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마찬가지이지만 지난 해에도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 로운리맨님 권유를 받고 참가했던 대회였다. 지난 해까지 여섯 번이나 출전했던 대회이니 올해는 건너 뛰리라 마음먹었는데 로운리맨님이 풀코스 100회를 달성하는 대회로 정하면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8월 풀코스 4회의 강행군으로 100회를 마무리해 버리는 로운리맨님. 덕분에 나는 8월 말 풀코스를 양구나 사천이 아닌 영동에서 또다시 달리게 되었다. 요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내내 뒤처져서 따라가야 할텐데.... 진정한 축하주라면 옆에서 동반주를 해 주는 것인데..... 결국 반환점을 먼저 돈 로운리맨님에게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려 1을 표시하고, 왼손으로 주먹을 쥐어 두 번 앞으로 내밀면서 0, 0을 표시하여 100번 완주를 축하하고 '축하합니다'라는 노래를 불러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세탈님처럼 플래카드를 만들어 운동장에 걸고, 머그잔을 특별 제작하여 선물하지는 못하더라도 축하 깃발을 들고 달리거나 'With Lonely Man of 100th Full Course Marathon'이라고 새긴 티셔츠를 입고 달리거나, 그도 아니면 100회를 축하하는 문구를 출력하여 등에 달고 달리거나 했어야 했는데...... 뻔뻔하게 같은 대회에 참가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축하라고 애써 주장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내가 100회 할 때는 지인들 없는 곳에 가서 나 혼자 외롭게 달렸거든요. 그렇게 떠들어 본들.....
비가 내리니 지난 해의 뙤약볕 보다 훨씬 뛰기 좋은 날씨가 되었고, 그래도 몇 시간을 자고 나온데다 버스 뒷좌석을 다 차지하고 길게 눕기까지 했으니 지난 해 이틀 동안 밤새고 달린 것과 비교해도 달리기 전 컨디션이 나아졌다. 하지만 훈련 부족, 열량 과다 보충으로 불어난 체중을 감당하지 못하고 겨우 겨우 달렸다. 전날 저녁에는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얼린 생수병을 발바닥으로 굴리기를 거듭하고 대회 당일에는 길게 테이핑을 하고 달려야 했다. 폭염 경보가 이어졌던 8월 초에 달리고 삼 주 만에 달리는 것이라 풀코스 감각이 떨어졌지만 후반 최악의 고통을 속도 늦추기로 감당해서 4시간 이내로 완주는 했다. 새벽 1시 59분 기상. 3시 20분 시청 대한문 도착. 4시 셔틀버스 출발. 여의나루역 경유 7시 영동군민운동장 도착. 스트레칭 마치고 로운리맨님과 기념 사진 촬영. 물품 보관. 시간 계획대로 착착 움직였지만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에도 개운하지 않았다. 몸의 순환이 되지 않았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맡은 헬스지노님은 내게 고수가 출전했네라고 했지만 8킬로미터 지점에서 추월당했으니 그런 하수가 없었다. 오늘은 지노님 따라 뛸 거예요라고 했을 때 헬스지노님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했는데, 따라 뛰기는커녕 뒤로 쭉 밀리게 되었으니 이런저런 변명이라도 늘어놓고 싶었다. 달리는 동안에는 내내 침묵하는 헬스지노님 스타일 덕분에 굳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10킬로미터만 달리기로 한 아세탈님은 짧은 거리인만큼 5킬로미터를 지나기 전에 나를 추월할 줄 알았는데 출발할 때 잠깐 만나고 달리는 동안에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로운리맨님은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로운리맨님의 후배 원희님은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 바로 뒤쪽에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10킬로미터 지점은 55분대에 지났기 때문에 헬스지노님 앞으로 다시 나아갔다. 그 이후 따라잡히지는 않았다. 영동천과 금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나간 도로 앞쪽으로 노랑 풍선 두 개가 흔들리는데 3시간 45분 페메가 틀림없었다. 저 페메만 따라잡아도 영동포도마라톤 최고 기록을 세우는 것인데...... 페메는 딱 봐도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시간상으로 2분 30초 떨어진 것인데 지금부터 페이스를 10초씩 빨리 해도 따라잡는데 15킬로미터는 더 달려야 했다. 5분 40초 밖으로 밀렸던 페이스를 5분 15초까지도 끌어올리는 구간이 있었지만, 좀 빨리 달렸다 싶어도 5분 20초가 넘는 구간도 많았다. 왜 그래야 해. 그냥 달리면 안돼. 오늘은 그냥 훈련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아세탈님에게 말했잖아. 원희님은 자신보다 늦게 달린 적이 없었던 내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였다. 그냥 오늘은 이럴 수밖에 없어요. 해명하고 침묵 모드.
