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10번째 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하고 있었다. 생애 200번째 풀코스로 첫 풀코스 참가대회였던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을 선택했다. 어느덧 27킬로미터를 넘게 달렸을 무렵 눈이 번쩍 뜨였다. 한 주자의 등에 붙은 응원 문구를 보았던 까닭이다.
'강건달' 강훈식님의 마라톤 풀코스 200회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2019년 3월 17일 2019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감동했다. 악전고투중이었는데 엄청난 힘을 받았다. 나를 응원하고 있는 분은 주JS님이었다. 내가 200회 하는 날 축하 문구를 달고 달리겠다고 한 것이 빈 말이 아니었다. 부산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올라와 이런 이벤트를 해 주시는 분에게 무어라고 감사해야 할지. 더구나 이 분은 몇 년 전 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진통제까지 맞고 달리고 있었다. 글씨 크기와 색깔을 꾸미고 내 컬러 사진까지 넣어서 정성스럽게 만든 문구를 등에 달고 내내 달리고 있었던 분에게 두서없이 이 말 저 말 꺼내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기만 했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함께 달렸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절친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내내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고통스러운 여정으로 기억될 마라톤 가운데 전혀 힘들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면 바로 이 순간이었다.
특별한 날에 달리는 마라톤 대회는 부담이 커서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나 역시 100번째 풀코스를 달리는 날 하프까지만 해도 3시간 55분 전후 기록이 예상되었는데 후반에 사정없이 늦어져 4시간 14분으로 골인했던 전례가 있었다. 그래도 100회니까 하는 마음가짐은 아무 힘이 되지 못했다. 200번째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힘들어져서 5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30분에 육박했다. 애당초 풀코스를 완주하기에는 힘든 날 달린 것이다. 200회가 아니라면 아예 출전하지 않거나 달리는 도중 레이스를 접어버렸어야 하는 날이었다. 달리다 보면 몸이 좋아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컨디션이 좋다고 최면을 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팔목에 부착한 3시간 39분 페이스 분배표는 스트레스만 키웠다. 지난 해 3시간 18분에 뛴 주자가 3시간 39분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버거운 부담이었다. 지난 해 12월 부상 이후 달린 9번의 풀코스에서 단 한번도 3시간 30분대는 들어가지 못했다. 가장 근접한 기록이 3시간 44분이었다. 하프를 1시간 51분 27초에 통과할 때만 해도 '그래, 후반을 전반보다 1분 30초 쯤 당기는 게 뭐가 어렵겠어, 3만 8천 명의 참가자들이 끌어내는 에너지에 몸을 실어 달리면서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다 잠실대교에 오르자마자 스퍼트를 시작하면 넉넉하게 목표를 달성할 거야'라고 믿었다. 그저 내 생각일 뿐이었다. 실상은 200회 완주라는 의미에 사로잡혀 착각하고 있었다. 달려 보기 전에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한없이 가라앉은 몸으로 가혹한 짐을 내내 지고 있었다. 완주 후 또다른 부상이 따라오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쌀쌀했지만 반팔을 입었다. 2년 연속 생애 최고 기록을 경신했던 아식스 곤색 티셔츠였다. 바깥술님이 주신 비닐 조끼를 입어 추위에 대비하다 2킬로미터 남짓 달렸을 때 벗었다. 5분 17초, 5분 17초만 생각하고 달리는데 좀처럼 그 페이스가 나오지 않았다. 첫 1킬로미터가 5분 45초나 걸리다니 이렇게 굼뜰 수가 있나? 많은 주자들이 나를 추월해 가고 있었다. 지난 해보다 한없이 느려진 페이스 때문에 비애감이 생겼지만 부상 때문이라는 자기 변명과 합리화를 거듭했다. 4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뒤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비켜달라는 말이 들렸다. B그룹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였다. 수많은 주자들이 그와 함께 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나는 A그룹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달리는 셈이니까.(A그룹엔 3시간 40분 페메가 없다. A그룹엔 그보다 빠른 사람이 배정된다.) 하지만 17킬로미터 지점에서 B그룹 3시간 40분 페메에게 추월당할 때는 몹시 신경이 쓰였다. 아무리 애써도 킬로미터당 기록이 5분 17초가 나오지 않았다. 좀 속도를 내었다 싶으면 5분 20초, 그냥 넋놓고 달리면 5분 40초였다. 지난 해 화장실에 한번도 들르지 않았던 내가 10킬로미터 남짓 달렸을 때는 화장실에 가야 했다. 이게 쌀쌀한 날씨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종대로, 을지로, 청계천로를 감아돌면서 풀코스의 반 쯤 채우게 되는데 그렇게 달리다 보면 아는 분들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이로운님, 로운리맨님의 후배 원희님.... 여느 때 같으면 바로 따라붙어 아는 체 하곤 했는데 이번엔 끝내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지난 주 만났던 의사재기님이 바로 옆에서 앞으로 나갈 때도 따라가 말을 걸지 못했다. 등을 보면서 내내 따라오고 있었답니다. 그런 말을 예행 연습으로만 중얼대고 있었다. 내가 아는 체 할 수 있었던 주자들은 모두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다가 중후반 페이스가 떨어진 분들이었다.
