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이 아닌 옐로우카펫을 달릴 준비가 되셨나요?
2018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오전 9시 정각 아산 은행나무길 마라톤대회 사회자의 우렁찬 멘트를 들으며 출발했다. 온통 샛노란 은행잎으로 뒤덮인 주로는 그야말로 옐로우카펫이었다. 이색적인 주로를 따라 달리는데 쿠션 작용이 커서 스피드를 올릴 수 없었다. 스폰지를 디디는 느낌이었다. 은행나무 열매가 낙엽 아래 밟히며 딱딱 소리를 내며 긴장감도 조성하였다. 발바닥을 다치는 것은 아닐까. 운치 하나는 최고이지만 기록을 내기 위하여 선택할 대회는 아니었다. 은행잎을 밟고 달리면서 1킬로미터 구간 기록을 확인하니 5분이 조금 넘었다. 아산맑은쌀 5킬로그램을 받기 위하여 이 대회에 참가한 것이지만 그래도 1시간 39분대로는 골인하고 싶었다. 스피드를 끌어올리지 않는 한 1시간 39분대는커녕 1시간 44분대 골인도 힘들어 보였다. 은행잎이 조금씩 사라지는 구간이 나오면서 스피드를 올렸다. 왼쪽 다리가 뻣뻣하다는 느낌이 들어 잠시 긴장했지만 두번째 1킬로미터 구간에서는 4분 20초대까지 속도가 올라갔다. 삽시간에 1시간 39분대 페이스 주자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는 매우 앞에 있었다. 나보다 십여 초 빨리 출발했을 뿐인데 너무 앞에 있는 것 아닌가? 내가 1시간 45분 페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 1시간 40분 페메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다 안개가 짙은 날씨라 시야가 제한되어 페메 풍선에 적힌 숫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숨은 거칠었다. 처음 나오는 대회라 주변 풍경을 살피면서 달려야 했는데 온 신경은 전방의 페메에 가 있었다. 5킬로미터를 지나기 전에 10킬로미터 선두 주자가 나타났다. 10킬로미터 반환점을 지나면서 첫 5킬로미터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22분 43초였다. 1시간 39분이 넉넉할 속도로 진입했는데 여전히 1시간 45분 페메는 내 앞에 꽤 떨어져 있었다. 1시간 45분 페메는 왜 5킬로미터까지 22분 01초로 달렸던 것일까? 빛바랜 수풀 사이를 누비며 아직 걷히지 않은 안개 속을 휘저으며 나아갔다. 8킬로미터를 넘겼을 때에야 1시간 45분 페메를 제칠 수 있었다. 동반 주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입상할 것 아니면 이렇게 여유있게 달리는 게 좋아요라는 말을 나누고 있었다. 무거운 몸으로 이 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진을 뺐는지 모른다. 일주일 내내 많이 먹어 대고 있었다. 야식과 간식거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대회 전날에는 밥을 먹고 또 과자를 먹고 과일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기를 거듭하여 복부를 휘감는 묵직함에 얼굴이 터질 것같은 팽창감이 내내 이어졌다. 대회 당일 아산행 버스를 타기 직전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롯데리아에서 불고기버거 세트까지 먹었다. 콜라도 리필했다. 하프라고 너무 만만하게 보고 준비한 것인가, 최초의 목적인 쌀만 받아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가. 몸이 무거워 몸놀림에 경쾌함이 없었다. 무식하게 힘으로 밀고 나가고 있었다. 뚱땡이가 지축을 울린다고나 할까?
1시간 45분 페메답지 않은 페메를 따라 뛴다고 애쓰면서 10킬로미터는 45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1시간 34분대가 유력했다. 이 대회는 둑방길과 천변길을 나누어 오고 가는 주자들이 엇갈리는 주로를 만들었는데 덕분에 주로가 잘 정리된 느낌이었다. 반환점에 인식 패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반환점 100미터 전에 인식 패드가 있었다. 남자 선두는 둑방길 아래 천변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주볼 수는 없었고, 이정숙씨를 비롯한 여자 선두 그룹은 천변길로 내려가기 전이라 마주 볼 수 있었다. 5위 전후로 달리는 달해아름다워님을 응원했는데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오로지 레이스에만 올인한 것같았다. 달해아름다워님은 여자부 2위로 골인했다.
