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1회 여의도벚꽃 마라톤대회(2019/04/28)-FULL 203

HoonzK 2019. 5. 5. 20:06

  일주일 동안 병원을 스무번쯤 들락날락하면 정상인 사람이라도 몸이 아픈 것처럼 느껴지고,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지기 마련인 듯. 햄스트링 통증은 더 심해졌고 몸은 무기력해졌다.


 얼마나 달리기 좋은 날씨였는가? 적어도 초반에는. 서늘한 봄을 구름이 끌어안고 햇볕을 가려준 덕분에 지난 4월 6일 여명808국제마라톤 때처럼 달리기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의도이벤트광장에서 풀코스 주자로 스타트 라인에 섰을 때만 해도, 고운인선님과 잡담 동반주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맡은 박연익님이 너무 빨리 가긴 하지만 우리 식대로 페이스를 조절하자고 의기투합할 때만 해도 골인할 때까지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고운인선님의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페이스 알림 덕분에 3시간 39분대로 가고 있으며, 별로 힘들지도 않으니 지난번 공언한대로 드디어 3시간 39분대에 진입하겠구나 싶었다. 부상이 낫지 않았지만 그 부상을 안고도 3시간 39분대 주자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잡담 러너가 한 명 더 늘어 대화량이 늘어났지만 힘든 줄 몰랐다. 언제 아픈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수원마라톤클럽의 만우님이 지난 주 경기마라톤에서 동호회 주자들 100여 명이 수원상현님과 동반 골인하며 500회 완주를 축하하는 장면을 묘사했을 때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신이 났다. 10킬로미터까지는 53분이 걸렸지만 3시간 39분대의 기준 기록에서 고작 1분이 넘었을 뿐이었다.


 안양천이 끝나고 도림천에 들어섰을 때 고운인선님이 신발 끈이 풀렸다고 했다. 동반 주자가 사라졌는데 이후 30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도림천 고가 아래 그늘에 갇히며 슬픈 주자가 되었다. 옷에 묻어나는 땀마다 눈물 자죽처럼 느껴졌다.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불쾌하게 남아 있는 오른쪽 햄스트링 통증은 속도를 조금이라도 내려 하면 그러지 말라는 듯 찌릿찌릿한 통증을 선사하였다. 벌써 5개월째인가? 지난 4월 6일 달리고 22일만에 대회에 출전하는데 호전된 것은 없었다. 지병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나 역시 언제까지나 이 통증이 떨어지지 않고 평생 나를 괴롭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주하는 순간까지 욕심을 내려놓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는 동안 내내 가슴이 울었다. 3년 전 돌아가신 분이 떠올랐다. 절대 자살할 것같지 않던 분이, 내게 미래의 청사진을 늘어 놓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분이, 내게 유언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스스로 목을 매었다. 그로부터 몇일 후 달릴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결코 회복될 수 없다는 비애감이 너무 깊어져 발이 끌리고 있었다. 기를 쓰고 달려도, 기를 쓰고 달릴 수도 없어 기를 쓰고 달린다는 착각만 거듭했을 수도 있지만 페이스는 5분 15초를 넘겼다. 그래도 가끔은 5분 페이스를 보여줬던 22일 전의 마라톤 주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 신대방역에 이르기 전 가장 어두운 구간은 정전이 되어 있어서 해드랜턴 없이 깜깜한 동굴을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눈이 멀어 달리는 것같았다. 일관되게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도 발 아래 혹시 밟히는 것이라도 있을까봐 겁이 났다. 돌아올 때도 한번 더 만나게 되었지만 정전 상태는 계속 되었다. 그나마 돌아올 때는 한번 경험을 해서 그런지 견딜만 했다.


 고가 아래의 그늘이 끝나고, 도림천 구간도 끝나 안양천에 들어섰을 무렵 날은 개어 있었다. 화사한 봄 날씨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세상이 밝아진 만큼 내 마음은 더 어두워졌다. 내내 검은 옷을 입고 그늘 아래 지내어야 하는 사람처럼, 날이 맑으면 인상은 어두운 게 마땅한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날은 점점 더워졌다. 몇몇 주자들을 제치고 나가면서 파이팅을 외치고 파이팅을 답으로 받았지만 그 순간을 넘기면 철저히 외로워졌다. 이 무슨, 이렇게 처절한 마라톤이 있나 싶었다.


