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장편소설 <인생> 백원담 옮김
(주)도서출판 푸른숲
첫판 1쇄 1997. 6. 20
2판 1쇄 2000. 11. 20
3판 35쇄 2017. 2. 10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
그의 <인생>을 읽었다. (2017년 8월 12일)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인생>의 원작 소설.
오정희 씨가 아래와 같이 평했다.
슬픈 이야기.... 누구의 것이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강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것인지 위대한 것인지를 가식없이 진솔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중국혁명, 대약진,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기간을 살아낸 푸구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원래 지주 집안 출신이었던 이 사람은 도박에 빠져 전재산을 날린다. 이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아내가 친정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이 빈털터리가 된 푸구이는 담담하게 농민의 삶을 받아들인다. 아픈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갔다가 국민당군에게 끌려가 몇 년 동안 군인으로 억류되었다가 해방군 덕분에 돌아오기도 한다. 이 사람은 오래 사는데 오래 사는 만큼 주변의 죽음을 끊임없이 감수해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아내, 사위, 외손자까지. 푸구이는 이 삶을 꿋꿋이 받아들인다.
해방군으로 활약하며 승승장구하다가 문화대혁명 시기를 만나 추락을 거듭하면서 자살을 꿈꾸는 춘성에게 푸구이는 소리친다. 살아 있겠다고 약속하게. 푸구이의 아내 자전도 울면서 말한다. 우리한테 목숨 하나 빚졌으니까 당신 목숨으로 갚으라구요.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춘성의 아내가 출산할 때 출산을 돕기 위하여 푸구이와 자전의 아들이 헌혈을 했는데 어린 나이에 너무 과도한 헌혈을 당해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춘성의 아내가 교장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어린 학생이 나중에 돌아올 혜택만을 기대한 나머지 자신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열 살 남짓한 어린 아이의 피를 과도하게 뽑는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긴 하다. 아무리 본인이 원했다고 하더라도. 과도하게 피를 뽑는 이야기는 <허삼관 매혈기>에도 나온다. 그 소설은 아예 매혈(買血)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춘성은 결국 자기 목숨을 끊고 만다. 그러고 보면 푸구이는 꿋꿋하다. 농아인 딸 펑샤가 외손자를 낳다가 죽고, 사위 얼시도 사고로 죽고, 외손자마저 죽어 나가는데 이 슬픈 순간을 자기의 운명으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소설가 위화는 '이 소설에서 나는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과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에 관해 썼다.'라고 했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원제는 <活着>이다.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제목이다.
담담한 서술. 읽으면서 애잔한 감정이 쉴틈없이 파고 들어 한번에 모두 읽고 말았다.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발버둥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으니 거부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 나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더 생생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중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낸 인생을 이야기하는데 먼 나라 이야기같지 않은 이유는 살아간다는 것이 어느 시기이고 어느 장소이고 어느 누구든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과 죽음, 그 비애 짙은 무게를 버티는 감내(堪耐)와 낙관(樂觀), 매우 여운이 강한 작품이다.
※ 199쪽에 이런 묘사가 나온다.
달빛만 처연하게 길을 비추는데, 마치 그 길 가득 하얀 소금을 흩뿌려 놓은 것같았어.
설마 위화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어보지는 않았겠지.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것같다는 표현은 그 소설 가운데 탁월한 묘사로 평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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