11킬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하니 앞으로 남은 10킬로미터를 50분 정도로 뛰어도 1시간 39분대는 충분해 보였다. 돌연 느슨한 달리기가 되었다. 조금 늦추어도 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4분 45초 전후가 유지되면서 더욱 더 마음은 안이해졌다. 치열함이란 없었다. 그저 현상 유지의 달리기만 거듭했다. 5분이 넘는 페이스가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느려진 것이 아니라 거리 표지판 위치가 잘못 되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속도를 늦추자 몇 분이 내 앞으로 나왔다. 홍성마라톤 후반에 배틀 아닌 배틀을 벌였던 0大님이 나를 추월하고 나섰다. 아주 앞으로 간 것이 아니라 많이 떨어지지 않는 속도로 따라갔다. 거북이달린다님도 내 앞으로 나아가고, 살집이 있는 올블랙슈트 주자도 내 앞으로 나아갔다. 18킬로미터 이후부터는 표지판이 남은 거리로 표시되었다. 17킬로미터부터 18.1킬로미터까지의 거리를 4분 40초 이내로 통과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후반 1.1킬로미터의 기록이 4분 40초 이내라면 사뭇 고무적이었다. 19킬로미터를 전후하여 거북이달린다, 0大님과 올블랙슈트님도 제쳤다. 출발할 때는 한동안 둔덕이었는데 후반에는 둔덕 아래길을 달리게 되었다. 1킬로미터를 남겼을 때에야 좁은 오르막 소로를 따라 은행잎이 잔뜩 쌓인 주로로 올라갔다. 1시간 38분대가 유력했다. 은행잎이 내 속도를 증발시키는 현상만 아니라면 좀 수월했겠지만 스퍼트할 구간에서 풍경 감상 러닝이 강요되니 구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은행나무 사이에 걸어놓은 플래카드를 골인점으로 착각하는 일도 있었다. 몇 백 미터를 더 가야 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낙담했는지 모른다. 은행잎을 흩뿌리며 사진 찍는 사람부터 유모차 몰고 은행나무 아래를 걷는 사람까지 주로에는 주자보다 탐방객이 많았다. 1킬로미터를 남기고 달리는 동안 그렇게 스퍼트하는 데도 단 한 명의 주자도 제치지 못했다. 전방에 주자가 없었다.
01:37:07.07
7자가 많았다. 남자부 37위를 했으니 거기에도 7이 있었다. 10킬로미터에 참가한 아세탈님이 먼저 골인한 후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완주 기록증을 받고 옷을 갈아입었다. 경품은 전혀 당첨이 되지 않았고, 먹거리 부스의 줄이 너무 길어 대회장에서 허기를 채우는 일은 생략하기로 했다.
아세탈님의 차를 타고 다니며 아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식당을 찾느라 부산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렁쌈장을 먹게 되었다. 새벽에는 대회장까지 픽업해 주고 오후에는 터미널 앞까지 태워주시니 정말 편안한 지방 마라톤 여행이 되었다. 거기에 빼빼로데이라 빼빼로까지 선물하셨다. 집에서 밥을 해먹을 일이 없다며 기념품인 쌀도 내게 주셨다.
대회 당일 새벽 5시 20분 고속버스터미널 롯데리아에서 먹은 불고기 버거세트.
대회를 앞두고 조금 한심한 선택을.....
곧 달리게 될 은행나무길 (아세탈님이 찍어주심)
융단처럼 깔린 은행잎..... 치고 달리기 쉽지는 않아 보이는 주로.
짙은 안개가 깔려 있는 출발선의 아치
거의 독주하듯이 골인하고 있다.(아세탈님이 찍어주심)
당초 1시간 39분대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5킬로그램 쌀 기념품 때문에 출전했다.
아세탈님이 주신 쌀까지 접수했다.
땀으로 반쯤 젖어버린 배번 위로 치간칫솔도 보인다.
메달이 은행나무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특색이 있었다.
쌀을 받았다는 증표로 구멍을 뚫어주는 방식은 김제지평선마라톤과 같았다.
여러가지 할인 쿠폰도 제공되었는데 쓰게 될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청암진지상 식당.....
우럼쌈장
제육볶음 추가
당초 이곳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일요일은 쉬는 날이었다.
불티나 꼬막짬뽕... 맛집이었나 보다. 기다려볼까 하였는데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니 포기했다. 배가 너무 부르기도 했고.....
아세탈님이 주신 선물
빼빼로와 근육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이것을 혼자 다 먹을 수는 없고.....
동네 축구부원들과 나누어 먹었다. (아세탈님 덕분에 좋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도전! 마라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4회 자원봉사 사랑 마라톤대회(2018/11/25)-FULL 190 (0) | 2018.11.28 |
---|---|
제16회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2018/11/18)-FULL 189 (0) | 2018.11.21 |
2018 JTBC 서울마라톤(2018/11/04)-FULL (0) | 2018.11.10 |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8/10/31)-FULL *** (0) | 2018.11.02 |
2018 조선일보 춘천마라톤(2018/10/28)-FULL *** (0) | 2018.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