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8/02/16)-FULL 163

HoonzK 2018. 2. 21. 20:19

설날에도 풀코스를 달린다니 기특하구나. 이번에 달리면 풀코스 완주 횟수(163회)가 하프코스 완주 횟수(162회)를 넘기기까지 하니 너에게 선물을 주마. 너에게 줄 선물은 생애 최고 기록 경신이다.


 누군가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 7시가 아닌 낮 12시에 출발한다고 하여 잠을 제대로 자고 나온 것도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면을 방해받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5주 연속 풀코스라는 부담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명절 당일 마라톤 대회 참가는 기정 사실이 되어 있었다. 지난 추석 때처럼 설날 정오 풀코스를 달렸다. 그동안 너무 추워서 달릴 때마다 츄리닝 바지를 입었지만 설날에는 제법 날씨가 풀려서 반바지를 입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춥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그 동안의 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낮에 출발하니 견딜만 합니다라고 답했다. 아래쪽은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았지만 위쪽은 추웠다. 민소매에 긴팔 티셔츠만 걸치고 달리기에는 매우 싸늘한 날씨였다. 맞바람이 불어오면 긴팔 티셔츠 두 장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기온이 조금 올랐다고는 해도 여전히 도림천은 하얗게 얼어 붙어 있었고 안양천쪽에서는 찬바람이 꾸준히 불어오고 있었다. 반바지 러너는 2월의 서울 하늘 아래 아직은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4회전이라 기승전결의 러닝 방식을 채택했다. 첫 회전에서 페이스를 체크해 보고, 2회전에서 그 페이스를 유지하고, 3회전 때에는 페이스를 늦추어 후반에 대비하고, 4회전 때에는 인정사정없이 밀고나가기로 했다. 대회를 준비하는 마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5주 째 풀코스를 달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닷새만이기 때문이었다. 닷새 전 도무지 나아가지 않은 몸을 끝까지 끌고 갔던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12시 4분 출발. 특전사님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영양 섭취가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선두 주자가 되어 레이스를 이끌어 갈 수밖에 없었다. 고운 인선님이 스마트폰을 들고 내 바로 뒤에서 발걸음 소리를 내었지만 1킬로미터를 지나기 전에 그 소리가 멀어졌다. 첫 1킬로미터가 4분 55초가 나왔다. 지난 주보다 25초 이상 빠른데 훨씬 편했다. 2킬로미터는 9분 20초가 나왔다. 올라간 기온, 반바지 착용, 괜찮은 몸상태, 3박자가 어우러져 잘 나가고 있었다. 3시간 24분대로 달렸던 지난 8월 말과 3시간 26분대로 달렸던 추석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4회전이었다. 3킬로미터 13분대, 4킬로미터 18분대로 페이스는 더 좋아졌다. 5.27킬로미터에서 반환하면서 심판관에게 배번에 반환 확인 도장을 받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돌아올 때는 맞바람이 제법 있었다. 체감 온도는 영하로 떨어진 듯. 앞으로 네 번이나 맞바람을 뚫고 달려야 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바람을 등지는 것도 네 번이야 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1회전하면서 계시기를 보니 49분 30초였다. 10.55킬로미터를 49분 30초에! 가공할 페이스였다. 이대로 꾸준히 달려나간다면 3시간 18분이 가능했다. 2회전 때는 1회전의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늦추는 게 현명했다. 욕심을 버리고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겨 놓는데 2회전을 마치면서 시계를 보니 1시간 39분 45초였다. 다소 늦추어 달린 2회전이었는데도 50분 초반이라는 사실은 의외였다. 3시간 19분이 가능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풀코스를 달리면서 첫 하프를 서브 140에 달린 일은 없었는데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혹시 나 자신도 모르는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훨씬 잘 달릴 수 있는데 부정적인 생각을 거듭하며 너무 자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4회전의 단조로움만 견딜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인데...... 단조로움은 허다한 잡념으로 떨쳐 내었다. 3시간 넘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뛰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도 바쁘지요라고 답할 수 있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었다. 주변 상황에 따라 그 생각은 점점 많아질테니 말이다. 담배 냄새를 맡으면 담배와 얽힌 에피소드 한 꾸러미, 자전거를 만나면 자전거와 관련된 기억 한 무더기, 아는 주자와 마주하면 그 주자와의 추억 한 아름. 뭐, 그런 것이다. 4회전을 하다 보면 주자들과 더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인사를 건네는 것도 지겨움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결국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완주 의지'이다. 무사히 완주했으면. 그것도 이왕이면 좋은 기록으로 완주했으면 하는 바램을 끈질기게 이어가면서 페이스를 따지고 조절하고 낙담하고 다시 힘을 내고 안도하고, 그렇게 달리다 보면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고, 어느새 앞으로 달릴 거리가 줄어든다.