서브 3 페이스로 가던 찬일님은 페이스가 많이 떨어져 보였다. 역전 우승하라는 응원을 보내었지만 몹시 힘들어 보였다. 3시간 25분 이내의 페이스로 질주하는 광배님, 생애 첫 3시간 20분대 진입을 눈 앞에 두고 달리는 이로운님을 응원했다. 광배님과 이로운님은 찬일님을 추월했다. 반환은 1시간 55분이 되기 직전 했다. 후반에도 꾸준히 달리면 3시간 49분대는 달성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33킬로미터에서 35킬로미터 사이에 몹시 가파르고 긴 언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3시간 51분이나 52분에 들어가도 선방한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반환점 전후에 만나는 급수대에서 초코파이나 바나나를 먹을 수 있었으면 했는데 물밖에 없었다. 포카리스웨트는 보이는데 어느 컵에 따라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잡을 때마다 물이었다. 점점 허기가 졌다. 22킬로미터 이후에는 꽤 많은 비를 맞으면서 달리고 있었다. 300미터 정도 앞에서 달리는 원희님이 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었다. 원희님의 기세는 좋았다. 앞에 있는 주자들을 한 두 명 제치는 것이 아니었다. 사정권 안에 들면 무서운 힘으로 앞 주자들을 제쳐나갔다. 원희님이 제친 주자들을 제치면서 따라갔다. 24킬로미터와 25킬로미터 지점 사이에서 몇 가지 일이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왔고, 마침내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먹었고, 원희님과의 거리를 100미터 이내로 좁혔다. 원희님에게 다가가 지금 페이스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것이 29킬로미터를 넘었을 때였다. 원희님은 내게 먼저 가라고 했다. 33킬로미터 이후 만나는 오르막을 조심하라고 귀띰했더니 이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30킬로미터에 가까워지면서 좀더 여유를 가지려고 애썼다. 두 팔을 벌려 비를 맞으며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흉내를 내었고, <말아톤>에서 샤워부스를 지나면서 질주하는 초원이 흉내도 내었다. 급수대를 만날 때마다 집어든 물컵은 물이 넘칠 만큼 가득했는데 반은 빗물이었을 것이다. 빗 속을 뚫고 밀려 들어오는 참외 냄새가 있었다. 참외를 흐르는 수돗물에 씻을 때 맡게 되는 냄새와 똑같았다. 그 냄새를 내내 맡았다. 시야는 비구름 속에 갇혔다. 일부러 내다보려고 애써도 멀리 볼 수 없었다. 비를 맞으며 생각만 깊어지고 있었다.
직전 풀코스가 지독하게 더웠던 기억밖에 없어서 영동에서 비맞고 달리기는 훨씬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아, 이런 것이구나. 훈련은 열심히 해야 하는 거다. 후반으로 들어섰을 때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훈련이 충분할 때 가능한 일이었다. 훈련이 부족한 만큼 잘못될지 모른다는 우려감으로 모험을 걸지 못했다. 달릴 거리가 10킬로미터 이내로 줄어들면서 만나는 오르막에서 몇 사람을 제치면서 기세를 올렸지만 거기까지였다. 35킬로미터 이후 표지판은 너무 더디게 나타났다. 옆구리에 붙은 살을 만지며 절망했다. 어떻게 이렇게 몸을 망쳤담? GS25 편의점 8월 행사 상품이 600밀리 펩시콜라 1+1이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었다. 1800원에 두 병, 팝카드로 할인받으면 1620원. 밤에 갈증이 날 때마다 콜라 한 병을 뚝딱 해치웠으니..... 운동은 이틀에 한번 꼴이던 것을, 사흘에 한번 꼴, 그것도 강도가 낮게..... 원래 그런 거다. 풀코스 종목에서는 요행을 바랄 수는 없으니.... 몸관리를 소홀하게 한 만큼, 운동을 적게 한 만큼 댓가를 치르게 되어 있었다.
