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6회 한강시민 마라톤 대회(2017/12/17)-FULL 158

HoonzK 2017. 12. 22. 13:32

 2017년 12월 17일 오후 2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전쟁과 평화> 4권을 읽고 있었다. 손등이 몹시 따가웠다. 벌레에 쏘인 것처럼 붉은 자국이 두드러져 있었다. 동상이었다. 몇 시간 전 영하 10도의 날씨에 한 해 30번째 풀코스를 완주했는데 그 훈장이 과했다. 발바닥 통증도 여전했다. 통증에도 불구하고 잘 달렸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서 아쉬움도 있었다. 그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하여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더 달리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발바닥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련한 짓이 될 것같았다.

 

 전날부터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달리기 의욕이 어디론가 달아난 것처럼 몸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한 해 30번의 풀코스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노력은 했다. 새벽에 세 번 이상 잠을 깨었다. 4시 59분에 맞추어 놓았던 알람을 10분씩 밀어가며 조금만 더 쉬었다 나가려고 했지만 5시 9분에는 일어나고 말았다. 하프는 9시 출발인데 풀코스는 8시 출발이니 서둘러야 했다. 대회장이 여의나루역 2번 출구에서 바로 만나는 여의도이벤트광장도 아니고 서강대교 방향으로 500미터 정도 떨어진 여의도 너른들판이라 더 여유가 없었다. 오전 7시 쯤 여의나루역에 도착했다. 바깥은 아직 어둡고 몹시 추웠다.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곤두박질친 새벽이었다. 마라톤 용품 판매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참가 인원도 적은데다 몹시 추우니 아예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덜덜 떨며 대회장으로 갔다.

 

 대회 기념품과 배번을 수령한 후 난롯가에 붙어 있었다. 헬스지노님이 악수를 청했다. 달릴 때는 엄숙 모드인데 달리지 않을 때는 친숙 모드인 분. 오늘 1등 하시겠네요. 무슨 말씀을요? 지금 보니까 최고수들이 보이질 않아요. 추우니까 아예 나오지를 않아요. (그렇지 않았다. 잘 뛰는 분들이 나왔다. 울릉도마라톤 출전 비용 지원이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바깥술님, 달물영희님, 달물CS님, 태현님 등만 보였다. 물품 보관을 마치고 난 후에야 로운리맨님이 보였다. 로운리맨님은 마라톤 대회에 나와 이렇게 추운 날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2주 동안 훈련을 전혀 하지 않아 하프만 달리고 말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안 됩니다.) 希洙형님도 보였는데 풀코스를 다섯 시간 잡고 천천히 달릴 거라고 했다.

 

한강시민마라톤대회..... 2012년부터 매년 나왔다. 6년째였다.
2012년, 2015년, 2016년, 2017년 풀코스.
2013년에는 希洙형님 응원하러 나와 14킬로미터쯤 달렸고, 2014년에는 개인적으로 나와 배번없이 하프를 달렸다.
 
풀코스 주자가 60명이 되지 않았다. 한강, 안양천, 도림천을 감아도는 긴 1회전 코스가 안양천이 도림천을 만나는 신정교까지만 갔다 오는 2회전 코스로 바뀌었다. 대회장에 와서야 알았다. 대회 기념품과 배번을 미리 배송하지 않은 점. 대회장을 멀리 이동시킨 점. 대회 코스를 당일날 2회전으로 바꾼 점. 이런 운영에 대하여 불평을 토해 내는 달림이가 적지 않았다.

 

