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4회 영동포도 전국마라톤대회(2017/08/27)-FULL 147

HoonzK 2017. 8. 29. 13:59

  나는 왜 달렸을까? 몹시 힘들었는데. 그렇게 힘들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달릴 생각을 접고 영동 군민운동장 그늘 한 군데를 자리잡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풀코스 주자들이 골인할 무렵 대회운영본부로 가서 영동포도 2킬로그램과 간식을 받아서 돌아왔어야 했다. 연이틀 잠을 자지 못하고 더운 날 풀코스를 달리는 건 자살 행위니까.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대로 로운리맨님따라 영동포도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셈이었다. 2004년부터 지난 해까지 다섯 차례나 나갔던 대회인데다 지난 해에는 숙원이던 8월 4시간 이내 완주도 달성했기 때문에 다시 나가고 싶지는 않은 대회였다. 50위 안에 들어 포도 입상품을 받을 수 있고, 경품도 많아서 어느때보다 당첨 가능성이 높고, 셔틀버스요금도 지난 해보다 50% 이상 인하되었다며 로운리맨님이 줄기차게 참가를 권유했지만 동기부여는 되지 않았다. 사천노을마라톤과 청춘양구DMZ 마라톤을 기웃거리다가 불현듯 로운리맨님이 떠올랐다. 벼락같이 영동포도마라톤을 신청했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2015년 한 해만 제외하고 매년 8월말 풀코스를 달리는 대회로 영동포도마라톤대회를 또 다시 선택했던 것이다. 노원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가 없어져 여의나루역 출발 버스를 타야 했다. 지난 해처럼 광화문 출발이었다면 시간 맞추기가 쉬워 잠을 조금이라도 자고 나왔을 것이다. N16번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 40분. 출발하기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다. 한강시민공원을 오락가락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금요일밤 자는 둥 마는 둥하다가 토요일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집을 나섰는데 이래도 되는 것일까? 피곤한 만큼 셔틀버스에 타면 한없이 골아떨어지겠지. 짧더라도 집중해서 자면 피로는 잘 풀릴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맨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希洙형님이 버스에 오르자마자 두 팔을 들어 반겼다. 형님은 자전거를 타고 와서 땀에 젖어 있었다. 안양에 들러 몇 명을 태우고 옥산휴게소에 들르는 삼우고속관광 버스 안에서 자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저 눈만 감고 있었다. 풀코스 출발 1시간 전인 7시 정각에 대회장에 도착하였다. 대회 팜플렛을 챙기고 경품권을 경품함에 넣고 화장실에 다녀온 뒤 짐을 맡긴 다음 스트레칭을 하였다. 대회장에 도착한 이상 당연히 달려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아세탈님, 로운리맨님, 바깥술님, 달물영희님, 은수님, 광배님, 헬스지노님, 두경님 등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노르웨이에 다녀오신 아세탈님으로부터는 또 선물을 받았다. 로운리맨님은 입상 가능성에 대하여 나름대로 분석한 자료를 내어놓았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풀코스를 달리는 분들에 둘러싸이다 보니 피곤하다는 말 한 마디 꺼내어 놓지 않고 풀코스에 도전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옷핀 네 개 가운데 한 개가 불량이라 운영본부에 가서 새 옷핀을 받아 배번을 부착하며 출발 전 전의를 불태웠다.

 

