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2018/01/21)-FULL 159

HoonzK 2018. 1. 24. 10:59

  서울 1월의 도림천, 오전 일곱 시에 마라톤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 밤처럼 어두웠다. 이 어둠은 내가 풀코스 레이스를 마칠 때까지 내내 이어질 것같았다. 대회 사흘 전 바깥술님이 공원사랑마라톤에서 자신과 함께 달리자고 했다. 첫 1킬로미터 5분 10초. 그 다음 구간은 조금 빨리 달린 듯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네 사람이 선두권을 형성했다. 나, 바깥술님, 달물CS님, 연형님. 3킬로미터 지점을 15분이 되기 전에 통과했으니 3시간 29분대의 페이스로 나아가고 있었다. 늦게 출발한 특전사님이 치고 나가기에 잠시 대화한다고 따라붙었다가 최초의 그룹으로 돌아왔다.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이야 발바닥에 테이핑도 했고, 오른발 보다는 왼발에 하중을 가하며 달리고 있지만 30킬로미터 이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지난 해 마지막 풀코스(12월 17일) 때처럼 고통스러운 후반이 찾아온다면 의지만으로 이겨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발바닥 통증은 석달 째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10월 27일 춘천마라톤, 11월 5일 중앙서울마라톤, 11월 12일 부산마라톤, 11월 19일 손기정평화마라톤, 12월 3일 시즌마감 42.195 마라톤, 12월 17일 한강시민 마라톤. 이 여섯 번의 풀코스에서 발바닥 통증을 고스란히 안고 달렸다. 마지막 마라톤에서는 견디기 힘들 정도라 기록까지 나빠졌다. 통증이 낫질 않으니 도전 의식이 사그라들어 몸관리를 하지 못했다. 밤마다 마구 먹어대었다. 체중은 꾸준히 늘었다. 그런데 매주 풀코스를 달리는 바깥술님, 지난 해에는 66번이나 풀코스를 달린 바깥술님이 1월 21일에는 꼭 함께 달리자고 했다. 이원화되어 있는 7시, 8시 출발 가운데 7시 출발 주자로 참가하라고 했다. 오전 7시에 풀코스 스타트 라인에 서려면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새벽 1시나 2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나로서는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잠자야 하는 시간에 운동을 하다니......


 게다가 미세 먼지는 연일 이어졌다. 복장 문제도 있었다. 출발할 때는 영하의 날씨라 츄리닝 바지를 입어야 했는데, 달리는 도중 기온이 오를테니 츄리닝 바지는 애물 단지가 될 게 뻔했다. 지난 해에만 1천 킬로미터를 넘게 소화했던 아식스 타사재팬 마라톤화도 제 구실을 할까 우려되었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 7킬로미터 무렵부터 함께 달렸던 주자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왕년에 서브3주자였던 달물 CS님이 쭉 치고 나갔고, 그 뒤를 연형님이 따랐다. 조금 뒤쪽에 내가 있었고, 바깥술님이 내 몇 십 미터 뒤쪽에서 오고 있었다. 한참 잡담 모드로 달리다가 다들 고독한 주자들이 되었다. 8킬로미터를 넘어가면서 킬로미터당 5분 10초까지 페이스가 떨어졌다. 오른쪽 발바닥에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달리다 보면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10킬로미터는 50분이 되기 직전에 지났다. 아직 3시간 29분대의 골인은 가능해 보였다.


 1차 반환을 하고 나서 바깥술님이 내 옆으로 왔다. 앞의 분들이 빨리 뛰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늦어진 건 알고 있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바깥술님은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다른 사람의 레이스를 보고 동요해서는 안된다는 것. 꼭 서브330을 해야 한다면 초반에 1시간 47분 내지 48분으로 달리고 후반에 1시간 42분이나 41분대로 달리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풀코스는 아직 갈 길이 머니 30킬로미터 이후를 보자는 것.


 바깥술님은 올해 들어 벌써 네 번째 풀코스를 뛰시는데 나는 올해 들어 처음이고 풀코스를 달린 지 한 달이 넘어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긍정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30킬로미터 이후 절뚝거리며 달릴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풀코스를 너무 달리지 않아 발바닥 통증이 낫지 않는다는 역발상도 했다. 


 혹시나 8시 출발자로 로운리맨님을 볼 수 있거나, 하프 출발자로 아세탈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끝내 뵐 수는 없었다.


