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을 내고 운동을 했는데 몸은 더 나빠지고 불쾌감은 쌓이고..... 화장실에서 얼굴에 선크림을 바를 때 몹시 고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귀가해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완주해야 다음 주 있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생애 200번째 풀코스를 달성할 수 있었다. 힘들지만 그냥 달리기로 했다. 혹시 달리다 보면 몸이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대부분의 주자가 한 시간 전에 출발하고 8시 출발하는 사람은 나까지 포함하여 고작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한 명은 10킬로미터 참가자였다. 10킬로미터 반환 표지판이 없어서 처음 출전한 분에게 일일이 설명해 드리면서 출발은 조금 지연되었다. 나와 함께 보조를 맞춘 풀코스 주자는 달리는 의사회 소속 재기님으로 공원사랑마라톤에는 첫 출전이라고 했다. 3시간 40분 전후로 달릴 예정인데 2년 전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21분대로 골인한 적이 있다고 했다. 5.27킬로미터 급수대까지는 함께 갈 수 있었다.
7시에 출발한 1등 주자 두 명을 4킬로미터 지점에서 만났다. 바깥술님과 달물CS님이었다. 딱 봐도 3시간 20분대 페이스. 3시간 40분 페이스로 달리겠다고 한 바깥술님이 이렇게 빨리 달려오다니..... 이미 업그레이드된 속도를 조절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바깥술님은 절친 세 사람과 동아마라톤에서 내기를 했다고 했다. 바깥술님 318, 달물CS님 싱글, 또다른 분은 348. 진 사람이 참치회 사는 것으로.....
고운인선님은 동반자 없이 외롭게 달리고 있었다. 希洙형님은 건너편에서 오시며 너무 힘들다고 했다. 모두 나보다 1시간 먼저 출발한 분들이었다.
5.27킬로미터 급수대에서 받은 콜라는 바로 마시고 뜨거운 물은 식혀서 마실 때 의사재기님이 말없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따라갈 수 없었다. 따라가기에는 피곤했다. 10킬로미터까지는 52분 20초로 일주일 전보다 10초 빨랐지만 훨씬 힘을 많이 썼다. 고가 아래로 밀려드는 싸늘한 바람으로 몸은 움츠러들었다. 3시간 39분대 목표가 3시간 42분대, 3시간 43분대, 3시간 44분대로 조정되었다가 급기야 3시간 49분대만 해도 좋겠다는 것으로 대폭 하향 조정되었다. 체중과 햄스트링 부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드디어 체중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는 무거운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이도 저도 아닌 상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햄스트링은 여전히 아팠고 몸은 내내 무거웠다. 옆구리에 붙은 살이 일주일 전보다 조금 빠져나갔는데 몸은 왜 이리 무거운 것일까? 5분 20초 페이스는 끝내 6분 가까이 떨어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예전 기량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도대체 몇 번을 더 달려야 내 수준을 인정하게 될까?
달리기 자세를 바로잡아 보려고 했지만 몸이 따라오지 않으니 힘이 더 들었다. 아주 잠깐 변화를 모색해 볼 수는 있겠으나 풀코스는 너무 길었다. 머리 속에 모든 과정을 미리 데이터화할 수 없는 거리였다. 몇몇 동반주하던 사람들은 흩어지고 있었다. 바깥술님은 달물CS님과의 거리를 벌렸다. 주로 건너편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평행 달리기를 하고 싶었으나 따라붙기가 쉽지 않았다. 징검다리 데크를 먼저 통과하는 배틀을 벌여볼까 했지만 바깥술님을 따라가려면 킬로미터당 5분 이내의 페이스가 필요했다. 먼저 통과하지는 못하더라도 징검다리 데크에서 마주 보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하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내가 14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바깥술님은 이미 28킬로미터를 달렸다. 그리고 몇 십미터 뒤에 달물CS님. 잠시 후 건너편에서 고운인선님을 보았는데 希洙형님은 보이지 않았다. 希洙형님은 이제 먼발치에서 움직임만 봐도 딱 알아볼 수 있는데 끝내 보이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하프만 달리고 그만두셨구나 싶었다. 완주한 후 카톡 문자를 확인했다. 감기가 낫지 않아 하프만 간신히 뛰고 먼저 간다는.
나와 수백 미터 차이를 낸 의사재기님은 오지 않고 있었다. 이 분도 하프만 달리고 만 것인가? 아니었다. 출발지에 와 보니 화장실에 다녀와 간식을 먹으면서 2회전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1회전은 1시간 52분. 조금 빨리 달리면 3시간 39분대가 가능하고, 현상 유지를 하면 3시간 44분이었다. 그렇지만 화장실에도 다녀와야 하고 몸은 점점 피곤해지고 있어서 서브 350도 어려울 상황이었다. 기둥에 표시된 거리 표지판으로 페이스를 체크해 보는데 거의 6분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들까? 찬 바람 때문일까? 휴식이 필요했던 몸인데 마지못해 나와서 그럴까? 아무리 그래도 평소 조깅할 때보다 늦을까? 바람을 가르는 달리기를 다시 할 수는 없을까? 바람에 시달리는 달리기만 내내 하고 있으니. 3시간 39분은 못하더라도 3시간 42분이나 43분을 기록하여 아주 야금야금이지만 서서히 기록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화장실에 들렀다 오는 사이 의사재기님이 다시 앞으로 나갔다. 내가 24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1등으로 달려오는 바깥술님이 보였다. 선글라스가 멋져 보였다. 흐린 날에도 매우 잘 어울리는 아이템. 지금 서브 330으로 달리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했다. 매우 빠른데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공원사랑마라톤에는 100일만에 출전한 것인데 그 100일 전 나는 저보다 빨리 달리고 있었다는 것인데......