20킬로미터에서 25킬로미터까지 26분 10초로 달려 페이스가 살짝 회복된 것 같았다. 3시간 39분 59초 페이스 5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26분 04초이니 큰 차이가 없어졌다. 신답고가지하차도 오르막도 지났는데 이 정도면 사뭇 고무적이었다. 17킬로미터 지점에서 내 앞으로 나갔던 3시간 40분 페메 풍선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러나 30킬로미터가 가까워지면서 만회할 수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해 3시간 18분 51초의 기록을 세운 것이 정말 내가 맞을까 내내 의심스러웠다. 아무래도 귀신이 씌였던 것같아. 아니면 평생 써야 할 능력을 2년만에 모조리 썼는지도 몰라. 2017년에 동마 최고 기록을 21분 앞당기고, 이듬해 그 기록을 다시 5분 앞당기는 행보를 할 때는 끝이 어디인지 몰랐는데.
최근 마라톤 가운데 다리 상태가 가장 좋지 않았다. 주JS님이 뒤에서 나를 밀고 있고 골인점으로 응원오겠다고 한 분이 나를 당기고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속도를 올려보려고 하면 햄스트링 통증이 생기면서 제자리걸음하는 느낌에 빠졌다. 몸에 이상 증세를 느끼면 달리기를 중단해야 하는 여덟가지 경우 가운데 '달릴 때 근육, 뼈, 관절에 불편함을 느낄 경우'에 해당되었다. (대회 책자 18쪽에 실린 글) 내 몸상태를 고려하고 도전 의지도 고양하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여 3시간 39분대의 목표를 세웠는데도 달리면 달릴수록 그 기록 달성의 가능성은 요원해졌다. 차라리 처음부터 3시간 49분을 목표로 했어야 했다. 3시간 39분의 5킬로미터 구간 기록 조건인 26분 04초를 지킨 것은 첫 5킬로미터밖에 없었다. 5-10킬로미터: 26분 25초, 10-15킬로미터: 26분 35초, 15-20킬로미터: 26분 41초, 20-25킬로미터: 26분 10초. 25분대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게 페이스에 락(lock)이 걸려 있었다. 후반 페이스는 더 떨어져 25-30킬로미터: 27분 08초, 30-35킬로미터: 28분 14초, 35-40킬로미터: 29분 43초까지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힘들어도 35킬로미터 이후는 스퍼트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속도가 느려졌다. 35킬로미터 이후 죽었다 깨어나도 3시간 39분대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자 전의도 상실했다. 적어도 30킬로미터까지는 2시간 39분이 걸렸기 때문에 3시간 39분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12.2킬로미터를 1시간 정도로 뛰어본 일은 자주 있기 때문에 안될 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햄스트링에 이어 아킬레스건까지 아파 오니 이미 몸은 망가진 상태였다. 망가져 버린 몸을 끌고 가는 비법은 최대한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다.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것도 몇 번 해보다가 그만두었다. 마스터즈 최후의 보루, 완주만 해도 승리한 것이라는 말을 위안삼아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만 있었다. 비공식 참가까지 200번을 넘게 달린 경험으로 그나마 포기하지 않고 밀고 가고 있었다. 잠실대교에 오르면 삽시간에 주위의 주자들을 배경으로 만들며 질주하던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반에 강한 제비한스님으로부터 '강건달 파이팅'이라는 응원을 받았지만 따라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그 분의 추월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살기 위해 먹기 싫은 밥을 꾸역꾸역 입 안에 밀어넣는 환자처럼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힘들 때 포기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힘들 때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던가. 포기는 절대 하지 않기로 하고 느리게 달리니 주변 사람들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앞에서 달리는 주자들 마라톤복에 새겨진 영어 문장을 읽는 데 힘을 더 썼다.
