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낮기온이 36.9도까지 올랐다고 하니 새벽에 뛰었다고 하더라도 몹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마라톤이었다. 달리다가 기록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오로지 완주만 꿈꾸었다. 일찌감치 SUB-4 완주에 대한 욕심도 버렸다면 그나마 덜 힘든 달리기가 되었을 것이다.
지독한 열대야의 지속. 새벽에는 시간마다 깨어 선풍기를 틀었다 껐다를 반복했다. 자도 잔 것같지 않은 몽롱함 속에서 집을 나섰다. 너무 피곤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1시간 동안 골아떨어질 것같았다. 그러나 점점 또렷해지는 의식 속에서 신도림역에 도착했다.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를 사서 마라톤힐링카페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고단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지난 주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바로 귀가하는 게 나을 상태였다. 하지만 7월의 풀코스를 다섯 번 달리겠다는 공언 때문에 기어코 풀코스 참가자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몸을 회복시킬 수 없다고. (오히려 몸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일찍부터 나와 준비하는 용석어르신, 달물영희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바깥술님이 오지 못하니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참가비를 지불하고 배번을 집어들었는데 무거웠다. 세상에? 배번 뒷면에 칩이 달려 있었다. 마라톤 TV에서 칩을 도입했다. 칩은 전선을 코팅한 것을 배번 뒤쪽에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것이라 재활용이 가능했다. 달고 대회장으로 이동하는데 덜렁거리는 게 조금 성가셨다. 딱딱하게 코팅된 재질이라 바람이 통하지 않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칩 인식 센서 때문에 주자들에게 출발선에서 한발 물러나라며 대회 운영요원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이든 분들 위주로 구성된 공원사랑 마라톤 주자의 구성이 조금 달라졌다. 청춘남녀 네 명이 풀코스에 참가했고, 그들을 응원하러 나온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 젊은이들은 페이스가 워낙 좋아 눈을 감다시피 하고 달려야 하는 나로서는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 바람에 젊은이들은 엉뚱한 길로 빠져 자체적으로 달렸다. 조금이라도 뒤에 붙어서 달릴 수 있으면 징검다리 데크를 건너가야 한다고 알려주어 그들이 잘못 뛰는 것을 막아줄 수 있었는데. 여성 주자들은 처음에 내 페이스를 보고 따라 뛰겠다고 했다. 첫 1킬로미터는 5분 30초, 다음 1킬로미터는 5분 10초. 5분 20초를 전후한 페이스로 가고 있었는데도 여자들은 1.5킬로미터 지점부터 앞으로 나가버렸다.
첫 10킬로미터는 52분대로 달렸으니 일주일 전보다는 1분이 빨라졌다. 하지만 반환한 이후 조금씩 늦어졌다. 달리는 동안만이라도 자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줄기차게 수면욕에 시달렸다. 하프만 달리고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충분히 운동을 한 것이니 괜찮을 것같은데 7월 풀코스 5회 공언한 것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만약 오늘 달리지 않으면 7월 하순에 들어선 마당에 5회를 채울 길이 없었다. 오늘 달리고 다음 주 수요일과 주말, 그렇게 달려야 5회가 채워지니.....
2회전에 나섰다. 칩이 인식되지 않도록 골인점 몇 미터 전방에 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 하프만 달리고 내일 다시 와서 풀코스에 참가하면 안될까? 내일이라고 나아지겠는가? 오늘도 잠을 설치고 나왔는데 내일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는가? 2회전 할 때의 날씨는 1회전 할 때와 사뭇 달랐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불어난 체중으로는 스피드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냥 발이 나가는대로 터벅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저 걷지만 않으면 된다는 느낌으로 나아갔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 페이스를 전혀 체크하지 않았다. 27킬로미터 지점에서 용석어르신이 나를 제치고 나가며 물었다. 무릎이 아픈 거요? 아니요. 발바닥이 아파서요. 그래도 안 뛸 수는 없으니 이렇게 버티고 있어요.
풀코스에 도전했던 주자 30명 가운데 7명이 하프로 타협했고, 수원샛별의 명회장과 근규님은 훨씬 짧은 거리를 달리고 레이스를 접었다. 나머지 주자들은 스피드를 늦추어 악착같이 풀코스를 채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몸만들기의 과정이었지만 폭염 속에서 몸만들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았다. 정말이지 가혹한 7월을 보내고 있었다. 31.6킬로미터 지점의 2차 반환점. 급수대 운영요원이 내 배번을 기록했다. 콜라도 마시고 생수도 마시고 초코파이도 먹고 수박도 먹었다. 그대로 직진하여 골인 지점으로 가면 끝인데 32킬로미터만 달리는 것은 달린 거리가 아까워서 참을 수 없었다. 과감하게 돌아섰다. 생각을 바꾸고 달리기 모드를 바꾸었다. 오늘은 기록을 버리는 거야. 4시간이 넘더라도 그냥 42.195킬로미터를 뛴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강박관념이 시도때도 없이 파고 들었다. 그래도 서브 4는 해야 하지 않아. 달렸는데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면 마는 것이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자고. 그래도 서브 4는 하는 게 좋다고. 시각장애인 도우미할 때 이미 4시간을 넘겼으니 오늘 4시간을 넘겨도 상관없을 것같은데. 그래도 웬만하면 4시간 이내로는 달리자고...... 초반 5킬로미터를 3시간 29분대의 페이스로 달렸던 노원희규님도 어느새 페이스를 늦추었다. 달물영희님도 현저하게 속도를 떨어뜨렸고, 의계님도 4시간 40분이 넘는 속도로 전환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흥의님을 2주만에 다시 만났다.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폭염을 이겨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옆에서 끈으로 이끌어주는 도우미분도 존경스러웠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도우미를 잠시나마 해보았다는 사실 덕분에 이제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도우미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7킬로미터쯤 남았을 때 6분 페이스로 가도 서브 4는 무난해 보였다. 실제로는 6분 이내로 달리고 있었지만 후반이 몹시 두려웠다. 더구나 남은 4킬로미터는 땡볕이기 때문에 더욱 두려웠다. 오늘도 나 자신의 후반 페이스가 좋을 수 있을까? 제발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고 해도 사람이 그렇게 되질 않았다. 만약 내가 3시간 50분 초반이 예상되었다면 3시간 40분대 후반으로 들어가고 싶어 발버둥쳤을 것이고, 3시간 40분대 초반이 예상되었다면 어떻게든 3시간 30분대로는 들어가고 싶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달리는 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목표, 그 목표 속에서도 세부 목표를 조정해서 도전하는 삶은 늘 이어지고 있었다.
