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와 함께 달리는 3.1절 99주년 기념 마라톤대회.
이 대회는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고단하고 지친 몸으로 풀코스를 달리다니. 굳이 현장 접수까지 하고 달릴 필요가 있었나? 느즈막하게 일어나 동네에서 좀 길게 달리면 되지. 이왕 출전한 것..... 42.195킬로미터를 훈련삼아 달린다고 생각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출발 직전 화장실에 들렀는데 불과 1킬로미터를 가기도 전에 또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스피드는 오르지 않았다. 1킬로미터 5분이 살짝 넘었다. 그 다음 구간도 5분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했다. 이 몸 상태는 끝까지 회복되지 않을 것같았다. 설날 달린 마라톤과는 너무 달랐다. 올해 들어 보이는 업다운의 기록 패턴대로라면 이번에는 나빠지게 되어 있었다. 5킬로미터쯤 달리니 70대의 용석 어르신이 나를 제치고 나갔다. 어르신과는 6킬로미터 지점 화장실에서 만났고, 그 이후 내가 앞에서 달렸다. 화장실에 들렀다 온 사이 와인색 긴팔 티셔츠를 입은 로운리맨님이 앞에 있었다. 로운리맨님을 페이스메이커로 삼은 듯 여러 주자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나도 꾸준히 따라가 8킬로미터를 지나 로운리맨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바로 오셨네요. 화장실 가는 것봤어요. 몸이 좋지 않으면 화장실에 자주 가요. 그나저나 바깥술님을 찾을 길이 없네요. 참가자 명단에는 있었어요. 먼저 갔거나 뒤에 오거나 하겠지요. 암사대교 앞까지 함께 갔다. 3단 오르막에서 치고 나갔다. 오르막은 내가 강한 구간이니까. (절대 그럴리 없지만 자기 암시로 힘든 것을 이긴다.) 오르막을 치고 나가다 서울대 달리기 기관차님을 만났다.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화장실에 들르더니 금방 따라왔네요. 아! 보셨어요? 나를 기억해 주네. 60대의 백발 마라토너는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26분대로 골인했다고 했다. 나와 페이스가 비슷해서 보조를 맞추기 좋았다. 하지만 이 분은 31킬로미터 종목이라 달리면 달릴수록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어 내내 같이 달리기는 어려웠다. 암사대교 오르막 구간을 갔다 오면 끝까지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데 맞바람이 너무 셌다. 초속 12미터까지 불어대는 바람에 아주 넌더리가 났다. 기관차님은 2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기 위하여 스퍼트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6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빨랐다. 나중에 연대별 5위에 입상한 것을 알았다. 목표했던 2시간 30분 이내 완주는 못했지만(2:33:28). 이 분을 기준으로 삼아 한동안 달렸다. 100여 미터 이내에서 달리고 있는 특전사님을 보면서도 달렸다. 킬로미터마다 페이스 체크를 전혀 하지 않았다. 회복되지 않는 몸은 딱 봐도 킬로미터당 늘 5분을 넘고 있었다.
다음날 현장접수하고 달려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면 거의 대회장에 가지 않게 된다. 날씨와 컨디션을 따져보고 이내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다음에 달리면 되지 이러면서. 전날 일찍 자지 못하니 대회 참가는 힘들겠구나 싶었다. 굳이 돈내고 훈련할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참가 신청해 놓고도 출전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비도 계속 내리고 있으니 굳이 비맞고 달릴 필요는 없어. 간밤에 꾼 꿈 하나가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기상을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대회장에 가지 못했다. 지금 가 봤자 현장 접수는 하지 못하겠다. 너무 아쉬워 발을 동동 굴렀다. 이 꿈을 꾸고 벌떡 일어났다. 새벽 5시 40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전날 싸 두었던 김밥을 먹고 잠실종합운동장으로 왔다. 출발은 오전 9시이지만 서둘러야 했다. 현장접수를 하되 돈을 더 보태어 기념품도 얻고 싶으니. 기념품이 다 나가 버리면 마니아로 달려야 했다. 기념품 하나 없이 돌아오는 것은 싫었다. 7시 45분 현장접수를 했다. 풀코스 현장접수자 가운데 네 번째였다. 파워젤 1박스, 이노쉐이브 면도기, 10리터 배낭 가운데 남은 것은 면도기와 배낭 뿐. 면도기를 선택했다. 받은 배번을 체크하고 태극기가 새겨진 헤어밴드를 얻었다.
