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2023/10/29)FULL 233

HoonzK 2023. 10. 30. 21:11

PART 1 기록에 대하여

 
10킬로미터 이후 나를 제치고 나갔던 광배님은 3시간 57분에 골인했다. 광배님에게 말했다.
 
-저는 싱글했어요. 4시간 싱글(4:00:00~4:09:59)
-서브 4 할 수 있었는데 아깝네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4시간 9분대라서. 
 
2006년부터 2019년까지 내리 14년을 달린 춘천마라톤의 기록은.....

3시간 20분대 1회
3시간 30분대 7회
3시간 40분대 5회
3시간 50분대 1회 (햄스트링 부상중이던 2019년... 3시간 51분 16초)




새로운 기록을 쓰고 말았다. 햄스트링 부상 재발에 무릎 타박상에 발목 통증. 코로나 이후 회복되지 않는 몸, 당일 무기력증.... 아주 결정타를 맞았다. 두 달 동안 춘천마라톤 대비 특별 훈련까지 했지만 정작 대회 당일에는 아주 꾸준히 LSD만 하고 있었다. 마치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단풍 든 삼악산과 의암호를 가르는 마라토너들의 행렬, 신매대교에 울려 퍼지는 응원의 물결, 춘천댐에서 내려다 보는 서상대교.... 15번째 달려도 변함없는 경치와 감동이 있는 춘천마라톤이었다. 이런 특별한 대회에서 지지부진한 레이스를 하고 말았다. 대회 이틀 전에 당한 무릎 부상에 일주일 전 재발한 햄스트링 부상, 달리는 도중 아파오기 시작한 아킬레스건 통증을 핑계로 삼는다면 아예 달리지 않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신매대교에서 응원을 받을 때까지는 버티다 22킬로미터에 가까워지자 레이스를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주자들이 적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러고 싶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페이스가 회복되지 않으니 기가 막혔다. 전체적으로 무력감이 넘치는 날이었다. 그저 올림픽을 치르는 것처럼 4년만에 춘천마라톤에 돌아왔다는 감회에 젖어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중도 포기하고 다음날 조선일보를 보는 일은 아예 참가신청도 하지 않고 대회 다음날 조선일보를 보았던 지난 해 만큼이나  좌절감이 클 것 같았다.

 첫 1킬로미터가 5분 50초였는데, 그 다음 1킬로미터에도 그 페이스가 그대로 이어졌다. 두번째 1킬로미터는 어느 정도  빨라졌던 패턴이 춘마에서는 없었다. 15킬로미터까지 5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29분 11초, 29분 32초, 29분 11초였다. 역대급 느림보 페이스였다. 15킬로미터에서 20킬로미터까지는 30분이 넘었다. 6분이 넘는 페이스로 달리는데 20킬로미터에서 25킬로미터까지는 그나마 30분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29분 36초) 25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까지는 32분 15초, 30킬로미터에서 35킬로미터까지는 31분 41초가 걸렸다. 하프를 2시간 04분 38초에 통과하기는 했지만 후반 페이스가 회복되면 서브 4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30킬로미터를 3시간이 되기 직전 통과하는데(2시간 59분 58초)... 이미 서브 4는 물 건너 간 것이었다. 30킬로미터부터 31킬로미터까지 시간을 재보았다. 6분 30초나 걸렸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늦었다고 해서 반발심리로 속도를 올려보지도 못했다. 단 하나, 고무적인 일이 있다면 30킬로미터 이후에 찾아오는 누적 거리의 부담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20일 전 풀코스 완주 예방 주사를 맞아 심적인 여유는 있었다. 아팠던 무릎도 마비된 상태이고, 우려했던 햄스트링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발목이 쓰리긴 했지만 견딜만 했다. 31킬로미터 지점에서 현실을 받아들였다. 춘천마라톤에서 서브 4는 날아갔다고. 13년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서브 4에 실패하게 되었다고. 뿐만 아니라 10월 9일 풀코스보다 늦어지게 생겼다고. 나는 B그룹(3:00:00~03:51:59)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D그룹 4시간 페이스메이커에게도 추월당했기 때문에 다시 따라잡기 전에는 서브 4는 불가능했다. 35킬로미터 이후, 그래도 춘천마라톤 35킬로미터니까 속도를 올리자. 그런 태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 윤의사님을 만났다. 200회 축하연할 때 제가 거기 있었는데 기억하세요, 라고 묻자 내가 후반에 빨리 달리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 대화를 마친 후 거짓말처럼 나는 빨라졌다. 6분 30초 페이스가 삽시간에 5분 20초 페이스로 좋아졌다. 35~40킬로미터 구간 기록은 27분 04초가 되는데 25~30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32분 15초였다는 점을 보면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1백미터를 5초 이상 빨리 50번 내리 달리는 것과 같았다. 40킬로미터 급수대에서 물과 게토레이를 마시며 달리기를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달리는데 전방에 춘천역이 어서 나타나 주기만을 기다렸다. 40킬로미터를 3시간 58분 43초에 통과했기 때문에 남은 2.195킬로미터를 11분에 달리지 않는 한 4시간 싱글(4:00:00~4:09:59) 달성은 요원했다. 서브 4에 실패하자 4시간 싱글이 목표가 된 것이었다. 싱글마저 실패하면 다음 목표는 명확해졌다. 4시간 12분 52초보다는 빨리 달려 올해 최고 기록이라도 세우자는 것. 41.195킬로미터 기록이 4시간 5분 00초였다. 급수대에서 십여 초 정도 날리고도 40킬로미터부터 다음 1.2킬로미터를 6분 17초에 달렸으면 당일 컨디션으로 보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남은 1킬로미터를 5분으로 달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햄스트링 때문에 붙여 놓았던 근육테이프는 속도를 올렸던 35킬로미터 이후 펄럭이다가 소양 2교를 건너기 직전인 39킬로미터 지점에서 떨어져 나갔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남기고는 햄스트링, 무릎, 아킬레스건 모두 잊었다. 고단하니 무기력하니....깡그리 잊었다. 문제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데 골인 아치는 자꾸만 뒤로 물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속도를 올리면 올릴수록 나를 조롱하듯 아치는 오지 마, 오지 마, 하며 뒷걸음질치고만 있었다. 4분대로 달리면서 6분대 주자들이 밀물처럼 내 뒤로 물러나고 있는데도 골인점은 내게서 한사코 달아나고 있었다. 순간 골인 지점이 혼잡하니 서둘러 이동해 달라는 주최측의 방송이 들렸다. 주위 사람들이 다들 달리지 않고 있었다. 어느새 골인한 것이었다. 

