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8 모이자! 달리자! 월드런 마라톤대회(2018/01/28)-FULL 160

HoonzK 2018. 1. 31. 15:48

  2018년 1월 21일 풀코스를 달린 후 두 사람의 행보는 극명하게 갈린다. 평소보다 잘 달리지 못한 사람은 몸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썼고, 뜻밖에 잘 달린 사람은 긴장을 늦추어 버리고 지나치게 여유를 부렸다. 앞사람은 바깥술님이었고, 뒷사람은 강건달이었다. 바깥술님은 좋아하는 술을 자제하면서까지 일주일 후를 기다려 아쉬움을 털어내는 질주를 했지만, 강건달은 밤마다 마구 먹어대며 살을 불린 나머지 사무치게 힘든 달리기를 하였다. 는 2회전하는 코스에서 단 한 번도 바깥술님을 따라잡지 못했다.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지난 주에는 그 분이 1.1킬로미터 뒤처졌지만, 이번 주에는 내가 1.1킬로미터 뒤처졌다. 마지막 10킬로미터를 47분대로 역주했던 사람이 단 일주일만에 55분대로 달려도 힘들어 진저리를 쳤다. 풀코스는 이런 것이었다. 풀코스 앞에서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했다.  다시는 달리기를 하지 않을 사람처럼 야식을 먹어대었다. 나흘 전 휴게소에서 넘어져 무릎 타박상을 입고, 바로 전날 방을 치우다 넘어져 찰과상을 입고도 3시간 20분대로 달릴 수 있다고 믿은 것은 가히 오만함의 극치였다. 사실 처음에는 암사대교의 3단 오르막을 넘고도 10킬로미터가 49분이 걸리지 않았다.  평지를 달렸던 일주일 전보다 빨랐다. 8킬로미터부터 9킬로미터까지의 기록은 오르막 일색인데도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1회전을 1시간 43분 40초에 마치면서 서브 330의 여유를 남겼고, 32.2킬로미터를 달렸을 때는 2시간 39분이 지나 있어서 남은 10킬로미터를 51분에만 달려도 3시간 29분대는 가능했다. 하지만 후반에 무너졌다. 아직 완치되지 않은 발바닥 때문이었을까? 발바닥 통증 때문만이라면 어떻게든 견디어내었을지 모른다. 체중이 불어난 것이 바로 느껴질 만큼 몸이 무거웠다. 인터벌 훈련은 풀코스를 달리기 닷새 전에 했어야 했다. 하지만 가볍게 회복 조깅만 했다. 풀코스를 달린 지 이틀만에 인터벌 훈련을 하는 것은 효과가 없고 몸의 피로만 쌓을 것같았다. 이틀 후 인터벌 훈련을 할 계획을 잡았지만 갑자기 병원에 가야만 했다. 결국 풀코스 이틀 전이었던 금요일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속에서 인터벌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릎에 통증이 다 낫지 않아 제대로 된 훈련이라고 할 수도 없었는데......


 대회 당일 날씨는 영하 5도 전후였지만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던 주중에 비하면 매우 온화하게 느껴졌다. 마음만 먹으면 반바지를 입고 달려도 될 날씨였다. 실제로 반바지로 맨살을 드러낸 주자들이 있었다. 출발 직전에는 아는 사람 찾기에 분주했다. 풀코스 주자인 로운리맨님, 바깥술님, 특전사님, 제비한스님, 한구님, 은수님, 달물CS님과 하프 주자인 부천터미님을 만났다. 부천터미님은 붙이는 핫팩을 주셨다. 로운리맨님 것까지 주셔서 한동안 로운리맨님을 찾으러 다녀야 했다.