법규님과 통화했다. 지난 2월 25일 사천마라톤 뛰신 것 맞지요? 오늘 울산마라톤은 안 뛰세요? 허수아비님 출전하시는데...... 저 출근했어요. 업무를 시작하기 직전입니다. 3월 24일 울산태화강마라톤 뜁니다. 건달님은요? 오늘 잠실에서 풀코스 현장접수를 했어요.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힘들지만 운동 삼아서......
영하의 날씨는 아니니 반바지를 입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너무 세어 체감온도를 자꾸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3월이라 다리는 춥지 않은데 민소매에 긴팔티셔츠 한 장을 걸친 상체는 몹시 추웠다. 긴팔티셔츠 두 장을 입었어야 했다. 신체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속도 좋지 않았다. 제발 달리다 화장실은 가지 말아야지. 미리 자주 가는 게 좋겠어. 출발 시간이 다 되어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 오는데 아가씨 한 사람이 출발지를 찾고 있었다. 마라톤 대회에는 거의 처음 온 듯. 5킬로미터 배번을 달고도 늦은 것처럼 허둥대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달리기 시작한 나를 추월했다. 저는 풀코스라 여유가 없지만 댁은 아직 괜찮아요. 그렇게 안내했다.
출발점에서 399번째 풀코스에 나서는 특전사님과 만나 인사했다. 로운리맨님은 내게 서브 320 기록을 세우라고 응원을 보내었다. 하지만 도무지 찾을 길이 없는 바깥술님. 이상하네. 전화통화로 오늘 승부를 내자는 농담까지 주고 받았는데..... 결국 오지 않았다. 대회를 마치고 겨우 몸을 추스려 대회장에 온 바깥술님을 만났다. 장염에 걸려 화장실을 스무번도 넘게 갔다 오면서 아예 뛰지 못했다고 했다. 아주 얼굴이 핼쓱해져 있었다. 살이 많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현장접수를 하지 않고 바깥술님 배번을 달고 달렸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바깥술님 배번을 달고 뛰는 건달.... 괜찮은 것같은데. 요즘 기록도 비슷하고.....
거의 시계를 보지 않고 달리는 일을 계속했다. 도무지 나아가지 않는 다리에 찌릿찌릿한 통증에 시달리는 발을 끌고 롯데월드타워를 보며 달렸다. 바람이 어찌나 사람을 밀어대는지 불어난 몸이 원망스러웠다. 이따금 나를 제치는 주자들은 대부분 31킬로미터 주자였다. 모진 바람 때문에 한강에 바다의 너울을 옮겨 놓은 것같았다. 너울의 다른 말. 나오랑이. 누팔. 물노울. 물농울. 나오리. 뉘. 이제 그만 뛰어, 이리로 와 하면서 나를 유혹하는 잠실종합운동장을 애써 외면하고 양재천 방향으로 나아갔다. 언젠가 이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대하면서..... 23킬로미터가 넘어가자 나를 제치고 나오는 주자들이 몇 사람 있었는데 대부분 31킬로미터 주자였다. 그들은 슬슬 스퍼트를 시작한 듯 싶었다. 31킬로미터 주자들이 26킬로미터 표지판을 만나 반환하고 난 뒤 화장실을 찾았다. 27킬로미터 지점 수풀 속으로..... 수풀에서 근심을 풀고 나오면서 뒤쪽을 보니 로운리맨님이 오고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화장실에 자주 가세요? 그만큼 몸이 좋지 않다는 뜻이지요. 오늘 컨디션 나쁩니다. 로운리맨님이 앞으로 나아가고 몇 십 미터 뒤에서 따라갔다. 단 몇 킬로미터만이라도 동반주하는 날이 오기를 바랬는데 오늘인 듯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따라가기 힘들었다. 좀처럼 간격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29킬로미터 쯤 와서야 겨우 따라붙었다. 로운리맨님의 칭찬을 받았다. 4분 55초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는 정보도 얻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며 아주 열렬하게 응원해 주었다. 어린 사람들이었지만 존대말로 감사했다. 응원해 주어서 고마워요. 2차 반환을 마치고 달려오는 특전사님의 손이 바빴다. 방풍 보온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왜 그렇게 꽁꽁 싸매고 달려요? 로운리맨님이 그렇게 묻다가 아! 했다. 맞바람이 센가 보네요. 지금 잘 나가는 게 바람이 밀어주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반환하고 나면 맞바람... 망했네요.
