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에 민소매. 마라톤 대회 참가자의 복장은 최소화된다. 옷 조각 몇 부분도 하중이 느껴지는 마라톤, 최대한 덜어내고자 애쓴다. 그런데 강건달은 풀코스를 달리면서 츄리닝을 입었다. 3월 20일부터 29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리고 30일만은 마라톤 대회 전날이니 휴식했다. 하루에 두 번 달리는 일도 있었다. 배를 묵직하게 두르고 있던 살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김에 42.195킬로미터를 달려 감량에 가속도를 붙이고자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달리는 동안 햄스트링 통증은 없었다. 드디어 완치되었나 했다. 아킬레스건 통증도 없었다. 이따금 발바닥 통증이 생겼지만 요즘 많이 달린 탓이었고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다.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법인가. 마라톤 대회 전날 오전 햄스트링에 통증을 느꼈다. 그냥 휴대용 의자에 앉았을 뿐인데 햄스트링이 당기면서 아팠다. 햄스트링 부상 재발인가? 아픈 느낌이 아주 불쾌했다. 이건 지난 해 12월 초 처음 햄스트링 부상을 감지했을 때와 판박이였다. 갑자기 통증이 생기면 빨리 낫는 것같은데 천천히 통증이 생기면 통증이 사라지는 데도 오래 걸리나? LSD로라도 풀코스를 뛰기로 했던 나로서는 짜증이 났다. 하루를 기다렸다. 통증이 남아 있긴 하지만 견딜만했다. 7시 출발을 8시 출발로 늦추면서 회복 시간을 좀더 가졌다. 4월부터는 공원사랑마라톤은 6시와 7시 출발이라고 하니 마지막 8시 출발이 있는 날이었다. 8시 출발 주자는 나 혼자였다. 츄리닝을 입고 있었지만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결코 과한 복장은 아니었다. 4월을 코 앞에 두고 겨울 복장에 장갑까지 다시 끼고 달리게 되리라는 예상을 못하긴 했다. 3월 초에도 반바지를 입었는데 3월 말에 긴바지라니....
복장 덕분에 체중 감량 효과가 크리라고 믿었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햄스트링은 주자를 괴롭히게 되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3주 전 4킬로미터 지점에서 마주 본 바깥술님을 언제 마주치게 될지로 속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첫 1킬로미터는 몸을 풀면서 달리느라 늦었지만 1킬로미터에서 2킬로미터 지점까지는 5분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잘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스피드를 내어 보는군. 오늘 사고칠지도 모르겠어. 4킬로미터를 지나는데도 한 시간 전에 출발했을 바깥술님이 보이지 않았다. 5킬로미터 지점에 가서야 바깥술님과 달물CS님을 만났다. 3월 10일 4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바깥술님은 17킬로미터를 달렸지만, 이번에는 5킬로미터 달렸을 때 바깥술님은 16킬로미터를 달린 것이었다. 먼발치에서 바깥술님을 발견하고 일부러 연출을 했다. 4분 30초 페이스로 질주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바깥술님이 '웬 일이야? 날아가네.'라고 했다. 나중에 잘 뛴다는 말을 들으려고 일부러 연출한 것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요. 힘들면 그런 연출이나 위장도 못했을테니까요. 초반 5킬로미터는 26분이 걸리지 않았다. 동아마라톤에서 그렇게 해보려고 애썼다가 실패했던 25분대를 이제야 하게 된 것이었다. 옷을 무겁게 입은 것은 상관이 없었다. 몸만 가볍다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으면 자고 있었을텐데. 오늘 달리지 않는다고 하여 뭐라고 할 사람은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달리는데 아는 분들이 속속 나타났다. 달물영희님, 고운인선님 등을 뵈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수원상현님은 경기마라톤에서 풀코스 500회를 달성한다고 했으니 이번이 499회째였다. 만날 때마다 499회 파이팅을 외쳤다. 부상이 완치되지 않은 용석님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도림천 고가 아래로 바람이 밀려 들어오는데 이건 마치 동굴로 돌풍이 들이치는 형국이었다. 헐벗고 달렸으면 얼마나 고생했겠어. 나야 감량 때문에 많이 입었지만 오늘은 추위 때문에라도 이렇게 입는 게 맞아. 건달의 현명한 선택.
10킬로미터는 51분대에 통과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조금씩 힘들어졌다. 1차 하프를 달린 후 2차 하프를 달려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후반에 스퍼트할 힘이 남아있을 것같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힘을 아껴야 하는데 1회전하는 데 힘을 모조리 쏟아붓고 있었다. 추운데도 땀은 꽤 났다. 지난번에는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에 만났던 바깥술님을 이번에는 징검다리를 건넌 후에 만났기 때문에 그다지 못 달리는 달리기는 아니었다. 속내는 1회전을 1시간 50분 이내로 하고 2회전 때에도 그 속도를 유지해서 3시간 39분대에 들어가 보자는 것이었다. 4월 6일 여명808국제마라톤에서 339를 할 게 아니라 오늘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1시간 51분과 52분 사이에 1회전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후반을 더 잘 달려야 3시간 39분대가 가능한데 불가능한 기록이라는 것을 내내 확인하는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춘천마라톤 때가 아니면 결코 3시간 30분대로 달리지 못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일까? 초반 10킬로미터를 51분대에 달릴 때처럼 후반 10킬로미터를 달려봐야 3시간 43분이 예상되는 상태가 되었다. 요즘 페이스는 늘 중반이 엉망이었던 데이타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2회전을 나서서 1킬로미터를 더 갔을 무렵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달림이가 있었다. 일산호수마라톤의 광원님, 이름처럼 빨랐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것으로 보아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 거침없었다. 1킬로미터 남았을 때 2시간 56분 언저리라 서브 3가 무난해 보였다. 서브3 파이팅. 소리쳤다. 광원님은 살짝 눈길만 준 뒤 마지막 스퍼트를 하고 있었다. 23킬로미터 남짓 달리면 보이는 도림천 건너편 골인 지점에서 기록증을 받는 광원님이 보였다. 지난 동아마라톤에서처럼 2시간 59분대로 골인한 것이었다.