If you don't fly, just run. (날 수 없다면 그냥 달리라고)
Heart beat again. (다시 심장이 뛴다)
달리면 달릴수록 조깅을 거듭하고 있었다. 아니, 조깅 수준도 되지 않았다.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100회를 전후하고는 서브 4를 했지만 정작 100회 하는 날은 서브 4를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200회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줄곧 갖고 있었다. 능력도 되지 않는데 속도를 올렸다가 부상이 도지면 안되었다. 끝내 올해 동아마라톤은 예상한 대로 훈련주가 되고 있었다. 다음 대회를 위한..... 달리는 대회마다 다음 대회를 위한 훈련주라니.....
많은 이들이 완주가 보장된 것은 아닌데 자신이 100회나 200회 하는 날짜를 기념 선물에 찍어 버린다.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알아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예 달리지 못하게 되거나, 달리다 그만두어야 하는 일이 없으란 법이 있는가? 2019년 3월 17일. 내게 완주가 불가능한, 그런 일이 없으란 법이 없었다. 기념 수건에 이미 새겨진 200회 완주 2019. 3. 17. 장담할 수 없는 내 미래였다.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예언같은 것이었다. 그 예언을 실현시키고자 애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날짜를 새긴 기념품을 만들어 나의 미래를 확정해 버린 분이 골인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꼭 가야지.
힘들면 그 거리가 더 길게 느껴져서 그렇지 언젠가 골인 지점이 나오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뒷걸음치지 않는 한 골인 지점 패드를 밟게 되어 있었다. 슬로우 비디오 러닝을 해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골인 아치는 점점 가까워졌다. 반대편 주로에서 달리고 있던 10킬로미터 참가자 커플이 중앙 분리대를 넘어왔다. 그리곤 여유있게 셀카를 찍었다. 풀코스 주자들을 자신들의 사진 배경으로 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10킬로미터 주자들은 골인 지점이 다르니 여기서 뛰면 안된다는 말을 하기 전에 이 사진 커플은 부리나케 자기들 주로로 돌아갔다.
어느새 종합운동장 동문 입구에 들어섰다. 1킬로미터도 남지 않았다. 3시간 44분이 되기 직전이었다. 3시간 40분대로는 들어가야지 하면서 애써 앞으로 나아갔다. 바리케이드 바깥쪽으로는 응원나온 사람들이 인간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난해 풀코스 1천회를 달성한 용구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응원에 답하면서 200회를 축하하기 위하여 온다고 한 아세탈님을 찾기 시작했다. 주로 좌우에 있는 사람들 얼굴을 확인하면서 달렸다. 아세탈님이 불러주길 바랬는데 나를 찾지 못했다면 그것도 운이었다. 달리던 주자들이 갑자기 양갈래로 갈라지고 있었다. 잠실종합운동장 남직문 앞에 쓰러진 주자가 있어 구급대원들이 응급 조치를 하느라 주로 중앙을 막은 까닭이었다. 실신한 주자를 안타깝게 내려다보며 달렸다.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남직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트랙에 들어서자마자 아세탈님이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운동장의 모든 사람들이 내 200회 완주를 축하하며 환호성치고 손을 흔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상의 두려움을 떨치고 속도를 올려 트랙을 돌았다. 골인하기 직전 젊은 주자가 배틀을 벌였다. 괴성을 지르며 나를 추월하려고 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간발의 차이로 내가 먼저 골인했다. 3시간 48분 43초를 달려 기어이 2019 동아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지난 해보다 30분이나 늦어진 기록. 이게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동아마라톤 10회 참가 기록 가운데 중간쯤 되는 기록이었다. 사실 나는 로운리맨님과 배틀을 하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배틀은 해보나마나이니 33분을 잡아달라고 했다가 아세탈님의 제안으로 25분 차이로 조정했다. 달리면서 원래대로 33분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프로젝트 팀에 참가하여 특별 훈련을 수행하는 주자와 부상 때문에 훈련도 못하고 체중만 불리고 아직 낫지도 않은 주자가 배틀이라니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느냐는 말을 바깥술님으로부터 듣기는 했다. 아무리 시간을 잡아준다고 해도 배틀은 의미없다고 했다. 싱글 기록을 달성했을 로운리맨님과 40분 쯤 차이가 낫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로운리맨님이 부상 때문에 레이스를 망쳤다는 소문이 대회장 곳곳에 퍼져 있었다. 지난 해보다 늦게 골인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담배까지 끊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다양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던 달림이, 동아마라톤 대회 당일을 위해 한순간도 한눈을 팔지 않았던 이 주자에게 돌아온 것은 혜택이 아니라 시련이었다. 왜 하필이면 동아마라톤인가? 충격에 빠졌을 외로운 주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로운리맨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2016년 동아마라톤 이후 출발 전부터 골인한 후까지 동아마라톤에서 로운리맨님을 만나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200회를 하는 주자를 기다려 달라고 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깥술님은 3인 배틀에서 유일한 승자가 되었다. 싱글을 하겠다고 한 주자는 3시간 31분에 골인했고, 3시간 48분을 목표로 했던 주자는 아예 불참했다. 바깥술님만이 자신이 공언한 3시간 18분대로 골인했다.