4:09:32

마지막 1킬로미터는 4분 32초에 끊었다. 기다려준 로운리맨님 덕분에 닭갈비를 먹었다. 5년만에 먹는 닭갈비였는데 5년 전에도 로운리맨님과 춘천 마라톤을 완주하고 먹었다. 식당에서는 오랜만에 법규님을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법규님은 3시간 1분대로 달려 정말 아깝게 서브 3 달성에 실패했다고 했다. 같이 싱글을 달성했다고 농담도 던졌다. 3시간과 4시간의 차이를 잠시 감추고...
 
 
 

PART 2 춘천마라톤대회장으로 오다, 그리고 또 기록에 대하여

 
 보통은 심야버스를 타고 새벽 4시가 넘으면 일반 버스를 타게 되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4시 10분경 운행 두 번째 버스인 121번 버스를 타고 서울성심병원 버스 정류장까지 간 뒤 N26번 막차 버스를 탔다. 거기서 다섯 정거장만 이동하면 상봉역, 중랑우체국이었다. 5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상봉역 계단을 내려설 수 있었다. 택시를 타지 않은 춘천행이었다. 은수 형님과 5시 30분발 춘천행 첫 차를 탔다. 잠을 청하기 직전 스마트폰으로 르세라핌의 새 뮤직비디오 'perfect night'에서 김채원을 찾아보았다. 요새 컨디션 난조로 활동을 중단한 상태라 숏츠 동영상에는 김채원이 빠져 있었다. 이틀 전 악동뮤지션의 음악프로그램에 르세라핌이 출연했을 때도 김채원만 없었다. 흥이 나지 않았다. 다른 동영상 보는 것도 힘들어지면서 귀만 열어두기로 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들으며 춘천역까지 갔다. 단속적인 잠이 이어졌다. 꿈을 두 차례 꾸었다. 7시가 되기 직전 춘천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1.3킬로미터를 걸으면 대회 집결지가 나왔다. 이동하는 도중 화장실에 들르고 스트레칭도 했다. 새벽에 간단하게 먹은 식사로는 허기가 져서 GS25 편의점에 들러 2+1에 판매하는 초코바도 샀다. 공지천 인조잔디 구장에 도착해서는 별로 할 일도 없어 마라톤 용품 단골 판매상을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장님은 자리 선점 쟁탈전이 심해서 금요일에 춘천에 왔다고 했다. 내가 자주 샀던 반바지는 더 이상 만들지 못한다고 했다. 화장실 앞에서 희수형님을 만나기도 했는데 부상 때문에 당초 불참을 계획했던 형님은 신매대교에서 돌아오는 27킬로미터 레이스까지는 해보려다가 마침내 천천히 풀코스를 달리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고 하였다. 달리기와 걷기를 조합한 계획표를 보여주며 이대로라면 5시간 40분대에 골인할 수 있다고 했다. 형님은 5시간 10분대로 골인하게 된다.
 
풀코스 참가자가 예전의 반토막이니 붐비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주로에서는 짧아진 급수대가 기다리는데 참가 규모가 적어진 이유가 컸다.
 출발 50분 전 쯤 짐을 맡기고 초코바를 먹고 있는데 로운리맨님이 인사했다. 내게 서브 345를 하라고 했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 본인 기록에 대한 암시로 해석했다. 
 
