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주최측으로부터 전날 문자를 받았다. 폭염이라 대회를 취소한다는 공지인 줄 알았는데 여느때처럼 대회를 여니 참가를 권하는 내용이었다.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는 와중에, 그것도 주중에 과연 몇 명이나 참가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대회장으로 갔다. 혹시 나 혼자 참가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동하는 동안 버스 안에서 눈을 붙이고 선잠으로 설친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42.195킬로미터를 달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상태에서 출발선에 서는 것. 하지만 나는 거의 자지 못했다. 반지하방에 기거하면서도 실내 온도가 30도 가까이 오르며 수면은 단속적으로 변했다. 내내 틀어대는 선풍기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잠을 자도 머리가 아팠다. 열대야가 시작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시원한 곳에서 잠 좀 실컷 자 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를 거듭했다. 160번 버스를 타고 신도림역에서 내릴 때까지 서른 네 개의 정류장을 이동했는데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혼잡한 버스 안에서 내내 사람들과 부딪치며 내 자리를 사수해야 했다. 평일 새벽 4시 30분을 전후한 시간대에는 늘 이랬나? 1시간 40분만에 마라톤 힐링카페에 도착해서야 앉을 수 있었다.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여건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국마라톤 TV 대표이사님에게 오늘 2회전을 하면 안되느냐고 물었더니 가용한 인원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칩을 도입한 것만으로도 비용이 많이 드는데 수요일에는 4회전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2회전일 경우 노천구간은 16킬로미터이지만, 4회전일 경우 노천구간은 32킬로미터로 두 배로 늘어난다. 내내 노천인 구간인 대회도 있으니 이런 것을 따지는 자체가 배부른 소리일 수 있었다. 뭐든 쉽게 이루려는 태도는 피할 수 없나 보다.
내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웠다. 다리 경련? 발바닥 통증? 에너지 고갈? 견딜 길 없는 패배감? 의지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다는 현실의 냉혹함?
도림천은 녹조가 끼어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티를 진하게 내고 있었다. 구름이 덮이긴 했지만 햇빛이 파고 들어올 기미가 보였다. 그래도 아직 뙤약볕은 아니니 7월의 이전 세 번 풀코스보다는 낫다고 되뇌이면서 출발했다. 본의 아니게 선두로 나서고 있었다. 오늘도 나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 직전 두 번의 풀코스에서 연달아 후반에 나를 추월했던 용석 어르신은 이번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4회전일 때 늘 하던 방식을 따라 기-승-전-결 모드로 가기로 했다. 속도를 따지지 않고 첫 회전을 해 본 후, 다음 회전은 그 페이스를 유지하고, 3회전에서는 후반을 위하여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4회전에서는 남겨 놓은 힘을 쏟아붓는 것으로. 1회전을 늘 1시간 이내로 돌아 총 4회전을 4시간 이내로 마칠 수 있기를 열망했다.
첫 2킬로미터는 11분이 걸리지 않았다. 잘 나가고 있는 것인데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벌써 이렇게 땀을 흘리면 앞으로 40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에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릴까? 양말뿐만 아니라 신발까지 세탁하는 게 대회 후 수순이리라. 젖은 신발을 들어 냄새는 맡지 말아라. 역겨운 냄새에 미간을 찌푸릴 일 있나? 그냥 오늘 쉬고 주말에 달리는 게 나았을 것을. 몸만들기 차원에서 7월에 다섯 번 풀코스를 달리겠다고 공언해서는..... 달린 거리가 늘어날수록 힘들어질텐데. 시간이 거듭될수록 기온도 급상승하면 움직이기가 더 힘들텐데. 그저 미래가 두렵기만 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일어날 일이니 미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심적인 부담을 줄이려고 애썼다. 한걸음, 한걸음. 달리면 앞으로 달릴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틀림없으니. 너무 힘들더라도 걷고 싶을 정도로, 걷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힘든 일은 없기만 바라며 한걸음 한걸음.
