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8/08/05)-FULL 179

HoonzK 2018. 8. 15. 01:32

힘든 상황이었다는 것. 하지만 극복했다는 것. 어쩌면 마라톤 완주기는 한결같이 그런 내용의 동어반복인지도 모르겠다. 동어 반복 속에 미세한 차이를 기록하고자 또 완주기를 쓰고 있을 수도 있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의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이었다. 영영 깨어지지 않을 것같았던 1994년의 38.4도 기록을 갈아치우기까지 했다. 이번 폭염으로 대한민국의 평균 연령을 낮출 수도 있겠다는 우스개 소리도 돌았다.  (그 이유를 여기에 직접 쓰기가 좀......)
 
 공원사랑마라톤 대회 참가를 7월 14일, 21일, 25일, 29일, 급기야 8월 5일까지 하고 있었다. 오히려 피해 가야 할 폭염 마라톤을 더 찾아서 참가하고 있었다. 에어컨 없이 초열대야를 버티면서 잠을 자도 잔 것같지 않은 몸으로 잔혹한 여름을 이겨내고 있었다. 8월 첫번째 일요일은 쉬고 싶었지만 로운리맨님과 6시에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6시에 출발하는 마라톤이지만 이미 30도에 육박했다는 사실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어떻게든 버티어내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달렸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도림천 위에 구름이 잔뜩 끼어 비라도 내릴 것같다는 사실이었다.


 로운리맨님이 선두에 나서면서 선택한 코스 때문에 뒤따르는 주자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이래도 되는 걸까 몇 초 정도 머뭇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다가 로운리맨님이 선택한 코스를 따랐다. 별 차이가 없으니 그대로 가자고. 지난 7월 8일 월드런마라톤대회 풀코스에서 여자부 1위를 차지했던 달해아름다워님이 다음 주 풀코스를 대비하여 훈련을 나왔다며 나와 함께 달리기를 원했다. 저는 서브4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저랑 뛰시면 안될텐데요. 저도 다음 주 풀코스 대비해서 훈련하는 것이라 서브4로 뛰려고 해요. 


 달해아름다워님과 보조를 맞추는데 뜻하지 않게 2위 그룹이었다. 선두에 나선 로운리맨님은 거의 날아가고 있었다. 1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할 때 시계를 보니 4분 40초. 이 여름에 3시간 10분대로 질주를 시작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미처 시계를 차고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속도를 체크하지 못한 걸까? 7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는 로운리맨님을 보니 어느덧 페이스를 늦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1킬로미터 지점을 5분 40초에 지났다. 올여름 마라톤 첫 1킬로미터 페이스가 자꾸 떨어지더니 최악의 기록이 나왔다. 그래도 서브 4에는 부합되는 페이스였다. 3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간을 체크하니 16분 15초. 17분으로 달려야 3시간 59분대로 골인하니 어느새 여유가 생겼다. 몹시 고단하지만 일주일 전만큼은 아니라는 사실에 힘을 얻었다. 달해아름다워님과 대화를 이어나가며 그동안의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그 에피소드 중에는 2014년 장흥에서 달해아름다워님이 4시간 페메로 나서서 나를 그렇게 독려했는데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4시간 9분으로 골인했던 일도 들어 있었다. 달해아름다워님이 큰 수술과 부상 회복에 애쓰는 동안 나 자신은 말도 안 되는 기록 향상을 거두어 올해 동아마라톤에서는 3시간 18분대로 뛰었다는 일화도 꺼내어 놓았다.  이제는 내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느 지점에서 급수가 이루어지고, 어느 지점에서 도림천을 건너야 하는가 쉴새없이 설명했다. 저 분은 마라톤 관련 책도 번역하신 정형외과 의사시고, 저 분은 혈당이 600까지 치솟아 그야 말로 살기 위하여 마라톤을 하시며, 저 분은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만 3시간 10분대를 세 번이나 달성했고, 저 분은 75세의 나이에도 젊은 주자들 보다 먼저 골인하시고 계시며....... 우리가 도림천 상류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오르막을 달리고 있고요, 지난 달 제가 7월 한 달 풀코스를 다섯 차례를 달렸는데 하나같이 포기하고 싶지 않은 대회가 없었어요. 잡담 러닝을 하다 보니 어느새 10킬로미터 지점이었다. 일주일 전보다 3분 가까이 빨리 통과하였다. 로운리맨님은 벌써 반환해서 오고 있었다. 초반 페이스와 비교한다면 많이 늦춘 것으로 보였다. 시계를 챙기지 못해서 페이스를 맞추기는 힘들었을텐데.


 10.55킬로미터 지점에서 반환해서 돌아가는데 달해아름다워님이 우리가 조금 빨라진 것은 아시죠라고 물었다. 그러면 후반에 힘들어질 수 있는데. 13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은수님이 오고 있었다. 6시 40분에 출발했다고 했다. (이 분은 나처럼 우이천변이 훈련 장소다.) 15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7시에 출발한 노원희규님이 건너편에서 힘차게 오고 있었다. 5킬로미터를 25분이 걸리지 않아 통과한 것같은데 더위에 강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후 인천고 기옥님, 긴팔 티셔츠 병준님,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흥의님 등과 인사를 주고 받았다.