37.2킬로미터에서 38.2킬로미터 사이의 1킬로미터 페이스를 체크해 보았다. 5분 30초 전후였다. 더 나빠지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마지막 남은 거리에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시는 이렇게 달리고 싶지 않다는 느낌으로 달려서 골인했다.
3시간 55분 58초 06
100분의 1초까지 찍힌 것은 칩을 사용한 기록이기 때문에 그랬다. 기록증과 양말이 담긴 봉투는 웜다운한 후 찾아가겠다고 말해놓고 또 달렸다. 지난 주 바로 주저 앉았다가 근육 경련이 있었던 일도 있어서 신도림교 방향으로 나아가 몸을 풀어준다고 생각하고 반환점 급수대쪽으로 달렸다. 반환 표지판을 지나자마자 왼쪽 종아리쪽에 쥐가 났고, 연달아 허벅지에 쥐가 따라났다. 급기야 오른쪽 다리까지 경련이 일어났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뒤로 엎어져 뙤약볕에 그대로 있었다. 누군가 다리를 풀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나혼자 추슬릴 수밖에 없었다. 산책나온 행인들은 쳐다만 보고 그냥 지나갔다. 시간이 좀 지났다. 운동도 하면서 자원봉사 나온 박종오씨가 급수대에 있다가 뛰어왔다. 신발을 벗기고 다리를 풀어주었다. 근육은 아주 더디게 풀렸다. 바닥에 누운 채로 조금씩 몸을 움직여 방벽쪽으로 가서 다리를 올렸다. 이제 신발을 신을까 하고 다리를 내리면 다시 경련이 일어났다. 오늘 정말 무리했구나. 내 능력에도 되지 않는 짓을 했구나. 박종오씨는 급수대와 나 사이를 오가며 물도 갖다 주고, 수박도 갖다 주었다. 한 20분 정도 지난 뒤에야 일어났다. 급수대에 가서 콜라 한 잔을 마셨다. 불과 50미터를 이동하는 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한없는 감사를 표한 뒤 골인 지점을 향하여 움직였다. 언제 다리 경련이 있었느냐는 듯이 달리고 있었다. 후유증으로 더 오래 기억될 마라톤 대회를 마쳤다.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온 것같은 몰골로 기록증을 찾은 뒤 마라톤힐링카페로 갔다.
마라톤 힐링카페에서 희규님과 사발면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강북마라톤에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드리기도 했다. 뒤늦게 들어오는 주자들에게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리기도 했다. 하나같이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지만 승자의 기운이 넘쳐 흘렀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흥의님도 왔다. 13일 전이었지만 내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176회 했겠네요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기억하세요? 제 도우미할 때 174회라고 했으니까요. 익산에서 열리는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800미터, 1500미터, 5000미터, 10킬로미터 대회에 출전하는데 도우미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당황스러웠다. 오늘 도우미한 하신 분이 내게 해피레그나 빛나눔쪽이냐고 물어서 전혀 그쪽이 아니라고 하니 어떻게 월드런 대회에서 도우미를 했느냐며 의아해 했다. 그게 완전히 우연이었어요.
숨을 돌리고 카페에서 나와 도림천로를 따라 걸었다. 내가 쓰러져 있던 곳을 다시 지나는데 느낌이 남달랐다. 비어있는 벤치가 있었으면 바로 누워 몇 시간이고 자고 싶었다. 그만큼 고단했던 것이다. 그 고단한 상태에서 풀코스, 그것도 더위 속에서 풀코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새벽 4시 10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151번 버스를 타고 가다 160번 버스로 환승할 계획이었다.
도로 들어가 자라고 하면 오전 10시까지도 잤을 몸상태였는데.....
배번 뒤에 칩이 달려 있었다.
오늘은 테이크아웃하지 않고 카페에서 사발면을 먹었다.
도림천로를 따라 잠시 걸었다.
불볕이다.
근육경련으로 내가 쓰러졌던 자리
이 방벽에 다리를 올리고 버티고 있었다.
반환점 급수대의 흔적
흘린 물자국이 흥건하다.
10킬로미터 표식
롯데리아에서 데리버거 세트를 먹었다. 점심 메뉴라 3500원....
그래도 배는 거의 차지 않았다. 콜라 리필로 배를 채웠다.
목에 걸고 다니면서 땀을 닦은 수건이 2004년 10월 1일 받은 기념품 타월인데..... 제법 오래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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