1등으로 나아가 5.27킬로미터 급수대에서 콜라와 생수를 마시고 반환했다.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돌아가는 구간도 30분이 걸리지 않으면 1회전은 1시간 이내로 끝난다. 간단하게 말해서 반환할 때마다 30분 이내로 달릴 수 있으면 서브 4 주자가 된다. 뒷 주자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면서 출발점이자 골인점을 향해 달렸다. 고가의 그늘 구간을 통과하는데 그늘 구간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더운 기운을 응축하여 한데 모아놓은 듯한 터널의 느낌이 들었다. 수량이 빈약한 도림천은 주변의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있었다. 노천에서 받는 햇살은 칼날처럼 예리해서 고온에 베이는 것같았다. 1회전은 57분에 끝냈고, 2회전도 그 페이스를 지켜냈다. 하프만의 기록을 볼 때 최근 두 차례의 풀코스 중간 하프 기록보다 나빠졌다. 이대로라면 서브 4는 하기 힘들어 보였다. 서브 4를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고, 못하더라도 받아들이자고 수시로 생각하면서도 자꾸 서브4에 매이고 있었다. 2회전이 끝나갈 무렵 양쪽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2회전으로 마치고 싶은 생각이 틀림없이 들거야. 그때 가차없이 돌아서라고. 주저없이 돌아서서 3회전에 나서라고. 나와 약속하는 거야. 실제로 2회전을 끝낼 무렵 이제 운동은 충분하니 그만 달리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이겨내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미리 나 자신과 약속한 덕분에 3회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3회전은 처절하리만치 속도를 늦추어 달렸다. 비라도 내릴 것같이 구름이 내려 앉았지만 어느 순간 햇빛이 작렬했다. 유인 급수대에서는 생수 두 잔, 콜라 두 잔을 꼭 챙겨 마시고 무인 급수대에서도 생수 두 잔을 마시면서 평소보다 시간을 많이 썼다. 후반을 위하여 수분을 충분히 섭취했다. 발바닥의 화끈거림은 이따금 돌아와 사람을 괴롭혔는데 이번에는 좀 이상했다. 발바닥에서 무언가 말린 느낌이 있었다. 이미 양말이 흠뻑 젖어 발바닥에 붙인 테이핑이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떨어진 테이핑이 말려서 밀린 끝에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끼여 있었다. 신발을 벗을, 더구나 양말까지 벗을 여유는 없었다. 급수대에서 시간을 많이 쓰는데 거기까지 시간을 쓰다가는 간발의 차이로 서브4를 놓칠 수 있었다. 불편을 감수한 채로 달렸다. 폭염의 풀코스를 선택한 열 두 명의 주자들은 서로 응원을 보내며 달리고 있었다. 4회전을 하는 만큼 마주 보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손을 흔들거나 말로 응원했다. 열두 명의 마스터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생각이 자꾸 나는 레이스.
지난 해 7월에는 3시간 34분까지도 뛰었는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올해만큼 덥지 않아서? 그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체중이 가벼웠고, 월드컵 시청으로 몸을 망칠 일도 없었다. 3회전은 가장 늦게 달린 구간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1시간을 넘기진 않았다. 3회전 초반에는 몹시 지쳐서 암담한 심정이 되었지만 후반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회복했다. 4회전에 들어서서는 반환하기 전까지는 몸조심을 했다. 속도를 늦추어 좀더 힘을 아꼈다. 그렇게 늦추어도 용석 어르신에게 추월당하지 않았고, 3시간 50분대가 가능해 보였다. 반환하기 직전 급수대에서 콜라 2, 생수 2의 스타일을 지켰다. 4킬로미터 쯤 남았을 때 속도를 올렸다. 40킬로미터 직전 무인급수대에서는 미지근한 물이지만 두 잔을 따라마셨다. 2킬로미터를 남기고는 질주했다. 5분 페이스까지 끌어올렸다. 이제 3회전 초반에 들어선 은기님이 노점상에서 나를 불렀다. 시원한 음료수를 살테니 들렀다 가라고 했다. 시계를 가리키며 죄송하지만 안되겠다고 했다. 신정교 아래쪽을 감아돌아 스퍼트했다.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폭염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도, 2회전이 아닌 4회전인데도 나흘 전보다 잘 달렸다.
3:52:57.39
바로 의자에 앉아 500밀리 생수 두 병을 연달아 마셨다. 달리는 동안에도 배가 부를 만큼 마셨는데 또다시 물이 들어가니 마냥 신기했다.
용석 어르신은 나보다 늦게 골인했으나 3시간 59분대였다. 참가자 12명 가운데 두 명이 서브 4였고, 다섯 명이 4시간 대, 나머지 다섯 명이 5시간을 넘었다.
이제 7월의 풀코스가 한 차례 남았다. 7월 29일 일요일 달릴 확률이 매우 높은 마당에.....
젖은 양말, 종아리와 발바닥에 붙였던 테이프
여건은 더 힘들었는데 컨디션은 오히려 좋았다.
15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 버스가 꽉 차서 올 수밖에....
혼잡이라는 안내는 거의 보지 못하던 것인데.... 버스에 탄 후 놀랐다. 주말과는 너무 다른 풍경
신도림역 위에 구름이 끼였지만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불볕더위를 선사하기 직전.
김밥 한 줄을 사서 먹는 것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칩 인식 장치
아세탈님 덕분에 잘 먹고 있는 CCD
비가 내리지 않아 녹조가 심한 도림천
이 무인급수대가 문제다.
마라토너들이 아닌 사람들이 물을 자꾸 마시면서 마라토너들이 갈증이 날 때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태도 빚어진다.
완주 후 거울 보고 찰칵!
고생했다. 강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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