 노천구간이 시작되는 17킬로미터 지점에서도 햇빛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1시간만 후줄근하게 비가 내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대한의 여유를 보였다. 달리면서 두 손을 모았다. 뭐하세요? 기우제 지내요. 비 좀 많이 내리라고요. 바닥이 젖는 느낌은 나는데 비는 오래 가지 않았다. 신발이 비로 젖기를 기대했는데 이번에도 땀으로만 젖었다. 하프 2회전에 나서는 로운리맨님에게 1시간 54분이 지나고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로운리맨님은 우리 두 사람에게 '사귀세요?'라고 물었다. 호호호. 그렇게도 보이겠네요. 2회전 나서기 직전 시계를 보니 1시간 56분대. 콜라와 생수, 초코파이, 정제염 챙겨 먹고 또 한번의 기나긴 하프 레이스에 나섰다. 우리 뒤쪽에서 신오님이 맹렬히 다가서고 있었다. 첫 하프를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다고 에너지를 많이 쓴 탓일까? 몸에서 스피드가 제어되었다. 후반에 힘들테니 미리 속도를 늦추라고 몸이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용석어르신이 우리 앞으로 치고 나아갔다. 바로 추월해 올 것같았던 신오님은 뒤에 머물렀다. 31.6킬로미터 지점까지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거리에서 달해아름다워님과 함께 갔다.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은 남성 주자들이 지나가면 신경도 쓰지 않다가 달해아름다워님이 지나가면 유심히 보았다. 여자 맞지, 그런데 참 잘 뛰네.... 그런 표정으로.....

 10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이제 6분 페이스로 가도 서브 4 한다고 달해아름다워님에게 알렸다. 사실이 아니었다. 3시간이 살짝 넘었기 때문에 5분 55초로 가야 서브 4를 할 수 있었다. 이미 우리의 페이스는 5분 50초 이내의 페이스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7킬로미터 정도가 남았을 때는 진짜 6분 페이스로 가도 서브 4가 무난했다. 일주일 전에 비하면 여유가 많았는데 여유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그동안 누적된 피로 탓인지 몰라도 후반 질주는 하지 못했다. 단 한번도 매섭게 스피드를 올려 보지 않고 그냥 골인할 생각으로 달렸다. 저 앞의 용석어르신과 달해아름다워님을 추월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페이스를 그냥 유지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달해아름다워님은 40킬로미터를 넘어서자 속도를 올려서 용석어르신을 제쳤다. 달해아름다워님은 어르신보다 1분 빠른 3시간 55분 45초로 골인했다. 나는 3시간 57분 18초 26의 기록을 세웠다. 일주일 전보다 24초 늦어졌다. 골인하고 나서야 몹시 무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리 경련이 20분 동안 이어져 풀어준다고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이렇게 달릴 수 없는 능력인데 이렇게 달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무리해서는 이렇게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2주 연속으로 서브 4 주자 가운데 꼴찌를 했다. 로운리맨님은 1등이 유력했는데 노원희규님이 7시에 출발하고도 로운리맨님보다 10분이 빨랐다. 로운리맨님은 오늘 6시 출발 주자 가운데에서 1등을 했고, 지난 주에는 7시 출발 주자 가운데에서 1등을 했는데 전체 순위에서는 연달아 1등을 내어주고 말았다. 지난 주는 6시에 출발해야 했고, 이번 주는 7시에 출발했으면 그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로운리맨님이 마라톤힐링카페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돌아올 때까지도 나는 의자에 앉아서 근육 경련을 막기 위하여 마사지를 거듭하고 있었다. 올해처럼 더운 날 달리는 일이 평생 다시 있을까? 일단 이렇게 자주 달리지는 않을 듯. 분명한 사실은 달리기로 한 날이 매우 덥다고 해서 달리기를 그만두지는 않으리라는 것. 올여름의 마라톤은 이후 마라톤에서 늘 기준이 되어줄 듯.

         


다리 경련을 추스리느라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의자 아래 떨어진 것이 모두 내가 흘린 땀이다.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노원희규님이 골인하실 때 생수를 건네는 모습을 로운리맨님이 포착했다.



달릴 때마다 기록이 나빠진다. 피로가 누적되고 또 누적되고 있기 때문에 다음번에 달리면 4시간이 넘을 듯......

아무리 발버둥쳐도 2016년 여름으로 돌아간 듯한 모양새이다.



로운리맨님이 사는 동네로 가서 식사를 했다.

 신도림역 부근에서 식사를 할 경우 로운리맨님이 술을 못 드시기 때문에 로운리맨님이 자가용을 타고 이동했다.



수육국밥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