다음 주자는 바깥술님. 이번 달 들어 여섯 차례 달리시는데 또 3시간 30분 이내로 골인할 것인가가 관심사였다. 요즘은 내 기록보다 바깥술님 기록에 더 관심이 많다. 아무리 늦어도 내가 25킬로미터는 달렸을 때 만나야 할텐데. 실제로 25킬로미터 지점에서 바깥술님이 나타났다. 함께 달리던 달물CS님은 보이지 않았다. 스퍼트해야 3시간 29분대 갈 수 있어요. 38킬로미터를 달린 바깥술님을 만나 힘차게 외치며 나도 덩달아 속도를 올렸지만 고속 주자를 떠나보내고 나면 LSD보다 못한 수준으로 내려갔다. 24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39킬로미터를 달렸던 바깥술님을 만났던 게 3주 전인데 그 때보다 잘 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결코 아니었다. 후반은 점점 나빠졌다. 고속은 없고 중속과 저속 사이를 오가는 주자로 달리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가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힘겹게 달리는데 아예 걸어서 오는 주자가 있었다. 달물CS님이었다. 왜 걸어요? 힘들어서 못 뛰겠어요. 이 분은 걸었지만 3시간 39분대로 골인했다. 걸어도 3시간 39분대라. 한번 해봤으면 좋겠네....... 그리고 달물영희님, 고운인선님, 응준님을 비롯하여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버티었다. (일찍 출발한 인천윤동님, Wan-sik님, 근규형님은 벌써 완주를 마친 상태였다.) 고통을 받긴 받는데 고통을 최대한 덜 느끼면서 완주하자고 애쓰지만 또다시 사람을 옥죄는 것은 그래도 3시간 40분대는 들어가자는 욕심이었다. 2019년 3월에 달리는 네 번의 풀코스, 그 풀코스를 모두 3시간 40분대로 만들어 보자는. 모두 3시간 20분대로 만들어보자고 달렸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지금은.......
마지막 10킬로미터를 53분대로만 달려도 올해 최고 기록인 3시간 43분대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후반은 서브 4보다 못한 몸놀림이 나왔다. 5분 40초를 넘어가는 페이스가 꾸준히 나왔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춥고, 아프고, 옷이 무겁고, 바람이 세고, 떼거지로 몰려드는 담배냄새도 있고, 자전거도 있고, 개도 있고..... 온갖 핑계거리를 다 끄집어내는 탓하기 레이스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긍정의 마인드는 딱 한 가지 부분에만 집중되었다. 그래도 살은 빠지고 있다는.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니 7시 출발한 주자 몇 분을 추월하기도 했다. 4시간 50분이 넘는 기록으로 골인하게 될 주자들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럴 때는 파이팅을 외치기가 힘들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분이 아니면 은밀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완주 후 발바닥, 아킬레스건, 햄스트링, 허리 통증으로 시달리게 되는데 이게 모두 오른쪽이었다. 오른쪽 부위가 꽤나 하중을 많이 받은 듯. 풀코스라는 것이 아픈 데 없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도 힘든 것인데 부상으로 참고 견디는 레이스를 해야 한다는 것. 미련한 짓일 수 있었다. 누가 뛰라고 했나? 오로지 선택은 내가 한 것인데.....
기어이 40킬로미터를 넘겼다. 3시간 49분 59초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2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3시간 38분이었다. 벌어 놓았던 시간을 참 많이도 잃어버렸다. 3시간 50분을 넘기면 안되었다. 다 왔으니까 기를 쓰고 달렸다. 킬로미터당 5분 15초 페이스까지 끌어올렸다.
3시간 48분 34초 00
올해 공원사랑마라톤 기록보다 30여초 빨라졌고, 동아마라톤보다는 9초가 빨라졌다. 하지만 화장실에 들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이 더 느리게 뛴 것이었다. 전혀 부상이 느껴지지 않는 달리기, 몸이 가벼워진 달리기가 되기를 바랬는데 결국 이번에도 용을 쓰고 진을 빼는 매우 힘든 달리기가 되었다. 이래서야 6일 후 있을 풀코스를 어떻게 뛰겠는가? 살을 빼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햄스트링 부상을 악화시키는 악수를 둔 듯. 그런데 햄스트링 부상이 원래 이렇게 오래 가는 것인가?
소금기가 배여나온 만큼 살은 빠졌겠지.....
긴 바지를 입고 달리는데 그것도 검정색 바지라면 이런 소금 자국을 보게 된다.
오른쪽 다리도 마찬가지다.
대회를 마친 후 대림역까지 걸어가야 해서....
잔뜩 흐리고 바람이 센 추운 날씨였다.
반환점 벤치까지 와서.....
물티슈로 츄리닝 바지를 깨끗하게 닦았다.
낯익은 곳 아닌가?
급수대가 있었던 흔적
10킬로미터 표지판을 볼 수 있는 고가 아래
대림역에서 도림천을 내려다 보며.....
기념품이 양말. 참가비에 비하면 너무 빈약한 느낌이다.
3시간 48분대....
요즘은 딱 이 수준이다.
간섭포(간신히 서브 4)하는 주자인데 능력에 맞지 않게 애를 써서 그래도 3시간 40분대에는 들어가려고 한다.
아예 달리지 않으면 부상에서 빨리 회복하려나? 그러면 체중은? 난감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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