로운리맨님과 달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것은 매우 힘들다. 스텝이 서로 다른 듯 누군가 앞서게 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로운리맨님이 5미터 쯤 앞서고 나는 그 뒤에서 달렸다. 31킬로미터를 넘은 후 반환했다. 로운리맨님이 지나갈 때는 칩 인식기가 삐삐 한 것같은데 내가 지나갈 때는 조용했다. 현장접수자 배번이라 그런가? 완주해 놓고 중간 통과 기록이 없다고 풀코스 기록을 못 받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럴 경우 로운리맨님이 내가 정직하게 달렸다는 증언을 해 주시겠지. 급수대에서 파워젤을 지급했다. 초코파이도 있었다. 오! 콜라도 있었다. 세 가지를 모두 취식하고 나니 로운리맨님과는 40미터 차이가 났다. 그 40미터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후반에 들어서면 속도가 떨어질 것이라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바람을 뚫고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뒤따라가면서 궁금했다. 후반에 힘들면 걷기도 한다는데 저렇게 달리는 사람이 과연 걸은 적이 있을까? 나와의 거리는 50미터로 벌어지기까지 했다. 하! 오늘 힘들구나. 오른발 발바닥 통증은 잊을만 하면 찾아오고 있었다. 왼쪽 다리에 도움을 많이 받거나 오른쪽 발바닥을 말거나 다른 쪽을 딛어 이겨내었다. 오른쪽 무릎 바깥쪽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오른발이 너무 시달리다 보니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있는 걸까? 통증이 있었지만 아는 분들과 마주하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운인선님, 홍진님, 태현님, 달물영희님.....
탄천에 흐르는 물은 지난 해와는 전혀 다른 수량이었다. 얼었던 물이 최근에 녹아서 그런지 수량은 무서울 정도로 많았다. 장마철에 폭우가 내렸을 때 개천의 풍경과 꼭 닮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도대체 어느 정도로 달릴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3시간 39분은 가능하겠지. 이대로 로운리맨님과 4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골인하면 여유있으려나? 시계로 판단하지 않고 내 몸상태와 주변의 달림이를 보고 가늠하는 페이스 조절. 그나저나 오늘 정말 잘 달리시네. 변함이 없구나. 완연한 회복세다. 요즘 들어 먼저 골인했지만 이제 모두 추억이 되겠구나. 후반에 늦어질 것이라고 하더니 오히려 빨라지는 것은 아닌지? 후반에 힘들면 걸을 때도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사실이 아닌 것같아. 본 적이 없으니 믿을 수가 없어.
31킬로미터 종목의 반환점에 왔다. 5킬로미터가 남았다. 여전히 로운리맨님과는 40미터 떨어진 거리. 이렇게 일정하다면 조금 속도를 내어 나란히 달려도 좋을텐데. 그게 안 되네. 대화할 수 없는 거리이지만 함께 달리고 있다는 느낌은 선명한 동반주를 하고 있구나. 이렇게 보니 급수대를 지나 물을 마시면서도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는 않는구나. 저런 점은 나랑 비슷하네. 바깥술님은 뒤를 돌아보고 빨리 오라고 손짓을 자주 하는데.