 경품 당첨은 되지 않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경품이었다. 출발하기 직전에야 정명진님과 만났다. 함께 출발하였다. 지난 해는 영동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출발했지만 올해는 영동군민운동장으로 돌아왔다. 3년 전 참가했을 때에는 출발 후 1킬로미터가 내리막이었는데 이번에는 양가동교차로를 감아돌아 나가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게 되었다. 3년 전 달렸던 코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골인하기 직전 1킬로미터가 내내 오르막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결국 이쪽 공사 때문에 지난 해 대회 장소가 바뀐 것이었다. 정명진님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달리는데도 첫 1킬로미터가 5분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리막이 있어서 그랬겠지. 하지만 3킬로미터까지 15분 30초였으니 의외로 빨리 가고 있었다. 2.5킬로미터 지점에 급수대가 있었지만 빈 컵만 있었다. 이에 대하여 은수님이 몹시 화가 나서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SIS REGO 에너지 드링크(아세탈님이 주신 선물로 만든)를 손에 들고 달리고 있었으니 상관없었다. 얼린 생수 2리터를 들고 달리는 키 큰 주자가 보였다. 광배님이었다. 오늘 생애 100번째 풀코스에 도전한다고 했다. 에너지 드링크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박수를 쳐드렸다. 그리고 오늘 코스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드렸다. 7.5킬로미터 이후 오르막이 있으니 돌아올 때 34킬로미터 전후 오르막을 조심해야 한다. 절벽을 따라 생기는 그늘을 이용하면 편하다.


 대화를 나누며 너무 여유를 부려서 그런지 페이스가 점점 떨어져 5킬로미터는 26분 후반대가 되었다. 10킬로미터는 53분이 가까스로 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러는 동안 정명진님은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옥천에서 뵜던 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체중이 불었다고 하시는데 그동안 감량을 많이 하셨나? 또 로운리맨님은 어찌나 빨리 달려나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광배님은 그래도 오늘 100회이니 3시간 30분 이내로는 뛰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하였다. 그때 앞에서 달리던 분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영동 출신이라 이 코스를 잘 아는데 코스도 쉽지 않고 오늘 기온도 높고 햇빛까지 강하니 속도를 늦추어 편하게 달리라고 했다. 동의했다. 하지만 광배님은 물통을 다 비워낸 후 스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12킬로미터 지점이었다. 광배님은 계속 스피드를 올려 3시간 25분대로 골인했다. 52위라 입상에는 아깝게 실패했다. 광배님과 동반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나도 조금은 스피드를 올렸다. 12킬로미터부터 17킬로미터까지가 최고의 순간이었다. 25분 20초가 걸렸다. 가끔 킬로미터당 4분 50초대도 나오네 하면서 좀 늦추자는 생각까지 했는데 내 몸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8킬로미터를 지나 선두그룹이 보였다. 이때부터 열심히 로운리맨님을 찾았다. SUB-3 주자 틈바구니에서 로운리맨님을 찾다가 찬일님을 만났다.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내가 21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나기 전에 로운리맨님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포기'라고 외치는데 3시간 20분대 페이스로 달리면서 '포기'라니 이게 무슨 뜻일까 잠시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50위 이내 입상은 힘들어 입상은 포기하고 달린다는 뜻이구나라고 해석했다. 특전사님도 뵙고 인사했다. 곧 정명진님도 만났는데 힘들다고 하면서도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일단 3시간 39분대가 아슬아슬하게 가능한 페이스로 반환점을 돌았다.

 

 돌아갈 때는 햇빛을 마주해야 했다. 오르막을 더 자주 느껴야 했다. 야트막한 오르막도 힘들게 느껴졌다. 지방 대회는 잦은 오르막을 피할 길이 없었다. 돌아오면서 두경님, 은수님, 제비한스님, 은기님, 바깥술님, 횡성사람님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바깥술님은 로운리맨님과 같이 좀 달려보라고 했다. 새로운 주법을 장착한 로운리맨님을 몹시 고단한 건달이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금강을 따라 달리며 절벽 아래 그늘이 나오면 잠시라도 그늘의 혜택을 받아보려고 애썼다. 급수대가 나오면 도로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몇 번이고 들렀다. 올해는 왜 에너지젤을 주지 않을까 하면서 초코파이를 먹는데 뜨거운 날씨에 녹아내려 손에 끈적끈적한 초콜릿이 묻어 뒷수습이 쉽지 않았다. 26킬로미터 지점에서 화장실에 들렀다 와서 27킬로미터 지점에서 헬스지노님을 제쳤다. 야금야금 땅따먹기 하듯이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무리 전방을 살펴도 정명진님이나 로운리맨님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 명이 내 뒤로 물러나고 있는데 그 분들은 도대체 어디에? 내 앞쪽 어딘가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점점 피곤해지고 배까지 아파오는데 이래서야 35킬로미터 이후 역주하기는 버거워 보였다. 역주는커녕 걷지 않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에너지를 아껴 34킬로미터 전후의 오르막을 넘는다고 해도 더위와 피로에 넉다운되어 버린 내 모습이 그려졌다. 주자들을 여러 명 제쳐서 30킬로미터 이후에는 90위 이내로 들어섰지만 좋은 기록을 꿈꾸기는 어려워졌다. 그저 완주만 해도 좋을 일이었다.