 13킬로미터쯤 왔을 때 발바닥 통증이 심해졌다. 살살 딛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려 딛는 자세가 아니라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살살 밀어 달리는 자세로 바꾸었다. 시간을 잊고 자세만 생각했다. 자세만 바로잡으며 달렸을 뿐인데 다시 바깥술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15킬로미터를 넘어가면서는 연형님 앞으로 나아갔다. 달물CS님은 얼마나 빨리 달려 나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1회전을 마쳤을 때 1시간 44분이 걸리지 않았다. 앞에 달린 하프는 잊으려고 애썼다. 이제 하프 단일 종목에 나왔다고 최면을 걸었다. 30.1킬로미터 지점, 32.2킬로미터 지점(10킬로미터 남았을 때), 37.2킬로미터 지점(5킬로미터 남았을 때)에서만 통과 기록을 확인하기로 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들러 낯선 블로거의 글에 댓글을 남겼는데 최근에 답글이 달렸다. 그는 반갑다고 하며 나를 '최고의 마라토너'라고 불렀다. 잘 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 분은 나를 왜 그렇게 불렀을까? 사실이든 아니든 기운나는 일이었다. 그동안 잊고 있던 아프리카의 마라토너들이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보스턴 마라톤과 뉴욕 마라톤의 노래가 귓전을 울렸다. 얼마만인가? 그동안 잊고 있었다. 되새기기 자체가 억지 감동 자아내기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지난 해 역주할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0.1킬로미터 지점에 왔다. 2시간 28분이 되기 직전이었다. 지난 해 시즌마감이나 한강시민마라톤과 거의 비슷한 페이스였다. 그때보다 뚱뚱하고 훈련도 부족한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전자로 간다면 3시간 26분대 중반으로 골인할 수 있을테고, 후자로 간다면 3시간 30분을 넘기고 말 것이다. 전자는 발바닥 고통을 이겨낸 끈질김, 후자는 이겨내지 못한 질척거림....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2시간 38분이었다. 바깥술님은 나보다 1.1킬로미터 뒤처져 있었다. 남은 거리를 52분 이내로 달릴 수 있다면 다시 3시간 20분대에 진입할 수 있었다. 3시간 26분 32초의 1월 최고 기록을 깨뜨리는 일은 가능한가? 48분대로 달리면 가능했다. 지난 1월 1일 10킬로미터 단일 대회에 나가 46분대에 달렸는데 32.2킬로미터를 달린 후 10킬로미터를 48분대로 달리라고? 아직은 모르는 것이었다. 내가 15개월 연속 월별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이라고 예언한 아세탈님 생각이 났다. 내 기록을 90% 이상 적중시킨 분인데 그 예언을 실현시키고 싶었다. 지난 해 춘천마라톤의 후반과 같은 질주를 시도했다. 왼쪽 다리 종아리에 슬슬 통증이 오고 있었다. 오른발 때문에 왼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로 달리기를 계속했으니..... 8킬로미터가 남지 않았을 때 달물CS님을 제쳤다. 징검다리 데크를 건너면서 옆구리에 불어난 살을 무시하고 내달렸다. 로운리맨님이 표현한 '흑표범의 질주'를 재현해 보려고 애썼다. 어느새 기온이 올라 츄리닝 바지가 몹시 걸치적거렸지만 이 순간만은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기 위하여 애썼다. 지난 해 1월부터 3월 7번 풀코스를 달려 모두 서브 330을 하고 풀코스 최고 기록을 세 번 경신했던 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모처럼 50명이나 되는 인원이 참가했지만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다른 때보다 갑절로 인사를 주고 받느라 바빴던 공원사랑 마라톤. 5킬로미터 남았을 때 내 기록은 3시간 2분 45초였다. 5분 페이스로 가도 3시간 27분대는 무난해졌다. 하지만 나는 좀더 빨리 달려야 했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1월 최고 기록을 깨뜨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은근히 쑤시던 발바닥이 이제는 마비된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5킬로미터를 23분대 중반으로 달리고 말겠다고 각오했다. 22분 후반대로 달렸다. 23킬로미터 지점에서 화장실에 다녀왔는데도 후반 하프를 1시간 41분대로 달려낸 것이다. 마지막 10킬로미터는 47분대로 달렸다.

 3시간 25분 44초. 이 질주에 대하여 무어라고 해야 할까? 다시는 3시간 20분대로 달리지는 못할 줄 알았는데 1월 최고 기록인 3시간 26분 32초의 기록까지 깨뜨렸다.

 나는 2등이었다. 3시간 14분 30초로 1등을 차지한 특전사님이 내게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네번째 빠른 기록입니다.
 3시간 30분 12초로 연형님이 3위, 3시간 34분 30초로 달물CS님이 4위로 골인했다. 일주일 전 3시간 20분대로 달려 동반주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바깥술님은 컨디션 난조로 3시간 45분대로 들어왔다.


 오른발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왼발이 오른발을 끌고 가는 자세를 했기 때문에 완주 후 왼쪽 종아리가 아팠다. 왼쪽 발바닥 통증까지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바깥술님이었다.
 -오늘 초대해 놓고 함께 못해서 미안하네요. 수고하셨구 편히 쉬세요.
 -덕분에 오랜만에 풀코스 도전했고 잘 달렸습니다.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역시 고수는 틀려요.
 -고수는 아닙니다.
 -ㅋㅋㅋ 아니라 해도 믿을 사람 없어요.


  저녁 로운리맨님의 카톡 문자를 받았다.


건달님 32544 공사 놀라운 기록 완주 축하드립니다
(얼쑤~ 옴팡지게 축하하오!!!)


로운리맨님은 대회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금요일 장염에 걸려 죽다가 살아났다고 했다. 지난 해 1월 풀코스를 네 번이나 달렸던 분이 올 1월에는 아직 한번도 풀코스를 못 달렸으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바깥술님이 마라톤 대회 참가를 독려하면서 보내준 글이 있었다.


세상은 고리처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 중 하나가 아프면
다 같이 아픕니다.


나와 연결된 고리들이
좀 더 편안해지시길.




풀코스 1위, 2위, 3위



풀코스 1위부터 4위까지 함께 함



전날 밤 발바닥 통증을 추스리기 위하여 아세탈님의 선물을 붙이고 잤다.


대회를 마치고 먹은 떡국


떡국을 먹고 있는데 달물CS님이 물었다.

요즘 훈련을 많이 했느냐고? 후반에 그렇게 잘 달리니....


떡국만 먹었더니 몇 시간 후 허기가 졌다. 아에젤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대부분 달리는 도중 먹는 젤을 나는 달리고 나서 먹는다.




배번에는 체크포인트 도장이 찍혀 있다.


1월 최고 기록을 깨뜨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2018년 공원사랑마라톤 첫 참가이니 메달을 받았다. 기념품은 다 떨어져 다음에 받기로 했다.





홈플러스 신도림점에서 쇼핑했다.





점점 구입하는 물품이 늘어났다.

돌아올 때 훈련하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