어느덧 탄천 구간이 끝나고 양재천 구간이 나왔다. 3킬로미터 밖에 남지 않았다. 2킬로미터 남았을 때 마침내 로운리맨님 옆에 갈 수 있었다. 오늘 세 번째 나란히 달리기. 시계를 보니 3시간 26분이 살짝 넘었다. 남은 거리를 9분 이내로 달리면 3시간 34분대(SUB 335)가 가능한데...... 아닌 것같았다. 잘 달려봐야 오늘 몸 상태로는 킬로미터당 5분인데 4분 30초 이내는 불가능했다. 로운리맨님 앞으로 나아가 속도를 내기는 했다.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3시간 31분이 넘었다. 구간 기록이 그래도 4분 후반대일 줄 알았는데 여전히 5분이었으니 3시간 34분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로 남은 1킬로미터를 3분 후반대로 달리겠는가? 어쨌든 3시간 36분 초반으로 골인은 할테니 오늘 몸상태와 기상 조건 하에서는 선방했다 싶었다. 남은 1킬로미터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보려고 애썼다. 이 스퍼트를 위하여 오늘 대회에 나온 것이라고 믿고.....
골인한 후 기록증을 받았다. 3시간 35분 01초 83이었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4분 이내로 달렸다. 3시간 34분대가 불가능하다고 너무 빨리 포기한 것이었구나. 로운리맨님은 내가 골인한 후 50여초 뒤에 완주 세레모니를 하면서 골인했다.
특전사님은 3시간 24분대로 연대별 5위에 입상했다. 단상에 올라간 사진 몇 장 찍어드리고 메인스타디움에서 나왔다. 로운리맨님과 간단하게 떡국을 먹고 잠실새내역 부근까지 걸어가 본격적인 점심을 먹었다. 해장국을 먹은 후 알라딘 중고서점 신천점에도 들렀다. 남의 일기를 읽어 보고 싶어 <These is my Words: The Diary of Sarah Agnes Prine>을 샀다. 헤어질 때까지 로운리맨님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로운리맨님 실망이예요. 기록이 회복세라서 좋지만 오늘 3시간 29분에는 달리셨어야지요. 그런 농담도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올해 여섯 번 달린 풀코스 가운데 가장 늦게 달리고도 달린 후 가장 피곤했다. 그래도 대회 참가가 최고의 훈련임에는 틀림없었다.
새벽까지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잠실 메인스타디움
풀코스 출발까지는 아직 40분이 남아 있었음.
매년 3월 1일 달리고 있는 대회.
울산에 가고 싶었지만...... 3년 내리 같은 대회에서.....
여기 어딘가 내가 있겠지......
아치 아래 로운리맨님이 보이네
풀코스와 31킬로미터 주자들이 막 출발했을 때
이 코스는 매우 익숙하다. 암사대교 3단 오르막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은 코스이다.
이노쉐이브 면도기와 태극기 헤어밴드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많이 준다.
2초만 빨리 달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버프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골인하고 있다.
노원희규님, 로운리맨님, 특전사님.
특전사님 복장은 거의 중무장한 스타일인데 엄청나게 빨리 달렸네.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뒤쪽에 인천고 마라톤클럽 기옥님과 춘효님이 보인다.
점심으로 먹은 해장국
'도전! 마라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마협 로열야생단 마라톤대회(2018/03/11)-HALF 163 (0) | 2018.03.14 |
---|---|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8/03/04)-FULL 165 (0) | 2018.03.09 |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8/02/16)-FULL 163 (0) | 2018.02.21 |
제15회 한강동계풀코스 마라톤대회(2018/02/11)-FULL 162 (0) | 2018.02.20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희망마라톤(2018/02/04)-FULL 161 (0) | 2018.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