 

 가공할 오르막을 넘고 35킬로미터 지점에서 내리막으로 숨을 돌리며 달렸다. 5킬로미터도 남지 않는 순간은 결국 오기 마련이었다. 38킬로미터 지점에서 확실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여 그 무엇으로도 보충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이런, 지옥같은 달리기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146번 풀코스를 달리는 동안 이런 경험이 한 두번은 아니었다. 최근 그런 일이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스피드를 조금 떨어뜨려 남은 4킬로미터를 감당해 내리라. 38킬로미터와 40킬로미터 사이에서 세 사람에게 추월당하였다. 달해아름다워님과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 두 분. 그래도 3시간 41분 초반으로는 들어가 8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워보려고 했는데 3시간 44분대도 힘들어졌다. 3시간 49분대는 가능할까? 아무리 힘들어도 올해 여름 풀코스는 3시간 50분 이후의 달리기는 없도록 해야 마음이 편할 것같았다. 다시는 더운 날 마라톤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3시간 49분대가 가능할까? 정말이지 다 집어치우고 터벅터벅 걷고 싶네. 40킬로미터 표지판이 아직도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데..... 교차로 구간이 끝나는 지점에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았다. 40킬로미터를 넘어선 지 제법 되었구나. 3시간 41분대를 넘기고 있었다. 남은 1킬로미터에서 8분을 넘기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마음먹고 달렸다. 믿기 힘들지만 남은 1킬로미터를 4분 20여초에 달렸다. 그 바람에 너무 지쳐 버렸다. 로운리맨님은 내가 이렇게 힘들어 보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3:45:29.50

 

 90등이었다. 지난 해 기록을 12분 가까이 단축했다. 영동군민운동장 코스 기록은 19분 가량 단축했다. 매우 힘들었는데 연대별 입상했던 8월 6일 대회보다 기록이 좋았다.
아세탈님과 정명진님은 사진을 찍어주셨다. 하프를 달린 아세탈님은 얼음장처럼 시원한 코카 콜라 캔을 건네 주셨다. 한 순간 더위를 날리는 선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포상 콜라였다. 아세탈님의 깊은 배려에 감동했다. 정명진님은 3시간 39분대로 골인했다고 했다. 두 차례 연속 10여 초 차이로 SUB-4에 실패했던 아쉬움을 한방에 씻어낸 것이었다. 로운리맨님은 후반에 몹시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난 해 기록을 단축했다고 했다.

 

 완주메달과 간식, 완주 기념품인 포도 2킬로그램 한 상자를 받고 군민운동장 천연잔디에 주저 앉아 쉬었다. 뙤약볕이었지만 한동안 앉아 있었다. 화장실부터 가야 하는데..... 가장 큰 잘못이라면 자신의 몸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더 잘 달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내달려 완주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이었다. 자세까지 무너졌던 모양이었다. 100킬로미터 달릴 때처럼 사타구니가 쓸렸으니......