 시계를 바꾸느라 물품을 도로 찾는 해프닝을 겪은 후 바깥술님, 달물CS님과 함께 출발했다. 1킬로미터 표지판이 없어서 페이스를 체크할 수 없었다. 긴팔 티셔츠 두 장에 방풍 비닐을 뒤집어쓰고, 츄리닝 바지를 입었는데 영하 10도의 날씨에 북서풍을 맞으며 달려나가니 몹시 추웠다. 이보다 추운 날도 많았다고 달래었다. 2킬로미터 표지판은 있었다. 바깥술님께 투덜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어요. 어째 힘들더니 9분 40초밖에 걸리지 않았잖아요. 이게 지금 3시간 20분 페이스라고요. 이대로 가다간 죽겠어요. 속도를 늦춰야지. 너무 춥기도 하네요. 빨리 안양천쪽으로 들어가야 바람을 피할 수 있겠어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주저리 주저리. 바깥술님과 지속적인 잡담 모드로 달렸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잡담 러닝인 것같다. 그러는 사이 특전사님과 헬스지노님은 앞쪽에서 맹렬하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헬스지노님은 풀코스 주자 가운데 유일하게 다리 맨살을 드러낸 주자였다. 바깥술님, 달물CS님과 보조를 맞추는데 한 젊은 친구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세 사람은 떠들고 한 사람은 조용하고 그런 레이스가 안양천을 만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급수대의 물은 얼어붙어 손으로 세게 눌러야 얼음이 깨어지면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주 물을 마셨고, 물을 마실 때마다 장갑을 벗고 물컵을 잡았다. 이 반복되는 장갑 벗기가 동상을 불러온 것이었다. 10킬로미터를 48분 45초에 통과했으니 매우 만족스러운 페이스였다. 안양천쪽으로 쭉 나아가다 신정교 아래에서 반환했다. 반환해서 보니 훈련을 못했다는 로운리맨님이 바로 뒤쪽에 있었다. 응원을 받았다. 건달님, 서브 320하세요. 서브320까지는 못 가더라도 좋은 기록이 예상되기는 했다. 출발 전에는 발바닥 통증이 살짝 있었는데 이제는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얼마만에 사라진 통증인가?

 

2012년 12월 16일 같은 대회 03:49:48.47
2015년 12월 13일 같은 대회 03:42:27.79
2016년 12월 18일 같은 대회 03:31:49.25

 

 이대로 나아간다면 3시간 20분대로 대회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다. 안양천을 왼편에 놓고 달리면서 맞바람이 있었지만 그냥 견딜만 하였다. 방풍 비닐을 찢어서 벗었다. 15킬로미터를 넘게 달려 한강을 만났을 때는 함께 달리던 분들 앞에 있었다. 아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던 헬스지노님과 특전사님이 매우 가까워졌다. 9시에 출발한 하프 주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상기님을 응원했다. 이후에는 아세탈님을 찾았다. 힘차게 달려오는 아세탈님과 만나 손을 흔들었는데 레이스패트롤하는 안수길님도 답을 해주셨다. 서강대교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바람을 등지니 한결 추위가 덜했다. 가속이 붙었다. 나를 제치고 나오는 주자들은 10킬로미터 종목 주자들 뿐이었다. 19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헬스지노님, 특전사님을 제쳤다. 1회전은 1시간 43분대. 3시간 20분대 완주는 무난해졌다. 달물CS님, 로운리맨님, 특전사님, 헬스지노님을 마주보았는데 로운리맨님이 두 팔로 X자 표시를 해 보였다. 하프만 뛴다고 했다. 낙담했다. 힘들게 주로에서 강추위를 이겨내는 도반 한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다시 마주하게 된 맞바람. 오전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추웠다. 진저리나게 추웠다. 손가락이 끊어질 것처럼 손이 시렸다. 오전 8시 출발할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입이 얼어붙어 버프를 끌어올리고 바람을 막았는데 숨이 차서 뛰기 힘들었다. 버프를 내리면 추워서 힘들고, 끌어올리면 숨이 차서 힘들고..... 안양천을 만나는 27킬로미터 지점까지는 고역이었다.  급수대 요원들은 비닐봉투를 신발에 씌워서 추위를 막아내고 있었다. 뛰는 사람은 몸에서 열이라도 나지 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삼척시청 MS님과 함께 달리게 되었는데 MS님은 내 예상 기록을 물으며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해 달라고 했다. 3시간 29분대에는 맞출 수 있겠다고 싶어서 일단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이력을 만들어보지요. MS님은 내년 삼척황영조마라톤에서 풀코스 300회를 달성하게 된다고 하였다. 2015년 삼척황영조마라톤에 출전했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즐겁게 달렸다. 이 때 뒤에서 달물CS님이 따라붙으시면서 그 분이 MS님과 함께 달리게 되고 나는 몇 미터 뒤에서 따라가게 되었다. 28킬로미터를 전후해서 건너편에서 오는 아세탈님의 응원을 받고 힘을 얻었다. 30.1킬로미터를 2시간 27분대에 통과했다. 2주 전 3시간 26분대로 골인할 때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내 몸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30킬로미터를 넘으면서 발바닥 통증이 돌아왔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날씨가 추워서 잠시 잊고 있었을 뿐 통증은 줄곧 따라오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할 수가 없었다. 통증을 견디며 완주하는 방법은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뿐이었다. 바깥술님이 뒤에서 제치고 나왔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5분을 넘어가는 페이스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3시간 29분대 가자고 말하는 바깥술님에게 불가능해 보인다고 답했다. 10킬로미터 남았을 때의 기록이 3시간 50분 30초. 남은 10킬로미터를 49분 30초에 달려낼 길이 없었다. 킬로미터당 4분 50초대로 달리면 어려울 게 없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5분 10초에서 20초까지 떨어지는 페이스가 되어 버렸다. 초반에 벌어 놓았던 시간을 모두 잃었다. 지난 해의 기록인 3시간 31분 49초보다 늦어질 것같았다. 올해 최고 기록까지 예상하였던 초반과 너무 달라져 있었다. 기록을 세우기 보다는 운동하러 나왔다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앞에서 잘 달리던 CS님도 다리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다며 걷고 있었다. 한때 서브3 주자이기도 했던 CS님은 지난 주 목포에서 3시간 46분대로 달렸고, 오늘 불명예를 회복해 보겠다는 선언까지 했는데.....