 3회전에 나섰을 때 화장실에 다녀왔다. 최근 화장실에 들르지 않고 풀코스를 완주해 왔는데 오늘은 피할 수 없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고개 들고...... 달리다 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외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게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사실 옆에서 함께 걷는 사람에게 한 말이었다. 마치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 자세를 바로 잡아 보려고 애썼다. 너는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힘을 빼야지. 들리지 않게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턱 당기고 전방을 주시하라고. 배에 힘 주고...... 이 말은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인데......



 3회전을 마치는 시점의 시간이 2시간 30분이기를 바랬지만 2시간 31분이었다. 어차피 2시간 30분이 될 수는 없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시간을 빼야 했다. 남은 10.54875킬로미터를 지금까지 달려온 페이스를 유지만 해도, 아니 조금 떨어뜨려도 생애 최고 기록 경신이 가능했다. 순간적으로 몸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너무 빨리 달린 티가 이제 나는구나 싶었다. 후반에 힘든 마라톤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데...... 끝까지 잘 달릴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잘 달릴 수 있을 거야. 우려와 자신감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 어쨌든 달린 거리는 늘어나고 있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발바닥의 찌릿찌릿한 통증은 매우 빨리 달리는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질주를 자제하시오. 발바닥은 낫고 있지만 아직 완치는 아니었다. New York Marathon Inspiration Video의 주제가 가사와 리듬이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I got soul, but I'm not a soldier.'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거라도 쉼없이 중얼, 중얼. 아프리카의 엘리트 선수 동작을 따라하여 3시간 14분대까지 달리게 된 법규님을 떠올리면서, 로운리맨님이 보내어 준 동영상에 나오는 선수들의 몸놀림을 흉내내기를 반복, 또 반복......


 5킬로미터를 남기고 2시간 58분이기를 바랬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오늘은 킬로미터당 5분 페이스를 유지할 수는 있으니 3시간 23분 골인이 가능했다. 정확히 2시간 58분 04초였다. 남은 5킬로미터를 25분에 달리면 3시간 23분 04초가 되었다. 즉, 3시간 23분 09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깨뜨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를 악물고 스피드를 올리니 마지막 5킬로미터를 23분 초반에 달릴 수 있었다. 특전사님과는 거의 10킬로미터 거리를 벌렸는데 특전사님은 마지막 4회전 때 내가 몹시 힘들어 보였다고 했다. 아마 나가지 않는 몸을 악착같이 끌고 나가면서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던 듯.......


 3시간 21분 07초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한살 더 먹으면서 좀더 늙었지만 지난 해 동아마라톤의 3시간 23분 09초의 기록을 2분 가량 줄였다. 이럴 수 있는가? 내 기록 경신은 아직도 진행형인가?



달리기 직전 사진. 특전사님과 맹순여사님 부부가 배경으로....



고운 인선님, 맹순여사님, 특전사님과 함께..... 나만 반바지....



하폭이 좁은 도림천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얼어붙은 도림천을 끼고 달리는 대회



썰매를 타도 되겠구나.



완주를 마친 후.... 특전사님은 평소보다 1시간쯤 늦게 달려 4시간 16분에 완주하심...





마라톤 힐링카페에서 떡국을 먹었다. 2등 주자 기록이 3시간 39분대라 다 먹고 난 뒤에야 마라토너들을 볼 수 있었다.



고혈압이 고혈앞으로.....

달리기의 좋은 점이 꽤 많구나.


지난 1월 21일 못 받은 기념품까지 해서 양말 두 족을 받았다.




3시간 21분 07초의 기록, 생애 최고 기록.....


1등 상장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 축배를 들었다. 아세탈님이 주신 호로요이 모모 술로.... 알콜 도수가 맥주, 막걸리보다 낮은데 그래도 술은 술이었다.

술 보다는 다른 것으로 선물을 주어야 할텐데.....


명절이니 전을 안주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