 풀코스와 하프코스가 동시에 출발하는 것은 전마협 대회 운영 스타일. 그 바람에 안 그래도 좁은 주로가 마스터즈들로 가득 들어차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굼뜨게 달려서 1킬로미터를 5분 40초만에 지났다. 간신히 SUB-4가 가능한 페이스였다. 앞쪽에서 달리는 로운리맨님을 만나 잠깐이나마 함께 달렸다. 잠실대교와 잠실철교 교각을 영원히 붙들어 둘 것처럼 얼음이 한강을 덮고 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주로가 열리면서 내 발놀림은 빨라졌다. 하프를 달리는 광희님을 제치며 인사했다. 42.195킬로미터를 다 달려낼 때까지 속도가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같았다. 4킬로미터 지점에서 방풍 비닐을 벗으면서 조금 빨라지고, 6킬로미터 지점에서 등에 붙였던 핫팩을 떼어내면서 조금 더 빨라졌다. 사실 암사대교 오르막을 여느 때보다 잘 넘었다 오면서 이 분 저 분 아시는 분들과 몸짓이 큰 인사를 나누곤 했다. 바깥술님이 너무 빨라 '오늘 서브 320 할 셈인가요?'고 물었더니 '빨리 와, 빨리.'라며 내 스피드를 독려했다. 돌아가는 길은 맞바람 때문에 버프를 끌어올려 입을 막았다. 바람의 저항 때문인지 페이스는 가끔 5분을 넘었다.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노래를 응얼거려 보았지만 가사나 리듬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양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17킬로미터쯤 달리니 삼척시청 MS님이 보였다. 이번 대회 표지 모델이고 지난 12월 17일 한강시민마라톤에서 잠시 보조를 맞추었던 분이었다. 18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옆에 바짝 붙었다. 함께 할 수 있는 분이 생겨 좋았다. 이번 대회 책자 모델이시죠? 지난 번에 함께 달린 적이 있는데. 삼척에서 300회 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오늘이 몇 번째세요? 오늘 목표는 3시간 20분대인가요? 292번째 풀코스를 달리고 있는데 목표는 서브330이지만 바로 전날 부산에서 풀코스를 달려 매우 힘들다고 했다. 바깥술님 이야기도 꺼내면서 잘 가고 있던 19킬로미터 지점. MS님이 미끄러졌다. 하의가 찢어질 정도로 심하게 넘어졌다. 암사대교 오르막 구간과 달리 얼음도 없는 평탄한 곳에서 방향을 전환하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의연하게 일어나 다시 달렸지만 이 분은 페이스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함께 달릴 수 없게 되었다.


 꿀물을 마시고 2회전에 나서니 바로 앞에 노원희규님이 있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3시간 30분 전후의 기록을 늘 유지하는 60대 중반의 마스터즈. 지난 해 7월 9일 도림천에서 끝내 따라잡지 못하고 30초 늦게 골인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 분을 2회전에 나서자마자 제쳤다. 그 때 건너편에서 로운리맨님이 오고 있었다. 56일만에 풀코스를 달리는데도 페이스가 좋았다. 3시간 30분 이내 완주도 가능해 보였다. 출발하기 직전 SUB-4가 목표일 뿐이라고 했지만 2015년 3월 풀코스 데뷔 이후 35개월 연속 풀코스 완주와 좋은 기록을 달성하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시계를 보지 않고 30.1킬로미터까지 일단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몇 명의 주자들이 내 앞으로 나가니 시계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늦어졌나 그들이 빠른 것인가. 내가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몹시 피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거기에 5분을 넘기면 안된다는 강박 관념이 생겼다. 이건 큰 부담이었다. 암사대교 오르막을 다시 넘어야 하기 때문에 페이스가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여 시간을 벌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오르막을 넘으면서 만나는 30.1킬로미터 지점까지 2시간 28분이 걸리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3시간 20분대로 달릴 수 있었다. 29.1킬로미터부터 30.1킬로미터 구간은 널뛰기 스타일의 오르막이었다. 이 구간을 1회전 때는 5분에 지났지만 2회전 때에는 5분 25초에 지났다. 확실히 페이스가 떨어졌다. '나는 오르막이 참 좋아'하면서 허세를 부렸던 1회전 때와는 달랐다. 어쩌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30.1킬로미터를 2시간 28분을 살짝 넘겨 지났으니 일주일 전보다 늦어봤자 몇 십 초였다. 31.1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 바깥술님이 오고 있었다. 지난 주와 너무나 비슷한 광경인데 서로 위치한 자리만 맞교대한 셈이었다. 바깥술님은 이미 특전사님까지 제친 상태였다. 반환점이 꽤 멀었다. 2회전하는 대회는 전과 후를 비교하기 마련인데 후가 전보다 힘드니 더 힘들게 느껴졌다. 급수대에서 파워젤을 하나 받아 바로 먹었다. 초코파이, 콜라, 게토레이.... 에너지 충전을 도와줄 수 있는 음식은 모두 먹었다. 10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에서 시계를 보니 2시간 39분이었다. 킬로미터마다 5분을 살짝 넘겨 달려도 3시간 29분대가 가능했다. 돌아올 때 만나는 마지막 오르막. 몸이 무거웠다. 바깥술님을 따라 잘 달리던 달물CS님이 걷다 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점에 오른 뒤 화장실에 다녀왔다. 잠시나마 내리막을 달리니 조금 편해졌지만 페이스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자세도 무너져 복구할 길이 없었고 에너지를 모두 썼을 때 좀더 달리려면, 그것도 더 빨리 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을 거듭했다. 9킬로미터 남았을 때 2시간 45분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정말이지 5분 페이스로 달려야지 3시간 29분대 턱걸이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 이후부터는 3시간 30분을 반드시 넘겨서 골인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달렸다.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발바닥도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앞에서 걸어오던 헬스지노님이 두 팔을 높이 들어 박수를 보내주기에 반갑게 답했지만 지나치기가 무섭게 인상을 찌푸리고 달렸다. 새벽에 세 번이나 깨었고, 일어나기 싫은 몸을 겨우 일으켜 나왔던 몇 시간 전의 기억이 생생했다. 40킬로미터만 넘으면 신의 경지에 들어갈테니 힘든 몸을 감당할 수 있다고 되새겼다. 사실 이런 되새김 자체가 몹시 힘들다는 뜻이다.