 한강변을 만나고 5킬로미터 남았을 때 욕심을 부렸다. 지난 해 세운 대회 기록만은 깨뜨리자고. 한강변을 달리면서 맞바람이 사라지니 그래도 견딜만 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발바닥 통증을 이겨내었다. 하프 후미 주자들을 하나둘씩 제쳤다. 내 바로 앞의 풀코스 주자는 바깥술님과 MS님이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3시간 29분 59초라는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이 장벽은 내가 달릴 때마다 앞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ㄷ자로 감아도는 골인 코스. 아세탈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2시간 2분대로 골인했기 때문에 나를 꽤 기다린 것이었다. 아세탈님은 내 초반 페이스를 보고 3시간 10분대로 들어올 것같아서 비상 대기중이었다고 하였다.

 

03:31:26.64

 

 지난 세 번의 한강시민마라톤 기록은 이보다 모두 떨어지지만 오늘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지난 대회에서는 모두 후반에 질주했었다. 기상 조건이나 몸 상태가 지난 세 번의 같은 대회에서보다 훨씬 좋지 않았는데 기록을 깬 것은 그래도 달리기 능력이 업그레이드된 덕분이라고 해석해도 될까? 서브 330을 놓친 주자 가운데에서는 1위를 했다. 바깥술님은 '힘들다고 하더니 바로 들어왔네. 3시간 29분대인가?'라고 물었다. '아니예요. 작년 기록만 깼어요.'

 

 아세탈님과 엄니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몸이 몹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바로 귀가하고 싶은 마음을 추스려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었다. <전쟁과 평화> 4권을 완독했고, 해설까지 다 읽었다. 손등이 무척 가려웠다.

 


 

출발하기 직전 특전사님과 함께.... 둘다 중무장하고 추위에 대비하고 있다.

 

 

얘들 추워 보이네....

 

 

 

주로 급수대 배치하는 차량이 출발하려고 한다. 7시 30분경이다.

 

골인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아세탈님이 찍어주셨다.)

 

 

 

츄리닝입고 훈련하였다고 보면 되겠다. 지난 세 번의 같은 대회보다 복장은 훨씬 무거워졌지만 기록은 좋았다.

 

 

골인 아치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때 대회 기록은 경신하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에도 110 사이즈가 커서 105 사이즈로 교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필요한 만큼 제작했기 때문에 바꾸어줄 옷이 없다고 했다. 비싸서 여분을 만들 수 없었다고 했다.

 

 

아세탈님과 엄니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제육볶음 좋고....

 

 

 

 

 

 

교보문고에서 <전쟁과 평화> 4권 뒷부분을 모두 읽었다. 서점에서만 599쪽을 다 읽는 이력을 세웠네.

 

 

 

<전쟁과 평화>는 모두 읽는 데 1년이 걸린 만큼 별도의 포스팅이 필요하겠다.

 

 

동상에 걸린 흔적인가?

 

 

달리면서 장갑을 가끔 벗은 것 때문에 이렇게 되다니.....

 

 

저녁에는 아에분 만들어 마시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했다.

 

 

 

대회 홈페이지에 내 사진이 있었다. 지난 해 복장인 것같은데.....

 

 

대회 홈페이지에는 기존 코스도가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