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5회 한강동계풀코스 마라톤대회(2018/02/11)-FULL 162

HoonzK 2018. 2. 20. 11:54

  옆구리살이 오르고 얼굴이 부은 느낌을 견디기 힘들었다. 2월 4일 생애 최고 기록에 버금갈 만큼 빨리 달리고 나서 이것저것 시도때도없이 먹어대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화요일 인터벌 훈련, 목요일 장거리 훈련에 이어 금요일 오전 오후 두 차례 러닝에 대회 전날인 토요일에도 산길을 달렸다. 하지만 붓기를 제대로 빼지도 못했고 피로만 쌓은 것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출전한 마라톤 풀코스, 4주 연속이었다. 4주 연속이야 여러 차례 경험이 있지만 이번 경우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계속되는 한겨울 한파 속에서 달린다는 것. 간섭포(간신히 서브4) 스타일로 4주 연속 달리는 게 아니라 3시간 30분 전후로 달린다는 것.


 달물영희님은 내 장갑이 너무 얇아 보인다고 했다. 바깥술님의 얼굴만한 벙어리 장갑과 비교된다고 했다. 하나 구해줄까 했지만 싫다고 했다. 장갑까지 무거우면 어떻게 달리겠어요라고 했다. 로운리맨님을 찾지 못해 바깥술님과 함께 출발했다. 몸이 무거웠다. 첫 1킬로미터는 5분 20초가 나왔다. 다음 구간은 5분 10초가 나왔지만 이 무거운 몸을 끌고 남은 40여 킬로미터를 달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눈 앞이 깜깜했다. 오늘은 그만 달리고 그냥 돌아갈까 하는 유혹도 생겼다. 기념품도 없이 마라톤 대회 참가비만 내어놓고 돌아가는 건 아니지. 일단 하프까지 달려서 살을 2킬로그램쯤 빼고 몸이 가벼워지면 반전을 노려보겠다고 바깥술님에게 말했다. 끝까지 몸이 풀리지 않으면 3시간 39분대로 골인하면 되고.


 한강은 얼음이 얼고 녹기를 반복한 듯 했다. 얼었던 얼음이 녹아 떠내려오다 다시 얼어 울퉁불퉁한 형태의 빙판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북극이나 남극의 빙설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허연 고체가 되어버린 물을 보니 더 춥고 귀기(鬼氣)마저 감도는데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 기온에 북서풍까지 불어오니 자세가 무너져 몸이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긴팔 티셔츠 위에 방풍 비닐 한 장으로 버티는 일은 고역이었다. 함께 달리던 바깥술님 뒤쪽으로 조금 처졌다. 7킬로미터 지점부터는 나 홀로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은 35킬로미터를 나 혼자 대회에 나온 것처럼 달리게 되었다. 그래도 나 혼자 달리는 것은 아니야. 많은 주자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달리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마음을 달래었다. 풀코스, 32킬로미터코스, 하프코스 선두 주자들을 마주 보면서 10.55킬로미터의 1차 반환점이 빨리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10킬로미터를 50분 40초에 통과했다. 최근 들어 가장 늦은 페이스였다. 서브3 주자를 보내고 특전사님에게 손 흔들고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를 마주했는데 그보다 훨씬 앞쪽에 로운리맨님이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안 나온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앞에서 역주를 하고 있었다. 로운리맨님은 내가 뒤에 있다는 것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바깥술님이 반환해 오면서 내게 말했다. 로운리맨님이 저 앞에 있네요. 네. 저도 봤어요. 오늘 날 잡았나 봐요.


 반환한 후 맞바람이 없어지니 한결 나아졌다. 방풍 비닐을 찢어 벗었다. 이제 맞바람은 끝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마주 보는 연형님, 제비한스님, 은수님, 홍진님, 기옥님, 의계님, 달물영희님에게 일일이 인사했다. 시각 장애인 마라토너 도우미를 하는 은기님, 여전히 파이팅이 넘치는 태현님,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는 한구님, 32킬로미터에 출전한 希洙형님에게는 손을 흔들고 목소리도 높여 응원했다.


