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수요마라톤(2017/08/30)-FULL 148

HoonzK 2017. 8. 31. 12:24

  일요일 영동에서 풀코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셔틀버스 안에서 결심했다. 수요일 대회에 참가해야겠다고. 옆 좌석에 계신 希洙형님에게는 웜다운하는 셈치고 풀코스를 달리겠다고 했지만 속내는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풀코스를 150회 가까이 달린 사람이 자기 컨디션 조절도 제대로 못하고 후반에 한없이 지쳐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거듭하면서 사흘을 기다렸다. 풀코스를 한번 더 뛰면 지난 해처럼 8월에 풀코스를 네 번 달리게 되는데 그 횟수보다 기록 경신에 집중했다. 내 능력으로는 8월 3시간 30분대가 정말 불가능한 일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화요일 새벽 4시에 잠든 사람이 수요일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전혀 주저없이 대회장으로 갔다. 반드시 해야 해. 또 한번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해야 하는 일이야. 매우 서늘한 날씨였다. 하루 사이에 늦가을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날씨가 내 도전을 도와주는구나 싶었다. 늦가을에 내가 어느 정도 페이스로 달릴 수 있을지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몇 달 뒤로 미리 가서 달리고 돌아오는 미래 여행을 하는 것같은 마음도 들었다.


 도전 의지는 타오르고 있었지만 힘들게 풀코스를 달린 지 채 사흘도 되지 않아 누적된 피로를 극복해야 했고, 쓸린 사타구니의 상처가 낫지 않아 옷이 닿으면 쓰라리니 응급 조치도 해야 했다. 4시간 동안 깊이 잔 덕분에 피로 회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상처에는 연고를 바른 후 거즈(gauze, Gaz, 가제)를 대고 떨어지지 않도록 근육테이프를 길게 붙였다.


 평일인데 휴가를 내고 대회에 참가한 바깥술님이 있었다. 화장실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2회전에 나서는 바깥술님이 Wan-sik님과 동반주를 하고 있었다.
"파이팅!"
놀란 표정으로 바깥술님이 받았다.
 "내려와 뛰어요."
 "아직은 아니지요. 너무 일러요."

 

 바깥술님보다 1시간 늦게 주로에 나섰다. 첫 1킬로미터를 1킬로미터 단일 대회에 나온 것처럼 내달렸다. 몸이 너무 빠르다고 아우성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4분 40초가 걸리지 않았다. 풀코스 초반을 이렇게 빨리 달린 일은 거의 없는데.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을 때 첫 1킬로미터가 5분 20초가 넘었던 것을 떠올리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페이스였다. 서늘한 날씨가 가속도를 붙여 주었을까? 4회전 가운데 첫 1회전을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첫 5킬로미터가 23분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함께 출발했던 용구님과 준한님의 대화가 들렸다. 저 친구 오늘 엄청나게 빨리 달리네. 마주 보게 된 바깥술님도 그랬다. 오늘 날아가네. 서브330하려고?


 이런 페이스로 계속 달릴 수는 없으리라. 일단 1회전은 가능한한 밀어붙여보자. 2회전에 나서기 직전 시계를 보니 50분 30초였다. 미친 질주를 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3시간 22분이 예상되었다. 생애 최고 기록인 3시간 23분 09초를 깨뜨릴 수도 있었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8월에 3시간 30분대로 뛰어본 적도 없는 내가 329도 아니고 322를 해서 기록을 깬다고? 그것도 다람쥐 체바퀴 돌듯이 4회전을 해야 하는 공원사랑마라톤 코스에서? 일요일 마라톤의 아쉬움 때문에 초반을 밀어붙였지만 이제는 속도를 줄여야 했다. 초반에 질주를 마다하지 않는 주자의 말로는 뻔하다. 후반에 체력이 고갈되어 현저하게 떨어진 페이스로 걷다시피 달리기 마련이다. 오버페이스의 댓가는 늘 가혹한 것이니.


 2회전에 나설 때에야 도림천 주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눈에 들어왔다. 1회전 때에는 오로지 스피드만 신경쓰느라 볼 수 없었던 꽃이었다. 과거 춘천마라톤 우승자에게 춘천 경치 어땠느냐고 기자가 물은 적이 있었다. 우승자는 빨리 달리느라 주변 경치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일까? 출발 지점부터 5킬로미터 지점까지 시간을 계산해 보니 24분 10초가 걸렸다. 1회전 때보다 40초쯤 늦춘 것이었다. 조금 편안해졌다. 바깥술님에게는 너무 빨라서 속도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풀코스 1천회를 이미 달성하신 Wan-sik님은 내게 그동안 10킬로그램쯤 뺀 것같다고까지 했다. 여전히 체중 때문에 고민이 많은 내가 1년 사이에 10킬로그램이나 빠졌을리가 없었다. 너무 빨라서 거리감 생긴다며 저리 가라는 농담까지 하셨다.

 

 2.3킬로미터 지점의 무인 급수대는 끝날 때까지 건드리지 않았다. 출발점이자 골인점인 급수대와 5.27킬로미터의 급수대만 이용해도 충분했다. 무인 급수대의 경우 산책하는 사람들이 가끔 물을 마시고 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갈증이 나지 않는 선선한 날씨였던 것이다. 이따금 지나가는 신도림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추측해 보기도 했다. 열흘 전 범람 직전까지 갔던 도림천이 어느새 물이 줄었구나 하며 그때와 비교해 보기도 했다. 2회전을 마쳤을 때, 즉 하프를 달렸을 때 1시간 42분대였다. 그렇다고 3시간 24분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3시간 20분대 기록을 쭉 나열하면 323, 325, 326, 327, 328, 329라 유일하게 중간에 324 기록만 빠져 있으니 오늘 324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건 아직 생각일 뿐이었다.

