 처음으로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을 때와 너무 비슷한 증상이었다. 11월 19일 있을 풀코스를 앞두고 이 지경이라면 참가를 재고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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