걸어오는 달물CS님은 아프다고 했다. 바깥술님에게 서브 330으로 달리자고 먼저 권했던 분이 전의를 상실했다...... 고운인선님은 3시간 40분대로 달린다고 했다. 수원상현님에게는 서브4하세요라고 응원했다. (고운인선님 3:43:18/ 수원상현님 3:59:32)
외롭고 쓸쓸한 달리기를 하면서 밀려드는 바람 때문에 담배 냄새도 자주 날아들어와 아주 고되었다. 담배 피는 사람을 찾아 대비하기 전에 먼저 달려드는 담배 냄새라니.... 피할 길이 없었다. 차가운 기운이 가라앉아 바람까지 불 때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흡연자가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가며 주로에 담배 냄새를 쫙 깔아 놓을 때는 분노까지 치밀었다.
30.1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2시간 42분이 걸렸으니 최근 어느 때보다 모자란 달리기가 되었다. 땀은 제법 많이 흘렀다. 하얀 소금 지도가 곤색 티셔츠에 새겨졌다. 후반 질주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몸 곳곳에 피곤함이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악착같이 속도를 올렸다 싶으면 5분 40초가 최선이었다. 3시간 59분대로 떨어진 속도. 5킬로미터를 남기고 시계를 보았다. 3시간 22분 후반대. 집어치웠던 3시간 40분대에 집착이 되살아났다. 남은 5킬로미터를 27분대로는 달려야 했다. 5분 40초까지 떨어진 페이스를 5분 30초까지 끌어올린다고 해도 예상 기록은 3시간 50분 15초였다. 이를 악문다고 해서 지친 몸이 페이스를 올려줄 순 없었다. 포기하면 편할텐데. 극적인 결말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우기고. 2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3시간 39분 20초가 지났다. 앞으로 10분 30초, 킬로미터당 5분 15초로는 가야 3시간 49분대였다. 적당한 타협을 하면서도 도전은 해야 했다. 그동안 부상으로 시달리다 최근에야 다시 달리기 시작한 70대 후반의 용석님을 추월하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500미터 이상 차이났던 의사재기님과의 거리가 100미터 이내로 줄었다. 1킬로미터 남았을 때 3시간 44분 20초. 조금 여유가 생겼다. 스퍼트했다. 이 순간만은 온갖 잡념을 지우고 오로지 발놀림에만 집중했다. 몇 백 미터 남기고 시계를 보았다. 좌절할 수도 있고, 안도할 수도 있는 양쪽의 경계선에 놓였다. 애매하고 혼란스러웠다. 의사재기님이 막 골인하고 있었다. 바로 따라 들어갔다.
3:49:10.50
의사재기님과는 10초 이내의 차이였다. 기록증과 기념품을 받았다. 버거운 몸을 이끌고 천천히 마라톤 카페를 향했다. 마라톤 카페는 7년 전 동안선발대회에 나왔던 근호님이 자신이 출연했던 동영상을 보여주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우리나라 최초 풀코스 100회 완주자 박용각님은 부상 회복중인 자신의 무릎을 보여주기도 했다. 떡국 한 그릇을 먹고 나왔다. 도림천 둔덕 정자에 앉아 있다가 완주기록증에 이름이 잘못 나와 있어 출발지로 가서 수정을 받았다. 책 좀 읽다가 바깥술님과 통화한 후 식당을 찾다가 포기했다. 혼자서 밥먹는 것은 처량해 보였다. 그냥 소보루빵과 단팥빵을 천원에 사서 먹었다.
공원사랑마라톤에는 정확히 100일만에 나갔다. 3시간 23분대 주자가 3시간 49분대 주자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올해 첫 참가이니 완주메달을 챙겨 받았다.
기념품이 허리벨트였다. 양말이 아니라..... 바뀐 것인가?
판매가가 13,000원으로 나오니 양말 한켤레보다는 비싸겠다.
우리동네 김밥집.... 새벽 6시가 되기 전. 이 집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아침으로 먹었다.
신도림역으로 가는 2호선에는 사람이 없었다. 홍대입구역에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도림천 도착. 주로에는 보라매 마라톤클럽이 훈련중이었다.
대회 파장.....
이름이 잘못 인쇄되어 다시 받은 기록증이다.
마지막 주자까지 모두 골인한 다음이라 컴퓨터와 프린터를 분리한 상태였다.
기록담당자가 기기를 다시 연결하여 기록증을 발급해 주었다.
킬로미터당 5분 25초 페이스였다. 5킬로미터 평균 소요 시간은 27분 09초였다. 매우 피곤한 레이스였다.
지난 2월부터 나는 3시간 40분대 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완주를 마치고 도림천 둔덕 정자 위에서 책을 읽었다. 한 시간 남짓......
올해 동아마라톤에서 A그룹이다. 이 대회를 마치고 나면 B그룹으로 내려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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