 35킬로미터 이후 몇 사람이 나를 제치고 나갔다. 최근 이런 일은 없었다. 추워서 버프를 끌어올려 입과 코를 가리며 달렸다. 몸은 계속 뒤뚱거리고 있었다. 38킬로미터를 지나면서 노원희규님이 내 앞으로 나왔다. 이제는 동반주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옆에서 달렸다. 그리고 잠실대교 아래의 빙판을 보며 결연한 의지를 끌어와 39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희규님 앞으로 치고 나갔다. 서브 330은 불가능해졌지만 서브 335는 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를 제치고 나갔던 74범 ㅈㅎ님을 200미터 쯤 남기고 다시 제쳤다.


 3:34:36.12


 풀코스 완주자 272명 가운데 94등을 했다. 3시간 27분대로 들어와 80위를 한 바깥술님은 여유있게 대회장을 오가고 있었다. SUB 330 주자는 85명이나 되었고, 그 가운데 SUB-3 주자는 22명이었다. 특전사님은 후반에 페이스가 떨어져 3시간 31분으로 골인했는데 SUB 330을 놓친 주자 가운데에서는 1위였다.


 로운리맨님과 점심 식사를 했다. 로운리맨님은 몹시 힘들었다고 완주 소감을 털어 놓았다. 이제는 자신과 너무 차이가 나니 다시는 기다리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


 두들겨 맞은 것처럼 다리 근육이 아팠다. 풀코스를 오랜만에 달렸거나 훈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풀코스를 달렸을 때 생기는 후유증과 같았다. 몇 일 사이에 급격히 늙었나? 젊을 때는 운동이 힘들면 컨디션 때문이라 치부하곤 했지만 나이가 들면 몇 살만 젊었어도 이러진 않았을텐데 한다. 이미 나이를 따진다는 자체가 늙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 되새기기 바쁜 사람은 이미 노년에 접어든 것이다.


 핑계 거리 물색에 나선다. 일주일 전 3시간 10분대로 달렸던 분이 3시간 30분을 넘었고, 3시간 30분으로 달렸던 분이 4시간 18분으로 달렸네. 힘들었던 사람들 이야기만 수집하여 위로받으려는 저열한 심리.


 풀코스를 달리는 일은 생명을 담보하는 일이니 목숨을 건 전투에 나서는 군인처럼 준비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이했다. 일주일 전 풀코스를 달렸다는 이유로 많이 먹어도 상관없고 훈련량을 줄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발바닥만 아프지 않으면 얼마나 잘 달리는지 보여주지. 영하 17.8도에서 운동도 했다고. 배낭까지 메고. 그게 어쨌단 말인가? 발바닥이 아프지 않다고 해서 빨라져 봤자 얼마나 빨라지겠는가? 한파 경보 속에서 굼뜨게 뛴 주제에 제대로 운동이나 했겠는가? 오만하지 말고 늘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매니아(3만원)로 신청했기 때문에 기념품을 양말만 받았다.


잠깐 동반주한 분이 표지 모델이었다. 왕년에 2시간 26분까지 달리신 분이다. (3시간 26분이 아니라 2시간 26분이다.)


동네에서 출발할 때는 영하 7도였다.


잠실지구 청소년광장..... 이곳에서 출발할 때 앞으로는 뒤쪽에 서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앞의 주자들 제치고 나가느라 여간 힘들지 않았다.



메달에 WINNER라고 새겨져 있었다.


생애 BEST 25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매우 힘들게 달렸는데도 BEST 30 기록에 변화가 있었다.


특전사님과 함께.....


아주 힘들게 달리고 있다. 아무래도 이 복장은 훈련 복장이지 마라톤 대회 복장은 아니다.

맞바람 때문에 버프로 입을 가렸다.


로운리맨님과 따끈한 국밥으로 식사를 했다. 둘이서만 식사를 한 것은 지난 해 11월 5일 이후 처음이다.



순대국밥 맛있는데 지난 해 10월 20일 이곳에서 먹을 때보다 1천원이 올랐다.




GS25 편의점에서 2차 회합을 가졌다. 문학 이야기가 쭉 이어졌다.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던 대회 기념품


서울에서 마라톤을 할 때 이 구간을 2회전한다고 하면 매우 힘들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번에는 알고도 속수무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