 앞쪽에서 어른거리는 노란 풍선은 대략 나와 1분 차이. 3시간 30분 페메였다. 달리다 보면 나아질테고 점점 따라붙겠지. 15킬로미터를 달려 안양천쪽으로 꺽었을 때 내 옆을 지나던 주자가 몸싸움하듯이 나를 밀었다. 바짝 붙어서 우회전한 것도 아닌데 굳이 나를 미는 이유가 뭘까? 좀 화가 나서 100미터 쯤 앞으로 질주했다. 덕분에 3시간 30분 페메와 50미터 이내로 거리가 줄어 들었다.


 내 앞쪽에 무리지어 달리는 분들이 있었다. JSG Marathon Academy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JSG라면 마라토너 정석근이리라. 한 분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듯 5분 5초이니 5분 10초이니 거리 표지판을 지날 때마다 외치고 있었다. 긴 팔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하기 귀찮아 아주 가끔 페이스를 확인했는데 어떤 때에는 4분 40초가 나오고, 어떤 때에는 5분 10초가 나오고, 페이스가 들쭉날쭉이었다. 바람이 없을 줄 알았지만 안양천에서는 이따금 세찬 바람이 불어 장갑을 끼고도 손이 곱아 장갑 안에서 손을 꽉 말아쥐고 동상을 막으려 애썼다. 버프도 끌어올렸다 내렸다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21킬로미터를 1시간 45분이 되기 직전 통과했기 때문에 하프는 1시간 45분이 넘었을 것이다. 후반에 페이스를 올리지 않는다면 3시간 29분대 완주는 어려웠다. 하지만 페이스를 올리긴커녕 좀더 늦추어야 30킬로미터 이후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힘든 날은 반드시 있기 마련인데 대회 당일 그런 날이 걸린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달리고 말 수도 없으니 당일 컨디션을 잘 분석해서 페이스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풀리면서 스퍼트가 가능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잠깐 질주하여 3시간 30분 페메와 보조를 맞추고 그때부터 한동안 따라가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잠깐의 질주도 부담스러웠다.


 25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3시간 30분 페메가 오고 그 뒤쪽으로 로운리맨님, 바깥술님이 오고 있었다. 빨리 달리라는 응원을 받았지만 오늘은 안된다고 답했다. 3시간 39분대가 목표예요.


 2차 반환점아. 빨리 오너라. 안양천 건너 고척 스카이돔이 보이니 반환점에 어느새 다다른 것이었다. 반환점이 25킬로미터 지나서였나? 26킬로미터 지나서였나? 25.6킬로미터에서 반환했다. 안양천을 따라 달리다 한강을 만나려면 앞으로도 10킬로미터 이상 더 달려야 했다. 안양천의 바람은 거세었다. 지형에 따라 바람이 세게 치고 들어오면 입과 손이 시려워 견디기 힘들었다. 달리기 싫은 마음을 달래며 꾸준히 달리고 있었다. 달래고, 또 달래고......
 끈질기게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지독한 달래기가 이어지는 지리한 달리기였다.


 32.2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남은 10킬로미터를 47분 30초에 달리면 3시간 29분대 골인이 가능했다. 그게 지난 주 페이스라면 가능하겠지만 오늘은 불가능했다. 오늘 지난 주와 같은 컨디션이었다면 32.2킬로미터를 2시간 42분이 넘어서 통과했을리가 없었다. 10킬로미터를 남기고 매우 익숙한 몸놀림의 주자가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로운리맨님일까? 맞는 것같은데. 로운리맨님이 입은 싱글렛이 등쪽에는 무늬가 없었던가? 앞쪽에는 무늬가 있었는데 뒤쪽에 없으니 아닌가? 33킬로미터를 지나서야 확신했다. 주황색 마라톤화와 발목의 맨살이 보이는 것으로 로운리맨님이었다. 나를 제치고 나간 4095 배번의 WK님을 따라 갔다. 그 분의 후반 스퍼트가 좋았지만 중반에 페이스를 떨어뜨려 힘을 아껴둔 덕분에 따라갈 수 있었다. 그 분이 로운리맨님을 제치고 앞으로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면서 나도 로운리맨님 앞으로 나아갔다. 올겨울 들어 여섯번의 풀코스를 접어버린데다 주중에는 전혀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로운리맨님은 확실히 후반에 힘들어하는 것같았다. 로운리맨님은 힘들면 걷기도 한다는데 한번도 걷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믿을 수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늦게 달리더라도 걷지는 말자고 각오했다고 했다. 로운리맨님은 내게 서브 330을 하라고 응원했다. 손사래를 쳤다. 그럴 능력이 안 되어요. 오늘은 천천히요.