 

 근래 보기 드물게 빨리 달리고 있으니 후반에는 지칠 것이다. 빠르면 3회전, 늦어도 4회전 때에는 지칠 것이다. 미리 빨리 달려둔 덕분에 후반에 처져도 3시간 30분대에 진입하여 8월 기록을 깨뜨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후반에 사정없이 지쳐서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기는 마라톤을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려고 했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려고 해도 올라간 스피드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킬로미터당 4분 50초 전후를 왔다갔다 하는 페이스가 유지되고 있었다.  '건달은 지치지 않는다.' 이런 중얼거림을 한 100번쯤 했다. 자기 암시가 주는 착각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애썼다.

 

 공원사랑마라톤 코스의 최고 장점인 고가의 그늘. 오늘은 고가를 모두 걷어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선선한 날씨에 구름까지 햇빛을 가려주니 달리기 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8월은 고온다습(高溫多濕)이지만 오늘만은 저온소습(低溫小濕)이었다. 말이 되지 않는 날씨가 내 달리기를 돕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마주 보게 되는 주자들에게는 쉴새없이 인사했다. 무시하기도 하고, 말로 받기도 하고, 손을 흔들기도 하고, 눈빛까지 맞추어 주기도 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은기님은 마주 볼 때마다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쳐주시니 고마웠다.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들면 달리는 동안 내 달리기에 도움을 준 분들과 그들의 응원을 떠올렸다. 달리기 동영상, 달리기 관련 서적, 달리기 에너지원, 블로그 댓글, 오프라인의 만남. 기록 행진을 하는 동안 심적으로, 물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해준 분들과의 교류를 떠올리며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저 20명 남짓 달리는 마라톤 대회라고 허접하게 여기지 마라. 어떻든 내 소중한 시간을 바쳐 주로에 있지 않는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이니 이 대회는 또 하나의 메이저 대회이다. 강건달은 지치지 않는다. 지쳐서도 안 된다. 3시간 29분? 8월에 3시간 29분..... 할 수만 있다면 꿈의 기록인데......

 

 상체가 앞으로 숙여지지 않도록 신경썼다. 4회전에 나설 때 2시간 33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첫 회전 때처럼 50분 30초에 달리지 않아도 3시간 20분대가 충분히 가능했다. 4회전을 끝내는 바깥술님이 '잘 다녀와요. 나는 먼저 갈거야.'라고 했다. 이미 32킬로미터를 달렸지만, 그것도 빨리 달렸지만 그리 지치지 않았다. 공사하는 구간이 있어 ㄷ자 달리기도 여러 차례 해야 했고, 자전거와 담배 냄새는 계속 피해야 했지만 잘 달리고 있었다. 가만 있자, 3시간 29분으로 골인하려면 5킬로미터 남았을 때 기록이 3시간 4분이면 되는구나. 남은 5킬로미터를 25분으로 달린다는 전제하에. 빨리 37.2킬로미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발놀림을 꾸준히 하면서. 급수대에서 펩시콜라 한 잔을 얻어마시고 5킬로미터가 남은 지점으로 돌아왔다. 3시간 1분 20초 경과. 3시간 29분 완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돌아볼 것이 없었다. 사흘 전만 해도 한없이 지쳐 버렸던 내가 남은 5킬로미터에서 가속도를 붙였다. 남은 5킬로미터를 23분 37초에 달렸다.

 

 3:24:57

 

 8월 최고 기록을 올해 들어 세번째 경신했다. 생애 두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네 번을 왕복하는 코스를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공원사랑 마라톤 코스 최고 기록도 세웠다. 3시간 29분 42초를 5분 가까이 당겼다.

 

 죽을 때까지 달려도 8월의 이 기록은 깨뜨리지 못할 것이다. 8월에 이런 날씨를 만나기도 어렵고, 내 컨디션이 그날 딱 맞추어 이번처럼 좋기도 어렵고, 해보겠다는 의지까지 끌어내기도 어려울 것이니.

 

 기록증을 발급하는 분에게 혹시 상장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만들어 드릴게요.
-혹시 1등인가요?
-그럼요. 이 기록으로 1등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요.

 

 

직접 내 다리를 촬영해서 올리기는 곤란하여 그림으로 그렸다.

 

 

새벽에 챙겨 나간 아에드와 SIS REGO

 

 

을지로입구역 김밥집에 들렀다.

 

 

김밥 한 줄을 샀다.

 

 

새벽 5시 30분이 되기 직전 지하철에서 먹었다.

 

 

도림교를 건너가면서 내려보니 무인 급수대가 보였다.

 

 

참가비를 내고 작은 배번을 챙겼다.

 

 

 

마라톤 힐링카페 안에 이런 것도 있었네.

 

출발 지점이자 골인 지점

 

 

 

공원사랑마라톤 코스에서 3시간 24분대로 달리다니.....

그것도 8월에.....

 

 

8월 기록으로는 내 인생 하이(high)일 것이다. 다시는 못 깬다.

 

 

모처럼 1위 상장을 받았다.

 

 

칠순마라톤 10주년 행사가 있는 날이었는데 참석은 못한다고 했더니 특별 기념품을 주었다.

 

 

 

500밀리 물병이다. 납작해서 술병으로 써도 되겠다.

 

 

홈플러스 신도림점에 들어가 간단하게 물품을 구입했다.