 

 화장실로 가다가 물품보관소에서 배낭을 찾으러 되돌아가는 일이 왜 그리 싫었는지..... 아세탈님과 로운리맨님을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다. 먹거리 제공처로 국수를 받으러 갔더니 봉사하는 여사님들이 많이 드셔야겠어요라고 했다. 몹시 허기져 보였나 보다. 숨 좀 돌린 뒤 아세탈님, 로운리맨님과 장터로 갔다. 로운리맨님이 아세탈님과 나에게 포도 한 상자를 사서 안겼다. 아세탈님은 로운리맨님과 나에게 포도즙 한 상자를 사서 안겼다. 나는 아세탈님과 로운리맨님에게 영동대학교 포도잼을 사 드렸다. 너무 짐이 늘어나다 보니 들고 다니는 것도 힘들어져서 포도주를 보러 갈 때는 로운리맨님이 짐을 보고 있기로 하고 아세탈님과 함께 했다. 로운리맨님은 절대 술을 사 오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사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세탈님은 포도주 판매장으로 가며 웃었다. 저는 로운리맨님과 약속하지 않았으니 포도주를 사서 선물해도 됩니다. 마음같아서는 2병 1세트를 아세탈님과 함께 사서 로운리맨님께 드리고 싶었는데 선물할만한 포도주를 추천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사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 것을......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希洙형님이 로운리맨님 이야기를 꺼내었다. 잘 달리게 생겼어. 그렇지요. 잘 달리기 위하여 늘 연구하는 사람이죠. 저한테 자료도 보내주고요. SUB-3 하고도 남을 사람인데 자기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죠. 제 생각을 바꾸어 놓은 사람이기도 하지요. 춘천마라톤에만 올인하던 제 태도가 로운리맨님 덕분에 바뀌었지요. 그냥 SUB-4 완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저를 3시간 23분대까지 달리게 만들어 놓았어요. 근래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는데 원래 저는 상대도 되지 않아요.

 

 내 달리기의 속도를 바꾼 분이 한 분 더 있다는 사실을 希洙형님은 아직 모른다. 아세탈님. 

 

 로운리맨님과 아세탈님이 주신 선물을 들고 오는 것. 풀코스 달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평생 받은 선물을 다 합쳐도 로운리맨님과 아세탈님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주신 선물보다는 적다는 사실. 2017년 영동포도마라톤대회의 강한 기억. 엄청나게 힘들었다는 것 두 가지. 잠 안 자고 뙤약볕에서 풀코스 달리기와 어마어마한 분량의 선물을 들고 귀가하기.

 

 

 

여의나루역 3번 출구. 새벽 3시.....

 

 

여의도이벤트광장 주변을 기웃거렸다.

 

 

한강시민공원..... 새벽에 보는 기분은 남달랐다.

 

 

마포대교

 

 

옥산휴게소

 

 

 

영동군민운동장 위의 하늘은 구름이 많다. 7시 7분경.... 계속 이랬으면 좋겠지만 곧 햇빛이 작렬하는 날씨가 되었다.

 

 

 

저 아래 지인분들이 많다. 사진 오른쪽 하단에 아세탈님과 로운리맨님이 조금 보인다.

 

 

 

영동을 떠나면서.....

 

 

 

번호만 좋았다.

 

 

 

 

 

올해 8월 풀코스 기록은 모두 3시간 40분대이다.

 

지난 해에는 3시간 57분 12초였으니 제법 기록을 줄이긴 했다.

영동군민운동장에서 출발하는 코스 기록은 3년 전 4시간 4분이었으니 그 때와 비교하면 다른 사람이긴 하다.

 

 

아세탈님이 주신 콜라. 다 마신 캔을 배낭에 넣고 와 집에서 찍었다.

 

아세탈님이 골인하는 장면을 찍어주셨다. 하프를 달리시고 참 오래 기다리셨을 것이다.

 

 

 

 

초죽음 상태가 되어 골인했다.

 

 

정명진님도 사진을 찍어주셨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끝까지.....

 

 

특전사님과 함께....

특전사님은 전날 양구에서 3시간 31분대로 달리시고 다음날 3시간 40분대로 골인했다.

 

 

 

 

기념품은 마음에 든다. 티셔츠를 주지 않으니 고맙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가 있어야 했다.

 

 

 

 

 

 

 

양가동교차로를 이용하게 되면서 옛 코스는 바뀌었다. 41킬로미터 이후 내내 오르막이었던 코스가 없어진 것이 다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