 4년만에 만난 사람이 있었다. 광배님이었다. 허리 통증 때문에 몇 년 동안 고생한 주자의 귀환이었다. 미처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반가운 분 가운데는 맹순여사님이 있었다. 이 분도 4년만에 뵜는데. 3년 전 울트라 마라톤을 달리다 음주 운전 차량에 유명을 달리한 부군이 떠올라 숙연해지기도 했지만 감동도 받았다. 광배님과는 10킬로미터 남짓 달린 후 대화를 하며 잠시 동반주했는데 내가 이 주자의 페이스를 따라갈 수가 없어 오래 하지 못했다. 
 
 오전 9시경 하늘에서 공지천 공원을 내려다 보아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안개가 끼어 시야를 가렸을 뿐만 아니라 서늘한 공기도 품고 있었다.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한 시간 쯤 지나면 안개를 모조리 흩뜨러 뜨릴 것이었다. 무언가 있었다. 그건 만 여명의 숨이 뿜어내는 열기였음은 곧 알게 된다. 구름으로 정상을 가리고 제 몸의 단풍을 모조리 노출하는 것을 자제한 삼악산과 잔잔한 물결의 의암호 사이를 가르는 띠가 사람이었음을 곧 알게 될 것이었다. 단풍 든 삼악산과 의암호를 가르는 형형색색의 유니폼 주자들. 이 풍경을 보고 싶었다고. 이전 14번이나 보았던 이 풍경은 올해도 경이적이었다. 신매대교를 반쯤 건너갔다 돌아올 때 양쪽에서 쏟아지는 응원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춘천공설운동장 입구의 응원을 방불케 하는데 이 역시 늘 만끽해 보고 싶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28킬로미터를 넘게 달려 춘천댐 정상에 오르자마자 달려온 길을 돌아보는 감회. 10년 전과 비교해도 전혀 다를 바 없다. 삼악산, 신매대교, 춘천댐. 각각 환영, 응원, 감회. 세 단어로 요약된다. 
 
 올해는 매 킬로미터마다 비상약 지원팀이 있었다. 무릎, 햄스트링, 아킬레스건. 스프레이를 뿌려도 열 번 이상 뿌리고도 남았을텐데 정작 뿌린 일이 한번도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파스 냄새를 내내 견디어야 하는 레이스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어떤 대회보다 파스 냄새를 많이 맡은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늘 들르던 17킬로미터 이전 동서주유소 화장실은 지나치고 그보다 앞서 노변에 지어진 신식 화장실에 다녀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10킬로미터를 채 달리기도 전에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참고 있었다. 으슥한 곳이 나오면 달려가 노상방뇨하는 주자들은 내내 있었지만 정작 따라하지는 못했다.

안개 낀 날은 햇빛이 작열하기 마련이라는 추이대로 달리기 조건은 점점 나빠졌지만 페이스가 느려서 그다지 의식되지는 않았다. 느린 것은 이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주 당연해 보이는 듯 느려져 버렸다. 2017년 3월 1일 서브4 100회를 달성하고 난 뒤 서브4 200회를 향하여 잘 달려오다 코로나 사태를 만나 느슨한 달림이가 되어 버린 듯 하다. 2년 전 서브 4 185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앞으로 풀코스 완주 횟수는 늘어나겠지만 완주 횟수와 함께 서브 4 횟수도 함께 늘어나는 일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감이 든다. 2023 춘천 마라톤이 이번에 명확하게 알려준 것 같다. 앞으로는 기록 보다는 완주를 목표로 부상없이 천천히 달리려므나. 35킬로미터 이후에나 조금 빨리 달려 자기 만족이나 채우고. 완주 메달을 받은 뒤 마라톤은 완주만으로도 성취감이 큰 이벤트니까 참 좋구나, 하며 희희락락하라고. 닉네임 건달도 건강 달리기라는 뜻이니 이제는 빨리 달리려고 하지 말라고. 풀코스를 5백번 넘게 완주한  WS님은 서브 4로 달려본 일이 한번도 없다는 걸 기억하라고. (그래도 2024 춘천마라톤 때는 서브 4를 하고 싶긴 하네. 안되겠지만.)


 


 

서울성심병원 버스정류장
이 정류장 직전이 청량리역 버스환승센터인데 정류장이 많아 헤깔릴 수 있었다
N26번 버스가 2분 뒤에 도착한다고 했다

N26번 버스가 오고 있었다
춘천역 앞에 걸린 환영 플래카드
몇 시간 뒤 만나게 될 표지판
편의점에서 초코바 3개를 샀다

로운리맨님과 함께 먹은 닭갈비

어떤 대회보다 마음에 드는 메달이다

이 기념 티셔츠가 춘마 참가의 50% 지분은 된다.

 
 
 

의암호변을 달리는 초반

 

춘천댐 오르기 직전 사진사를 발견하고는 V자를 날렸다.

한참 스퍼트중인 소양2교 부근

 
 

골인하기 직전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