 아무리 달려도 5분 이내의 페이스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안양천의 바람은 한강을 만날 때까지 강한 잽을 날리듯이 사람을 치고 있었다. 마침내 한강이 나오면서 우회전했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서브335는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5분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3시간 34분대가 가능했다. 발바닥은 다 나은 것이 아니라서 통증이 가끔 느껴졌지만 어느 때보다 통증을 덜 느꼈다.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WK님을 따라가며 3킬로미터 지점에서 나란히 달렸다. 2.5킬로미터 남았을 때 숨을 돌리며 급수대에 들렀다 나오며 다시 처졌다. 2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3시간 24분이 넘었다. 이대로 가면 3시간 34분대. 1킬로미터가 남았을 때까지 바람막이를 허리에 두른 WK님을 따라서 10여 미터 뒤에서 달렸다. 1킬로미터를 남은 후에는 이제 더 이상 당일 상황과 몸 상태를 따질 필요없이 내달렸다. WK님을 제치고 나갔다. 경쟁을 해온다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마라톤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333. 3시간 33분대로 들어가고 싶었다. 열심히 내달려 골인했다. 마지막 10킬로미터를 51분대로 달린 덕분에 기록증에 3시간 33분 58초라고 찍혔다. 3시간 20분대에 들어간 줄 알았던 바깥술님은 후반에 힘들어 3시간 32분대로 골인했다고 했다. 지난 주보다 10분 더 달렸더니 아주 힘들어 죽겠네요. 기록증을 받아나오며 농담을 했다.
 
 지난 9월 이후 바깥술님과 함께 달린 마라톤 대회의 기록을 비교했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2017년 9월 24일 인천송도에서 앞서고, 10월 15일 경주국제에서 뒤지고, 10월 29일 춘천에서 앞서고, 11월 5일 중앙서울에서 뒤지고, 11월 19일 손기정에서 앞서고, 12월 17일 한강시민에서 뒤지고, 2018년 1월 21일 공원사랑에서 앞서고, 1월 28일 모이자 달리자에서 뒤지고, 2월 4일 평창성공기원에서 앞서고, 이번 2월 11일 동계풀코스에서 뒤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12월 3일 시즌마감에서 3초 빨리 골인했지만 거의 비슷하게 골인했고)


 지난 해 1월과 2월에 달린 다섯 번의 풀코스는 모두 3시간 20분대로 골인했는데 올해는 일주일 간의 기록 편차가 다소 심하다. 325-334-323-333. 격주 간격이 아닌 4주 연속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판단은 들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과연 다음 풀코스에서는 3시간 20분대로 재진입할까?


 36개월 연속 풀코스를 완주한 로운리맨님과는 오랜만에 엄니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지난 해 6월 11일 이후 처음이니 6개월만이었다. 아세탈님도 함께 했으면 좋았겠지만 참가 신청을 해 놓고도 못 나오셨으니...... 로운리맨님은 내가 오늘 3시간 10분대 들어갈 것같아 앞쪽에서 찾는다고 애먹었다고 하였다. 드디어 서브 320 주자가 되는구나 했다고 했다. 내 능력을 너무 믿어주시는데...... 뒤에서 달리는 사람을 앞쪽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해요.



넷 타임 기록... 3:33:58.757

문자로 날아온 기록은 3:33:59.243

홈페이지에 게시된 기록은....3:34:34.475 (건타임을 올린 듯)


3시간 33분대로 들어가려고 꽤 애를 썼다.






기념품..... 마니아로 신청했기 때문에 이 제품은 먼 발치에서만 다른 사람이 입은 것을 보았다.

그다지 끌리지 않으니 기념품 신청을 하지 않기를 잘 했다.



매우 익숙한 코스..... 지난 해에는 매우 힘들어 하면서도 3시간 29분에 골인했는데 올해는 처음부터 힘들었다.



급수는 꾸준히 했다.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대회를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엄니식당에서 늘 먹던 것으로.....






마지막 스퍼트....

내 이럴 줄 알았다. 사진으로 봐도 체중이 많이 불어 보인다.

단 몇 일만에 이럴 수도 있다. 방심하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