주JS님과는 탈의실 앞에서 다시 만났다. 간만에 서브4로 달린 것이 나보다 너무 늦게 들어오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회 완주 선물까지 주셨다. 내가 지방에 갔을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세번째 만남만에 전화번호도 받았다.
아세탈님과는 쿠우쿠우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눈에 띄게 다리를 절었다. 햄스트링쪽은 모르겠고 아킬레스건이 몹시 아팠다. 나는 좀더 절실해져야 하는데 절실한 마음을 일으켜야 할 시점이 자꾸 뒤로 밀리는 느낌이었다. 다들 동아마라톤에서 자신의 기록을 깨뜨리기 위하여 열심히 운동하지만 나는 몇 달 동안 전혀 그럴 수 없었다. 지난 해 3월 18일 대회가 열렸을 때 3시간 18분을 기록했으니 올해 3월 17일에는 3시간 17분을 기록해 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지난해 초겨울 초반 페이스가 3시간 17분대까지 나왔을 때 그 바램이 결코 허황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아마라톤을 다른 군소 대회를 위한 곁가지 대회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나날이었다. 200회 완주기를 기록하는 이 순간 아킬레스건은 아프다. 완주기를 모두 쓰고 난 후 지옥 훈련을 시작하려던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다는 것. 만회하기 전에 너무 심하게 몸을 망쳐 버린 것은 아닌가?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전에도 꾸준히 달리기는 해 왔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달리기를 하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장경인대 부상을 안고 출전했던 2009년 춘천마라톤. 완주한 후 일주일 이상 한쪽 다리를 쓸 수 없었다. 달릴 수는 없으니 한쪽 다리만으로 줄넘기를 하며 운동을 이어나갔다. 이제 10년 전의 그 열정을 다시 소환해야 한다.
2019 서울국제마라톤은 나를 위해 이런 결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듯.....
페이스 분배표는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좌절감을 안겼다.
생애 처음으로 만들어 부착한 페이스 분배표.
3시간 39분 페이스 분배표는 주최측에서 제공한 것을 달고 달린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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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을 뚫고 달리는 대회. 서울 구경한다고 생각하고 달린다면 즐거운 이벤트일 수 있다.
싱글렛 보다는 반팔티가 마음에 들어 10킬로미터 종목을 참가 신청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올해는 홀수년도이니 동마 풀코스를 뛰지 않아도 상관없는 해였다.
실제로 2015년에는 기념티셔츠 때문에 풀코스가 아닌 10킬로미터에 참가한 일도 있었다.
올해 후원사가 아디다스에서 뉴발란스로 바뀌어 색다른 기념품을 기대했건만......
온도는 올랐기 때문에 반팔티를 입고 달리기 잘했다.
긴팔티를 입었다면 더위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름이 정말 크게 새겨진 배번.....
서울국제마라톤은 01이라고 찍힌다. 공주마라톤은 02, 경주국제마라톤은 03이 된다고 한다.
fearlessly independent..... 좋은 표현이네....
이것은 대회장에서 바깥술님이 주신 간식...
주JS님의 뒷모습. 이 문구를 달고 풀코스를 달리셨다.
출력된 응원 문구 용지를 여러 장 뽑아 오셨다. 사실 출발 전 나와 친한 분을 찾아 그분들에게도 달아드리려고 했다고 했다.
방 한쪽에 눈에 잘 보이는 곳에 한 장을 부착해 놓았다.
배번을 보관하는 파일에도......
끼워 넣었다.
주JS님이 주신 선물
양쪽으로 빨간 별, 파란 별이 붙어 있었는데 주JS님의 섬세한 배려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에너지 충전이 되는 제품
글씨도 잘 쓰신다.
고마운 마음이 느껴진다.
잘 먹겠습니다. 빨리 부상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세탈님이 찍어준 사진.....
아세탈님이 뒤따라오고 있는 줄 몰랐다.
希洙형님은 전날 축구를 많이 하는 바람에 마라톤 후반 지쳐서 아예 걸었다고 했다.
형님은 큰 대회를 앞두고 전날 무리한 체육 활동을 자제할 뿐만 아니라 3시간 29분을 기록했던 시절의 몸무게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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