그래도 몇 명씩 제치는데 그 가운데는 모철님도 있었다. 이 분은 전날 오전 나주에서 풀코스, 오후에는 사천에서 풀코스, 다음날 오전 영동에서 풀코스를 뛰시는데 30시간 안에 풀코스 세 차례, 125킬로미터를 넘게 뛰게 되니 그 피곤함을 추스리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풀코스 8백번은 넘었고 9백번은 안 되었다고 하니 내년에는 1천 회 완주를 달성하게 된다고 했다.
악착같이 버티기에 들어갔다. 다 왔으니 조금만 힘을 내자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이왕 힘든 것 조금만 더 힘들게 해서 속도를 올리자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지나면서 시계를 보니 3시간 45분 경과. 3시간 50분이 되기 전에 골인하고 싶었다. 서브4로 골인하면 만족하겠다는 최초의 바램이 달리는 동안 바뀐 것이다. 꼭 서브 350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밀고 나갔다. 군민운동장은 주변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서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야 했다. 남은 1킬로미터를 5분 이내로 달려낼 수는 있겠는가? 운동장 트랙으로 들어서면서 최대한 안쪽 레인을 따라 달리는데 물이 고여 있어서 저항이 심했다. 그렇다고 바깥쪽 레인으로 이동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철벅거리며 그냥 내달렸다. 이미 골인한 로운리맨님과 10킬로미터만 달린 아세탈님이 골인 아치 뒤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운 몸이지만 악착같이 애를 쓴 덕분에 마지막 1킬로미터는 4분 40초로 달릴 수 있었다.
3:49:40.71
풀코스 100회를 달성한 로운리맨님과 기념 촬영을 했다. 이 이후 빗줄기는 더 심해졌다. 이동이 어려울 만큼 심한 비가 내렸다. 서브 4로 골인한 원희님과 함께 우산없이 비를 피해가며 아세탈님과 다시 만나 국수를 먹으러 가고 먹거리 장터에도 갔다. 로운리맨님이 포도돼지덮밥과 돼지보쌈을 사주셔서 잘 먹었다. 로운리맨님 풀코스 100회 선물로 포도주를 사서 드렸다. 로운리맨님과 아세탈님이 주신 선물은 워낙 양이 많아서 마치 내가 풀코스 100회 완주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3년 전 풀코스 100회를 완주할 때 아무것도 받지 못했던 내가 밀린 선물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의 골인 모습을 아세탈님이 찍어주셨다. 내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다.
점점 가까워지는데.....
마침내 골인!
시계의 스톱 버튼을 누른다.
로운리맨님이 비를 맞고 있는데 나는 벌써 포도를 받으러 저 멀리 가 버렸다.
새벽에 만들어 온 닭갈비 볶음밥
스윗걸의 공연....
완주 후 먹거리 부스에서 국수를 먹었다.
선물 한아름 들고 이동하는......
포도돼지덮밥.... 이름이 특이해서....
보쌈.....
네 사람이 모여서 맛있게 먹고 있다.
은수님이 사 준 군밤
이 포도를 받으려면 풀코스 종목을 신청해야 한다.
그 동안 몸관리를 잘했으면 적어도 지난 해 기록은 깰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달리면서 마주 보는 주자 가운데 어르신 한 분이 '강건달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아주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는데 사실 이 분을 알지 못했다.
달리기 전 만난 안수길님은 일단 책 이야기부터 꺼내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중역하지 않고 그리스어를 바로 우리말로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고, 대회장에 올 때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중국기행(支那遊記)>를 읽고 왔다고 했다.
셔틀버스에서는 은수님과 올 때 갈 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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