 32.2킬로미터 지점. 2시간 53분대였다. 남은 10킬로미터를 50분으로 달릴 수 있다면 3시간 39분대는 못해도 올해 최고 기록인 3시간 43분대로 골인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2일 3시간 44분 03초로 골인한 일이 있어 못할 것도 없어 보였지만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속도를 낼라치면 몸이 아팠다. 몸이 못 따라오니 마음까지 사정없이 무거워져 주로에 퍼진 주자들의 좌절감을 모조리 끌어 모은 듯 했다. 화장실에 들르고도 반환점을 1시간 52분대로 돌았으니 페이스가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서브 345는 가능했는데 달리면 달릴수록 3시간 45분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서브 350은? 남은 거리를 서브4 페이스로만 달려도 가능하긴 했다. 그래도 3시간 40분대는 해야겠다 싶었다. 나가지 않는 다리를 놀려 앞으로 달려야 할 거리를 줄여 나가니 마침내 한강을 만났다. 이제 6킬로미터가 남은 것인데 맞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이런 바람은 예상하지 못했다. 앞에서 쏘아대는 햇빛은 각오한 것이지만 바람까지 이겨내어야 했다. 3시간 14분이 될락말락. 남은 6킬로미터를 도저히 30분으로 주파할 수는 없었다. 후반 속주를 위해 참았다는 듯 질주를 거듭하여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일은 끝까지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졌다. 어차피 박연익님은 3시간 43분 30초로 골인하기 때문에 애시당초 근처에 가기가 힘들었다.


 달리다 보면 거리가 줄어든다는 기대감으로 버티면서 달린 거리를 늘렸다. 다리에 길게 붙인 두 장의 테이프가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감이 없지 않았지만 거의 다 와서 떼어내는 것은 오히려 갑작스러운 몸놀림의 변화를 줄까 봐 그대로 두었다. 사회 보는 해병대 정의님이 골인할 때 내 이름을 불러 주리라는 상상을 하면서 다리를 끌고 나갔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아니다. 아세탈님이 스마트폰으로 나를 찍고 있었다. 출발할 때 아무리 찾아도 못 만나서 대회장에 오지 않은 줄 알았는데 출발 시각을 한 시간 뒤로 착각한 나머지 너무 늦게 대회장에 와서 그냥 아쉬운대로 16킬로미터만 달리고 말았다고 했다.


 3:47:39.23


 지난 2월 이후 8번 연속 3시간 40분대였다. 이쯤 되면 나는 3시간 40분대 주자로 굳혀졌다고 보아도 되겠다. 기록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3시간 29분대는 아예 꿈꿀 수도 없으니 3시간 39분대라도 해 보겠다고 욕심을 부렸지만 이제는 그것도 내려놓아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보다 8초 먼저 골인한 주자에 신경쓰느라 해병대정의님은 나의 골인을 보지 못했다.





 여의도 이벤트 광장. 새벽에 도착하여.....



 마라톤 TV 사장님이 바쁘게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세탈님이 기다리며 찍어준 사진


  홍순진 고문님은 352, 고운인선님은 356, 希洙형님은 422로 레이스를 마쳤다.

 사실 완주기를 영어로 쓰려다가 말았다. A runner full of grief. I was it all the time during the marathon. 이렇게 시작하려다가....

 

3시간 47분대.... 마침내 3시간 39분대에 진입할 줄 알았건만.... 이제 영영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 티셔츠가 마음에 들어 105 사이즈를 신청했는데 주최측에서 티셔츠를 도로 보내달라고 했다.

행사 전 높은 분이 입을 옷으로 105 사이즈가 필요한데 확보할 데가 없어 나한테 부탁해 왔다.

마라톤 TV 사무국에 직접 방문했다. 가까운 곳도 아니었는데.....

어차피 105 사이즈를 돌려주어야 한다면 90 사이즈로 바꿀 생각으로 갔다가 100 사이즈를 받아 돌아오게 되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적어도 몇 일 동안.....

병원에 들락날락하느라 정신없었던 내가 이럴 여유까지는 없었는데......





무료초대권이 있었지만 이것은 전혀 쓰지 못했다.

미리 4만원을 입금했기 때문에.....



엄니식당에서 아세탈님과 함께.....




제육볶음. 불향을 입혀서 맛이 좋다.


부추 비빔밥과 우렁된장은 늘 좋다.




아세탈님이 주신 봉투....


 봉투에는 마블 티셔츠.....


이 선물도.... 아직 뜯어보지 못했다. 시계+온도계+모래시계?

(감사합니다. 잘 쓰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